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년도 |
거래 횟수 |
두루 거래액 |
현금 거래액 |
거래 총액 |
두루비율 (%) |
2000 |
287 |
4,866,000 |
5,427,900 |
10,293,900 |
47.3 |
2001 |
553 |
8,813,300 |
8,677,500 |
17,490,800 |
50.4 |
2002 |
1,503 |
28,403,130 |
20,493,450 |
48,896,580 |
58.1 |
2003 |
2,674 |
37,516,285 |
36,955,940 |
74,472,225 |
50.4 |
2004 |
4,919 |
53,211,295 |
41,045,495 |
94,256,790 |
56.5 |
2005 |
4745 |
65,160,426 |
56,115,250 |
121,275,676 |
53.7 |
2006 |
5,520 |
56,637,340 |
36,371,350 |
93,008,690 |
60.9 |
지난 2005년 한밭레츠 5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상당수의 지역에서 공동체 화폐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해왔으나 이 운동이 꾸준히 지속되는 곳은 드물며, 대부분 피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와중에 한밭레츠의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
당시 공동체화폐 운동을 최초로 국내에 소개하였던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은 주제발표를 통해 성장동력을 대전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에서 찾고자 하였다. 첫째, 대전은 적당이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손익계산에 빠른 도시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점, 둘째, 대도시 중에서도 토착민이 많이 거주하는 광주와 비교하여 뜨내기가 많다는 점이 오히려 거래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동체화폐라는 것도 그것이 비록 선물경제이며 증여경제의 원리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서로 주고받음을 정확히 셈하는 것이고 보면, 이러한 도시적인 셈법이 혈연, 지연, 학연의 관계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낯간지럽고 야박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한밭레츠의 경우 초기 열성회원의 상당수가 서울, 경기 등 외지에서 온 경우가 많았고 스스로 도시에서 평균 이상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외지인들은 토착민에 비해 챙겨야 할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면이 있었다. 그들에게 한밭레츠는 현금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면서,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익적인 집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이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여러 지역의 초청으로 한밭레츠를 소개하는 자리에 가서 한밭레츠의 성장원인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이러한 김종철 발행인의 분석을 소개하게 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청중이 이미 이와 비슷한 분석을 한 후, 대전과 다른 특성을 가진 자신의 지역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다며 회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새롭게 이 운동을 해보려던 사람들도 이러한 분석을 듣고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 운동을 접목하기 어렵겠구나 하고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있었고, 해보았지만 잘 안되었던 이유를 지역의 특성에서만 찾고자 하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물론 김종철 발행인이 이러한 분석을 통해 대전과 같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는 이 운동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각각의 지역 특성에 맞는 보다 창조적인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기술한 분석만으로는 한밭레츠를 통해 맺어진 공동체와 더불어 성장해왔다고 자부하는 활동가의 한사람으로서 뭔가 허전하고 서운한 분석인 것이 사실이다.
이론가는 하나의 사실을 두고 그것의 해석에 있어 엄밀하고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반면, 활동가는 자신과 이웃, 지역사회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조직하여 마침내 새로운 현실로 만들어가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한밭레츠의 거래량이 꾸준히 증가했다는 것이 곧바로 성공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짧은 안목으로 볼 때 행운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좋은 인연이 적절히 찾아들었음에도 실패했던 많은 일들과 꾸다 만 꿈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거래량의 증가는 성패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유효한 지표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공동체 화폐 거래량은 이웃 사이 나눔과 협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역사는 우리 삶의 근원으로서의 공동체, 그것의 성장일기이다.
다시 우리가 시작하던 그때로 돌아가보자. 한밭레츠는 1999년 8월에 준비해서 2000년 2월 70명의 회원으로 창립하였다. 2000년 첫해 거래건수는 287건이었다. 하루 평균 하루 평균 한 건의 거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부분의 거래는 하반기에 몰려 있었고, 그것도 ‘품앗이 만찬’이라는 회원 친목 행사에서 이루어졌다.
