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BA 스타들의 소소한 과거 이야기’ 9편 – 자 입니다.
* 평어체 양해 부탁 드립니다.
* 동영상은 유투브 펌
자 – 재회
NCAA와 NBA를 동시에 즐겨 보는 많은 팬들은 대학 때 동료로 전미를 휩쓸던 선수들이 NBA에서 다른 팀으로 맞대결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반대로 ‘이 무시무시했던 대학 콤비가 NBA에서도 동료로 뛴다면?’ 이라는 가정도 많이 해보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 동료의 NBA 재회가 이루어지는 사례도 종종 있는데 이번 코너에서는 대학교 콤비의 NBA에서의 재회사례를 살펴보자.
Phi Slama Jama
클라이드 드렉슬러 – 하킴 올라주원
대학교 : 휴스턴(1981-1983), 준우승 2회
NBA : 휴스턴(1994-1998), 우승 1회(1995년)
1967년과 1968년, 두 차례 파이널 포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농구보다는 풋볼이 유명하고 인기 있는 학교였던 휴스턴은 미래 명예의 전당 헌액 멤버 콤비인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하킴 올라주원의 입학과 함께 농구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휴스턴 대학에서만 무려 30년 감독 생활을 한 전설적인 감독, 가이 루이스(1956~1986년 휴스턴 대학 감독)의 끝물 세대인 이들은 현재까지도 휴스턴 대학의 대표적인 별칭인 ‘Phi Slama Jama’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콤비이기도 하다.
Phi Slama Jama는 당시 평균 80점에 육박할 정도로 대학 농구에서는 보기 힘든 런앤건 스타일의 공격 농구를 펼치면서 가드부터 센터까지 가리지 않고 가공할 만한 운동능력으로 슬램덩크를 빵빵 찍던 휴스턴 대학교에게 지역 칼럼니스트인 Thomas Bonk가 붙여준 별칭으로 당시 휴스턴 대학은 NBA 어느 팀과 견주어도 부족할 것이 없는 전국구 인기 팀이기도 했다. 1982년부터 84년까지 3년 연속으로 파이널 포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휴스턴 대학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4강 진출 1회, 준우승 2회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미끄러지며 드렉슬러와 올라주원은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했는데 이들 콤비는 결국 프로 무대에서 꿈을 이루게 된다.
각각 1983년 14번과 1984년 1번으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 휴스턴 로케츠 유니폼을 입은 드렉슬러와 올라주원은 모두 10년차 이상의 베테랑이 된 1995년, 공교롭게 본인들의 20대 초반을 불태웠던 휴스턴에서 다시 뭉치게 된다.
드렉슬러와 올라주원이 뭉치기 직전 시즌이었던 93-94시즌, 프랜차이즈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휴스턴 로케츠는 그러나 94-95시즌은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며 디펜딩 챔피언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29승 17패에 그친다. 휴스턴 프런트는 여기서 다소 의외의 선택을 하는데 휴스턴에서 6시즌을 뛰면서 전성기 대부분을 휴스턴에서 보냈고 94년 우승 당시 핵심 멤버이자 올라주원의 골밑 파트너였던 파워포워드, 오티스 더프와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트레이드한 것이다. 휴스턴 대학 출신인 드렉슬러가 지역팬들이 사랑하는 선수인 것은 틀림없었지만 직전 시즌 우승 로스터를 갈아엎을 정도로 휴스턴에 필요한 조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었던 트레이드였고 실제로 드렉슬러 합류 이후 휴스턴은 17승 18패에 그치며 오히려 승률이 더 떨어지고 말았고 결국 47승 35패, 디펜딩 챔피언으로써는 어울리지 않는 6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거기에 굴러온 돌인 드렉슬러와 기존 휴스턴 선수들과의 케미스트리 문제까지도 수면 위로 오르면서 플레이오프 시작 전만 해도 드렉슬러의 트레이드는 명백한 실패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무너지지 않았다. 3번 시드이자 무려 60승 팀이었던 유타 재즈를 1라운드에서 상대하게 된 휴스턴은 1승 2패로 벼랑 끝에 몰렸지만 4차전 41득점, 5차전에서 31점 10리바운드를 포함, 결정적인 순간마다 공수에서 완벽하게 활약한 드렉슬러를 앞세워서 업셋을 하였고 2라운드에서 59승 팀이었던 찰스 바클리의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1승 3패로 몰린 상태에서 5,6,7차전을 내리 잡는 기적 같은 업셋에 성공한다. 그리고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30개 팀 중 승률이 가장 높았던 62승 팀, 샌안토니오마저 4-2로 잡아낸 휴스턴은 샤킬 오닐 & 페니 하더웨이의 올랜도를 결승에서 4승 무패로 스윕하고 2연패에 성공한다.
