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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유리왕 |
광개토대제 진사왕 |
주작의제국 진사왕 |
태왕사신기 진사왕 |
주몽의 적장자이나 부여에서 살다가 뒤늦게 나타나 비류와 온조를 대신하여 왕업을 이었다. |
조카 아신의 나이가 어려 대신 왕위에 올랐다. |
해루의 나이가 어려 대통을 이었다. |
열 살 때(수의) 부왕인 침류왕이 죽고, 삼촌인 진사왕은 그의 나이 어림을 이유로 왕위를 넘겨 받는다. |
주몽의 적장자이나, 자신을 버리고 소서노를 따라 백제로 남하한 이들에 대한 분노와, 하늘의 자손이라는 아버지 주몽을 닮은 아들 해명과 무휼에 대한 컴플렉스를 품고 있으며 왕될 자의 증거(신수)에 대해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아들을 경계하여 해명을 창원에서 자살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
언제나 조카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호인으로 다소 마음이 약한 편. 선량하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성품. |
조카인 해루를 경계한다. 아직 손을 쓰지 못한 것은 그 후견인인 진무 장군의 세력이 강성하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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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라 해도 자신의 권력을 넘어서려 하면 죽이는 엄격한 인물. 해명태자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 |||
신경질적이나 똑똑한 인물 | 사람을 잘 믿어 담덕의 군사인 하무지가 자신을 속이고 가는 줄도 모르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정도로 순진한 인물 | 조카인 해루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는다. | |
정변 없음. 두곡의 별궁에서 죽었다. |
정변 없음. 고구려와의 전쟁중 입은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 |
정변. 해루측이 준비한 쿠데타에 말려 별궁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
정변. 수의 나이 스무살에 스스로 획득한 왕위에 오른다. (시납시스 중) |
삼국사기는 진사왕이 행궁에서 사냥을 하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아신왕의 세력에 의해 제거된 것으로 나온다. 일단 진사왕이 찬탈을 했는지 안 했는지의 문제로 돌아가자.
찬탈 없이 그저 조카가 어리니 그동안 왕위를 맡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주는 식이라면 사실 이야기의 구조가 밋밋해지는 점이 없잖아 있다. 게다가 세조와 단종처럼, 찬탈한 숙부가 조카를 괴롭히는 이야기로 간다면, 나중에 수가 진사왕의 세력을 빼앗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정변을 일으키더라도 아신왕만 나쁜 놈이 되지 않는다는, 정당방위가 되어버린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아무리 위서로 소문난 일본서기 기록이 아니라 뭐라고 해도, 찬탈로 왕위에 오른 쪽으로 갈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자, 그러면 왜 이 표에, 찬탈을 한 것도 아니고 정변을 일으킨 것도 아닌 유리왕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찬탈을 한 사람이 왕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면 상관없지만, 왕이 될 능력, 혹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 점에서 유리왕은 한번 살펴보고 갈 필요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 역사속에서의 유리왕과 바람의 나라에 묘사된 유리왕을 비교해보겠다.
역사속의 유리왕 | 바람의 나라 유리왕 |
부여에서 아버지 주몽을 찾아 서기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고구려로 와서 바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
어렸을 때 "아비없는 유리"라 놀림받은 것과, 자라 고구려로 내려온 뒤 자신을 버리고 소서노를 따라 백제로 남하한 이들에 대한 분노, 불안감을 품고 있다. (자신의 왕 될 자격에 대한 무의식적 회의) |
유리왕 3년,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 |
예술적 재능이 있는 인물. 기본적으로 정이 많은 인물. 본질적으로는 아들을 사랑한다. "태자가 아닌", 즉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 아들 여진에 대해서는 순수한 애정을 품고 있다. "태자"인 아들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한다. 부여의 현무는 여진을 죽이고 다시 무휼을 죽이려 하며 "유리는 단장하여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
해명이 황룡국왕에서 보낸 활을 꺾어버리자 해명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한다는 이유로 칼을 내려 자결을 종용한다. |