처음 문을 열고 거래시작을 알렸으나 사람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좋은 취지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거래를 해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회원 거래목록도 만들어 돌리고, 서로 소개도 시켜주며 거간꾼 역할도 해보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래서 회원들을 만날 때 마다 왜 거래에 참여하지 않는지 묻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공동체 화폐 거래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는 ‘두루’라는 화폐 이름을 쓰는 것이 어색했을 뿐 아니라, 가격을 어떻게 매겨야 할지도 난감한 문제였다. 어쩌다 겨우 한 건의 거래가 끝나고 난 후 다시 등록소에 연락해야 하는 것 또한 번거로운 일이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까운 대형 할인점이나 시장에 가서 사는 게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불편한 것은 모르는 사람과 연락해서 서로 상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은 어떤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청년인지, 가격은 적정한지, 거래 상대방이 만족할지, 언제 어디서나 만나 거래해야 할지 등을 모두 고려해야 겨우 한 건의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었으나, 우선 가장 큰 불편함은 덜어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품앗이 만찬’이라는 행사였다. 회원들에게 자기가 먹을 음식 외에 2~3인분 정도를 더 추가해서 음식을 준비해 오도록 했다. 이렇게 서로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자기소개도 하고 장기 자랑도 했다. 그리고 이웃과 나누고 싶은 물건을 하나 이상 준비해 오자고 했다. 이렇게 시작한 품앗이 만찬 행사는 두 달마다 한 번씩 지금도 빠짐없이 열리는 행사가 되었고, 이 행사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 몰라서 생기는 낯설고 어색한 경계심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한밭레츠를 시작할 때 ‘지역’을 강조하였다. 지역이란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살을 부대끼며 대화를 하며 관계를 맺는 현장이다. 사람들은 한밭레츠의 두루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나누고 협동하며 살아보자는 메시지가 승자독식의 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었으며 매력이었다. 거래를 하기 위해 관계를 맺었다기 보다는 관계를 맺기 위해 거래를 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싼 교통비를 지불하면서도 품앗이 만찬을 통해 알게 된 이웃을 찾아 나섰곤 했던 것이다. 그들이 정말 찾고자 했던 것은 사람 사이의 신뢰였다는 것은 많이 거래되는 거래품목을 통해 알 수 있다.
초기 부진했던 거래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는 한의원 원장이었던 노경문 회원의 가입이었다. 한의원을 운영하는 의사로 살면서 항상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원했던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입장이 되는 것이 불편했다. 왠지 자신이 남보다 잘난 사람인양 거들먹거리는 것 같았고,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갚기 어려운 마음의 빚을 지게 하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한밭레츠를 알게 되었다. 서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저마다의 것으로, 관계하는 이 시스템이 맘에 들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많은 이들이 한밭레츠에 가입하는 동기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그러한 진실함을 깊이 신뢰하였다. 당시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료대란으로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던 때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니던 병의원 대신 이제 노경문 원장을 찾게 되었다. 물론 이때에 한밭레츠의 ‘두루’를 사용하였다. 보험진료의 경우 본인부담금의 전액을 두루로 계산하였으며 한약조제 등 일반 진료비엔 50%의 두루가 적용되었다. 사람들은 한의원을 다니며 자신이 계속 받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갖고 있으며 할 수 있는 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당시 거래량을 늘린 또 한사람의 회원이 있었다. 그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최대한 농부였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당시 대전 외곽 충남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는 한밭레츠 회원들에게 두고 온 고향과 마찬가지였다. 농번기 때 일손을 도우며 주말 농장을 하고, 개울가에서 멱을 감고, 품앗이 만찬 행사를 하고, 가을이면 모여서 김장을 하기도 하였으며 갑자기 하늘의 별이 보고 싶어지면 무작정 최대한 농부집으로 향했다. 그러다보니 이 농가에서 나오는 농산물의 상당량은 자연스레 한밭레츠 회원들이 소비하게 되었다. 시세에 비해 비쌌지만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없이 명상음악을 틀어주며 기른 작물이 얼마나 많은 정성의 손길이 스쳐갔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대한 농부는 당장 현금이 필요한 쪼들리는 농가살림이었음에도 두루의 비율을 항상 30% 이상 책정하였다. 역시 한의원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그 농산물을 기꺼이 구매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루 마이너스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되었으며 자신도 재화든 노동력이든 공동체에 내놓아서 두루를 벌어야 했다. 아래의 표에 나타나듯이 의료서비스와 농산물, 업소의 거래가 많으며 이들의 거래가 전체 거래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있다. 의료, 농산물, 업소의 거래는 그 어느 것보다도 그 서비스와 재화를 공급하는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품목이다.
