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의 조금 남은 뒷부분이구요 그 뒤로, no2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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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너무 끔찍해서 바들바들 떨리고 트롤의 산성피를 겁도없이 건들다 살이 타들어가는 경험까지 해 보았지만 이제 익숙해 지다 못해 무감각해져 버렸다.
괜히 몇백년을 이렇게 살아온게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트롤의 피는 이제 나에게 아무 해가 없도록 베닉과 센시아가 방어 마법을 영구적으로 걸어주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고기들을 써는 느낌이 너무 좋아. 으흐흐흐~."
이러다가 인간고기도 썰어보고 싶다고 난리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살인자가 되는 건 싫은데 말이지.
"징그러운 웃음."
신나게 칼질을 하면서 요리를 즐기고 있는 나에게 딴지를 걸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예상한 대로 라우녀석이었다.
내 분명 나의 성스러운 부엌에 무단 출입을 하지 말라고 누누히 일렀거늘. 내 경고따위는 무시해도 된다 이거냐.
가소로운 녀석!!
순간 부엌에 있는 나는 천하무적이다, 라는 얼토당토않는 생각이 들면서 내 손에 있던 식칼이 매끄럽게 날아갔다. 목표는 라우의 머리.
'팍!'
역시나 맞출 수 있을리가 없지!!
너무 싱겁게도 나의 혼신을 담은 일격이 갸우뚱하나로 무마되어 버렸다.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기분 나빠할 게 아니었다. 라우의 머리를 비껴가 부엌 벽에 박힌-어흑, 내 부엌이-칼을 스윽 쳐다보던 라우가 싸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므로.
흠칫.
이 뒤에 벌어질 일이 너무도 뻔했다. 어느새 라우의 한손에는 푸른 스파크가 튀었고 그와 동시에 나의 동공은 확대되었다.
도망은 헛된 꿈과 같았기에 나는 체념하며 고개를 숙였다.
젠장, 엿됐다...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내 두 눈에 별이 튀었다.
Muria no.2 행동은 사후를 생각하며-생각없는 인간들은 언제든 뒤통수까인다.
레어 밖은 참으로 화창하다.
베닉과 센시아는 오늘 아침부터 드래곤 로드의 레어에 가고 없었다. 이제 몇 일 후면 라우가 500살이 되는 날인데 그 날 치룰 성년식을 위해 가는 듯 했다.
라우가 성년식을 치루고 나면 분명 녀석은 분가 할 테고 그렇게 되면 나는 라우가 태어나기
전에 느꼈던 인생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 미운 정도 정이라고 약간 섭섭해 할 지도 모르겠지 만, 알게 뭐냐 그런 사소한 감정 따위. 지금 기쁜 기분을 그런 조잡한 감정따위로 망쳐 질수는 없다.
"크크크크..."
햇살이 내리쬐고 울창한 숲 내음이 부드럽게 바람에 날려오는 이 날씨에 앞으로의 인생전환 에 대해 생각해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약간 낮은 음에 조금 음침해 보일 수도 있는 음성이 었지만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
사실 내 웃음 소리는 아주 우-아함의 극치를 달리며 은쟁반의 옥구슬이며, 지저귀는 꾀꼬리 같은 갸냘프고 고운 소리는 절대 아니지만-안다 알어. 내 목소리는 나무쟁반의 모래알이고 포수의 총에 맞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참새소리다-그럭저럭 호탕한 웃음소리다.
그러나 이 좋은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언고 하니....이거 참 사는 게 뭔가하는 생각이 또 드네.
내가 라우를 본 지도 이미 몇 백년이 흘렀다. 아무리 적은 시간을 잡더라도 500년은 넘었다는 소리다. 처음에 녀석이 아주 어렸을 적에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약간 어려워 보였기는 했지만 이렇게 나를 만만히 보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하니까 하는 소린데 그녀석이 알에서 막 부화하려할 때의 일이다. 정작 엄마인 센시아는 베닉이랑 산책좀 하고 온다고 한 소리 하고는 몇 주일동안 행적이 묘연했었다. 그리하여 라우녀석이 낑낑대며 알을 깨고 나왔을 그 당시, 녀석이 처음 본 존재는 센시아도 아니요, 베닉도 아니요, 바로 나란 말이다.
