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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상옥프로폴리스 원문보기 글쓴이: 유랑아제
대한민국 1등 맛 고장 '전주'는 사철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미식기행이
여행의 주류를 이루는 이즈음 그 인기는 국내 여느 관광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드높다.
맛고을 호남의 1000년 주도로 장구한 세월 속에 쌓인 전통의 미각은 깊은 손맛에 풍성한
인심까지 어우러져 맛기행의 진수를 담아내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맛과 멋이 담겨 있는 곳,
진정한 한국의 속살을 느껴 볼 수 있다는 전주는 청-백-적-황-흑 오방색 고명이 꽃밭처럼
수놓인 비빔밥이며, 잔칫상처럼 푸짐한 백반, 그리고 싱싱한 민물 오모가리탕에
시원한 콩나물국밥까지 푸짐한 미식기행의 전형을 체험할 수 있다.
인스턴트식품이 판치는 시절 제대로 된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고, 고향의 푸근한 인정까지
맛보고 싶다면 전주영화제-단오제 등 5월의 잔치가 이어지는 전주로의 여행이 그 대안이다.
::: 전주 미각의 절정 - 비빔밥
/ 육수로 지은 밥에 고명만 20여가지
전주의 대표음식은 '비빔밥'이다. 그 모토는 '하모니'. 고추장 등의 장맛뿐만 아니라 고명으로
얹는 20여 가지 개별 재료의 개성이 어우러져 맛깔스럽고도 독특한 전주비빔밥만의 맛을
이뤄낸다. 전주에는 성미당, 가족회관, 한국관, 풍남정, 종로회관 등 비빔밥의 명소들이
즐비하다. 그중 전주 토박이들이 선뜻 맛집으로 권하는 곳은 중앙동 소재 성미당.
43년 전통으로 주인 정영자씨(61)가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마침 전주영화제가 열리던 때라 임권택, 정일성감독 일행과도 조우했다. 이들은 전주에 오면
성미당을 꼭 찾아 비빔밥을 맛보는 '성미당 마니아'들이다.
이 집의 비빔밥은 좀 색다르다. 우선 밥을 육수로 짓는다. 하지만 육수는 진하지 않는 것을
사용한다. 비빔밥 고유의 맛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또 흰밥을 상에 올리기 전 초벌 볶음으로
비빈밥을 육회, 표고버섯, 고사리 등 20여 가지의 고명등과 함께 올린다. 초벌 볶음은 갓 지은
밥에 찹쌀고추장과 콩나물, 참기름 등을 넣고 살짝 비벼 볶는다.
정영자씨는 "비빔밥은 재료를 대충 섞어 먹는 음식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한다. 고
명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담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것. 음식 맛은 식재료가 우선이다.
이 집은 취나물 등은 진안에서 구하고, 한우 육회는 당일 잡은 신선한 것만 가져다 쓴다.
전주 서신동에서 아들-며느리가 분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름철엔 삼계탕으로도 유명하다.
전주전통육회비빔밥 1만원, 전주비빔밥 8000원, 40년전통떡국 6000원.
(063)284-6595
::: 아침이 기다려진다 - 콩나물국밥
/ 찬밥에 맑은 국물 넣어 뜨겁지 않아 훌~훌~
전주에서는 과음이 두렵지 않다. 안주가 풍부한 탓이기도 하지만 이튿날 시원한 콩나물국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콩나물국밥은 육수에 콩나물과 밥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내지만 전주 남부시장이 원조인 콩나물국밥은 순서가 좀 다르다. 바쁜 시장사람들이
뜨거운 국밥을 먹기 번거로워 찬밥에 뜨끈한 콩나물국을 말아줬던 데서 비롯됐다.
경원동 '왱이콩나물국밥'이 남부시장의 맛을 재현하는 대표적 맛집이다. 특이한 이름의
'왱이'는 '왱 왱' 벌 소리에서 착안했다. 벌떼처럼 손님들이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붙였다. 왱이 집의 국밥은 뚝배기에 밥을 넣고 맑은 콩나물국을 말아 내오는데, 일단 너무
뜨겁지 않아 부담없다.
시원한 국밥과 함께 날계란 하나를 밥그릇에 담아오는 것도 특징. 뜨거운 국물을 몇 숟가락
부어 겉이 살짝 익은 계란에 김가루를 넣고 훌훌 마시는 맛이 고소하다. 밤새 술에 시달린
위장을 부드럽게 다독여 주는 역할을 한다. 콩나물을 무제한 리필 해주며, 김치, 깍두기,
오징어젓갈, 새우젓 등이 함께 상에 오른다. 뜨뜻하고 감칠맛 나는 모주도 맛볼 수 있다.
