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혼자 남겨두고서
고층 아파트는 집 평수만큼 놀이터를 갖는다 그들은 놀이터의 그림자를 접어 하늘에 펼친다 연두가 초록으로 짙어져 CCTV 화질은 선명해지고
아파트 아이들은 그들 명의의 모래성을 쌓기 위해 일찍감치 위로만 오른다 단계도 밟지 않고
아파트 옆 빌라의 아이들 5월의 새싹처럼 놀이터를 찾아 그네를 탄다 발을 굴러 허공을 가르면 하느님이 가까이 보일까? 들리는 음성이 없는지 다시 뒤로 올라간다
끊임없이 흔들린다
벌판을 달리듯 차고 나가 빠르게 어른이 된다 부모들이 불러도 5월의 어린이라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데
아파트 경비원을 보고서야 후다닥 돌아간다 하느님을 혼자 남겨두고서
껌 좀 씹을까
그때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했어 우리는 종종 껌을 씹었지 껌 중에서도 풍선껌이 제일이었어 입술을 오므리고 푸ㅡ욱 불면 올챙이배만큼 커지잖아 그 맛을 느끼려면 뱃심이 있어야 했지 뱃심 말이야 그게 생기면 개구멍이 정문보다 편해지지
문방구 집 아들 문호는 개비에 가득 껌을 갖고 다녔어 하루는 뱃심 좋게 껌을 질겅질겅 씹다 선생님께 걸려 딸꾹, 뱉으래도 딸꾹딸꾹만 했지 학교 안의 모든 껌을 떼러 다녔지 껌을 씹어가며 껌 풍선을 불어가며 껌 종이의 판박이를 교과서마다 빼곡히 붙이던 딸꾹이가 장가들어 붕어빵 같은 아들을 쌍둥이로 낳았다나 그 아들 청첩장 들고 동창회에 나와선 볼록한 배를 내밀며 자랑삼아 말했다나 껌 자랑 말이야
ㅡ 암은 아니래 거짓말처럼 예식장에서 쓰러져 혼주 자리도 못 지켰대 배 속 가득 물이 찼더란다
이건 그 후에 들은 이야기
나는 초등학교 때 풍선껌은 씹지 않았어
리비아는 주소가 없다
바위 주름이 해체돼 율법처럼 누운 사막에서
히치하이크를 감행한 사내
음양의 기록이 지워지는 길 위의 배후를 보라 하얗게 추락하는 바람 아래서는 아라비아숫자를 남발할 수 없고 모래 표정을 읽기 위해 물에 대한 상상은 금지했다
절인 언어들이 난분분한 리비아
신기루가 펼쳐지고 파동에 휘말릴수록 횡단은 어려웠다
길이 지워져 부재를 주장했다면
샌드스톰*에 휘말린 낙타의 유골이 소리쳤을 것이다
사내의 어떤 선택도 오아시스였다
질끈 눈 감은 할라스**는 모래 산으로 활활하고 자신의 체온보다 높은 열기가 식어야만 나아갈 수 있던 사하라에서 안부는 사구 위 사서함에 맡겨졌다
유랑이 유효한 소인으로 찍힌 후에야
태양의 피로 물든 지중해를 걸어볼 수 있었다
리비아발 서울행은 유목의 피에 대한 안녕을 고했던 것
한 사내가 종로 4가에서
리엔트리 비자를 찢고 있다
* 사막에 이는 거대한 모래폭풍.
** ‘모래폭풍’의 아랍어인데 ‘마지막’이라는 어원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CU 편의점
저녁을 거른 채 출근한 알바는
삼각 김밥으로 24시간 편의점의 24시를 넘길 작정이다
당기세요를 밀고 들어오는 여자는 스타킹을 벗어버린 뒤태가 야하다 에세 한 갑 사서 나가는 그녀의 행선지는 텔 텔 텔 그 흔한 밤 속
늘 똥 싼 바지만 입고 오는 남자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앉아 창밖만 바라본다 눈을 마주쳐본적이 없다 축 처진 아랫녘처럼 오랜 취준생이다
공사장의 인부들은 박카스로도 건배를 한다 칠백 원짜리 박카스를 들고 건배하고는 각자 계산한다 동전 대신 키드로
안전모에 1+1로 새벽을 챙기던 이들은 2+1 행사엔 꼭 참여하지만 박카스는 행사가 없다
바비큐 치킨을 사 가던 노총각은 양계장에 취직해서 진공포장을 하고 가끔 호주머니에 초콜릿을 넣던 여고생은 칠면조를 키우러 갔다
편의점에 구운 달걀은 있어도 날달걀이 없는 건 언제 어디서나 씨유 씨유를 외치고 싶기 때문
변심한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바지는 옷장 안에서도 푸르던 때를 기억하겠지만 나는 지금 까지의 일을 추억의 저장고에 넣어버려
기억이 없어야 하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쁜 놈! 나쁜 놈! 하던 기억은 사라지고 어디로 가면 돼? 라는 말부터 내뱉었다
길 가는 사람 백 명에게 물어봐서 뭐해, 난 너 하나면 돼 라는 말에
해삼은 마지막에 이르면 내장 모두를 빼낸대 라는 말로 응수했는데
스피커 볼륨을 높인다 황색의 신호를 무시한다 반대편 스타벅스를 보고 급브레이크에 U턴하는 내 모습에
에취!
배알도 없이
속도위반은 어려워
추석 전날
손은 젖고 국은 넘쳐 전화벨 소리에 티브이 리모컨을 귀에 댔다 간신히 휴대폰을 받자
‘잘 지냈니? 내려온 김에 한번 보고 가려고’
풋사랑 같은 첫사랑 남자의 목소리
그와 나의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준비하는데
설렌다
감정은 끓던 찌개 속 김치와 콩나물처럼 섞이고
둘 사이의 중간은 어디쯤일까 생각하며 오늘은 다가섬과 다가감이 일치하기를
내가 간 만큼에 네가 도착하기를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럿의 아이를 낳아 기르겠지
유행가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었겠지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속도위반에는 서툴러 ‘네가 처음이었어’라는 말을 듣고도
또 내려오면 연락해
때로는 왜 우냐 묻는 사람이 고맙다
아침에 먹는 라면이 슬퍼요
라는 말을 들은 후 시계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몇 시까지를 아침이라고 단정해야 할까
열두 시를 넘긴 시간이라 아침은 아니라며 가스 불을 켠다
물을 붓는다
밤낮이 따로 없어 적당량은 없고
라면을 귀한 손님상에나 올렸다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의 꼰대는 밤새 마누라에게 꼬집힌 옆구리를 드러내며 나왔다
물 반 면 반의 불어 터진 라면처럼 배불뚝이 꼰대의 허풍도 자고 나면 부푼다
달걀을 깨뜨리던 숟가락을 눈두덩에 댄다
캄캄해서 뵈는 게 없다
거짓말처럼 눈물에서 수프 냄새가 났다
충혈된 눈에서 새빨간 말이 흘렀다
이렇게 흐르는 눈물을 보고도 나에게 메말랐다나 뭐라나
때로는 왜 우냐 묻는 사람이 고맙다
오늘이 어제와 동갑이어서 좋은 것처럼
시집 『껌 좀 씹을까』(한국문연, 2020)
조명희(趙明姬) 시인
전북 김제 출생
2012년 『시사사』로 등단
2020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시집 『껌 좀 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