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혼자다.
실로 20년 만이다.
돌이켜보니 장사를 시작한 이래 쉬는 날에는 어딜 가나 아내와 함께 다녔다.
같이 일하다 보니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생각하여,
주변에 부부가 각자 따로 여행다니거나
어울리는 것을 보고 이상히 생각할 정도였다.
나 역시 예전에는 혼자 잘 돌아다녔는데
20년이란 세월은 이러한 일들을 까마득하게 잊게 만들었다.
얼마 전이었다.
오래된 아내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상가에 엄마와 함께 다녀온 딸이 말했다. '
'아빠, 앞으로 쉬는 날
엄마에게도 시간을 줘서 친구들도 만나게 해줘.
맨날 엄마 데리고 다니지 말고.''
''데리고 다니긴 같이 다니는 거지
근데 왜?
엄마가 뭐라 하셔?''
''그건 아닌데 친구들을 무척 오랫만에 만나셨는데도 굉장히 보기 좋더라.
자주 만났으면 좋겠던데.'' 한다.
''엄만 사람 많이 있는 거 싫어해.
혼자 있는 걸 좋아할걸.''
''아뭏튼 이야기 한 번 해봐.
안 해봤잖아''
그리고 보니 언젠가 나도 혼자 여행을 다니고 싶었던 적도, 친구와 어울려 돌아다녔으면 했던 적이 있었다. 아내에게 딸이 했던 이야기를 말했더니
그것도 괜찮겠다며 따로 놀아보자고 한다.
진심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일단
이번 쉬는 날에는 각자 놀기로 했다.
쉬는 날 혼자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낚시를 하기로 했다.
요즘 밤이면 뒷산에서 아카시아향이 바람을 타고 내려와 코끝을 기분좋게 해준다.
아카시아꽃 필 무렵이 되면
예전에는 충주댐으로 낚시를 무척 자주 다녔다. 그곳에서는 일년 중 이맘때가 조황이 가장 좋았다. 아카시아향이 낚시 다니던 옛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예전에 지나칠만큼 좋아했던 낚시는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다니지 못할 것 같아
장비 일체를 남에게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 낚시도구를 모두 새로 장만해야 했다.
목돈이 들었지만 어차피 은퇴 후에 취미생활의 하나로 갖추려 했던 것 중에 하나였기에 좀 일찍 앞당겼을 뿐이다.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안국지를 출조지로 선택했다. 6000평 정도의 계곡지인데
유료낚시터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지처럼 잔교와 수상좌대는 물론 접지좌대도 없는 깨끗하고 조용한 저수지이다.
오염원이 없고 하류에 또 하나의 저수지가 있어 웬만해선 배수도 하지 않는다.
낚이는 씨알이 큰 대신 대부분의 물 맑은 계곡지가 그렇듯 꽝 칠 확률이 높은 곳이다.
고기를 못 잡으면 어떤가.
자연에 파묻혀 하루 저녁 야외에서 보내는 멋을 즐기고자 함인데.
고려시대 융성했던 안국사란 절터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가 가까이에 있다.
6년 전, 서산시에서는 국비와 도비를 지원 받아 지속적인 인구감소가 일어나고 있는 농촌마을 공동화를 극복하고자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을 추진하였었다.
농촌 리모델링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문화휴식공간으로 마을을 탈바꿈시켜
도시와 농촌을 하나로 연결하여 주민의 문화생활을 고취하고 소득증대에 도움이 되도록 한 사업의 일환이다.
''신문화공간조성사업''에 선정된 여미리는
입지적인 여건과 전통마을의 풍속과 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어 5년 전부터 '전통문화 보존'에 주안점을 두고 향토자원을 이용한 마을의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볼 수 있는 옛날 다방이나 오래된 이발소, 우물과 빨래터, 낡은 방아간 등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향토자원의 하나로 되살렸다.
