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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부 이야기[ 5 ] 몬터레이의 페블비치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의 마지막 18홀 전경]
오전 8시 20분경,로스 엔젤레스를 출발하여 솔뱅에서 잠시 머물다 계속 달려오기를 8시간이 지날 무렵 우리는 북부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도시를 지난다. 아니 도시라기 보다 아담한 마을이라는 것이 더 어울릴 듯 하다. 바로 카멜이다. 카멜은 1904년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대부분의 건물들이 붕괴되자 보다 안전하게 작업할 곳을 찾아온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한다.
당시 카멜은 돈도 적게 들고 예술가들이 원하는 보헤미안의 삶이 유지되기에 딱 적합한 곳이었다. 현재의 카멜은 집값도 많이 오르고, 조용한 휴양도시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배고픈 예술가들이 머무른다는 과거의 색채는 이미 사라졌지만, 아직도 수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갤러리와 작품활동을 위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약5,000명 정도의 도시인구 중 노인들이 많아, 인접한 몬터레이와 함께 돈 많은 노인들이 말년의 휴식을 위해서 많이 찾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유명한 리조트지이자 부촌으로 손 꼽히는데,영화감독이자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민들의 성화에 못 이겨 1986~1988년까지 2년임기로 단 $200의 월급을 받으며 시장을 지낸 것으도 유명하다.
카멜을 지나니 도로에 차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 곳이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을 금새 알게 해주고 있다. 아주큰 여객선을 비롯 수많은 요트들이 떠있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버스가 좌회전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왼쪽에 있었던 태평양 해안이 순간 오른 쪽으로 바뀌어 버린다.
바다로 살짝 솟아나온 반도인 몬터레이를 북쪽에서 남쪽인 카멜방향으로 돌기 때문이다. 몬터레이는 샌프란시스코로부터 해안선을 따라 약 210Km 남쪽 아래에 위치하며, 설리너스(Salinas)·시사이드(Seaside)와 함께 대도시권을 이룬다.
우리가 출발한 LA에서는 579km 북쪽에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일찍 개척된 곳으로, 1602년에 스페인의 탐험가인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Sebastian Vizcaino)가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지명은 발견 당시 멕시코 총독이던 몬터레이 백작의 이름을 붙였다.
몬터레이는 1770년부터 스페인의 도시로서 발달하였다. 1775~1846년 동안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인 알타칼리포르니아(Alta California)의 수도였으며 군사·정치의 중심지였다. 이후 멕시코령이 되었다가 1846년부터 미국령이 되었고 1889년 시가 되었다. 작지만 의외로 역사가 있는 도시다.
특히 인근 설리나스 출신인 존 스타인벡(☞클릭)의 소설<통조림 골목Carnnery Row>의 무대로 더욱 알려진 곳이다. 버스는 소문대로 그림 같은 도시를 지나가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넓은 태평양 바다를 끼고, 왼쪽으로 아름다운 주택들이 동화마을 처럼 들어서 있다.
태평양 연안의 작은 숲이라는 뜻의 Monterey Pacific Grove(몬터레이 퍼시픽 그로브)가 바로 이 곳이다.
원래는 고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이들이 잡는 고래의 양은 엄청났다고 한다. 그러나 급격히 줄어드는 고래의 숫자에, 연방정부는 고래의 남획을 금지 시켰다.
그래서 자리잡은 사업이 통조림 공장이었다. 1902년부터 1964년까지 이곳에서는 정어리 통조림을 만드는 사업이 번창했으며 1973년 마지막 캐너리가 문을 닫았다.
지금은 휴양도시로 변모하고 당시에 캐너리 로우에서 통조림을 생산하던 가공업체의 건물들이 부티크와 레스토랑,Cafe 등으로 변신하여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차창으로 구경할뿐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다.몬터레이에 온 목적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몬트레이 반도의 북쪽에는 몬터레이시티, 남쪽에는 카멜시티가 있다 . 그 두도시를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도로의 길이가 총 17마일정도된다고 하여 세븐틴 마일 드라이브라고 한다. 드라이브란 미국에서 숲속이나 해안의 도로처럼 굴곡이 지고 비교적 경치가 좋은 도로를 칭하는 말이다. 바로 이 도로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17마일은 27km를 말한다.
Monterey Pacific Grove를 지나자 도로에 Gate가 보인다. 박이사가 차에서 내려 통행료를 지불하고 있다. 비로소 몬트레이 17마일 드라이브가 시작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돈 많은 갑부들이 사는 동네로 Bevery hills(비버리 힐스)를 꼽지만,진짜 갑부들은 사실상 이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언덕에 수백 년 된 거목들을 벗삼아 환상적인 골프장들을 끼고 있으니 어찌 그러하지 않겠는가?