플레이오프 전경기에 나서서 평균 38.6분이나 뛰면서 20.5점 7.0리바운드 5.0어시스트 1.5스틸 야투 48.1%를 기록한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최고의 2옵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Phi Slama Jama 시절 들어올리지 못한 우승컵을 나란히 30대가 되어서 프로 무대에서 들어올린 올라주원과 드렉슬러의 스토리는 최고의 ‘재회’가 아닐까 싶다.
[클라이드 드렉슬러 41득점 vs 유타 재즈, 1995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
엇갈린 운명(1)
케빈 듀란트 – D.J.어거스틴
대학교 : 텍사스(2006-2007), 토너먼트 진출(4번 시드, 32강 탈락)
NBA : OKC(2015-2016)
비록 토너먼트 무대에서는 생각보다 빨리 짐을 싸기는 했지만 NCAA 역사상 가장 강력한 1학년 원투펀치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콤비가 바로 텍사스 대학교의 케빈 듀란트와 D.J.어거스틴의 06-07시즌이다. 평균 25.8점 11.1리바운드로 1학년으로 25-10 시즌을 보낸 듀란트와 이런 듀란트를 받치는 최고의 2옵션이자 리딩 가드로 평균 14.4점 6.7어시스트를 기록한 D.J.어거스틴은 평균 81.7점이나 넣는 화끈한 공격팀으로 전미에서 인기를 끌었던 신입생 콤비였다.
케빈 듀란트는 원앤던으로 1학년 시즌이 끝난 뒤 바로 NBA에 진출했지만 2학년 시즌까지 학교에 남은 D.J.어거스틴은 본인이 1옵션으로 평균 19.2점 5.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층 노련해진 기량으로 텍사스 대학교를 1년 더 이끌었고 어거스틴이 2학년이던 시즌에 텍사스는 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토너먼트 2번 시드, 8강 진출) 그리고 어거스틴은 6피트도 되지 않는 왜소한 체격임에도 무려 전체 2008년 9번 픽으로 NBA에 화려하게 입성한다.
프로에 와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면서 같이 뛰고 싶다는 의향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둘은 2015년, OKC에서 드디어 뭉치게 된다. D.J.어거스틴이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디트로이트에서 OKC로 트레이드된 것이다. 하지만 어거스틴이 트레이드된 그 무렵, 케빈 듀란트는 시즌아웃 판정을 받고 결국 14-15시즌에 둘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밟지는 못한다.
듀란트가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온 15-16시즌, 드디어 둘의 콤비를 코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감은 커진 채 시즌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개막 후 1달 반 가량이 지나고부터는 빌리 도노반 감독의 주요 로테이션에서 점점 제외되기 시작했고 결국 2016년 1월부터는 거의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이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덴버로 트레이드되며 어거스틴이 OKC 유니폼을 입은 기간은 정확히 만 1년 정도에 그친다. 대학교에서 같이 35경기를 뛴 듀란트와 어거스틴은 프로에서는 이보다도 적은 28경기만 같이 뛰면서 아주 짧은 동행으로 막을 내렸다.
[케빈 듀란트 NCAA 토너먼트 하이라이트]
* 14번 가드가 D.J.어거스틴이다.
엇갈린 운명(2)
빅터 올라디포 – 코디 젤러
대학교 : 인디애나(2011-2013), 토너먼트 16강 2회
NBA : 마이애미(2022-2023)
전미를 대표하는 농구 명문 중 하나지만 밥 나이트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2000년 이후부터는 명성 대비 성적이 좋지 못했던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2000년 이후 가장 화려한 시즌은 단연 12-13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시즌 랭킹부터 전미 1위로 시작해 마지막까지 4위로 마무리하면서 시즌 내내 Top을 유지했으며 1993년 이후 20년 만에 1번 시드를 획득한 시즌도 바로 이 시즌이다. 그리고 이 시즌에 팀을 이끈 원투펀치가 3학년 가드, 빅터 올라디포와 2학년 센터, 코디 젤러였다.
평균 78.6점으로 전미에서 5위를 기록할 정도로 화끈한 화력을 자랑했던 인디애나에서 이 둘이 합작한 점수는 30.1점으로 40% 가까이 됐으며 야투 성공률 역시 젤러가 56.4%, 올라디포는 무려 59.9%를 기록하며 최고의 효율성까지 겸비한 인 앤 아웃 듀오였다. 이 콤비가 무서웠던 더 큰 이유는 수비에 있는데 두 명이 경기당 평균 3.2개의 스틸과 2.1개의 블락을 기록할 정도로 수비에서도 큰 영향력을 과시했으며 적어도 대학무대에서는 최상위권의 피지컬을 갖고 있었던 둘이었기에 상대팀 입장에서는 공포에 가까웠다.
