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양곡상회
요즘 도토리와 산책을 다닌다
붙볕더위를 피해 아침나절과 해거름
어린 것이 헐떡이며 끌고 가는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나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경적에
소스라치게 놀랄 적에도
도토리와 나는 씩씩하게 거리를 걸으며
이제 막 시메트 바닥 틈에
뿌리 내린 청오동과 만나고
수족관 밑바닥에 갇힌 먹장어
눈빛을 마주 보다
건널목 옆 노상 좌판에 오단으로
공들여 쌓은 햇사과를 보며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서서
아, 인연은 모질다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고행을 되새김질하며
함께 물을 먹고
함께 팔천보를 걷는다
사방으로 문이 나 있는 집 감옥에서
텔레비전도 싫고
신문은 더더욱 사절인 채
아, 이래서는 안 되니.... 자리를 떨쳐 일어나
오늘은 아내가 부탁한
쌀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 갔다가
회원 할인을 받지 못한 처지를
인정하지 못한 채
쌓아놓은 쌀부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넘치는 것은 쌀이 아니라
오르막으로 치솟는 물가가 아니라
비회원으로 허깨비 취급하는
믿지 못할 이 나라 공화국에 있다며
끌려가는 것은 내가 아니다
집 없는 고양이나
곤줄박이나 텃밭의 깻잎도 인정할
내일도 오늘도 걸어갈
우리 동네 쌀가게 대풍양곡상회로
서슴없이 발길을 옮겼다
쌀을 팔러 생활이 뜨겁게 타들어가듯
카페 게시글
시
대풍양곡상회 / 이세기
나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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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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