콩나물국밥 5000원. (063)287-6979
역사의 땅 "천년전주"
전라북도 도청소재지 전주,
역사를 보면 전주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때는 신라 경덕왕 16년 (757년)으로,
완산주를 전주로 개명하면서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1253년의 역사를 간직한 천년도시가 바로 전주이다.
900 년 견훤이 세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전주는
조선왕조 500 년을 꽃피운 조선왕조 발상지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전 지역과 제주도까지 관할했던 전라도의 실질적인 수도로,
행정중심지로 큰 역할을 담당한 역사적인 도시이다.
전주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의 본고장으로
전통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 한식, 한지등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전통문화체험 관광도시이다.
( 전주 관광 안내지에서 )
초등학교 동창 넷이서 전주를 가보자고 길을 떠난게 지난 금요일,
목적지는 전주부근으로 정했지만 잘 곳도 예약하지 않고 그냥 떠났다.
요즘은 금요일부터 주말인데 원하는 한옥마을에서 숙소를 못잡으면
찜질방을 가거나 하자고 말들은 했지만 속으로는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다.
워낙 준비성이 별로 없는 우리들이라 그저 발길 닿는대로 눈에 보이는대로
가보자고 하고 떠났으니까 고생을 해도 할수 없지 뭐....
서울을 떠날때는 날씨가 이렇게 좋았다.
풍남문
보물 308 호로 지정된, 전주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로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숙소인 한옥마을에서 걸어서 돌다가 만났다.
1905년에 동,서,북문은 철거되고 남문인 풍남문만이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78 년에 복원된 모습이라고 한다.
풍남문을 뒤쪽에서 본 모습이다.
이 사진은 풍남문을 앞쪽에서 본 모습인데 출입금지라
길거리에서 쳐다보는것으로 만족.
비 내리고 금요일인데 숙소부터 잡아놓고 구경을 해야 마땅한데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선 눈요기 부터 시작한다.
최명희문학관을 시작으로 경기전, 전동성당, 덕진공원의 보트놀이까지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야 숙소찾기에 나섰으니....
마침 낮에 눈여겨 봐둔 곳을 찾아갔드니 방이 있다고 한다.
전주는 피서지는 아니니까 시내로 들어가면 호텔이나 여관들이 많겠지만
우리는 되도록 한옥마을에서 자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마침 방이 둘 있다고 해서 너무 좋았다.
어진길이라 이름붙은 골목안의 해달별이란 민박집이 우리 숙소.
방 하나에 40,000 원씩, 80,000 원에 둘을 빌렸다.
샤워시설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되어있지만 방은 이부자리도 깨끗하고
에어컨도 시원하고 좋다.
무엇보다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해서 더욱 좋았다.
간판도 앙징스럽게 예쁘다.
이틑날 밝을때 보니까 한옥마을의 이런 좁은 골목안은 다 민박집이었다.
숙소걱정은 안해도 되는데 낯선곳이라...
민박집이 많은 골목길에 휴지 한장 떨어져 있지 않고 깨끗하다.
우리가 묵었던 집 마당이다.
밥을 해먹을수도 있고 빨래를 할수도 있게끔 해놓았는데
하룻밤밖에 안 잔 우리야 뭐 별로 할것이 없었다.
새벽에 한바퀴 돌고 왔드니 친절하게도 주인 아주머니가
된장찌게하고 밥을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묵은 민박집 바로옆에 한옥체험관이 있어서 들어 가 보았다.
이 집은 하룻밤 묵는데 70,000 원이라는데
40,000 원 받는 우리가 잔 민박집 보다 화초가 많고 옛살림살이 도구도 있고
볼거리는 많았지만 방은 들여다 보니비슷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귓속말로 수근거리며 웃었다.
싼데서 자고 이렇게 구경만 하는게 더 좋은데 하면서...ㅋㅋ
한옥체험관 집의 모습이다. 아, 이집은 사전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지게를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저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서 진달래를 꺾어
꽃방망이를 만들어 가져다 주시던 아버지,
지금은 안 계시는 아버지 모습이 지게와 더불어 떠오른다.
한옥체험관 뜰에 피어 있던 호박꽃, 상사꽃. 능소화
유명한 전주비빔밥집 중의 하나인 고궁,
덕진공원 부근에 있는 고궁으로 저녁 먹으러 갔었다.