그것 뿐 만이라면 말을 안해. 나의 빠른 연락대처 방법으로 하루가 다 가기전에 센시아와 베 닉을 찾아내 데리고 온 후 그들이 라우를 보며 기뻐했던 것도 몇일. 센시아 성격에 얌전히 앉 아 애나 볼 드래곤이 아니었다. 게다가 베닉은 어린 드래곤을 다루기가 매우 어색했던지 왠만한 일이 아니고서-가령 진지한 얘기를 할 때 빼고-는 라우에게 버벅거리는 태도만 보였다.
이런 무책임과 무관심 속에서 자라면 애가 어떻게 되겠는가. 센시아의 말로는 드래곤은 원래 자립심이 강한 존재라서 어렸을 적부터 혼자 크는 아이가 한 둘이 아니니 신경끄라 했지만 인간 인 나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먹이고-오크를 잘게 다져주거나 사지를 뜯어주는 일-씻기고-가시덩쿨을 이리지리 뜯어서 손
이 다 까이고 그 상태에서 트롤의 액체를 가시덩쿨에 묻혀가며 씻겼다-재우고-이 놈은 뭐 그 리 잠이 없는지 밤에 그 무시무시한 붉은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가히 공포였다-키 운게 대체 누구였냐고!! 아까도 말했지만 바로 나란 말이다.
센시아는 그런 내 모습에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그 긴 발로 내 엉덩이를 푹푹 차며 놀려댔지만...변태. 나는 이때 부터 순결을 잃었던 거야. 어쨌거나 낳은 엄마는 아니더라고 키운 엄마인 나인데 이럴수는 없는 거다. 내가 어제 잠시 뇌의 기능이 맛이 가서 식칼을 던지는 사소한(?) 실수를 했기로서니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놔?
죽지 않을 정도로 팼냐구? 차라리 그럼 오.히.려. 다행이다. 몸뚱이의 상처는 치유라도 할 수 있지 이 놈의 정신적 쇼크는 말도 못한다.
좀 아득히 먼 옛날의 일이긴 하지만 내가 노괴물에게 혹사당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노괴물은 나에게 실험을 요구해 왔고 힘없는 나는 이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내가 최면술에 일가견이 있단다!!'
자신있게 외치는 노괴물의 눈가에 미미하게 경련이 일었다. 그걸로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인간은 최면술의 '최'자도 모르던 존재였는데 오늘 갑자기 저 빌어먹을 노쇠한 머릿속에 한 가닥 단어가 스쳐지나갔겠지. '세뇌'라는 이름의 단어가.
노괴물은 몰랐겠지만 나는 저 인간이 서재에서 흘리는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단 말이다.
'세뇌? 오호, 이거 참 좋은 거로군. 오호호오-.크크크큭....이걸 이렇게 저렇게 하면...오호! 정신적인 나의 노예가...카카카카카카!!!'
오싹오싹
쭈삣쭈삣
육체적인 노예조차 악마들의 찬송가 소리마냥 기껍기짝이 없는데 정신적인 노예라고?! 차라리 날 죽여라.
'뮤리아야~'
드래곤 피어보다 더 무섭고 포크로 접시 긁는 소리보다 더 소름끼치는 목소리여...이때 만큼 내 이름이 저주스러울 때가 없었지.
'.......으윽.....내 팔자야....'
거절은 사용 할 수 없는 단어다.
뭐, 다행히도 그날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었지만 만약이라도 성공해 봤어봐라. 그 끔찍함을. 아아, 생각난다, 생각나. 최면술의 글귀가....
'아가야 아가야, 너는 이제 막 태어난 병아~리. 네 꼬꼬맘(Mam)은 잘생기고 위대하고 우러 러 볼 수 밖에 없는 찬란하신 이 몸~. 날 평생 존경하며 살아라. 우힛, 우힛, 우히히힛...'
최면술의 글귀마저 저렇게 악독할 수가 없다. 누가 병아리고 누가 꼬꼬맘이냐?! 만약 노괴물 자식으로 태어날 병아리가 있다면 나는 평생을 그 병아리를 위해 기도하며 살것이다. 그리고 그 병아리가 노괴물의 악의 구렁텅이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아 닭이 된다면 내 그 닭을 위해 양 계장을 차리며 온갖 호의호식을 다 누리게 해 줄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일용할 양식이 되는 축복을 내리겠지. 나도 일단 먹어야 살것 아니냐.