비록 토너먼트에서는 아쉽게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지만 이 시즌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이 둘은 각각 2013년 전체 2번(올라디포)과 4번(젤러)으로 NBA에 입성한다. NBA에서는 둘 모두 순번 대비 성공한 커리어라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MIP 수상과 올스타 2회에 선정된 올라디포, 그리고 팀의 핵심이 되지는 못했지만 알짜 역할로 샬럿 한 팀에서만 8시즌을 보내며 평균 두자리수 득점 시즌도 3차례나 만들어낸 젤러는 나름대로 NBA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는 잡았다고 볼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2022년 2월, 포틀랜드에서 방출당하고 1년 넘게 NBA 공식 경기에 출전을 하지 못하고 있던 코디 젤러는 2023년 2월 20일, 본인이 가장 빛나던 시기에 농구를 같이 했던 인디애나 대학교 1년 선배, 빅터 올라디포가 있는 마이애미 히트와 계약을 체결하며 인디애나 대학을 떠난지 꼬박 10년 만에 이 둘은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마이애미는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뚫고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으며 인디애나 대학 동문들은 이 두 명의 콤비를 NBA 플레이오프에서도 볼 수 있을 기대감에 들떴으나 올라디포가 밀워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차전에서 무릎 부상으로 쓰러지며 결국 이 둘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통틀어 단 14경기만을 같이 뛴 채 또다시 헤어지게 되었다.(코디 젤러는 뉴올리언스와 계약, 올라디포는 OKC로 트레이드)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주던 빅터 올라디포가 다치지 않았다면 정말로 우승까지도 노릴 수 있었던 지난 시즌의 마이애미였기에 이 둘의 짧은 동행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진다. 이 둘은 합작해서 2018년에 인디애나 대학교 라커룸 리모델링비를 기부하기도 했을 정도로 학교에 애정이 큰 선수들로 지금까지도 인디애나 동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콤비이기도 하다.
[빅터 올라디포 NCAA 토너먼트 하이라이트]
* 40번 센터가 코디 젤러이다.
Knickanova(Feat. 미칼 브릿지스)
제일런 브론슨 – 조쉬 하트 - 단테 디빈첸조
대학교 : 빌라노바, 우승 2회
NBA : 뉴욕 닉스(2022- )
지난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 베테랑 스윙맨인 조쉬 하트가 4각 트레이드의 한 축으로 포틀랜드에서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SNS에 축포를 터뜨리며 기뻐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닉스의 주전 포인트가드인 제일런 브론슨이었다. 하트의 2년 후배로 하트가 3학년, 브론슨이 1학년 때인 15-16시즌, 빌라노바 우승의 주축이었던 두 명이 닉스에서 다시 뭉친 것이다. 이제 엄연한 올스타 레벨로 올라선 후배, 제일런 브론슨과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느 팀에서나 자기 몫은 해주는 견실하면서 궂은 일에 능한 스윙맨, 조쉬 하트는 뭉치자마자 시너지를 발휘했고 닉스는 이 둘의 활약을 앞세워 무려 10년 만에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 무대까지 밟게 된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또 한 명의 빌라노바 출신 선수가 뉴욕 닉스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주인공은 브론슨의 동기이자 브론슨과 빌라노바에서 15-16시즌, 17-18시즌, 두 번의 우승을 합작해 낸 단테 디빈첸조였다. 디빈첸조는 브론슨과 달리 신입생 시즌이었던 15-16시즌에는 거의 실제 경기에는 뛰지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 있었으나 3학년이었던 17-18시즌에는 팀 내 3옵션이자 벤치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우승을 이끌었고 해당 시즌 NCAA 토너먼트 MOP(MVP 개념) 수상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음 시즌부터 닉스에는 빌라노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선수 중 무려 3명이 같이 뛰게 되었고 현지 매체는 닉스와 빌라노바를 합친 ‘Knickanova’라는 별칭까지 만들어서 빌라노바 3인방을 주목하고 있다. 빌라노바 대학교 캠퍼스에서 뉴욕 닉스 홈구장인 메디스 스퀘어 가든(MSG)까지는 불과 105마일(약 17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차로 1시간 30분 내외면 갈 수 있는 거리로 미국에서는 일일 생활권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이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인근에 거주하는 수많은 빌라노바 동문들이 닉스의 경기를 보러 MSG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뉴욕에 가면 Knickanova 3인방 외에 또 한 명의 빌라노바 동문 NBA 스타를 만날 수 있다.
그 선수는 바로 지난 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피닉스 선즈에서 브루클린 네츠로 팀을 옮긴 미칼 브릿지스로, 브릿지스 역시 브론슨, 디빈첸조와 대학교 입학, NBA 입단 동기이다. 당연히 브릿지스도 빌라노바 유니폼을 입고 두 번의 NCAA 우승을 경험했으며 특히 3학년 때 브릿지스와 브론슨의 원투펀치는 내 외곽을 가리지 않고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최고의 창이었다.