''달빛예촌 여미리''란 캐치프래이즈를 내걸고 생활문화센타와 갤러리,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토속음식점 디미방을 건립하였다.
음력 4월을 여월(余月)이라고 한다.
여미리(餘美里)는 여월의 달빛이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일 게다.
장승제와 미륵제를 비롯한 지역축제와 스토리텔링, 고택탐방과 체험 등 문화휴식공간으로 재탄생 된 곳이다.
이러한 문화사업 중심에서 ''여미리 갤러리 & 카페''가 돋보인다.
서울에서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다
여미리에 내려온 조선희 갤러리 관장은
옛 정미소 자리에 북카페를 마련하고 각종 전시회와 예술제를 개최해오는 등
각종 문화사업을 주도하였다.
때문에 비록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볼거리가 많이 있는 곳이다.
사실 홍성, 서산, 당진을 아우르는 내포지역은 조선조 500년간 한양에서 가까워
왕실과 힘있는 사대부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어 왔었고,
중국 당나라 당唐과 나루터 진津을 뜻하는 당진이라는 지명에서 보듯이
오래전부터 바닷길을 통하여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다양한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문화 유적의 자취가 풍성한 내포지역은 평소에도 즐겨 찿았었는데,
낮에는 이곳 여미리 일대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낚시터에서 하룻밤을 보내도록 계획을 세웠다.
여미리 관광안내도.
입구에 여미 갤러리 &카페가 있다.
예전에 방앗간 건물이 폐허가 된 채 10여년 방치된 곳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방앗간 이미지를 살려서.
좌측은 미니 갤러리로 우측은 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카페 정원이 예쁘다.
전시실은 주기적으로 작가를 바꿔가며 작품을 전시한다고 한다.
가까운 지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인체의 갖가지 자세를 단색으로 묘사했는데....
카페 내부에서 밖을 보고 한 컷.
조선희 관장과 디미방 식당에서 보았던 지역 주민 2사람 뿐이다.
북 카페라고 했는데 조관장의 디자인 전공서적만 보인다.
5년 전 여미리의 예쁜 모습에 반해 모든 걸 던져놓고 이곳에 정착하려 노력하고 있단다.
여미리 입향조라고 알려진 조선 2대 왕 정종의 4째 아들 선성군 이무생의 위패를 모신 선정묘(宣靖廟).
여미리 석불입상.
조형미는 떨어지나 투박한 모습이 민초를 닮았다.
팔의 위치나 모양은 고려시대 지방에서 많이 보여지는 형태이다.
유기방 가옥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조선과 근대적인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듯 하며,
소나무가 무성한 나지막한 야산에 둘러쌓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우물과 빨래터가 남아 있다.
지금껏 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유기방 가옥은 4월 중순 수선화로 유명하다.
지금은 꽃이 모두 다 지고 잡초가 되었다.
사랑 별채에 이어진 토담의 곡선이 멋있다.
서까래를 깔고 기와를 얹은 토담이다.
귀틀을 이용한 토담은 일본의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축조법은 아닌 것 같다.
대문채는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솟을대문 대신 누각 형태를 하고 있다.
사랑채.
안채와는 담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랑채 뒷편.
안채.
낡은 탈곡기와 오래된 생활용품들을 모아 놓았다.
안채 툇마루 시렁에 놓여 있는 동구리.
무척 오랫만에 본다.
대체로 1인용 소반을 많이 얹어 놓는다.
안채 뒷마당.
양지 바른 곳의 장독대는 어느 곳이나 정겹다.
법당 벽면에 웬 ''미워도 다시 한번'' 포스터가?
깜짝 놀랐다.
황운사 폐법당인가 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애초에 법당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다.
어째 이런 곳에 사찰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사용하지 않는 법당을 근대문화유산 전시장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여의치않아 그대로 방치된 것 같다.
황운사 대웅전.
사찰의 불사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는다.
