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9) 2021년 7월 27일 충청일보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
2천21년 한국의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겁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망둥이가 펄쩍펄쩍 뛴다. 그걸 보고 나는 못 뛰나 하며 꼴뚜기도 바다가 아닌 육지 어시장 수조에서 껑충껑충 뛴다.
하루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망둥이는 아니지만 광화문 네거리에 물통을 갖다 놓고 그 속에서 펄쩍펄쩍 뛰어볼까 그랬더니 가족들 너나없이 그래 보라며 대환영을 했다. 열 살 먹은 손자아이도 할아버지 저도 이번 기회에 한번 뛰면 안 될까요 그랬다.
네가 무슨 말인 줄 알고? 예, 저도 알아요. 무슨 말인데, 내년 봄에 대통령 선거에 너도 나도 후보가 되겠다고 법석을 떤다더군요.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아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도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망둥이가 널러 있다고.
고대 철학자이자 대문호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했다. 그 때도 꼴뚜기 같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었나 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비싼 밥 먹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또 철학자 플라톤도 ‘인간의 삶에서 열광할 만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잘 났다고 으스대며 자기가 최고인양 열광하는 그들도 속내를 들어다 보면 보잘 것 없다 못해 추하기까지 한다했다.
인간의 삶에서 열광할 만한 것은 없다. 라고 한 플라톤의 그 말과 관련 12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안바리 조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세상을 잃는다 해도 한탄하지 말라, 이 세상은 허무의 허무이므로, 그대 만일 세상을 손아귀에 넣어도 기뻐하지 말지어다. 이 세상은 허무에 허무이므로 괴로움도 기쁨도 한낱 이슬처럼 잠시 뿐이니, 이 세상에서 얻음과 잃음과 선악도 허무의 허무요, 없음의 없음이니’ 라고 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볼 때 사람들의 삶이란 결국 잠시잠간 머물다가 티끌이 태풍에 실려 어디론가 날려 가버리는 것과 같이 사라지게 된다. 인간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대단한 것 같이 말하지만 티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인간의 삶을 두고 즐거워 할 것도 한탄할 것도 괴로워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다고 했다. 결국 자신을 몰라 하는 짓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걸핏하면 재물을 쫓아 목숨을 걸고 권력을 보면 사족을 못 쓰고 자신이 고래 숭어라도 되는 양 물살을 가르고 뛰는 꼴이 열 살 아이가 낄낄거리며 할아버지 저도 이번 기회에 한번 뛰면 안 될까요? 그런 일이 생겼다.
사람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하여 바보 천치가 아니다. 그런데 망둥이 꼴뚜기 같은 인간들 이것저것 가리지 못하고 으스대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 세상 무서운 줄도 알고 사람들 두려운 줄도 알아야 한다. 망둥이 꼴뚜기 그들에게 경고하는데 제발 선량한 국민들 머리 마구 흔들어 정신 빼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날로 변해 숨통을 조이는데 선거벽보며 너저분한 이력 이것저것 인쇄 거리에 뿌리고 플래카드 내걸어 쓰레기를 양산 토양 수질 대기를 오염시키고 또 소음으로 귀마저 힘들게 하는 그 짓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난 환경오염을 위해서라도 그 짓 접을까 한다. 그 말 듣고 손자아이도 그래요 할아버지 말씀 듣고 저도 포기할래요.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