뉴욕 시티 안에서 모인 4명의 빌라노바 히어로들. 이들은 팀에 불화를 일으키지 않고 누구보다 성실하며 매 시즌 꾸준히 발전을 이뤄내는, 재능보다 노력에 의존해서 지금까지 성장을 한 선수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꿈많은 대학생에서 청년 갑부가 되어서 전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에서 재회한 4명의 빌라노바 동문은 요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빌라노바 2018년 NCAA 결승전 vs 미시간 하이라이트]
1번 – 제일런 브론슨 : 9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 야투 4/13
10번 – 단테 디빈첸조 : 31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 2블락 야투 10/15(3점 5개 성공)
25번 – 미칼 브릿지스 : 19점 4리바운드 야투 7/12(3점 3개 성공)
그리고..
14번 – 오마리 스펠맨(당시 유일한 1학년 주전 멤버) : 8점 11리바운드(4 공격리바운드)
등번호를 맞바꾼 우정
디애런 팍스 – 말릭 몽크
대학교 : 켄터키(2016-17), 토너먼트 8강(2번 시드)
NBA : 새크라멘토 킹스(2022- )
16-17시즌 켄터키는 존 칼리파리 감독의 14시즌 켄터키 중 가장 강력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화끈하고 재밌는 농구를 했다고는 볼 수 있는 팀이다. 칼리파리가 지휘한 14시즌의 켄터키 팀 중 유일하게 평균 80점을 넘긴 팀이 이 시즌의 켄터키이며 단순 80점을 넘긴 게 아니라 무려 84.9점이나 기록할 정도로 공격적인 농구를 했던 팀이다.
이 화끈한 공격력은 당시 신입생 백코트 콤비였던 디애런 팍스와 말릭 몽크의 폭발력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은 탑에서 리딩을 하는 정통 포인트가드 타입과 거리가 먼 선수들이었지만 둘 모두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을 폭발적인 스피드와 점프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상대를 쉴새없이 몰아붙였다. 말릭 몽크는 이 시즌 우승팀인 UNC를 상대로 무려 47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디애런 팍스는 NCAA 토너먼트 16강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UCLA를 상대로 39점을 기록하며 팀의 8강을 이끌었고 같은 포지션 라이벌로 꼽히던 론조 볼과의 개인전에서도 승리했다.
토너먼트 8강에서 우승팀인 UNC를 만나 2점차로 패하면서 아쉽게 파이널 포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팍스와 몽크는 각각 5번과 11번 픽으로 NBA에 입성한 둘은 6년차였던 지난 22-23시즌,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재회했다. 샬럿과 레이커스를 거친 말릭 몽크가 FA 계약(2년 19M)을 통해 22년 여름, 친구인 팍스와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21-22시즌 직전에 레이커스와 미니멈 계약을 맺고 사실상의 FA 재수를 선택한 몽크는 이 시즌, 커리어 하이인 13.8점을 기록하며 주가가 올랐고 팀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킹스를 선택하였으며 몽크는 입단 직후의 인터뷰에서 팀을 선택하는데 팍스의 존재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이 둘의 시너지는 엄청났다. 생애 첫 올스타까지 선정되며 완전한 Top 가드로 올라선 팍스와 벤치 롤을 받아들이며 볼륨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팀이 필요할 때마다 득점을 올려주던 몽크의 활약을 앞세워 킹스는 무려 17년 만에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했으며 팍스와 몽크 역시 NBA 입단 후 첫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16-17시즌의 켄터키처럼 지난 시즌의 새크라멘토 킹스도 공격 효율성(오펜시브 레이팅) 1위, 평균 득점 1위의 극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었으며 그 어떤 팀보다도 재밌는 농구를 펼쳤던 팀으로, 비록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를 1라운드에서 만나 아쉽게 3-4로 패하면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팍스와 몽크는 모두 제 몫을 해내며 다음 시즌을 더욱더 기대하게 했다.
팍스와 몽크는 등번호 관련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고교 시절까지 나란히 5번을 달았던 둘은 대학교에서 팍스가 몽크에게 5번을 양보하고 본인은 0번을 선택했고 새크라멘토 입단 후에 5번을 달 수 있게 되자 다시 5번을 달았다. 그리고 지난 시즌 새크라멘토에 합류한 몽크는 팍스의 대학교 때 등번호인 0번을 선택함으로써 이 둘은 대학교 때 서로 달았던 등번호를 맞바꿔서 프로에서 뛰고 있는 셈이 되었다.
[말릭 몽크 47득점 vs UNC 하이라이트]
|
첫댓글 항상 소중한 글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