당우는 대웅전과 산신각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도 초기 형태의 탑 수투파를 쌓았다.
부처님을 모시는 감실도 만들었고.
'여미생활문화센타'라고 간판이 달렸다.
마을에서 공동운영하는 도예공방이다.
황운사를 조금 지나 산중턱에, 정말 조용하고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도예를 배우고자 하는 동네 아주머니 2분이 열심히 물레질하고 있었다.
김해연 도예가님이 예쁜 커피잔에 커피를 한가득 타 준다.
우~~넘 많다.
출입구 바닥에 오밀조밀한 소품들이 아기자기하다.
까만 복어 두 마리 잡아왔다.
유약 바른 흰 놈도 두 마리 잡아오고.
향초를 넣을 수 있도록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다.
애초에 도예전공자가 아니었으나 좋아하다 보니 배우고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도예가님의 설명이다.
남 보기에는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신선놀음한다지만 보통 힘든일이 아니라고 푸념한다.
여미 디미방.
17세기 경북 영양군 두들마을에 살았던 장계향님이 쓴 ''음식 디미방''에서 따 온 이름일 것이다.
디미방(知未方 맛을 아는 법.)이 맞는지.. 또 이 지역 토속 음식인 깻묵된장을 맛보고 싶어 들어갔다.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다.
외지인은 나 혼자고 모두 동네분이거나 이웃마을에서 온 손님이다.
조용한 마을에 있는 식당이어서 평일에는 밥도 얻어 먹지 못히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천만에 말씀이었다.
혼자 가서 일 인분만 주문하기가 민망했을 뿐이다.
벽에 그려진 풍속화가 정겹다.
더 많이 있었으나 식사하는 손님에게 방해될까 다 못 찍었다.
들깨된장국.
메뉴는 오로지 이 한가지다.
음식을 받고 미리 '조금만 주세요' 말할 걸 생각했다.
정갈하다.
나물 무친 참기름이 무척 꼬숩다.
많아 보이던 밥이 아쉬울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들깨된장국은 별미였다.
디미방을 운영하시는 분은 유기방가옥의 안주인이시다.
담백하고 참 맛있다고 했더니
인공 조미료를 전혀 안 쓰셨다고 하면서,
너무 힘들어 이 달말까지만 하고 다른 이에게 식당운영을 넘길까 했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한숨이다.
70세쯤 되어 보이는데 쉬고 싶을 때도 되었지.
마을회관 언덕 위 정자에서 본 여미리 전경.
계절에 따라 농촌마을에 대한 느낌이 다르겠지만 ''마을이 참 이쁘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수령 330년 된 비자나무.
여미리 마을회관 뒤 언덕 위에 있다.
수세(樹勢)가 왕성하여 비자나무 생태학상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한다.
여미리 입향조의 후손이 심었다는 안내문이 있다.
갓처럼 생긴 보개장식이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이 연상된다.
협시불도 그렇고 민중적인 분위기여서 친근감이 간다.
고려시대 옛 절터 자리에 놓여진 오층석탑.
제모습이라고 보긴 어렵다.
기단부가 너무 부실하다. 첫 번째 층의 옥신에 삼면에 양각된 부처님을 조각하였고 한 쪽 면에는 자물쇠가 새겨진 문비(門扉 문짝)를 표현하였다.
옥신은 첫 번째 층만 남아 있다.
매향암각명문(埋香岩刻銘文) 바위라고 한다.
기복신앙의 하나로 향을 땅에 묻고 복을 빌었다.
고려말이나 조선초의 매향 사실을 기록한 명문인데
서로 다른 시기에 음각된 글이 바위 좌ㆍ우에 새겨져 있다. 마모 상태가 심해 육안으로는 도저히 알아보지 못하겠다.
무너미에서 본 저수지 전경.
낚시터에 어둠이 깔리고 있다.
낚시터의 야경.
고요한 가운데 이따끔 산새 소리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