이 멋진 드라이브 코스에는 21개의 뷰 포인트(View Point)를 만들어 놓아서 찾아온 사람들이 쉽게 차를 대 놓고, 시원한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자연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버드 록(Bird Rock)에서 차를 멈추고 모두 내려 상쾌한 바다의 내음을 맡아본다.
애석하게도 태평양은 안개가 짙게 깔려 본래의 아름다운 애머랄드 빛을 보여 주지못한다.
'새의 바위'이라는 뜻의 버드 록은 말 그대로 많은 갈매기들이 모여 앉아있다. 바위 색은 하얗게 변해있었는데,박이사가 갈매기들의 배설물 때문이라고 한다.
뷰 포인트에는 사람을 보고도 두려워 하지않고 먹이를 달라고 두발로 일어서서 손을 벌리는 다람쥐도있다. 신기하다.
다시 차에 올라 이동 한 곳은 절벽끝 바위 위에 한 그루의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가 고독하게 서 있는 곳이다.
무려 250년을 거센 해풍을 견디며 저렇듯 꿋꿋하게 서있다고 하니 과연 캘리포니아의 상징이 될 법도 하다.
그래서 이 곳을 론 사이프러스(The Lone Cypress)라 한다. 고독한 사이프러스라는 뜻이다.데크로 전망대가 마련 되어 있는데 좁디좁은 장소에서 저마다 포즈를 잡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1880년,미국 샌프란시스코 아래쪽으로 200km 떨어진 해변에 우아한 호텔 하나가 문을 열었다. 호텔 델 몬테(Del Monte)였다.
델 몬테(Del Monte)는 스페인어인데 영어로는 The Mountain(山)을 뜻하는 말이다.
태평양을 한 눈에 내려다 보는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이 호텔은 아름답게 통나무로 지어진 호텔이었다. 델 몬테 호텔은 문을 열자마자 단번에 태평양연안에서 오션뷰 좋기로 이름난 호텔이 되어 명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호텔은 투숙객들에게 재미있는 여가거리 하나를 제공했다. 바닷가로 돌출한 반도의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갔다가 울창한 사이프러스 숲길로 올라오는 하루짜리 투어였다.
험한 자갈길을 마차로 달리는 결코 안락한 드라이브가 될 수 없는 이 하루 여정을 불평하는 투숙객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은 오가는 길 내내 펼쳐진 숨막히는 절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안을 따라 내려갔다가 숲길로 따라 올라오는 이 멋진 길의 길이는 17마일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1885년 예일대학 출신의 훤칠한 신사 새뮤얼 모스(Samuel Morse)가 이 델 몬테 호텔에 투숙했다. 꽃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 아침, 그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그 신사는 모스 부호를 만들어 낸 모스의 조카 였다.
넘실거리는 태평양 파도는 검은 바위로 굴곡진 해안에 부딪쳐 흰포말을 터뜨리고, 고래떼는 물줄기를 뿜어 올리며 우아한 퍼레이드를 펼치고, 물개떼는 한가롭게 양지 바른 바위에 누웠고, 갈매기떼는 두 날개를 벌리고 마차를 따라간다. 신사는 넋이 빠졌다. 6마일쯤이나 내려왔나, 그 신사는 무릎을 치며 그곳에서 내렸다. 어디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그가 내린 그곳은 해안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심하게 주름잡힌 해안선, 조각 같은 바위 절벽, 바람결 따라 휘어진 울창한 사이프러스 숲…. 얼마 후 그 신사는 예일 출신의 친구 해먼드와 함께 4,000에이커의 그 땅을 사 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프코스를 짓기 시작했다. 그 사나이는 친구와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꿈을 현실로 바꾸려다 그만 과로에 지쳐 쓰러지고 경제력마저 상실했다.
중도 포기의 위기에 처한 그들은 재력가인 크로커호프만사의 회장 윌리엄 H. 크로커(William H.Crocker)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자금을 확보했다. 그 후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이었던 부동산업자 잭 네빌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겨 수십 번의 설계 변경과 궁리 끝에 지금과 같은 골프장을 만들게 됐다.
마침내 태평양의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에머랄드빛 물결, 그리고 하얀 백사장과 검은색 페블(Pebble조약돌)이 조화를 이루며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수려한 경관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에 만들어진 꿈의 클럽이었다.
첫 라운드를 하고난 그는 감격에 겨워“죽기 전에 한 번쯤 플레 이를 해봐야 하는 곳이야(Play it once before you die)…”라고 중얼 거렸다. 그 골프 코스 이름이 바로 이제 우리가 찾아가는 유명한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 (PebbleBeachGolfLinks)다.
최근 등장한 브라운 면도기의 광고 카피에서 등장하는 그곳이다.