< 표2, 2006년 분류별 거래 총액 >
구분 |
거래횟수 |
비율 |
두루거래액 |
현금거래액 |
거래총액 |
두루비율 |
현금비율 |
의료 |
1,463 |
26.5% |
12,120,490 |
8,186,450 |
20,306,940 |
59.7% |
40.3% |
재활용 |
587 |
10.6% |
5,969,400 |
619,500 |
6,588,900 |
90.6% |
9.4% |
농산물 |
1,022 |
18.5% |
3,253,000 |
15,258,000 |
18,511,000 |
17.6% |
82.4% |
가맹점 |
802 |
14.5% |
4,466,450 |
4,832,000 |
9,298,450 |
48.0% |
52.0% |
자원활동 |
281 |
5.1% |
6,898,000 |
385,000 |
7,283,000 |
94.7% |
5.3% |
대여 |
39 |
0.7% |
155,000 |
0 |
155,000 |
100.0% |
0.0% |
후원 |
20 |
0.4% |
2,452,000 |
0 |
2,452,000 |
100.0% |
0.0% |
교육 |
186 |
3.4% |
4,404,500 |
4,098,000 |
8,502,500 |
51.8% |
48.2% |
급여 |
127 |
2.3% |
10,750,000 |
0 |
10,750,000 |
100.0% |
0.0% |
월회비 |
684 |
12.4% |
1,421,000 |
0 |
1,421,000 |
100.0% |
0.0% |
감사한마음 |
7 |
0.1% |
193,000 |
0 |
193,000 |
100.0% |
0.0% |
제작물품 |
176 |
3.2% |
1,841,900 |
2,043,400 |
3,885,300 |
47.4% |
52.6% |
서비스 |
104 |
1.9% |
2,118,600 |
449,000 |
2,567,600 |
82.5% |
17.5% |
기타 |
22 |
0.4% |
594,000 |
500,000 |
1,094,000 |
54.3% |
45.7% |
월별소계 |
5,520 |
100% |
56,637,340 |
36,371,350 |
93,008,690 |
60.9% |
39.1% |
Ⅲ. 민들레의료생협
이처럼 공동체 화폐는 신뢰가 그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밭레츠의 거래가 매년 꾸준히 증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신뢰가 중요한 품목>을 제공하는 사람을 관계의 중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중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찾은 것은 의료서비스였던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을 전후하여 한밭레츠에서는 한국의 의료제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미 개원하고 있었던 노경문 원장 말고도 당시 병무청에 징병검사의사로 일하고 있던 내과 전문의 나준식 회원과 신경상 회원등이 공동체 행사에 참여할 때 마다 당시 의약분업으로 화두가 되었던 한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특히 나준식 회원은 지역 진보적 의료인 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에 회원활동을 하면서 대전지역 인의협 회원 모두를 한밭레츠 회원에 가입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한밭레츠가 도시 소비자 중심의 운동이니 보다 대안적인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자 운동의 영역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협동조합 운동의 다양한 사례를 살피던 중, 의료생협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나준식 회원은 병무청 징병검사의사로서의 역할이 끝나갈 즈음부터 의료생협 만들기에 앞장섰다. 한밭레츠내에 의료생협 연구모임을 만들고, 안성 등의 선배 의료생협을 방문하고 의료생협운동의 선진국인 일본의료생협을 견학하기도 하였다. 민들레의료생협은 그 준비를 시작한지 1년이 채 안되어 의원, 한의원을 2002년 5월에 운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밭레츠 회원들이 조합 설립에 주축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또한 대전충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의 의료인들은 의료기관 설립에 필요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출자하여 조합 설립을 가능케 했다.
