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산 돗틀바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앵강만 풍경. 서포 김만중이 생을 마감한 노도가 손에 닿을 듯하다.
구들장을 박차고 나가고픈 의욕이 용솟음 치는 계절이다. 산이 부담스러운 게으름꾼들도 한번 '어려운 길'을 나서볼까 궁리를 하지 않을까. 가족끼리,친구끼리 과감하게 배낭을 매고 나서 보자. '봄의 환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 산&산 팀이 추천하는 산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의 호구산. 호구산은 매년 3월 말이나 4월 초부터 남해를 뒤덮는 벚꽃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원래 남해의 벚꽃 향연은 남해고속도로 진교나들목에서 나와 1002번 지방도를 타고 남해로 방향을 잡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산&산 팀이 지난 22일 남해대교를 지날 때 꽃봉오리들이 붉은 빛을 띠며 여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달 말쯤 되면 벚꽃들이 하얀 팝콘 터지듯 앞다퉈 얼굴을 내밀 것이다. 남해군에서도 이번 주말을 벚꽃 개화 시점으로 잡고 있다.
호구산 산행은 미륵이 탄생해 맨 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라는 못에서 이름을 딴 용소리의 용문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호구산은 원산 혹은 납산으로도 불린다. 원숭이 원(猿)자와 원숭이의 옛말인 '납'자를 사용한 이유는 이 산을 북쪽에서 바라봤을 때 원숭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정상 봉우리서 용문사쪽으로 뻗은 지맥의 형태가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라 해서 호구(虎丘)산이라고도 불린다.
이번 산행코스는 쉬엄쉬엄 가도 3시간 남짓으로 산에 익숙치 않은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남해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용문사를 둘러보고 가자. 용문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이 활약한 공으로 숙종때 수국사(守國寺)로 지정돼 왕실의 보호를 받았던 사찰이다.
등산로는 사찰 왼쪽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가면 된다. 이 길은 5분 뒤면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인 용성스님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성철스님이 머물러 수행을 했다는 백련암으로 이어진다. 다시 5분여 걸어 용문사 스님의 수행처인 염불암의 대웅전 오른쪽을 돌아 대나무 숲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 등산로가 시작된다.
6~7분 후 '송등산 정상' '원산' '용문사'를 가르는 갈림길을 만나면 '송등산 정상'으로 방향을 잡는다. 원산으로 바로가는 길보다 전망이 좋아 산을 타는 재미가 제법이다.
가파른 길을 15분여 걷다보면 삼거리에서 '정상' '염불암' '원산'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원산' 방향으로. 이제부터 호구산의 주능선을 타게 되는 것이다.
삼거리까지 힘들게 올라왔다면 이 곳에서 5분 정도만 가면 호구산 정상을 둘러싼 병풍바위가 바로보이는 기암괴석의 전망바위 옆에서 잠시 쉬어도 좋다.
땀을 식힌 뒤 길을 따라가다 옛 성곽터를 지나면 곧 정상으로 가는 길과 다정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니 주의해서 직진한다. 곧이어 나오는 갈림길에서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길은 정상을 북쪽에서 공략하는 코스. 급경사로 바위돌과 나무가지를 잡고 5분여 힘들게 오른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힘차게 트인 전경을 만날 수 있다.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남해 거리와 강진해 금산 앵강만 설흘산 송등산 괴음산 망운산이 코앞에 다가서 보인다. 날씨가 좀 더 맑았다면 지리산과 여수 시내도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잠시 세상의 꼭대기에 섰다는 착각을 해도 될만큼 장쾌한 모습이다.
호구산의 높이에 대해선 지도와 자료마다 제각각이다. 정상 표지석에는 '납(猿)산 626.7m'라고 새겨져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한 2006년판 1대 2만5천 축적 지도에는 619m로 기록돼 있다.
호구산 정상의 상징인 봉수대와 관련,신증동국여지승람은 '동쪽으로는 금산 봉수대에 응했고 남쪽으로는 설흘산 봉수대에 응했으며 서쪽으로는 본현(현 이동면에 위치)에 보고하고 끝났다'고 적고 있다.
이제 하산길. 호구산의 참맛은 하산길에 있다고 할 만큼 내려가는 길에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표지석 정남쪽을 보면 아래로 늘어뜨린 밧줄이 보인다. 이 밧줄을 잡고 유격훈련을 하듯 내려서 동쪽(정상을 보고 서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10분을 채 못가 '정상' '염불암' '석평'을 가르는 이정표가 나오면 '석평'쪽으로 간다. 비교적 평탄한 길로 곳곳의 기암괴석을 보며 여유있게 10분여를 걷다보면 다시한번 '다천·석평'과 '공동묘지'를 화살표로 나타낸 푯말을 만난다. 여기서는 '공동묘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곧 돌무덤인 진양 하씨묘와 헬기장을 지나면 하산길의 하이라이트인 돗틀바위가 보인다. 돗틀바위는 기암괴석의 거대한 군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돗틀바위에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성벽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어 마치 '마법의 성'에 온 듯 하다.
이곳은 앵강만 조망이 월등한 곳. '꾀꼬리 앵(鶯)'자와 '강 강(江)'자를 써 '새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강과 같다'는 뜻을 가진 앵강만에는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을 집필하고 생을 마감했던 큰 섬 노도가 떠있다.
돗틀바위를 뒤로 하고 내려가면 돌담이 둘러쳐진 퇴락한 두 봉분을 볼 수 있는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비석을 보니 '문화 류'씨와 그 부인의 묘다.
수목원에 온듯한 푸근한 오솔길을 7~8분 걷다보면 '용문사' '원산' '앵강고개'를 가르는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용문사쪽으로 가야 원점회귀가 된다.
용문사 주차장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산책길. 공동묘지가 보이고 시멘트길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묘지 안쪽으로 들어가는 비포장길이 있지만 왼쪽 시멘트길을 이용해 내려오는 것이 편하다. 공동묘지를 벗어나면 금산과 순천바위를 조망할 수 있으며 결국 용문사 진입도로를 만난다. 용문사쪽에 돌장승이 보이고 그 왼쪽 작은 길로 빠져나오면 바로 출발지인 주차장이 보인다.
좀 더 긴 거리의 산행을 원한다면 평현고개를 시작으로 괴음산~송등산~호구산~앵강고개를 잇는 5시간 코스가 있다. 평현고개 도로변 창고 건물 왼쪽 옆 작은 길이 들머리가 된다. 초반에 불필요한 야산을 거치기 싫다면 봉성마을 떡곡(떡고개)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이때는 마을 안 봉성 버스정류장 건너편 길끝 왼쪽으로 젖소 농장을 거쳐 잘 가꾼 묘지군 인근을 들머리로 잡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