자신보다 뛰어난, 왕재인 아들을 질투하고 두려워한다. 하늘의 자손이라는 아버지 주몽을 닮은 아들 해명과 무휼에 대한 컴플렉스로 괴로워한다. 해명이 많은 무리를 이끌며 따로이 지내는 것을 보고 왕위를 물려줄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해명이 죽은 뒤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학살한다. |
신수로 대변되는 하늘의 왕관, 혹은 왕될 자의 증거를 지니지 못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 증거로 신수를 가진 자식들을 경계한다. 세류는 새를 부리는 신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미움을 사자 궁을 떠나 세상을 방황한다. | |
BC 9년 선비를 공략하여 항복받았다. 12년에는 중국의 왕망이 흉노를 정벌하기 위하여 고구려군사의 출동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한(漢)나라를 공격하자 왕망은 유리왕을 ‘하구려후’라고 비칭하였다. 14년 군사 2만으로 양맥을 쳤으며, 한나라 고구려현을 빼앗았다. |
유리왕 시대에는 무휼이 아직 어린 관계로, 바람의 나라에는 유리왕 시기의 전쟁에 대해서는 학반령 전투와 왕망이 유리왕을 하구려 후라 하대하는 것 외에는 세부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전쟁보다는 외교 쪽으로 미는 왕처럼 보인다. |
제사 지낼 희생물인 돼지의 힘줄을 끊어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탁리와 사비를 죽인다. |
왕인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신하들에게 반발하며 왕권을 강화한다. 내.... 왕을 업신여기는 자는 그게 누구이든 간에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마마, 안 되십니다. 선왕께서는 이럴 때 이러지 않으셨습니다. 왜 선왕의 유업을 이으실 생각을 않고...." |
소설판에서는 말년에 마음이 약해져 자신이 죽인 탁리, 사비, 그 외의 이들에 대한 헛것을 보며 괴로워한다. 기본적으로는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한 인물이나 왕이었기에 그리 살지 못한 듯. |
유리왕 : 휘(諱) 유리(類利) ·유류(儒留). 동명왕의 맏아들. 어머니 예씨(禮氏). 비(妃)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 BC 19년(동명왕 19) 부여로부터 아버지 동명왕을 찾아 고구려에 입국, 태자로 책립되고 동명왕에 이어 즉위하였다. BC 17년 《황조가(黃鳥歌)》를 지었으며, BC 9년 선비(鮮卑)를 공략하여 항복받았다. 3년 도읍을 홀본(忽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13년 부여(扶餘)가 침공해 오자 이를 격퇴하였다. 14년 군사 2만으로 양맥(梁貊:小水貊)을 쳤으며, 한나라 고구려현(高句麗縣:玄郡의 屬縣)을 빼앗았다. 두곡동원(豆谷東原)에 묻혔다.
유리왕은 이런 분이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등장도 짧았고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도 못했지만, 걍팍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정이 많은 쪽이고, 어렸을 때의 컴플렉스부터 잘난 아버지와 잘난 아들들 사이에 혼자 놓인 듯한 컴플렉스, 아직 왕권이 약할 때이다보니 신하들의 세력 등등 자신의 힘에 도전하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 등등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원했을 인물이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재주 많은 아들들이 자신의 왕권을 노리고 있다는 불안감으로 더욱 왕좌에 집착한다. 해명, 도절에게 자결을 명하기도 했으며, 무휼 역시 거의 가서 죽으라는 식으로 학반령으로 내몰아버린다. 무휼은 그런 아버지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다. 젊었을 때 무휼은 그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호동이 자라고 자신이 왕으로 거듭나며 유리왕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진사왕에 대입되지는 않을지, 대단히 걱정스럽다. 역사적인 부분에서 유리왕의 사적을 가져다 쓰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바람의 나라"에 묘사된 유리왕의 성격은 그대로 "바람의 나라 버전 유리왕"인 것이다. 부디 "아들을 사랑하지만 잘난 아들들을 보며 왕권에 불안감을 느끼는 아버지"를 "조카를 사랑하지만 그 잘난 조카가 찬탈하지 않을까 걱정하다가 결국 찬탈당하는 숙부"로 구도만 바꾸어 넣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해명의 분석과 망상이었다. 다음 편은 해명이 별로 안좋아하는 아신왕을, 해명이 좋아하는 대무신왕 무휼에 대입하여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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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신왕과 무휼, 그리고 주작의 제국
개인적으로 아신왕은 대단히 해명의 취향과는 상관없는 인물이다.
