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고향집에 자주 오는 길고양이 이야기를 전에 한 번 했을 거야. 비어 있던 우리집을 자기 영역으로 살다가 내가 자주 내려가니 '이 인간이 살지도 않으면서 자주도 내려오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회색 길고양이 말이다.
생선 먹다가 일부러 남겨 잘 다니는 곳에 두면 언제 와서 먹고 갔는지 싹 비워져 있었다. 먹다가도 내가 보면 생선 토막을 물고 잽싸게 도망을 가곤 했다. 매일 생선을 먹을 순 없잖아. 줄게 없으면 멸치도 주고 부산서 생선이나 고기 치킨 먹다가 살점 붙어있는 걸 냉동시켜 가져와 주곤 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준 건 아니고 밥 먹다가 생각나면 주곤 했는데, 지난 달 시골집에서 좀 오래 머물러 아침 저녁으로 먹이를 좀 챙겨주었다.
근데 이 고양이 말이다. 내가 보이기만 해도 도망가던 녀석이 가까이 가도 도망 안 가고 날 쳐다보는 거야. 밥 챙겨주는 집사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경계는 하는 것 같아. 손바닥에 먹이를 두고 불러도 가까이 오지는 않고 딱 1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거야. 먹을 때도 1m 정도 가까이 가도 예전처럼 도망을 안 가. 밥을 먹고는 우리집 근처에서 쉬어가곤 해. 특히 내 차 아래 그늘에서 늘어지게 자기도 한다.
고향집에서 지내면 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 대문 열고 자기 전에 대문을 잠근다. 옛날 어릴 때도 그랬다. 대문 열고 대 빗자루로 마당을 쓸곤 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복맞이 하는 거라고 하셨다.
어느 날 아침 대문을 여니 이 고양이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도망도 안 가고 밥 달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날 이후 아침 저녁으로 대문 앞으로 찾아온다. 고양이 밥 그릇을 비를 피할 수 있는 대문 옆에 두었기 때문이지 싶다.
마트에 가니 개 고양이 사료 파는 코너가 있더라. 고가는 아니지만 그리 싼 것도 아니야. 소분으로 포장되어 있는 고양이 사료 한 포대 샀어. 난생 처음이다.
사료를 처음 준 저녁. 이 고양이 보세. 냄새를 맡더니 먹지도 않고 가버리는 거야. '맛난 생선을 안 주고 성의 없이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사료가 입에 안 맞나 걱정했다. 와서 먹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도 했어. 다음날 아침 대문을 여니 언제 먹었는지 사료는 없고 아침 달라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거야. 참 반갑더라.
가끔 갈치 꼬리나 살점 붙은 치킨을 주곤하지만 주 먹이는 알약처럼 생긴 사료다. 반려견 키우는 고딩 친구가 그랬다. "먹이 챙겨주다보면 가족 된다"고. 전에 이야기한 김장이처럼 살갑게 구는 고양이는 아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가족이 되는 건가?
문제는 말이다. 늘 고향집에 머물 수 없다는 거다. 다대포 집에 가거나 여행이라도 떠나면 밥을 챙겨줄 수 없다.
야생에서 잘 지내는 동물을 먹이로 유혹하여 야생성을 없애는 것이 아닐까? 사료를 챙겨주는 것이 저 고양이를 위하는 걸까? 혹시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건 아닐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고향집에 없을 때 아침 저녁 밥 얻어먹을 거라고 열리지 않는 대문 앞에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 모습이...기다리다 지쳐 떠났다가 혹시나 또 다시 찾아오는 그 모습이...
고양이는 오늘 아침에도 밥을 먹고 갔다. 일이 있어 부산 가야 한다. 사료를 넉넉하게 놓아주고 가겠지만 언제 고향집에 내려올지 모르겠다. 길고양이 밥주러 일부러 내려 오기도 그렇다. 무 배추 풋마늘을 심기 위해 다음 주중에 내려오기는 한다.
다대포 집으로 떠나기 전에 고양이 밥을 챙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길고양이 밥 챙겨주는 것이 잘 하는 걸까? 잘못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