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연구회 이사장님과 배타적 경제수역 논해
- 제주 3일째 용두암에서 오메기 떡을 먹다
30년 전 다녀왔던 신혼여행에서 처음 본 용두암을 네비게이션의 안내로 찾아갔다. 주차를 하고 아내와 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갔는데, 맨 먼저 오메기떡이 눈길을 끌었다. 냉동 포장 하나를 사서 가방에 넣고 용두암 안내판이 우뚝 서서 손짓하는 해안으로 향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참 그 내력이 신기한 바위였다. 이젠 용두암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놓은 것이 그전과 달라진 풍경이었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바닷가로 내려가니, 평생 물질을 하며 사셨다는 칠십 대 할머니 두 분이 해산물을 사먹으라고 권하셨다. 전복 소라 멍게를 썰어 한 접시를 빨간 초장과 같이 들고는, 바위 밑 그늘 넓적한 돌 위에 자리를 잡았다. 마주앉아 싱싱한 해물을 먹으며 출렁이는 바다를 주시하니 지난 60년의 세월이 파장 속에 아련히 보였다. 새콤한 초장을 더 얻어 접시를 맛있게 비우고는 이어 오시는 분들을 위해 일어섰다.
해녀의 필수품인 망사리, 태왁, 빗창, 호미, 갈갱이, 갈쿠리, 소살, 물수건 등을 모아놓은 곳을 지나, 물이 빠진 검은 돌을 밟으며 깊은 바다 가까이 갔다. 마침내 용두암의 아류처럼 보이는 바위에 올라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는 아내에게 셔터를 부탁했다.
모처럼 심신이 편안해졌다. 회갑 여행이 주는 인생의 호흡 조절일까?
오메기떡을 먹고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마리 00000 라는 카페였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위치한 카페 안에는 손님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통창(通窓)이 해안가에 붙어 있으며 신발을 벗고 들어가 털썩 앉을 수 있는 자리는, 꽉 차 있었으며 코로나 19와는 무관하게 아무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잠시 후 오실 선배님을 어느 좌석으로 모셔야 좋을지 걱정하며 지하까지 들어가 살펴봤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입구에서 좀 떨어진 입식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다리를 뻗고 대화를 나누던 한 팀이 갑자기 일어섰다.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급히 자리를 옮기는데, 15년 전에 제주도로 이사해서 살고 계신 선배님께서 들어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아내를 그분에게 소개했다. 직접 만드신 갈색 마스크를 착용한 선배님께서 커피 모카와 레몬티 그리고 맛있는 케잌 한 조각을 사주셨다. 10년 만에 만났으니 밀린 예기가 참 많았다. 출가한 자녀 얘기서부터 신앙생활 그리고 건강 관리 등등 한 두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고 일어서는데, 회갑 선물이라시며 근사한 부부 찻잔을 건네주셨다.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나는 다음 약속 장소인 [토끼와 거북이]로 향했다. 제주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고충석 선배님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시간에 맞춰 소섬홀로 들어서니 선배님께서 벌써 와 계셨다. 우도 출신이신 그분은 제주관광협회에서 운영하는 향토음식전문점의 큰 손님으로 소섬(우도)홀을 애용한다 하셨다.
전복뚝배기 정식을 주문한 것 같은데 각종 자연산 회와 한식까지 나와 매우 푸짐하였다. 막걸리를 드시던 선배님께서 이제 만 70세가 되셨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연거푸 토로하셨다. 총장 임기를 마치시고 이어도연구회 이사장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 그 분 앞에, 정장 차림의 중년 여성이 한명 나타났다. 전 비서라는 그분이 제게 명함을 건네는데 들여다보니 제주도 공무원 신분이었다.
이어도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제주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요. '피안의 섬'으로, 우리의 역사이자 영토이다. 이곳에는 우리 제주 섬사람들의 한과 꿈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는 그 선배님의 말씀에, 나는 소설가 이청준 씨가 남긴 소설 [이어도] 가 떠올랐다.
이어도 수역은 중국으로부터도 2백 해리 이내에 위치해 있어 한;중 양국의 EEZ가 중첩되는 수역이어서 중국이 틈만 나면 야심을 드러내는 곳이라며 선배님께서 마지막 잔을 비우셨다.
비서라는 분이 선배님과 저를 카메라에 담아 준 뒤, 우리는 차를 타고 제주도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0000 카페로 이동하였다. 밤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니,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확장되는 듯하였다. 더욱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드리고 층을 옮겨 5층(?)포토 라인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회갑 기념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