멀쩡히 중국 쪽의 정세가 복잡한데다, 광개토대왕이 백제만 파고든 것도 아닌데도 굳이 "개인적으로는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는" 저 아신왕을 굳이 드라마의 양대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한 시대에 태어난 두 명의 영웅을 빙자하여 한반도 내에서 동족상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그건 개인 취향이니 패스. 좋게 말해 일본과 가까이 지냈고, 나쁘게 말해 광개토 대왕에게 계속 진 것에 화딱지가 나서 아들네미를 일본에 볼모로 팔아치워가며 일본과 손잡은, 저런놈이 근초고왕님의 증손자 되시는 것이 통탄할 지경으로 국제감각 떨어지는 인물. 이라고 해명이 감히 생각하고 있는(잘못했어요....T_T) 이 아신왕에 대해, 이제부터 최대한 공정하게(과연?) 살펴보겠다.
아신왕 : 아방왕(阿芳王)·아화왕(阿華王)이라고도 한다. 제15대 침류왕(枕流王)의 맏아들로서 부왕이 죽었을 때에는 나이가 어려 숙부 진사왕(辰斯王)이 즉위하고, 8년 후 진사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 그의 치세기간에는 광개토왕(廣開土王)이 영도하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응하기 위하여 부심하였는데, 패수(浿水:경기 禮城江)·수곡성(水谷城:황해도 新溪) 등 국경지대에서 고구려군과 싸워 번번이 패하였다. 397년(아신왕 6) 태자 전지(支)를 일본에 볼모로 보내어 일본과 화친을 맺은 후, 이듬해 쌍현성(峴城)을 쌓고 403년에는 신라를 공략하였다.
.......다시 봐도 멋있을 구석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해명의 편견)
이 사람에 대해서는 주작의 제국에 나오는 아신왕과도 비교할 필요가 있다. 바람의 나라의 구도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되, 다시 태왕사신기에 난도질당한 주작의 제국을 위해, 그리고 바람의 나라를 위해, 이제부터 이들의 인물관계를 간단히 표로 살펴보겠다.
바람의 나라 대무신왕 무휼 |
주작의 제국 아신왕 해루 |
태왕사신기 아신왕 수 |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훌륭하다. |
책략을 세우는 데 능하다. 태자시절 이미 숙부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다. |
타고난 책략가. 온화한 미소 뒤에 끝없는 지모를 감추고 있다. |
차비이자 첫사랑인 연을 잊지 못한다. | 소년시절 만났던 채현(주작)을 그녀가 주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계속 마음에 두고 사랑한다. |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수지니(주작)에 대해 평생 변치 않는 사랑을 간직하게 된다. |
차비인 연은 호동을 지키다가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 채현을 차비로 맞아들이려던 중 연지의 음모로 실종되자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절망한다. 연지가 꾸민 일임을 알고 채현을 닮은 미실부인을 맞아들인다. | 수지니가 담덕에게 간 것을 알고 경쟁의식을 불태운다. |
열다섯 살에 고구려의 왕이 된다.(삼국사기 기록) | 열다섯 살에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생년미상) | |
군권을 강화하기 위해 비류의 세력가 배극의 양녀인 이지와 정략 결혼한다. | 자신의 권력을 위해 유력한 담로의 딸 연지와 정략 결혼한다. |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가주작 해여인과 정략 결혼한다. |
이지를 초야도 치르지 않고 10년 이상 소박놓는다. (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까지) |
연지를 초야도 치르지 않고 소박놓는다. |
알 수 없다. |
이지는 무심한 무휼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비류수의 청룡과 호동 왕자를 해치려 한다. | 연지는 무심한 해루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채현을 해치려 한다. | 알 수 없다. |
부도의 땅에 고구려의 깃발을 꽂는, 영토 확장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다. | 담덕에 대한 승부욕으로 살아가다가 요절한다. | 사랑하는 여인에게 존경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
아마도 광개토 대왕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기라도 했다면 혼자 태우는 불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는 하지만
이 표에서 보시다시피, 태왕사신기의 아신왕은 "주작의 제국"의 아신왕과 한 가지 측면에서 완전히 일치한다.
첫사랑의 여인은 주작으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간다.
물론, 주작의 제국에서는 광개토 대왕의 정비가 되어 나중에 장수왕을 낳는다는 결말로 가며, 태왕사신기에서는 아신왕의 곁으로 돌아온다고 하나, 교통도 별로 발달하지 않았을 그 시절에 어떻게 귀한 신분도 아닌 떠돌이 문사와 함께 다니는 한 여자가 두 나라의 왕의 사랑을 받는다는 대단한 삼각관계가 똑같이 재현되는지, 게다가 그 여성이 하필이면 주작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까지 일치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한술 더 뜨면, 요런 부분도 존재한다.
