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까네'는 은어로 인간 소외를 각오하면서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는 측면으로, 한국 영화에서 자주 쓰였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도 오까네가 일본어로 뭔 뜻인지는 안다-훨씬 이전부터 이러한 의미로 방대하게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수도론을 관련하여 벌어지는 핵심 쟁점은, 최근의 좌파들의 논리에 은근슬쩍 끼어든 들뢰즈 논리의 반인간주의에 대한 몸에서 솟아나는 역겨움(좌파들은 이게 뭐??)과, 인간과 하나로 유기적 차원에서 인간을 위주로 돌아가는 국토 운영 방식에서, '오까네위주'로 돌아가는 국토 운영 방식에 대한 반대일 것이다. 인간 소외와 국민 소외의 논리를 아무리 주장해도, 이러한 식으로 바뀌어야 '오까네'가 많이 창출된다는 식의 주장만이 되풀이 된다.
인구분산타령을 이해하는 방법은 가상으로 노점상의 자리 싸움을 생각하면 된다. 인구들의 동선이 바뀌게 되면 결국 이윤이 짭짤한 자리가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인구 이동이 적절하게 분산되면 이윤이 짭잘한 노점상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 단절과 국민들의 정서를 돌파하면서 추진하는 부동산학의 관점은,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매우 평이하고 소박한 것이다. 수도권 인구에 살아갈 영역에서 살아갈 권리를 소외시키며, 간접적인 방식을 총동원하여 수도권에서 이주 시키게 해서 충청지역 외의 다른 지역에 적절하게 인구를 분산시켜서, 이윤이 짭잘한 노점상 영역을 많이 만들겠다는 논리로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논리를 생각해보면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왜 그러한 노점상 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게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당장은 그렇다. 땅의 값어치는 미래의 계획에 의해서 판정되는 바, 수도권 인구를 간접적인 방식을 쓰는 강제 논리로 인위적으로 분산시키게 된다면, 근대화논리를 통해서 일구어 놓은 구조가 허물어지면서 충청지역 단기적인 땅값 폭등이 예상된다. 투기 선수들은 이 때 들어가서 제 때 빠지고 외국 부동산 잡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정-반박증거에 깨질 수 있는 주관적 소견-해 본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인 경제 논리 속에서 곧 되돌아 선다. 행정수도론이 가져다줄 수 있는 실익은 행정수도론 집행 이전 시간(집행 시간부터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까지의 부동산 가격 버블이 전부요, 나머지는 국민들의 삶의 권리에 중대한 피해일 것이다.
신문의 공공표현으로 '인구분산'만이 발전이라는 차원의 반복은, 참 확실하게 속이 빈 강정의 언어이다. '부동산'이라고 움직이지 않는 동산이라고 백날 강조해도, 한국인에겐 걍 '땅'의 의미이다. 그냥 '땅'이라는 것은 실향민이란 단어에 가슴에 설움 박히는 식의 정착민 문화를 전제하는 표현이다. 정체성 문제를 도외시하며 자아의식(하늘)과 수식논리(자연)의 분리를 강조하는 일본식 사고관에 젖은 사회는 우리 삶에서 실향민의 고향에 그리움을 너무 도외시한다.
대한민국은 영남 사람과 호남사람들의 서울 이주 사만 있는가? 설령, 그것이 60대 이상에서는 일반적일 수 있다고 하자. 젊은 세대들에게서도 이것은 그 자체로 타당한 것인가? 갱년기란 단어를 낯설어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대부분을 꿩 바꿔 먹는 것이 '개혁'이라고라? 도대체, 그러한 인간 소외의 개혁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아마도 '동경도'와 '동경'식의 부동산 논리의 어설픈 이식 때문에 빚어진 논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인이 예수님이라고 여기는 세력이 사악하다고 반복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에 적절한 논리의 필요 주장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땅 논리가 있다. 바로, 복덕방 담론이다. 최근에 풍수지리가 분이 핵심 관청만 서울 경기 내부에서의 이전 수준의 변화가 적절한 전망이란 주장을 한 바 있다. 복덕방 담론은 복덕방과 접속하는 이에게 '복'을 주는 것이다. 부동산 담론에 접속하면 '오까네'가 된다고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오까네가 경제 곡선에서 일탈하여 항구적인 밥그릇을 가져다주는 게 가능이나 하단 말인가?
그러한 우파의 상투성의 추임새를 제가 단 한번이라도 좋아한 적 있나요? 한건주의가 아닙니다. 김안제씨 주장처럼, 행정수도론에 대한 저의 예상처럼 좌파권력장악로드맵기반에서 충청지역일부에 밥그릇 준다는 식의 논리일 것입니다. 그들은 포장한 바 없구요, 기회주의 우파와 상투적 우파가 본질을 잘 몰라온 것 뿐이라
봅니다. 그들은 단 한번도 포장 한 바 없습니다. 386 뻥쟁이 주변부 운동권의 사고치의 한계와 외국이론 수용에 해박한 전위이론가의 사고치의 한계를 잘 압니다. 젊은 사회는 이들의 기득권이 작동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들의 영향력이 소수치일 때의 논리로 상대하는 우파분들에 뭐라 답해야 할까요?
첫댓글 단지 임기중의 한건주의에 불과할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데 굳이 포장하려니 거지 발싸게같이 궁색해 질수 밖에요!!
그러한 우파의 상투성의 추임새를 제가 단 한번이라도 좋아한 적 있나요? 한건주의가 아닙니다. 김안제씨 주장처럼, 행정수도론에 대한 저의 예상처럼 좌파권력장악로드맵기반에서 충청지역일부에 밥그릇 준다는 식의 논리일 것입니다. 그들은 포장한 바 없구요, 기회주의 우파와 상투적 우파가 본질을 잘 몰라온 것 뿐이라
봅니다. 그들은 단 한번도 포장 한 바 없습니다. 386 뻥쟁이 주변부 운동권의 사고치의 한계와 외국이론 수용에 해박한 전위이론가의 사고치의 한계를 잘 압니다. 젊은 사회는 이들의 기득권이 작동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들의 영향력이 소수치일 때의 논리로 상대하는 우파분들에 뭐라 답해야 할까요?
답답하고 멍청하다고 해야 하겠지요. 항상 나무만 보고 숲을 보려 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뿌리를 뽑아내지 않고 가지만 치려고 하는 우매함을 탓해야 하겠지요.
선물 고맙습니다. 우체부의 우편물 보내고 싶은데 배달 못했다는 통고 이후에 어제야 확인했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어떤 일의 준비를 하고 잠시 짬을 내서 글을 썼고,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