민들레의료생협이 한밭레츠로부터 출발했다고 해서 한밭레츠의 철학과 가치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민들레의료생협은 공동체의 가치를 유지하는 한편 의료생협으로서의 고유의 철학과 가치, 비전을 가져야 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정관 서문에 나타난다.
참고자료 1.
민들레의료생협은 협동과 나눔의 경제를 지향하는 지역통화운동 단체 <지역품앗이 한밭레츠>와, 참다운 의료생활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남지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다. 이후 친구랑공동육아어린이집, 한밭살림생활협동조합, 대전한살림 등의 협동조합, 그리고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창립하였다. 민들레의료생협은 치료중심의 거대한 병원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 따라서 의료기관을 운영함에 있어, 의료에서의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를 보장해주는 환자권리장전을 준수한다. 개인의 건강은 사회건강의 실현과 맞물려 있음을 직시하고, 자기성찰과 보살핌, 협동의 가치를 존중한다. 이로써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인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또 공동체를 회복함으로써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이에, 민들레의료생협은 의료인과 지역주민의 신뢰와 협력 관계 회복으로부터 우리의 운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단순히 또 하나의 의료기관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건강권실현의 주인임을 자각한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동으로 건강한 마을을 만들어 갈 것이다. |
이러한 철학과 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의료생협은 이사회, 각 위원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각종 건강소모임, 환우모임을 운영하였고 동별 지역모임을 만들어가기도 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의료기관 운영에 있어서 환자의 권리를 명시한 환자권리장전을 게시하고 이를 지키는 진료가 되기위한 노력을 조합원과 함께 해나가고 있다.
참고자료 2.
환자의 권리장전
의료생협의 환자권리장전은 조합원 자신과 지역주민 모두의 생명을 아끼고 보살피며, 다함께 힘 모아 의료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환자의 인권선언이다.
환자는 투병의 주체자이며 의료인은 환자를 치유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환자는 이윤추구나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가운데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이에 우리는 모든 환자의 다음과 같은 권리를 존중한다.
-알권리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관한 현재의 상태, 치료계획 및 예후에 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으며 검사자료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자기 결정권 모든 환자는 치료, 검사, 수술, 입원 등의 치료행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행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개인신상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 모든 환자는 진료과정에서 알려진 사생활 및 신체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담당 의료진이나 그외 법적으로 허용된 사라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의무기록 열람을 금함으로써 진료상의 비밀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다.
-배울 권리 모든 환자는 질병의 예방, 요양 및 보건 등에 대해 학습할 권리가 있다.
-진료받을 권리 모든 환자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비합리적 의료보장제도의 개선과 자신에게 유해한 생활환경, 작업환경을 개선토록 국가 및 단체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
-참가와 협동 모든 환자는 의료종사자와 함께 힘을 합쳐 이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권리가 있다. |
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 2006년 보건복지부의 잇따른 항생제와 주사제 처방율이 공개되었을 때 의료생협의 장점을 잘 보여주었다. 한국의 항생제, 주사제 처방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중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오남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우리가 흔히 감기라고 부르는 급성상기도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율 전국 병의원 평균이 60% 가량인데 비하여 민들레의료생협은 10% 내외를 기록하여 세계에서 가장 낮은 네덜란드(16%) 보다도 낮았으며 주사제 처방율 역시 <처방율 낮은 25%>안에 들게 되었다.
