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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윤씨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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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립/박세영선생 묘를 찾았는데 입구에 숙의 윤씨 표석이 있어서 잘못 찾은 줄 알았습니다. |
숙의 윤씨(1368년[고려 공민왕 17]∼미상)는 정종의 후궁으로 대사헌 윤방언(尹邦彦)의 딸이다. 소생으로는 수도군(守道君) 이덕생(李德生), 임언군(林堰君) 이녹생(李祿生), 석보군(石保君) 이복생(李福生), 장천군(長川君) 이보생(李普生), 그리고 인천옹주(仁川翁主), 함안옹주가 있다. 그밖의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내용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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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의 윤씨 묘역 전경. 좌측 묘역군에서 박세영선생 묘를 찾다가 중앙으로 이동해 보니 숙의 윤씨 묘가 있었습니다. |
숙의 윤씨 관련 자료를 찾기가 어려운데 다행이 네이버의 전주이씨 효령대군 주계군파 카페에 숙의 윤씨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숙의 윤씨(1368~1417)는 정종대왕의 6번째 부인이며, 빈으로는 5번째이고, 해평윤씨 대사헌 윤방언의 딸이다. 1368년(공민왕 17) 1월 14일에 태어나 1417(태종 17) 10월 1일 별세하였다. 숙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독정리(현 고양시 신도읍 오금리) 매현 임좌원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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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우측에는 묘역 성역화 사업 후에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석물들과 헌성비가 있습니다. |
오랜 세월이 흐로고 여러 차례 병화를 겪어 오는 동안 후손들이 모두 흩어져 사는 바람에 5빈 묘소가 모두 실전되었으므로 15군 후손들이 개풍군 풍덕 광덕산상 오숙의단을 봉축하고 춘추로 제향을 받들어 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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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의 후궁인 숙의 윤씨 묘역 전경 |
그런데 숙의의 묘소만은 1백여년 전 1886년(고종 23) 봄에 4군파 후손들이 보첩에 의거하여 독정리 일대에 모여서 부근 산중을 탐색하던 중에 그 곳에 사는 한 늙은이가 말하기를 "전설에 윤빈 묘소가 인천옹주 묘소 위에 있었는데, 옹주의 외손 함양박씨가 누대에 걸쳐 많이 입장하였다는 말이 있다."고 하므로 그 인천옹주 묘소를 찾아보니 그 묘비 후면에 '공정대왕 후궁 해평윤씨 묘 재후좌측 오십보허 즉 방언녀이 군주모야(恭靖大王 後宮 海平尹氏 墓 在後左側 五十步許 卽 邦彦女而 君主母也)'라고 새겨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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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박지웅님께서 나홀로에 올리신 자료 사진입니다. 당시는 묘비도 없었는데, 지금은 묘역을 정비해 놓으니 보기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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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의 윤씨 묘역에서 내려다 본 모습. 사진 우측에 보이는 묘역이 윤빈의 딸인 인천옹주 묘역입니다. |
50보 쯤에 가서 살펴보니 과연 봉분은 퇴락하였고 문관석만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 봉분 앞을 헤쳐보니 묘비는 없어지고 좌대석만 남아 있었다. 이에 봉분을 재봉축하고 사초를 한 후 위토를 마련하여 매년 음력 9월 29일 4군파 후손들이 모여 향사를 받들고 있다. 위토는 4왕자파 명의 즉, 고양시 신도읍 오금리 121번지(임야 220평), 118번지(전 557평), 101번지(답 904평), 34-2번지(전 627평)을 등기하여 보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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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의 윤씨 묘역에서 내려다 본 재실 모습. 재실 앞에 2009.10.31. 준공식 경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
제2대 정종대왕(定宗大王) [1357 ~ 1419]
정비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 ~ 1412]
서1남 의평군(義平君) [미상 ~ 1461] (숙의 지씨) |
함양박씨 묘역 세장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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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박씨 묘역 세장도는 함양박씨 관련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 좌측 세장도에서 빨간 글씨의 해평윤씨로 표기된 곳이 숙의 윤씨 묘역입니다. |
함양박씨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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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20-1 화살표 ↑ 위치에 숙의 윤씨 묘역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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