어쨌거나 그만큼이나 충격적인 기억에서 알 수 있듯이 정신적인 충격은 말로 표현 할 길이 없다.
그런데 라우, 그 고추장에 지져먹어도 시원찮을 녀석이 나로 하여금 그런 끔찍한 정신적인 충격을 먹인것이다.
정신적인 쇼크.
이른바 라이트닝을 내 머릿속에 흘려보내는 그 악질적인 행동이라니!!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벌써 뇌가 녹아내려 죽었다구!
아쉽게도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죽진 않았지만 한동안 머리가 지릿지릿 거리 며 평소에 잠자고 있던 의문이 순식간에 튀어 나오고야 말았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꾹꾹 숨겨왔던 의문이. 봉인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지금 나의 이 생활을 깨뜨릴지도 모르는 그 무언가를 말이다.
그래, 그게 문제였던 거다.
"훗...."
지나가는 뭉게구름을 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흘려본다. 해가 중천에 떠 있군. 눈이 부신걸.
이 시각이라면,
"제길... 점심 먹을 시간이네."
상큼한 미소가 감돌았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끼길 바라는 거였고 사실은 우거지상이겠지.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져. 으그극으그그극 거리며 짜부라지는 듯한 느낌.
나 혼자만 있으면 즐거웠을 점심시간이 라우놈까지 옵션으로 따라 붙는다는 생각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바뀌는구나.
센시아랑 베닉.... 분명 점심 때 전까지는 온다고 했는데.
"또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란 말이냐."
한차례 입을 삐죽이며 툴툴거리던 나는 슬슬 점심 식사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 온 머릿속을 지배하였으므로 어슬렁어슬렁 레어안으로 향했다.
마루-라고 생각 되는 레어 안의 가장 넓은 공간-에는 라우가 꽤 두꺼워 보이는 책을 넘겨보며 피식거리고 있었다.
붉은 색 표지로 된 꽤 낡아 보이는 책이었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 내용이 있다고 평소 웃지도 않는 안면 가득 미소를 피우시나.
괜히 궁금해진 나는 뒷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무슨 책이야?"
내 질문에 그는 책에서의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고는 짧게 한 마디 해 줬다.
"밥."
밥이라는 책이구나. 그래, 그래. 니 머릿속엔 밥 이라는 단어밖에 없지? 근데 너 그거 아니?
밥 이라는 단어에 모음'ㅗ'를 붙이면 바보가 된다는 사실. 한 마디로 지금 넌 날 희롱한 거지?....
라우에게 미운 털이 보이는 이후로 무슨 짓을 해도 도무지 저 녀석이 이뻐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했기에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라우에게 요리 재료를 구해 올 것을 요구해 왔다.
"오늘은 좀 신선하면서도 살이 연한 걸로 잡아오는 게 좋겠어."
오늘의 요리법은 무엇이든 지지기. 돌판에 노릇노릇-. 왜 하필 지지는 거냐고? 지금 내 마음속에서 라우 녀석의 입을 지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르고 있거든.
훗.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면 사상이 잔인해진다. 나처럼....
......
순간 회의감의 파도에 발이 적셔지고 있을 때 라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을 때 내 손은 잽싸게 목표물로 향했다.
라우가 읽으며 키득대던 그 붉은 책으로-.
"궁금한 건 못참아. 인간이란 원래 호기심 강한 생명체거든."
그 호기심으로 인생 망한 인간 여럿 있지.
"나라던가...."
작게 중얼 거린 나는 한차례 더 한숨을 내 쉰뒤 누런 종이위의 글로 시선을 두었다.
"그녀의 관심을 끄는 법, 넘버 세븐."
라우가 읽던 부분이 그대로 펴져 있는 책의 첫 머릿글을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어이 없음.'
너, 이런 쪽의 책을 좋아했던 거였어? 맨날 고상한 척 하더니만 실상은 별종이었다니.
어쨌거나 이미 읽은 뒤므로 중얼 거리듯 다음 글의 내용을 읊어갔다.
"여기 까지 오면서도 그녀의 관심을 못 끌었다는 것은 무척 유감이다.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안 넘어 온다면 그녀는 진심으로 당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아니, 아무리 관심이 없다해 도 이건 너무한 처사다. 그녀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곱게 체념하는 것이 당신이 사는 인생이 편안해 질 것이다."
왠지 앞 부분이 궁금해 지는 구절이다. 넘버 식스(six)까지는 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나.
