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고르게 된 풀잎의 생각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여자는 살 수 있지만 사랑은 불가? 지금까지 영화와 거기에 삽입된 음악을 써 오면서 19금 영상물로, 게다가 사랑을 사고 판다는 컨텐츠가 외설이나 안티 페미니스트로 비칠까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사랑을 팔고 사?? 꽃바람 속에”로 시작하는 우리 국민 유행가 ‘홍도야 울지 마라’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같은 옛 가요나 신파극에서나 보듯한 주제의 미국 영화 ‘은밀한 유혹(Indecent Proposal)’을 골라 봤습니다. 직역은 ‘음탕한 제안’이나 ‘상스런 제안’이 맞을 것 같지만 부부에게 공개적으로 하룻밤을 묻는 게 ‘은밀한~’은 제목에 기대하는 상술임에 다름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의 줄거리
여주인공 ‘다이애나 머피(Diana Murphy:데미 무어/Demi Moore)’와 ‘데이빗 머피(David Murphy:우디 해럴슨/Woody Harrelson)’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어 오다가 결혼에 성공한 찰떡 신혼부부다. 대학서 건축학을 전공한 데이빗과 다이애나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직접 설계하여 멋진 집을 짓기로 의기 투합하여 우선 융자를 받아 땅부터 구입후 집을 짓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제위기에 건설불황이 닥치자 설상가상으로 데이빗마저 일하던 건축 사무소에서 실직한다. 은행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쫓겨날 어려움을 맞게 되자 두 사람은 염치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손을 벌렸지만 땅값 상환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5천불에 그쳐, 고심끝 궁여지책으로 둘은 이를 뻥튀기하기 위해 라스베가스를 찾는다. 어느 나라고 시대건 간에 극도로 궁하면 남자는 우선 도둑질이나 도박을, 여자는 손쉬운 작부나 매춘을 꿈꾼다 듯 이들도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으로 한탕 할 생각을 하게 된 것.
전문 갬블러들이 득실거리는 도박판에서 5만불이 필요한 두 풋내기는 행운이 따른 탓인지 첫날에는 제법 두둑하게 2만 5천불의 돈을 딴다. 땅값 상환에 필요한 금액의 반 정도를 횡재한 이들은 딴 돈을 밑천으로 나머지 필요한 돈을 완전히 채우려는 야심으로 이튿날도 계속 도박판에 몰두한다. 그러나 ‘장마다 꼴뚜기’냐듯 도박판은 녹록치 않았고 돈이 나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이들은 손에 든 돈을 몽땅 날리고 빈털털이가 되고 만다.
때마침 카지노에서 거액의 도박을 하면서 걸헌팅에도 관심을 보이던 억만장자 ‘존 게이지(John Gage: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란 신사가 우연히 다이애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 계속 관심을 보이며 눈독을 들인다. 도박판서 빈손이 되어 낙담하고 있는 이들 부부를 눈여겨 보던 게이지는 다이애나를 빌려 거액의 배팅에 성공해 원샷에 큰 돈을 거머쥔다.
고맙다며 만찬에 초대한 게이지는 그들의 약점이라도 노린듯 느닷없이 다이애나가 자기와 하룻밤을 함께 하면 몸값으로 백만달러란 거액을 주겠다는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돈이 궁해 벼랑끝에 선 부부가 동의만 하면 이들의 꿈이자 가장 큰 관심사인 땅값 상환으로 안전한 내집 마련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 제안을 받고 다음날까지 가부를 결정해서 회답을 줘야 하는 두 사람은 너무나 엄청난 갈등 속에 첨엔 모두가 거절키로 한다. 둘은 너무나 사랑했고 영혼과 정신적인 사랑이 서로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기에 대학시절 서로가 절친에게 양다리 걸쳤던 얘기도 서슴치 않으며 하룻밤이 별거 아닌양 살벌한 분위기를 녹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운명을 바꿀만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기가 너무나 아쉽다고 생각한 다이애나는 마침내 남편에게 이를 허락해 달라고 애걸하게 되고 데이빗도 얼떨결에 승낙을 해버린다.
아내와 딴 남자와의 하룻밤을 허락하고도 막상 야밤에 헬리콥터를 타고 아내가 어디론가 떠난 뒤 불현듯 이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 데이빗은 이미 가버린 아내의 행방을 찾아 이성을 잃고 칠흑같은 밤 사방을 휘젓고 마구 뛰쳐 다니며 난리다. 이어 하룻밤을 지새고 돌아온 아내를 바라보며 데이빗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궁금해 안절부절이다.
