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모님 치매, 늦출 수 있다
美 FDA ‘레켐비’ 승인
알츠하이머 늦추는 첫 치료제
한국, 이르면 내년 하반기 승인
유지한 기자
입력 2023.07.08.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미 식품의약국(FDA)이 6일(현지 시각) 치매의 주원인인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최초의 치료제 ‘레켐비(Leqembi)’를 정식 승인했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서서히 축적되는 비정상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해 기억력과 인지 기능 악화 속도를 저하시킨다. 지금까지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은 인지 기능을 일시적으로 개선시킬 뿐 병의 진행 속도 자체를 늦추지는 못했다. 환자는 물론 가족까지 긴 시간 고통스럽게 하면서 ‘가장 파괴적인 질병’으로 불려온 알츠하이머 정복의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레켐비는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제로 정맥 주사로 투여한다. 미국의 경우 600만명에 이르는 알츠하이머 환자 가운데 6분의 1 정도인 100만명이 투여 가능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레켐비는 1795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5개월가량의 병세 둔화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임상 과정에서 뇌부종·뇌출혈 등의 부작용이 보고됐고, 심각한 뇌출혈로 숨진 환자도 2명 있었다. 하지만 FDA 자문위원들은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위험에 비해 환자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이 크다”며 만장일치로 승인을 권고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신경전문의 로런스 호니그 교수는 CNN에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치료의 신기원이 시작되는 첫걸음”이라며 “더 효과가 높은 치료제의 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국 기준 연간 2만6500달러(약 3500만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도 걸림돌이다. 에자이는 지난달 8일 한국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레켐비 시판 허가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심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이르면 내년 하반기 승인이 이뤄질 전망이다.
2.제약사와 진단기업 또 손잡았다...‘치매약’ 성공 방정식 자리 잡나
릴리·로슈,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키트 개발 협업
릴리, FDA 가속 승인 고배…바이오젠·에자이는 허가
에자이, 2017년 진단키트 개발사와 공동개발
김양혁 기자
입력 2023.04.04
일반인(normal)과 알츠하이머 환자(AD)의 뇌 영상 차이. 컬러로 나온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사진에서 붉은색은 신경세포 활동이 활발한 곳을 의미한다. 영상을 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신경세포 활동이 크게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플리커
미국 일라이 릴리가 스위스 로슈와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로슈는 알츠하이머를 조기 판별할 수 있는 혈액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발병 초기에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치료제와 진단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협력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미국 바이오젠과 함께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한 일본 에자이도 진단키트 업체 시스멕스와 협업한 사례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잡기 위해 제약사와 진단기술 기업의 동맹이 새로운 협업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두 회사의 협력은 알츠하이머 약이 효과적인 치료제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필수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로슈가 개발한 ‘일렉시스 아밀로이드 플라즈마 패널(EAPP)’은 혈액을 통해 확보한 인산화된 타우(pTau) 181 단백질과 알츠하이머 발병 유발 돌연변이 인자인 ‘아포(APOE)E4(APOE4)’ 지방단백질로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진단키트다.
로슈에 따르면 타우 181은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물질이며, APOE4는 알츠하이머 위험 유전자로 꼽힌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신경세포 사이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들이 뭉쳐 덩어리를 이룬 모습(주황색)의 상상도. 베타 아밀로이드 덩어리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최근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SCIENCE SOURCE
알츠하이머 치매는 19번 염색체에 있는 APOE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APOE 유전자는 혈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은 e2와 e3, e4 등 세 가지 대립유전자를 갖는데, e4를 두 개 가진 사람이 하나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 가능성이 20배나 높아진다. APOE4 돌연변이는 유해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에 쌓이게 해서 신경세포를 파괴한다고 알려져 있다.
로슈의 알츠하이머 진단기기는 간편하고, 빠르게 환자를 선별할 수 있다. 통상 알츠하이머 진단을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고 까다로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척추 수액 채취를 활용해왔다. 로슈의 진단기기는 혈액 검사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초기 알츠하이머병 증상 환자 75%가 진단을 받지 않고 있으며, 증상 발현 후 평균 2.8년이 지난 뒤 진단을 받고 있는 현실이라고 로슈는 설명했다.
릴리는 로슈의 진단기기를 활용해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의 승인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앞서 릴리는 2021년 임상 2상 결과를 토대로 미 식품의약국(FDA)에 가속승인을 신청했지만, 올해 1월 반려됐다. 투약 6개월 뒤 환자 37.9%가 효과를 나타내며 치료를 중단했지만, FDA는 임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릴리로서는 로슈의 진단기기를 활용하면 더 많은 임상시험 대상자를 통해 많은 양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바이오젠과 함께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과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를 내놓은 에자이도 일본 진단키트 제조사인 ‘시스멕스’와 풍부한 데이터를 쌓아왔다. 릴리의 도나네맙과 달리, 레켐비가 올해 1월 FDA로부터 가속승인을 받아낸 것도 확보한 데이터에 기반한다. FDA는 오는 7월 6일 레켐비에 대한 정식 품목허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에자이는 지난 2017년 시스멕스와 혈액으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는 기술의 공동개발을 공식화했다. 이후 시스멕스는 지난해 12월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승인받았다. 블룸버그는 이 진단키트가 알츠하이머를 늦추는 신약으로 평가받지만, 초기 환자에게 투여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레켐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혈액 검사를 이용한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 개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