Ⅳ. 의료생협과 품앗이
의료생협 의료기관을 운영하던 처음부터 공동체 화폐를 사용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조합의 주요 임원들은 초기 경영난을 우려하여 공동체 화폐로 진료비를 받는 것을 꺼렸다.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한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다. 당시 조합의 주요 실무자들이 자신의 임금의 일부를 공동체 화폐로 받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의료생협 실무자이기 이전에 한밭레츠를 함께 일구어온 사람들이었기에 민들레의료생협이 어떻게든 공동체 화폐를 사용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민들레의료생협이 창립하고 그 산파역할을 담당했던 한밭레츠는 거꾸로 민들레의료생협의 둥지로 들어왔다. 의료생협과 달리 한밭레츠는 별다른 수익구조가 없이 사무실을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사무실 운영경비를 의료생협에 의존해야 했고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식이 성장하고 자립하여 다시 부모님을 모시는 격이라고 할까? 직원이 늘어나고 직원들 역시 공동체 화폐에 대한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서 특정 직원에게 가중되었던 공동체 화폐는 조금씩 다른 직원에게로 나누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두루로 구입해야 했던 민들레의료생협은 매월 100만원 이상의 두루 수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계정 상태였다. 초기 임원들의 우려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공동체 화폐 ‘두루’는 조합이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신뢰있는 기관으로 성장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민들레의료생협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한밭레츠와 미묘한 갈등관계가 드러나기도 하였다. 각자 자기조직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기 호흡에 맞추어 운동을 해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때부터인가 의료생협이 먼저냐, 한밭레츠가 먼저냐를 두고 사람을 두고 다툰다거나 일을 두고 다투는 일도 발생하였다. 그런 와중에 이 둘을 포괄하는 ‘두루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두루공동체는 민들레의료생협이 위기를 맞기 시작하면서 힘을 내지 못하였다. 민들레의료생협이 양한병 협진, 조합원 건강검진 과정에서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업무정지와 환수조치가 이루어지면서 공동체 최대의 위기기 찾아온 것이다.
당시 지역사회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급성장하던 의료생협은 모든 활동을 접고 한껏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조합원과 지역사회에 거듭 용서와 이해를 구해야 했으며 활동가들은 힘을 잃고 떠나거나 자괴감에 빠졌다. 이때 한밭레츠는 의료생협 없이 꾸준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들을 공동체 주위로 묶어세우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민들레의료생협의 위기는 한밭레츠를 중심에 두고 활동하던 사람들에게도 위기로 여겨졌다. 이미 거래의 상당량이 의료생협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한밭레츠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가 의료생협을 창립하고 부터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에 찾아온 위기는 의료생협과 한밭레츠의 구성원들에게 서로 깊숙이 의지하는 깨닫게 하였다. 당시 민들레의료생협에 있어서 한밭레츠는 응급중환자에게 씌여진 산소마스크나 수혈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 깊은 성찰과 반성의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인지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나타났고 2006년 치과개설을 위해 100일 조합원과 함께 “치과개설을 위한 100일 기도”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의원, 한의원에 이어 조합원의 힘으로 치과를 개설할 수 있었고 지역주민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Ⅴ. 공동체 화폐로 만드는 건강공동체
스테판 부른후버(Stefan Brunnhuber) 박사는 2005년에 한밭레츠를 방문하여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입하려고 하는 건강화폐 시스템을 소개하였다. 독일 지방 의료보험회사와 협약을 체결하여 추진 중인 이 사업은 ‘건강화폐(Heahth Token)'를 발행하여 지역 주민의 건강을 지키고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며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의료보험회사는 가능한 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싶어한다.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질병 예방을 철저히 하고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다. 즉 건강 교육과 생활습관을 건건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이런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브룬후버 박사는 그 이유가 교육이나 생활습관을 건전하게 하는 일이란 게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건강 교육을 받거나 살빼기를 실천할 때 그 대가로 건강 화폐를 주자고 제안했다. 의료보험료를 내는 지역 주민들이 건강 화폐를 모아 의료보험회사에 주면 그만큼 보험료를 내는 지역 주민들이 건강화폐를 모아 의료보험회사에 주면 그만큼 보험료를 줄일 수 있고 야채가게 등의 회원 업소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 사이에 유대관계가 깊어직 되고, 이 또한 지역의 건강수준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이윤을 중요하게 여기는 의료보험회사가 이러한 지역화폐 시스템을 이해하고 동의하느냐고 질문하였더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답변하였다. 의료보험회사의 관심은 오로지 비용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할 때 지역화폐 운동의 의의를 말할 필요는 없었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브룬후버 씨는 덧붙여 독인은 의료보험 시스템이 지역별로 다르게 되어 있어 전 지역을 설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한국은 보건복지부 장관만 설득하면 되는 일 아니냐고 말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자기가 직접 장관을 설득해줄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브룬후버씨는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사회를 치료해야 한다고 여겨 오래전부터 지역통화 운동을 연구하였고, 「미래의 경제」(Wie wir wirtschaften werden) 라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는 한밭레츠가 민들레의료생협을 만드는 산파 역할을 하고 민들레의료생협이 한밭레츠의 ‘두루’라는 지역화폐를 진료비로 사용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스테판 브룬후버 박사는 의료생협과 한밭레츠를 보고 놀라워하였지만 우리는 박사의 그러한 호방한 기획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의료생협과 한밭레츠를 이용한 건강화폐를 고안하였고 다음해 2006년 민들레의료생협의 대의원 총회에서 아래의 안을 제출하였다.