"그렇지만 그녀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면, 그녀를 잊느니 차라리 삶을 포기하고 싶지만 죽을 용기가 없는 당신이라면 마지막 방법으로 이걸 권하겠다."
그냥 나가 죽어라.
"소멸의 돌을 사용해라. 잉? 소멸의 돌이 뭐시다냐?"
처음 들어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은 간단히 풀렸다.
"남의 책 몰래 읽으니까 기분이 어때?"
"별로 좋진 않........웰 컴!! 나의 사랑스런 라우군!!!"
이런 상황전개를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이놈의 호기심 때문에.... 아윽...
녀석은 드래곤이었다. 가끔 그 사실을 까먹는 이 몸의 돌대가리로서는 그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이 레어 주변 숲에는 그다지 많은 몬스터들이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거리들이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책이나 내려놔."
"응."
라우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며 나는 조용히 책을 내려놓...을리가 없지. 홧김에 그냥 뒤로 던져버렸다. 이정도 개김은 애교로 봐줘도 무난할것이다. 니가 나한테 한 짓이 얼만데.
예상대로 그다지 꽁한 성격이 아닌 라우는 날아가는 책을 힐끗 바라보다가 작게 도리질 치며 한숨만 내쉬었다. 그 모습이 마치 유치한 어린애 장난을 한심해서 못 봐주겠다는 것 처럼 보여 기분이 묘했지만 어쨌거나 그냥 넘어갔으니 괜히 태클걸지 말자.
그것보다 나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라우."
"왜."
"소멸의 돌이 뭔데?"
"알게 뭐야."
귀찮은 듯 막 잡아온 오크를 바닥에 쳐내버리고 털썩 주저앉아 내게 손사래친다. 나는 그런 라우의 옆으로 바짝 다가앉아 얼굴을 더 밀어붙이고 초롱초롱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내 눈빛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는 내 얼굴을 한번 쓰윽 바라보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뭔데에~"
"말 그대로 소멸하는 돌."
"돌이?"
"아니, 사용자가."
짜식, 이렇게 설명해 줄거면서.
"원래 이름은 '바르카바의 돌' 어느 미친 블랙드래곤인 바르카바라는 놈이 만들었다더군. 한 인간을 사랑해서 만든 돌이래. 그 인간을 위해서라나?"
"헤에... 드래곤들은 정말 할 일 없는 종족이구나."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우였다. 그러나 라우여, 이 사실을 아느냐. 내가 한 말은 너도 할일없는 놈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할일 많은 놈이었다면 저딴 책을 읽으며 쪼개고 있을리가 없잖아.
"그래서 그 돌의 정확한 쓰임이 뭔데?"
나의 질문이 너무 끈질긴지 그는 내 입을 그 큰 손으로 틀어막고 빠르게 말했다.
"소멸의 돌은 사용자에게 소멸을 내릴 수 있는 축복의 돌이라고 어느 놈이 말하더군. 소멸이 왜 축복이냐고?"
내 마음을 읽을 줄도 알고 다 컸구나.
"소멸의 돌은 그냥 평범하게 소멸만 시키는 돌이 아니야. 어떤 이가 자신의 소멸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그는 소멸해. 형체도 없고 존재자체까지 지워지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어?"
도리도리
"존재자체가 소멸된다는 것은 그가 관련된 모든 것이 그를 잊거나 사라진다는 거야. 말 그대로 진정한 소멸이지."
"푸핫, 진짜?"
내 입을 막고 있던 라우의 손을 치우자 마자 상쾌한 공기가 입안으로 모여들어왔다. 두터운 솜이불을 머리 끝까지 덥고 있다가 단번에 걷어버린 느낌이.
그런 느낌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는 것도 모르고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소멸의 돌이라...
소멸을 간절히 원하는 자의 소멸을....그 존재 자체의 소멸을 이루어 준다고. 나와 관련된 모든 존재들이 나를 잊고, 나는 사라진다. 그야말로 진정한 소멸.
아까 레어 밖에서 말했던, 내 안에 얌전히 자고 있던 의문점이 다시금 떠오른다.
'나는 진정 자연적으로 죽을 때까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드래곤이라고 해도 베닉들 또한 생명체이니 언젠가는 죽는다. 그 시기가 인간들 보다 매우 길다는 것 뿐.'
