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B플랫 장조 Op.106은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라는 제목이 달려 있는 작품으로서, 1817년 가을부터 첫 스케치가 시작되어 1819년 3월경에 마무리되었다. 방대한 스케일과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을 작곡하는 데 베토벤은 거의 1년 이상의 시간을 바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합창 교향곡’의 첫 악장의 윤곽이 잡혔고 <장엄 미사>의 작곡에 착수함과 동시에 여러 건강상의 문제들과 재정적 어려움, 조카인 카를과 관련한 법적 소송 등을 겪고 있었다. 빈 근교인 뫼들링에서 머물던 베토벤은 “현재의 처지에 맞서고자 작곡을 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함머클라비어, 현대적으로 개량된 피아노
이 작품은 베토벤의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이미 피아노 협주곡 4번과 5번, 피아노 소나타 Op.81a,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Op.96, 피아노 트리오 B플랫장조(대공의 이름이 부제로 붙은) 등을 헌정 받았고, 더 나아가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Op.111과 장엄 미사, 대푸가까지도 헌정 받게 된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사람도 위대한 음악작품을 이토록 집중적으로 헌정 받은 루돌프 대공만큼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19세기에 제작된 피아노포르테(함머클라비어).
1819년 9월 아르타리아 사에서 출판될 당시 악보 맨 앞 페이지에 인쇄된 ‘함머클라비어’라는 제목은 어떠한 음악적 혹은 악기적인 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탈리아어로 당시에 현대적으로 개량된 피아노를 뜻하는 피아노포르테라는 단어를 독일어로 옮긴 것으로서 망치(Hammer)와 건반악기(Klavier)의 혼합명사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는 잭이 현을 잡아 뜯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피아노포르테, 즉 피아노는 해머가 액션에 의해 현을 때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독일어 대본에 의한 징슈필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음악혼을 도취시켰던 것처럼,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장르에서 독일어를 통해 인쇄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아르타리아 출판사는 베토벤의 의도와 당시의 관행을 절충하여 두 종류의 제목, 즉 하나는 프랑스어 판으로서 Grand Sonate pour le piano-forte, 다른 하나는 독일어 판으로서 Grosse Sonate für das Hammer-Klavier라는 제목으로 인쇄되었다. 피아노 소나타에 ‘함머클라비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베토벤의 다른 소나타(Op.101과 Op.109)나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의 경우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경우로 비교적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유독 이 제목이 Op.106에 잘 어울리는 것은 아마도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Kempff plays Beethoven's Piano Sonata No.29 'HammerKlavier'
Wilhelm Kempff, piano
DG,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