참고자료3.
■ 조합활동 활성화를 위한 건강 화폐제도 도입
○ 제안 조합사업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 건강 화폐(두루)를 지급함.
○ 제안배경 임원, 위원회, 지역모임, 소모임 외 각종 의료생협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 조합이용에 혜택을 줌으로써 조합을 활성화하도록 함. 생활협동조합의 성패의 관건은 조합원의 참여에 있는 만큼 참여하는 조합원에게 그에 따라 혜택을 지급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고 봄. 혜택을 원치 않는 경우 자신의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관계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함.
○ 방법 조합의 각종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 정해진 기준에 따라 두루나 일반진료비 할인율을 차등적용하여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함. 이것은 일종의 이용고 배당이 될 수 있음. 병원 이용을 장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병원이용에 따른 이용고 배당은 현재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할 수 있으나 각종 공동체 사업, 예방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일반진료비 할인, 두루지급을 할 필요가 있음. 임원이나 위원회 활동은 물론 건강교실, 건강실천단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음. 예를 들어 건강실천단에 참여하여 몸무게를 5kg 감량하기로 하여 이 과정에 공동체 활동에 성실히 참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한 조합원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음.
○ 이에 따른 예산조달 방법 2006년도는 시범적으로 1천만원 가량의 예산을 배정함. 2005년도 대비 2006년도 조합부 실무자 인건비가 2000만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됨. 이 사업의 취지는 그동안 실무자에게 맡겨진 역할을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간다는 취지가 담겨있음. 또 이러한 혜택을 위해 책정된 예산이 현금으로 개별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조합 사업을 이용할 때 쓰든가(할인율적용), 공동체 활성화(두루지급)에 기여하는 것으로 작용, 순환하여 결과적으로 조합을 활성화는 것에 기여. |
이 안은 2006년에는 업무정지에 따른 조합사업의 침체로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였으나 2007년 조합사업의 확장과 더불어 건강화폐의 이용량은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Ⅵ. 자기성찰: 협동과 나눔의 원리로 살기
지역사회에서 나름대로 한밭레츠와 의료생협과 같은 공동체주민운동이란 것을 하다보니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일을 통해 서로 기르고 살리는 생명평화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우리 운동속에 자기성찰을 중요한 내용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자기성찰을 통한 자기성장의 공동체의 성장이 된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그런데 자기 성찰이란 주제가 워낙 인간의 주된 관심사이다보니 어떤 분야보다도 많은 이론과 방법론이 존재한다. 너무 많은 이론과 방법론이란 현실에선 아무런 이론도 방법론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해당분야 전문가를 제외하곤 우리는 자기성찰의 문제를 다룰때마다 혼돈과 자괴감, 불만족을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혹시 내가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주민 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배우려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주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성찰이라고 해서 어떤 특별한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예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자기배반인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공동체 이웃과 동떨어진 특별한 것을 쫓게 된다. 병은 특별한 데에 있고 약은 평범한 데에 있다는 말이 있다.
