중년이 되면서 불도에 심취하여
중난산 구석으로 최근 집을 옮겼다
마음 내킬 때면 혼자 이리저리 다니니
스스로 깨침보다 나은 일은 없으리
계곡물 끝나는 곳까지 걸어가
앉아 있으니 구름 일어나는 것이 보이네
우연히 숲속 늙은이를 만나게 되어
서로 이야기하던 중 돌아갈 시간을 잊었네
-『조선일보/최영미의 어떤 시』2023.09.18. -
당나라의 시인 왕유가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 자연을 노래하나 그 속에 늘 인간이 있고 깨달음이 있는 왕유의 시가 좋아지니 어느덧 중년을 지나 노년이라네. 처음 볼 때는 특별한 게 없는 듯하나 볼수록 좋아지고 자꾸 생각나는 시를 그는 썼다. 소동파의 시가 톡 쏘는 강렬한 맛이라면, 왕유의 시는 누룽지처럼 구수하다.
4행 “勝事空自知(승사공자지)”를 “좋은 일은 나 혼자 알 뿐”이라고 옮긴 번역도 있지만, 나는 류인의 해석 “스스로 깨침보다 나은 일은 없으리”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누구누구를 찾아가 길을 묻던 젊은 날들도 돌아보니 다 헛되고, 남의 말을 믿다 일을 망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뼈아픈 실수로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과 한숨의 밤을 보낸 뒤에야 우리는 깨닫는다. 가장 뛰어난 스승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히 숲속 늙은이를 만나” 이야기하다 돌아갈 시간을 잊는 그런 달달한 즐거움이 올가을에 찾아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