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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사 49:1-2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프랑스의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1883-1956)은 “잊혀진 여인”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권태로운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젖은 여인입니다.
슬픔에 젖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입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을 앓는 여인입니다
병을 앓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쫓겨난 여인입니다.
쫓겨난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인입니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아주 슬프게 합니다.
사람들을 보면, 잘 나가던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남유다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호화호식 했었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오면서, 그들의 처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받아, 조금씩 쓰러져갔고, 마지막에는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초토화되어 버린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슬픈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예루살렘에 그렇게 사람이 많더니, 이제는 쓸쓸한 성으로 변했구나. 예전에는 나라들 중에서 큰 성이더니, 이제는 과부처럼 되었구나. 예전에는 모든 성 가운데서, 여왕이더니, 이제는 노예가 되었구나. 예루살렘이 밤에 목놓아 우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아무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다. 사랑하던 사람들도 다 가고 없으며, 친구들은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다. 유다가 사로잡혀, 고통 당하고, 고된 일에 시달린다. 뭇 나라에 흩어진 채 쉴 곳을 찾지 못하며 뒤쫓던 사람들이 재앙에 빠진 유다를 붙잡는다.”(애가 1:1-3. 쉬운 성경)
그렇습니다. 황폐해진 예루살렘과 그 백성을 보고서, 지나가는 이방 사람들은 손뼉 치며 조롱하고 머리를 흔들며, 비웃었습니다.
“이 성이 가장 아름답다는 성이냐? 이 땅 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성이냐?”(애 2:15. 쉬운 성경)
전에는 남유다에게 조공 바치며, 아부하던 자들이, 이제는 입술을 열어, 멸망한 유다를 보면서, 욕하고 비웃는데, 그러한 작태를 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라도 없고, 힘도 없어졌기 때문에, 멸시와 조롱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이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완전히 잊어버리셨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포기하셨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셨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모진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시편 137:1절을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길고 긴 고통의 날에, 그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사 49:14)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아멘.
“나는 너를 안 버렸어. 나는 너를 잊지 않았어.”
하나님은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사 49:16상)
여러분! 자식은 그 어디에 있든, 항상 부모의 품 안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있는 자식을 어머니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혹시 어머니는 자식을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을, 항상 하나님 안에 품고 계십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들 모두가 글을 알지 못합니다. 글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멀리 떠나게 되자, 아들을 생각나게 해 주는 표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지금처럼 사진을 가질 수도 없었을 때, 어머니는 문신을 새겨 주는 사람에게 가서, 손바닥을 내어 밀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보고 싶을 때에, 늘 기억할 수 있는 것을 그려 달라고 하였다.
아마도 문신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의 손바닥에 바늘로 한 점 한 점씩 찔러가며, 아들의 모습을 새겼을 것입니다. 비록 아들은 먼 곳으로 떠나갔지만, 어머니는 날마다 그 아들을 생각하며, 보고플 때에는 손바닥에 새겨진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위로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손을 씻을 때에도, 밥을 지을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언제나 아들은 그렇게 어머니의 손바닥에, 그리고 어머니의 가슴 속에 있었습니다. 손을 물에 넣어도, 지워지지 않고, 닳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어머니는 일을 할 때나, 쉴 때나, 언제나 손바닥에 새겨진 것을 보고, 아들을 생각하였을 것이며,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아들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손바닥에는 언제나 아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 아들은 이렇게 항상 어머니의 마음에 있었고, 어머니의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이 되었지만, 16절, 원문에 보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잊으셨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의 불신을 보시고, 너무 놀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너를 버렸다고, 내가 너를 잊었다고, 빨리 내 손을 보라. 여기에 너 있잖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다니,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울부짖듯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손바닥에 새긴 너를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느냐? 너를 기억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육신에 새겨져 있는데, 어떻게 감히 내가 너를 끊임없이 기억하지 않는다고, 의심할 수 있느냐?”
여러분! 어느 쪽이 더 놀라운 일입니까?
자기 백성들이 그렇게 의심하는데도, 계속해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그처럼 신실하게 사랑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불신입니까?
하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수천 번도 더 지키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그만한 어려운 일만 만나면, 또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소중한 존재로, 하나님의 가슴에 품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바닥에 그들을 새겼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어. 주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이야!”
그때 우리 주님은,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며, 너는 항상 내 앞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잊으셨던 것일까요?
그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후, 완전히 그들을 내어버리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관심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겼습니다.
누가복음 19:1-10절을 보면,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셨습니다. 그때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인 삭개오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삭개오는 키가 너무 작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쉽게,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무화과나무(뽕나무)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다가, 나무 위를 쳐다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아셨습니다.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만 알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무도 나에게 다가와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무도 나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은 나를 알아주시고, 나를 인정해 주시고, 내 곁에 다가와 주십니다. 나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 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왕상 6:1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사 4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거듭 말씀하시는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우리를 정말로 내버리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시렵니까?”(시 60:10)라고 말했습니다.
고라 자손도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시 44:23)라고 외쳤습니다.