데이빗의 “나보다 더 좋았느냐?”는 화풀이 질문에 다이애나는 남녀가 지낸 밤은 단 두가지 상황밖에 있을 수 없는데 “내가 그남자와 잤다고 해도 당신은 믿기 싫을 것이고 안잤다고 해도 못 믿을것이니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사랑은 소유보다 용서와 공감이라고 독백한다. 다이애나는 데이빗의 상상엔 아랑곳 없이 게이지가 자기를 집으로 데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밤을 보냈는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어 더욱 궁금해 안달이다. 또 데이빗은 돈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다른 남자의 품으로 보냈다는 죄책감과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자학에 질투와 미움까지 겹쳐 혼란을 멈추지 못하며 나날을 보낸다.
결국 이들의 금슬은 금이가고 격렬한 부부싸움은 극도의 파탄으로 치닫는다. 돈이 급한 다이애나는 데이빗을 위해 게이지와 하룻밤을 지내고 거액을 손에 쥐었지만 상환기간을 넘긴 땅마저 은행 소유로 넘어가고 말았다. 다이애나가 소유권이 상실된 땅의 새로운 주인이 공교롭게도 게이지임을 어렵게 밝혀내자 데이빗은 함께 살 집까지 마련한 게 아닌가 더욱 격분하게 된다. 결국 다이애나는 데이빗과 헤어지고 이를 노린듯 계속 접근하며 물질공세를 벌이는 게이지에게 점차 끌려 마음이 옮겨갔고 드디어는 집을 나가 게이지와 돈이 갖는 위력도 체험하며 행복도 느낀다.
한편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괴와 자학으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해 방황하던 데이빗은 자기의 전공인 건축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점차 몸을 추스린다. 이성을 되찾자 게이지와 함께 지내는 다이애나를 만나 한결 성숙된 삶의 좌표를 제언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함께 사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잊어서가 아니라 이를 용서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자선 바자회 경매에서 다이애나가 평소 좋아하는 하마를 게이지한테 받은 100만불을 주고 낙찰받아 그 그림을 선물한다. 강력히 아내의 귀가를 기다린단 메시지였다. 게이지도 그녀를 붙잡아 두기 보다 돌려 보내겠단 언질을 던진다.
얼마 뒤 게이지와 함께 호화 승용차를 타고 거창한 연회장으로 향하던 다이애나는 갑자기 중도에 내려 옛 추억의 데이트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7년 전 데이빗이 프로포즈를 했던 부두를 찾아가 마침 옛 사랑의 흔적을 더듬고 있는 데이빗을 보고 시멘트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마주한 채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나란히 앉아 머리 위로 손을 내밀어 다시 사랑을 복원하듯 꼬옥 손을 잡으며 잊혔던 체온을 확인한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스팅(The Sting,1973)’, ‘내튜럴(The Natural, 1984),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85)’, ‘위대한 겟스비(The Great Gatsby, 1974)’ 등 수많은 인기 작품과, 부드럽게 잘생긴 미남으로 많은 남성의 선망의 대상이자 모든 여성들의 연인의 이상형으로 불리던 로버트 레드포드는 감독으로서도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 1980)’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는 최고급 스타로 부상하여 중단없는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랑과 영혼(Ghost, 1990)’, ‘어 퓨 굿 멘(A Few Good Men, 1992)’,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 1995)’ 등에서 너무나 개성미 넘치는 특유의 연기와 헐리우드 연하남 킬러로 이름난 데미 무어는 자기 딸의 전 남친과 결혼을 시도 할 정도의 스캔들로도 유명하고, ‘치어스(Cheers, 1982)’, ‘혹성 탈출(War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7)’로 알려진 우디 해럴슨 등 이들 호화 배역들의 연출이 던지는 메시지는, 돈을 제외하고 모든 걸 가진 데이빗과 사랑을 제외하곤 모든 걸 가진 게이지, 두 상반된 경우를 설정하여, 과연 사랑도 사고 팔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어디까지를 할 수 있는가의 한계를 물어 저마다 보이는 반응을 듣고 싶어 한 영화였단 게 이 작품에 대한 필자의 집약된 회상이다.
잭 엔겔하드(Jack Engelhard) 원작에, 에드리안 라인(Adrian Lyne)이 감독을 맡아 세간에 큰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랜덤 관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다이애나와 같은 제안을 받을 경우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물어본즉, 답변한 80%가 기꺼이 응하겠다 했는데 연령대별로는 20~30대들은 거의가 분개 수준으로 거절 의사를, 40대들은 반반이었고, 50대는 과반 이상으로 상당히 긍정적이었으며 특히 노년층은 그 정도 조건이면 심지어 데려가도 좋다는 반응을 보였단 미확인 보도를 우스개 삼아 사족으로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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