1940~1960년대를 풍미한 빙 크로스비(☞클릭) 20세기 초반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이자 배우다. 지금도 연말이 다가오면 그는 감미로운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전 세계적으로 그의 음반은 5억만 장 이상 팔렸고 ‘화이트 크리스마스’ 단일 음반이 3000만 장이나 발매됐다.
그 빙 그로스비가 무명시절이던 어느날 이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 회원제로 운영하던 페블비치 골프클럽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않았다.
그후 그는 성공하였고 돈이 모이자 이 골프장을 사버렸다.그리고 지금처럼 일반인에게도 개방하고 있는 퍼블릭 코스로 만들어 버렸다. 이 이야기는 가이드 박이사가 전해주는 말이다.
그에 대한 진실은 확인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이 골프장은 그와 관계가 깊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로큰롤 열풍이 불자 빙 크로스비는 그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자각하고 무대를 떠나 골프에 몰입한다.
그의 터전은 바로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였다. 그는 이 곳에서 골프에 빠져 살며 AT&T 프로암대회 창설의 산파가 되었다. 1946년 그는 이 프로암대회를 위해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인 1만 달러를 쾌척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대회를 빙 크로스비 프로암이라고 즐겨 부른다.
그는 “골프를 치다가 그린 위에서 영원히 잠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다가 73세인 1977년 10월14일 스페인 여행 중 골프코스에서 퍼팅을 하다가 쓰러져 그대로 저 세상으로 갔다.
AT&T 프로암 골프대회는 매년 2월 초 이곳에서 개최되는 대회로 PGA 태평양 연안 투어(West Coast Swing)의 다섯 번째 대회로 풍성한 잔치판을 방불케 한다.
프로 180명과 아마추어 180명이 프로 2명과 아마 2명으로 포섬을 지어 페블비치, 스파이글라스 힐스, 포피 힐스 이렇게 세 골프코스에서 치르는데 전 세계 골퍼들뿐만 아니라 골프 문외한들의 시선도 사로잡는다.
아마추어들의 면면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비롯해 케빈 코스트너, 앤디 가르시아, 빌 머레이는 할리우드에서 날아오는 단골손님들이고 댄 퀘일 전 미국 부통령,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부동산 갑부이자 천하의 바람둥이 도널드 트럼프, 불세출의 쿼터백 조 몬타나 등 기라성 같은 대중스타들은 모두가 골프광들이다. 1월 하순이면 이들은 속속 페블비치로 날아온다.
하나같이 이곳에 와서 먼저 페블비치 터줏대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찾는다.
(현재 페블비치의 주인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하는 말도 들린다.)
그리고, 체리꽃이 만발한 페블비치엔 수많은 갤러리가 프로암대회를 지켜본다. 프로들의 절묘한 샷에 박수를 보내고, 아마 골퍼의 어이없는 실수에 폭소를 터트린다.
마지막 날은 아마추어들은 배제되고 프로만의 결전이 불을 뿜는다.
2007.04.28 17:30분,아내와 나는 세계 골프인의 꿈의 무대요 수많은 스토리를 창출한 환상의 골프 클럽인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 코스의 마지막 홀인 18홀 앞에 서있다.
이 곳에서 골프를 치려며는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한번 라운딩에 500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페블 비치호텔에 투숙해야만 한다고 한다. 모든 비용을 다 합하면 라운딩 한번에 1,000불 이상이 들어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꿈의 라운딩이다.
비록 골프는 즐길 수 없지만 30분정도를 머물며 태평양 바다와 어우려진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 코스를 사진에 담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 곳에 와 보았노라.
오늘날 몬트레이 반도를 한 바퀴 도는 세븐틴 마일스 드라이브는 단지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경관 때문에 미국의 아니,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신이 빚어 놓은 최상의 바탕 위에 인간이 걸작품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곳에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Pebble Beach Golf Links)말고도 세븐틴 마일스 드라이브 양쪽으로 골프코스를 쏟아 놓았다.
스파이글라스 힐스(Spyglass Hills)골프코스 ,포피 힐스(Poppy Hills) 골프코스 ,스페니시 베이(Spanish Bay),그리고 페블비치의 명성에 버금가는 사이프러스 포인트클럽등 4개의 또다른 아름다운 골프코스가 몬트레이 17마일 드라이브에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다.과히 골프 천국이다.
19:50분,4월28일의 해가 서산에 지고 노을이 어두어진 산너머로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는데, 어두어지는 도로를 따라 버스는 북상하고 있다. 몬터레이의 한국식당에서 불고기와 두부찌게로 저녁을 맛있게 끝내고 샌프란 시스코 가까이에 있는 호텔로 가기위해서다. 로스 엔젤레스를 출발한지 12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