스승은 현무이다. OTL
태왕사신기에서 한때 아신왕의 스승이었던 현고는 현무이며, 주작의 제국에서는 아신왕에게 스승이나 아버지같은 존재인 숙부 진무장군이 현무이다.
......솔직히 말해서, 주작의 제국이라는 소설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쪽 작가님과 연락이 되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저 시납시스를 보시고, 우리의 힘찬 발걸음에 동참해 주십시오. 하고. --;;;;;
다시 한 번 오티에에에에에에엘~!!!!!!!!!!! (풀썩)
......다음으로, 우리의 주인공 담덕과 대무신왕 무휼의 비교분석이 있겠다......
아마도 연휴내내 쭈욱~ 계속될 듯 하니, 기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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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담덕과 무휼
그러면 이제부터 대무신왕 무휼과, 광개토 대왕이, 어떤 모습으로 작품 속에 묘사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먼저 대무신왕이 어떤 분이신지, 다들 알겠지만 잠시 네이버의 힘을 빌어 함께 살펴보자.
대무신왕(4~44) : 휘는 무휼. 유리왕의 셋째 아들. 어머니는 송양의 딸. 14년(유리왕 33) 태자로 책봉되어 군국정사를 맡아보다가 유리왕이 죽은 뒤 즉위하였다. 22년 동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을 죽이고, 고구려에 병합하였다. 또 26년 개마국을 쳐서 이를 병합하여 국토를 살수 이북까지 확대하였다. 을두지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사를 맡겼는데, 28년 한나라의 요동 태수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그의 지략으로 이를 물리쳤다. 32년 왕자 호동을 시켜 한사군 중에서 아직 남아 있는 낙랑군을 정벌하게 하였으며, 37년 재차 공략하였다. 왕의 시호가 대무신왕인 것은 재위 중에 주위의 많은 나라를 공략하여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왕의 능은 대수촌원에 있다.
광개토대왕(375~413) : 휘는 담덕.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이다. 그의 완전한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며, 생존시의 칭호는 영락대왕이었다. 광개토대왕은 약칭이고, 그가 쓴 영락이란 연호는 한국에 알려진 최초의 연호이다. 즉위 초부터 대방 탈환전을 개시하여 백제의 북쪽을 진격하여서 석현 등 10성을 함락하였고, 396년(광개토왕 6: 백제 아신왕)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하였으며, 왕제(王弟)와 대신 10인을 볼모로 삼아 개선하였다. 이리하여 한강 이북과 예성강 이동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의 원군을 보내어 왜구를 격퇴시켰으며, 동예를 통합하고(410), 신라와는 하슬라를 경계로 삼았다. 모용희를 반격하여 신성 ·남소의 2성 등 700여 리의 땅을 탈취하였고, 405∼406년 후연의 모용 희의 침입을 2번 받았으나 요동성과 목저성에서 모두 격퇴하였다. 407년 모용 희를 죽이고 자립한 고운과는 수교를 맺기도 하였다. 410년에는 동부여를 정벌하여 64성을 공파함으로써 철령 이북의 동부여가 고구려의 판도 안에 들게 되었다. 또한 남하하여 한강선까지 진출하였으며,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하고 요동지역을 확보함으로써 만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그의 능은 소재 미상이나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비에는 왕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아아, 멋진 분들이다.
그러면 이제, 앞서 잠시 살펴본 주작의 제국, 광개토대제와 더불어 이에 대해 살펴보겠다.