큰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 71:9,18)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챙겨, 외국으로 떠나, 자기 하고픈 대로, 맘껏 즐기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돈이 있으니, 친구들도 따르고, 아쉬울 것이 없는 풍족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고 나니, 친구도, 즐거움도, 다 떨어져 나가버리고, 달랑 홀로 남았습니다. 그것도 오갈 데 없는 거지꼴이 되어,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아들은 그때 비로소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고, 풍족한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품꾼들이 부러웠습니다.
한편 둘째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그날부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혹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오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문빗장을 걸어놓지 않고, 날마다 문을 열어놓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여기에 아들과 아버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들은 집을 떠나는 순간, 오로지 자신이 마음껏 즐길 무지갯빛 꿈에 부풀어, 부모 형제는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진 것을 다 잃고, 배고프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생각났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떠나는 그 시로부터, 한 순간도 그 아들을 마음에서 지운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오늘의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쉽사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사야 46:3-4절을 보면,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리고 철없는 이스라엘을 가슴에 안고, 양육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라서는, 제 스스로, 저절로 어른이 된 줄로 알고, 하나님의 품을 훌쩍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간섭처럼 여겨져서, 불편하고, 귀찮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노년이 되고, 백발이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품으실 것이고, 구하여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작자 미상의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감동적인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밤, 한 남자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주님과 나란히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가로질러, 그의 인생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그는 모래밭에 찍힌 두 짝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한 짝은 그의 것, 다른 짝은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들이 지나간 다음, 그는 자기 인생의 가장 비천하고, 슬펐던 순간, 그곳엔 한 짝의 발자국 밖에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낙담하여,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했을 때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제가 가장 주님을 필요로 했을 때 저의 곁을 떠나셨는지”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며, 너를 결단코 떠나지 않는단다. 네 시험과 고통의 순간, 네가 한 짝의 발자국밖에 볼 수 없는 그 순간, 그것은 바로 내가 너를 안고 걸었던 때란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혹시 육신의 부모는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부모님은 세월이 흘러, 이미 내 곁을 떠나셨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고통의 시간을 지날 때, “하나님은 나의 아픔에 관심 두지 않으시고, 나를 잊으셨는가?”라고, 서운하고, 우울해 할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 내 사랑하는 딸이니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단다. 내가 늘 언제나 너와 함께 할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는 항상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당한 유다를 보면서, 하나님은 슬피 통곡하셨습니다.
이사야 22:4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슬픔을 못 이겨 이렇게 외친다. 나를 혼자 있게 하여라! 내가 혼자 이 고통을 당하며 울게 하여라! 내 딸 유다가, 내 백성이 죽었으니, 나 혼자 울며, 통곡하게 하여라! 아무도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하나님은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설령 그들의 죄악 때문에, 그들에게 매를 드시고, 심한 벌을 주신다 할지라도, 절대로 그들을 잊지는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때리시고 벌을 주신 이후, 그들을 회복하실 방법을 강구하십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내가 너의 기도를 들어 주겠다.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돕고 너를 지켜 주겠다. 너는 내가 백성과 맺은 언약의 표적이 될 것이다. 너는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돌려 보내어 폐허가 된 땅을 그 주인들에게 돌려 줄 것이다. 네가 죄수들에게 ‘감옥에서 나오너라’고 할 것이며,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밝은 곳으로 나오너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길가에서도 음식을 먹으며, 헐벗은 산에서도 먹을 것을 찾게 될 것이다. 그들이 굶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다. 뜨거운 바람이나 햇볕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샘가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모든 산들을 내 백성을 위해 길로 만들겠고, 모든 길을 닦아 놓겠다. 보아라. 내 백성이 먼 곳에서부터 온다. 북쪽에서도 오고 서쪽에서도 온다. 이집트 남쪽의 시님에서도 온다.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소리를 높여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여호와께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다.”(사 49:8-13. 쉬운 성경)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시며, 주께서 우리를 잊으셨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렇게 외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놓았다”(사 49:15-16a).
정상적인 경우라면,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설령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단코 하나님의 백성을 잊지 않으십니다.
결단코. 결단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의 비유를 사용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손바닥에 그의 백성을 새겨놓는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눈을 크게 떠서 나의 양 손 바닥에 새겨진 너희 자신을 분명히 보아라”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버린 바 되고, 잊혀진 바 되었다고 생각하며, 슬퍼하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나를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하며, 슬픔 가운데,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상황이 너무 힘들어, 그런 연약한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주변 사람들은 여러분을 잊어버렸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한 번 자신의 백성 삼으신 자녀를 절대로 버리거나, 잊지 않으십니다.
호세아 11:8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1절을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손에 새겨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나를 잊으셨나?”라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시거나, 잊으시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앞에서 여러분을 인도하여 주시고, 여러분의 등 뒤에서 여러분을 밀어 주시고, 여러분의 위에서 여러분을 지켜 주시고, 여러분의 밑에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고, 여러분의 옆에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하여 주십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주시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우리와 늘 함께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마음 판에 오직 주님을 새기고, 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