'베닉들이 사라진다면...나는...나로 있을 수 있을까?'
없다!!
나는 인간이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존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야말로 나약한 존재다. 그런 내가 원래의 수명 이상으로 산 것은 베닉과 센시아, 인정하기는 싫지만 라우와 그 밖의 안면있는 다른 드래곤들 덕분이다.
워낙에 그들의 삶은 특이해서 아주 적은 날을 빼고는 질리지가 않는다. 그럼으로써 나는 600여년이라는 기가 막힌 세월을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베닉들은 수면기를 맞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말은 안하지만 나때문이겠지.
그들은 나를 혼자 레어에 둔 적도 없었다. 어디 볼일이 있으면 꼭 한명씩은 나와 레어에 있던가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나를 반드시 데리고 가든가 다른 드래곤에게 맡기든가 한다. 마치 내가 아주 어리고 어린 아기라도 된다는 듯이.
어찌 보면 부담스리울만치 나에게 잘해 주느라 자신들의 할일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을 보면 서글퍼 지는 게 사실이다.
너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또 어떤 면으로 본다면 나는 이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 세상엔 나 혼자야, 아하하하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여~'
그리하여 가끔씩 나는 광년이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훗.
"고모?"
라우의 부름에 생각에서 빠져나온 나는 놀랬다.
아무도 없는데 저 녀석이 나보고 '고모'라고 부르다니!!
감동의 물결이 밀려와 내 두 눈에 머물렀다. 일렁이는 시야에 라우의 모습이 흐려지면서 그 뒤에 왠 그림자 두개가 보인다.
"얼러..."
뿌얘진 시야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눈을 깜빡이던 나는 시야가 제대로 트이자 두 그림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얏호, 뮤리아~~. 다녀왔어~~."
발랄하게도 길고 긴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내게 돌진해 오는 몬스터(?)의 정체는 센시아였다. 그리고 그녀 뒤에서 쿨한 모습으로 따라오는 베닉도 보인다.
그럼 그렇지.
라우 녀석이 철 들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이미 물기따윈 사라진 무미건조한 눈으로 라우를 훑었다. 위 아래로 상당히 띠껍게.
녀석은 이런 나의 태도를 보고 기분나쁘게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이런 이런, 나한테 반했나? 이럼 곤란해~~.'하는 나르시스트적인 요소가 팍팍 풍기듯이. 게다가 어쩐지 느끼한 아저씨같아 보이기도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음에 '픽'하고 웃음만 나온다.
"뮤리아!"
깜짝이야.
센시아의 부름에 귀가 진동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 나는 난대없이 타격을 당한 귀를 문지르며 센시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입을 잔뜩 오므리며 무언의 외침을 한다.
"....입이 *구멍같아."
"밥!!! 밥이라고 했다, 밥이라고!!"
진작 그렇게 말을 할것이지. 입을 오물오물 거리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나. 그보다 저 기지배은 실컷 나가 있다가 기껏 돌아와서 하는 말이 '밥'이라니. 배에 식충이 한마리 사육하냐?! 아니지 한마리가 뭐야, 열댓마리 키우고 있겠구만.
나는 속으로 센시아를 가볍게(?) 씹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준비하려던 참이야."
내가 말 한마디로 센시아를 날게 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일 것이다. 로드 집에 가서 열량을 다 소비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배가 고플수가 있나. 아니면 단순히 식욕이 왕성해졌다거나. 하긴 봄이니까...봄...봄....봄이 아니었어도 센시아는 식욕이 왕성하지. 나도 참 새삼스럽게 왜 이러냐.
더 이상 부엌으로 향하지 않으면 날아다니는 센시아의 마음에 납덩어리 하나를 달아놓는 꼴이 될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뒤에서 라우가 친절하게도 자신이 잡아온 오늘의 재료를 가지고 날 따라왔다.
말도 안했는데 스스로 가져오다니 철 들었구나!
"요리하러 가면서 재료도 안 들고 가냐. 저걸 어따 써...후유."
입좀 다물로 있었다면 정말 기특했을 텐데. 씁... 게다가 내가 깜빡잊고 몸을 움직인 것을 어찌 알고....무서운 놈.
첫댓글 *구멍이뭐예요?암튼 담표온~!!!>-<
똥구멍......이라는;; 쿨럭;; ㅎㅎㅎ;;;
아아.. +ㅁ +!! 더요 더!! 건필이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