자기성찰이란 하나의 정해진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고집과 집착을 벗어나서 자기내면의 소리와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다고 여길 때 우리는 질문을 잃어버린다. 질문이 없다면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강요와 설득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파울로 프레이리가 지적한 은행예금식 교육일 것이다. 자기성찰로 가는 길은 많다. 그 많은 길을 다 알고 다 둘러봐야 자기성찰이란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어떤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행위 자체가 자기성찰을 방해하는지도 모른다. 공동체 운동이 처한 현실의 지금 여기가 자기성찰의 시작이며 마지막이다. 자기성찰은 공동체 구성원 하나하나가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철학과 원칙속에서 재해석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되도록 단순하게 그러나 수없이 반복되어야할 주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공동체 주민 각자가 살고 있는 모든 삶의 내용과 모든 관심사를 알고 있어야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는 공동체 운동에서 자기성찰의 과제를 생각함에 있어 우리 이웃을 주인으로 초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지도자나 활동가가 자기성찰의 위대한 스승이나 성직자, 구루가 되어 이웃을 가르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주민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 그것이 바로 자기성찰의 핵심인 것이다.
한밭레츠나 민들레의료생협은 하나의 이상세계나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몫이 활동가나 지도자와 같은 특정 개인으로부터 설파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공동체 주민조직을 통해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우리 일의 중심과제로 설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우리의 역할을 찾을 수 있는 힘이 됨과 동시에 우리 운동의 존재이유일 것이다.
같이 모여서 하는 일엔 항상 오해와 갈등이 생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며 가치지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특히나 우리 민들레의료생협과 같은 협동조합이나 한밭레츠와 같은 공동체는 더더욱 그렇다.
협동조합의 7원칙 중 첫 번째 원칙이 ‘조합원의 가입과 탈퇴의 자유’이다. 언뜻 들어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뻔한 말 같지만 역시 이것이 협동조합의 제1원칙의 자격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조합원의 가입과 탈퇴의 자유란 누구든 가입하고자 하는 자를 막아서는 안되고 누구든 탈퇴하고자 할 때 탈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합의 임원이니, 실무자, 먼저 들어온 조합원들이 자기들과 종교, 정치적 입장, 성별, 국적, 개성이 다르다고 하여 가입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막아서는 그건 협동조합이 아니라고 세계협동조합의 역사와 조직이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랑 뜻이 맞는 사람하고만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협동조합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자기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겠다는 것이고 비록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그런 중에 서로 같이 원하는 것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일하는 직원 사이에, 직원과 임원사이에, 임원과 임원 사이에, 임원과 조합원 사이에, 조합원과 조합원 사이에, 조합과 지역사회 사이에 늘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아직은 별일 없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잠재적요소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오해와 갈등이 있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오해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 하는 것에 그 조직의 실력이 드러난다.
“협동”의 가치로 건강과 의료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자고 만든 것이 의료생협이고 나눔의 가치고 공동체를 복원하자고 시작한 일이 한밭레츠다. 그렇다고 이 협동과 나눔의 가치가 모든 오해와 갈등을 해결해줄 도깨비 방망이는 아닌 것이다. 같은 협동과 나눔을 이야기하더라도 서로가 이해하는 협동과 나눔은 또 천차만별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려고 할 때 구체적인 방법은 또 가지각색인 것이다. 그렇다고 협동과 나눔이라는 우리의 가치지향이 있으나마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함께 정한 협동과 나눔의 원칙은 피할 수 없는 오해와 갈등 앞에 빛을 발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국제 협동조합연맹이 서로 다른 사람과 어울려야 협동조합이라고 정의하면서도 7원칙을 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서로 다르더라도 7 원칙은 지켜야 협동조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항상 그 뿌리말을 정하게 되는 이유이다. 뿌리 말이 없다면 그야말로 중구난방이 되어서 몇날 며칠 밤을 새서 이야기해도 서로 입장이 다르다는 결론 말고는 소득이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 갈라서거나 패를 지어 힘 대결을 모색하게 된다.
둘이 동업하다 서로 좋던 사이가 깨지기 쉽고, 셋이 되면 둘이 하나를 따돌리고 넷이 되면 둘둘 패를 갈라 대립하고 다섯, 여섯이 넘어가면 세력 대결로 가는 것도 달리 보면 사람 사는 동네에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희망은 시작된다.