전주에 와서 전주비빔밥을 안먹고 간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
물어 물어 유명한 집으로 찾아 갔었다.
음식점 내부, 전주에서 생산된 콩나물만 사용한다고 한다.
창문에 걸린 삼베 커텐이 정말 멋스럽다.
1인분에 10,000 원인 상차림
이 사진은 음식점 입구에 크게 만들어 놓은 비빔밥 모형이다.
전주를 찾아와서 비빔밥을 먹지 않고 한옥마을에서 잠자보지 않고서는
전주구경을 했다고 할수 없지....
전주에서의 첫날, 비빔밥 먹고 한옥마을에서 잠자고...
비는 줄기차게 내렸지만 우산 받쳐들고
우리는 할짓은 다 하면서 돌아다녔다.
전주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최명희, 19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소설 혼불 로 제11회 단재상을 수상하였고
전북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던 최명희, 만 17년간 오로지 혼불 하나에
투혼하였던 최명희, 내가 좋아하는 작가 최명희를 전주 한옥마을에서 그의
기념관을 방문하는것으로 생전의 모습을 회상 해 본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는 제법 바람 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것 같기도 하였다.
소설 혼불 은 이렇게 대숲을 묘사하는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은 이렇게 섬세한 문장과 고운 우리말로 쓰여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절함과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전주를 오면서, 최명희 문학관이 이 한옥마을 한복판에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다.
한옥마을의 골목을 들어서자 마자 최명희 길 을 만나고 그 길에서 최명희
문학관을 만났으니 흥분할 수 밖에.....
고즈넉하고 조용한 한옥마을의 골목길들이다. 한옥마을에 들려서
어디를 어떻게 구경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온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고 있다.
오전 11시와 오후2시, 4시에 경기전 하마비 앞에서 1시간 가량의
한옥마을 투어가 시작되며 무료로 문화해설까지 다 해준다는데
우리는 그냥 우산을 쓰고 제멋대로 돌아 다닌다.
"글도 알고 말도 아는 내나라인데 그냥 다녀보자" 고 하면서.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비에 젖은 기와지붕,
그리고 바닥이 아름다운 골목길이 더욱 정겨워 진다.
무엇보다 우산을 쓰는게 좀 귀찮긴 해도 덥지 않아서 좋다.
이곳은 한옥마을에서는 중심이 되는 거리다.
옆으로 인공으로 도랑을 만들어서 물이 흘러가게 하고 있다.
드디어 만난 최명희문학관, 그런데 이곳은 뒷문이다.
우리는 뒷문으로 들어갔다.
최명희의 여러 모습이 우리를 반기는듯.....
이미 돌아가신지 여러해 되었지만
그는 이렇게 전주인의 가슴속에,
아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여기가 앞 문이다.
작가 최명희는 글도 잘 썼지만 글씨도 참 예쁘게 쓰신것 같다.
생전에 사용했던 도구들이다.
저 만년필로 주옥같은 글을 쓰셨을테지....
최명희 문학관 안에서 바깥을 내다 본 풍경이다.
비록 넓다고 할수는 없는 곳이지만
기와가 올려진 토담이 운치있어 좋다.
최명희길의 풍경들이다.
최명희는 1947년 10 월 10일에 이곳 전주에서 태어나서
1998 년 12 월 11일에 세상을 떴다.
50년 정도의 짧은 삶을 살고 간게 너무나 아쉬운 분이다.
1980년 쓰러지는 빛 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97년 제 16회 세종문화상과 1998년 호암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몌별 만종 정옥이 주소 등이 있다.
최명희의 소설을 대하면 어느 벌족한 가문의 종가댁 잔치마당에 들어선것 같은
설레는 기대감과 아련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나는 곧 거기서 울을 넘는 음식냄새와 시끌벌적한 사람소리,
이어 뜨락을 메운 질펀한 흥취와 안방 여인네들의 정겨운 어우러짐,
그리고 사랑채 어른들의 경세담들을 모두 한마당에서 만난다 로
소설가 이청준 은 그를 평했다.
작가 최명희,
그는 갔지만 그의 혼불은 우리들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유랑아제...펴뮤니케이션,
첫댓글 고즉넉하면서 풍요로움이 느껴집니다..^^
비사벌은 전주, 완산벌은 완주, 달구벌은 대구, 서랍벌은 경주 ? 맞니껴?
서랍벌은 경주 는 서라벌은 경주를 오타 했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