바람의 나라 무휼 |
광개토대제 담덕 |
주작의제국 담덕 |
태왕사신기 담덕 |
유리왕의 삼남으로 위로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도절과 해명이 있어 실질적으로 계승 서열은 낮은 편이었으나, 도절과 해명이 요절한 뒤 태자가 되었다. | 소수림왕의 조카이며 이련의 차남(이 소설에서는 담덕에게 형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으로 계승 서열이 높지는 않으나 어린 나이에 주목받는 왕재로 꼽힌다. |
왕위계승 서열에서 한참 아래였던 관계로 (중략) 담덕의 아버지인 어지지가 왕위에 오르게 되던 날도 대장간에서 스스로 칼을 하나 만들어낸 일을 더 기뻐했다. | |
태자 무휼은 15세의 나이에 이미 냉혹한 군주의 풍모를 갖추고 있으며, 송옥구와 을두지 등이 그를 따르고, 배극은 그를 견제한다. |
10살 나이에 나약한 소수림왕, 그 동생인 이련을 대신하여 왕재로 지목받는다. | 태자 담덕은 13살에 이미 자신의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백제에 대해 의논하며 냉철한 군왕의 풍모를 보인다. | 그의 호탕함과 용맹함, 그리고 사람을 끄는 인덕은 소문이 자자하였다. |
총기 때문에 아버지인 유리왕에게 견제를 당한다. |
소수림왕의 왕비 기왕후와 그 오라비인 개연수의 음모로 누명을 쓰고 궁에서 쫓겨난다. |
총기 때문에 소수림 왕비와 그 외척의 견제를 산다. |
그 소문 때문에 소수림의 황비와 그 외척 무리들에게 질시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
싸우다 죽으라고 보낸 학반령에서 승리한 무휼은 냉혹하게 적장의 목을 벤다. "내가 왕의 눈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설득력도 없을 때, 나는 문득 개닫게 되었지. 왕과 왕자들이란 인간이 가져야 할 얼굴 위에 또 하나의 덧씌워진 얼굴 같다는 것을." |
10살때는 소수림왕비가 보낸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 하기도 했다. 결국 호랑이를 죽이고 결코 아랫사람에게 얕보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 계속되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지만 덕분에 오히려 강하게 자라난다. | |
부여의 현무 사구는 주몽을 닮은 무휼을 없애려 한다. 사구는 고구려의 국경을 몰래 넘나들며 주몽을 죽게 만들었고, 비류부의 배극과 손잡았으며, 자신의 측근인 흑귀사조를 고구려에 밀정으로 심었다. |
동진과 전진의 승려들은 개연수와 손잡고 고구려를 혼란에 빠뜨리려 한다. | 소수림 왕비의 외척세력인 치우비는 백제와 손잡고 담덕을 해치려 한다. | 담덕은 오히려 애국심에 눈을 뜨게 되고, 승려무리들은 뒤늦게 담덕을 제거하는 쪽으로 뜻을 모은다. |
무휼의 형인 도절은 볼모로 보내질뻔 하였다가 목숨을 잃는다. |
고구려의 힘이 약했기에 담덕은 볼모가 되어 후연으로 떠난다. | ||
무휼은 강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백성들이 온화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하고 강한 얼굴을 가진 주몽의 백성이자 고구려 사람들이라 불리기를 바란다. | 백성들이 다같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으며, 그들의 몫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내 땅의 백성들이 씨 뿌릴 때 뿌리고 추수 할 때 추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왕의 도라고 생각한다. | |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함께 뜻을 모아 개연수와 기왕후 일당을 몰아내기 위해 10살의 나이로 위국군을 모은다. | 대륙을 향해 나아갈 군대를 양성하며 대무신왕의 고통과 꿈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물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애초에 기마술에 능했던 고구려의 날랜 장정들이 모여 검은 철갑으로 말까지 무장을 하고 강철창과 활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죽음의 철기부대. | |
무휼이 자신의 신수인 청룡 하안사녀와 처음 만난 것은 학반령 근처의 냇가에서 피를 씻을 때 였다. | 국경 근처에서 자객과 맞서 싸우다가 정신을 잃은 채현(주작)을 처음 만난 것은 냇가였다. | ||
무휼이 진정으로 사랑한 연은 차비였다. 그녀를 원비로 삼기를 원했으나 연이 요절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
아화와 혼약을 맺은 담덕은 채현을 자화궁에 맞아들여 후궁으로 삼는다. | 수지니 때문에 엄청 신경이 쓰인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깨달았을 때 그녀는 떠난다. | |
연이 죽던 밤 세류와 괴유는 호동과 연이 있는 궁과, 왕과 무휼이 있는 두곡 중 두곡으로 달려가 무휼을 구해낸다. 부여에서 시집온 연은 호동을 지키기 위해 부여의 현무 사구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는다. |
치우비가 반역을 꾀하던 날 밀우와 비사무는 왕 대신 담덕을 구하러 달려간다. 담덕의 사촌이자 치우비와도 인척이 되는 안승은 왕을 지키다가 치우비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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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휼은 군사력을 갖기 위해 이지와 정략 결혼을 하고, 연의 조국인 부여와 전쟁을 벌인다. "나는, 연.....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다. 나는..... 또한 네 나라를 짓밟고 저 난하를 건널 것이다. 끝없이 끝없이 나아갈 것이다.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행여 너일지라도." |