협동의 협(協)자는 보는 바와 같이 힘력(力)자 셋이 합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협동이란 여러 힘도 모으고 주장도 모아서 함께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여럿이 힘을 합해서 해보자는 것이 협동인 것이다.
나눔이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이웃에게 내놓는다는 것이다. 나의 물건을 나누어 비우고 나의 주장을 나누어 비워서 같이 쓰자는 것이다. 다들 나누지 않고 혼자 움켜쥐려고 하다보니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가 되는 미련한 짓을 그만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협동은 합하고 곱하는 기운을 강조한 나눔의 다른 말이며 나눔은 빼고 나누는 기운을 강조한 협동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해와 갈등 앞에 협동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자기의 힘과 지혜를 펼치면서 소신껏 일하되 공동체의 힘과 지혜를 더하고 곱하자는 것이다. 또 오해와 갈등 앞에 나눔의 원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힘과 지혜로 일하되 자기의 힘과 지혜를 빼고 나누자는 것이다.
협동의 원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모여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며 나눔의 원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의 힘과 지혜를 내려놓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무언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주장을 내려놓지 못할 때가 많다. 이것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매사 그러지 않기를 다짐하고 조심하고 돌아보아도 또 어느 순간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불쑥 불쑥 올라오는 것이다. 다른 조직 문제로 중개역할을 하거나 상담할 때는 대립되는 양쪽의 입장을 잘 해석하고 통역해서 서로 이해 못하거나 이해하고 싶지않은 부분을 밝혀 소통도 시켜주고 관계 개선에 기여도 하지만 막상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땐 시정잡배 못지않게 발끈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힘과 지혜를 빼고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결과 설혹 상대방과의 힘대결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점점 나는 무거워지게 되는 것이다. 나의 힘과 지혜를 빼고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구성원들이 협동할 기회가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그 많은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일 또한 잘 될 리가 없다. 협동으로 일하는 것을 뿌리로 하는 조직에서 혼자 다 감당한다면 아무리 잘나서 뭔가를 이뤘다고 해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자주 이기면 이길수록 조직은 점점 나빠지는 것이다. 솜을 진 나귀가 물에 빠지듯이. 그래서 귄터 그라스는 이기면 바보된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지라는 것인가? 선배들은 말한다. 그렇다. 처음도 지고 중간도 지고 마지막도 지라고 하였다. 그리하다보면 우담바라 꽃을 보리라 하였다.
대신에 지기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언제나 자기의 힘과 지혜를 공동체에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질래야 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힘과 지혜를 공동체에 쓸 때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입다물고 있어서는 질 수가 없다. 자신 또한 공동체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밝힌 만큼 일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에 써야할 협동의 에너지를 특정 개인에게 쏟아부어 사적인 당파를 만들어 정치적인 술수로 이기려는 어두운 조작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공동체 속에서 자기성장이라는 비전을 명확히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 우리가 늘 대화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특히 나와 입장과 견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필요한 것이 대화이다. 그러지만 나는 때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함부로 대하거나 내 세력의 힘을 이용하여 다른 의견을 힘으로 억누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반대를 못하도록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힘을 얻기 위해, 그런 힘을 기르기 위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다들 열심히 한다고 추켜세워주는 말로 힘을 삼고 그 열심히 하는 것으로 감히 대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많은 권력과 힘을 갖으려는 것이다. 반대자와 대화 자체를 할 필요도 없이 결정사항만 통보하고 문제가 되면 잘라버리는 권한을 갖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순간 순간 욕심을 내다가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역시 바보가 되는 것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바보가 될까봐 전전긍긍 두려워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남을 선제공격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는 것이다.
내 것이기만 한 것이 없는데 나만 갖으려는 욕심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괴로워 할일이 무엇인가? 다같이 하고 다 나누자. 그러니 사람 가려 하고 못할 말이 무엇이고 듣기 싫은 말은 또 무엇이랴! 만나자! 그리고 얘기하자! 그렇게 뻥뻥 뚫으며 훠이훠이 가자!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주민공동체를 향해!
* 대전 한밭레츠 자료실 http://www.tjlet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