설령 채현이 죽을 지라도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겠다고, 왕이되 담덕은 아닐 것이라고, 행복도 따스함도 없는 차가운 영광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자신에게 되새긴다. | 수지니가 아신왕을 선택하고 백제로 가 화약을 이용한 대포로 수의 함선을 증가시켜도 백제와 전쟁을 벌인다. | |
흑귀사조의 독을 바른 가짜 청룡 때문에 분노한 청룡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청룡의 주인인 무휼 뿐이다. | 폭주한 주작을 발견한 담덕은 주작의 주인으로서 그를 진정시키고 채현과 함께 돌아온다. | 알 수 없다. | |
사랑하는 약연과 혼인하여 그녀와의 사이에 장차 장수왕이 될 거련을 낳았다. | 결국 채현을 정비로 맞아들여 혼인하고 그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다. | 부인 이화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고, 장남인 거련이 후에 장수왕이 된다. | |
무휼의 목표는 다물부도이며, 영토 확장을 매개로 한다. |
담덕은 약자필멸이라 생각하며 강한 고구려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북방으로 나아가려 했던 해명태자의 한을 대신 이루려 한다. |
강해지자. 강해지고 강해져서 더 이상 넘볼 자가 없는 나라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주안선생의 말이 이 세상의 중심에는 단군의 나무가 있다고 하니 그 나무를 찾아 그 땅에 도읍을 정하자. 더 이상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자. |
솔직히 말해서.......
광개토대왕은 그다지 전쟁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왕이다.
소수림왕 등과 마찬가지로 외교에도 능했던 왕이며, 게다가 고구려의 성장기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니라, 최전성기의 왕이며, 이 시기의 왕권 또한 하늘을 찌르는 것이 정상일 터, 게다가 고국양왕이 죽기 전에 선위를 했다는 설도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외척이 젊은 왕을 갈굴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외척에게 어린 왕자가 치여 쫓겨나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는 한심한 이야기지만, 하여간 외척까지는 어떻게 넘어간다고 치고.
광개토대왕이 무슨
켄시로(북두신권 주인공)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요런 대목 때문이다.
(혹은 뇌가 근육질로 되었냐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1) 설정상은 머리좋은 책략가다.
너무 머리를 굴리지 마. 절대 흔들리지 않는 내 머리엔 당할 수 없단 말이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좀 건방지기는 한 모양이다. 소년만화 주인공의 이미지일까.
타고난 전술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그의 병법은 언제나 적의 의표를 뛰어넘는데 있다.
(2) 그러나 하는 짓을 보면 머리가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_-;;;;
학문에는 도통 뜻이 없고 동네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며 뛰어다니거나 대장간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담덕은 사신(四神)을 찾아야한다는, 그래서 단군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안의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 ->국가 이념이라면 모를 리 없다.
주안은 고구려와 백제의 형제의 역사를 알려주었다. 백제는 먼 옛날 시조 아버지인 고주몽의 부인이었던 소서노가 그 아들들과 만든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10대 중반이 되도록 나라의 기본적인 역사를 모르는 것은 곤란하다.
(3) 내린 결론이 너무 단순하여, OTL한다.
담덕은 이 모든 골치 아픈 국제정세에 대해 그다운 결론을 내린다.
강해지자. 강해지고 강해져서 더 이상 넘볼 자가 없는 나라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 골치 아픈 담론은 딱 질색이다. 엉킨 매듭은 도끼를 내려쳐 잘라내는 성격이다.
실로.....
난감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담덕의 계승순위가 낮다는 이상한 말이 나오는데, 아직 형제상속이 이어지던 고구려에서 소수림왕->고국양왕으로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소수림왕에게는 자식도 없었다.
그러면 당연히 왕의 조카인 담덕의 계승순위는 2번째, 대단히 높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임장이다.
왕이 되고싶지 않았고 될 거라는 기대도 안했는게 된 게 아니라
소수림왕에게서 자식이 없었던 이상, 담덕은 당연히 왕이 될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아예 형제중에서도 3남이었던 무휼과는 처지가 다르다. 그렇게 치면 4번째인 해색주를 지나, 나중에 막내동생인 재사의 아들 궁이 태조왕이 되는 것을 보면 정말로 대단한 승리담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뭘로 봐도 담덕의 순위는 높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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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사왕 편에 유리왕이 들어간 것은, 아직 드라마화되지 않은 모 작품에서 이런 식으로 대입을 할 경우의 수에 대한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