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꿈을 실어 날려보지만... | 청소년들이 꾸는 꿈이 실현될 날은 언제일까. | ⓒ2002 진홍 | 3.15부정선거로부터 촉발된 4.19혁명은 중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들이 그간 다른 계층에 비해 정의심이 부족해서 또는 애국심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에게 ‘정치’라는 말은 금단의 영역으로 가르치며 강요하였고 기나긴 세월 ‘입시’라는 감옥에 청소년들을 가두어 버렸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장기수’라 할 만 하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지적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탐구심이 강한 청소년들은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의 남다른 교육열이 나은 결과이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제도와 정책은 어떤 철학도 없이 천방지축 미개국 수준이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국가의 백년대계라 할 교육마저 상품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교육계를 황폐화시키고 인문사회과학을 고사시키고 있다. 입시를 위한 학원만이 판을 치고 오로지 대학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은 미쳐있다.
지난 7월 17일 제헌절을 맞이하여 청소년들이 들고 일어섰다. 미군전차에 살해된 고 심미선 신효순 진상규명을 위해 500여 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의정부에 모였다. 짓밟힌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청소년생활문화마당 내일 등이 참여하여 구성한 '청소년대책위'가 청소년행동의 날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교복을 입고 나와 두 여중생의 죽음에 흐느껴 울며 분노의 목소리로 미군의 만행을 거리낌 없이 규탄하고 민족의 자주성과 통일을 외쳤다. 그들의 외침은 기성세대에 대한 질타로 들리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도 정치권이나 정부당국은 꿀 먹은 벙어리다.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생기발랄하였다. 의정부에서 미2사단까지 거리행진을 하는데 걸음이 빨라 기성세대가 따라가기엔 벅찼다. 행진 내내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박수와 구호를 외치고 현장에 도착해서는 자신들의 꿈을 접어 날렸다. 그러나 높은 담벽과 철조망에 그들의 꿈은 부딪혀 떨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꾸는 꿈이 실현될 날은 언제일까. 현장에서 만난 4명의 청소년들로부터 그들의 생각을 이메일로 받아보았다.
| | | ▲ 청소년들이 일어섰다. | 비가 오는 가운데 의정부역 앞에 운집한 청소년들은 진실이 밝혀지기를 외쳤다. | ⓒ2002 진홍 | - 참여하게 된 동기는?
"16일 학교에서 2학년 전교 부회장이 '청소년 행동의 날' 프린트를 들고 와서 학생회에서 권유하였고 회장과 부반장이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왔어요."(유민태, 충암고 2학년)
"청소년 단체 '희망'을 통해서 이 사건을 자세히 알게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이 사건이 거짓이 아닌 진실로 해결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이현정, 동일여고 1학년)
- 두 여중생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두 번의 브리핑이 있은 뒤 제대로 입장표명을 하고 있지 않은 미군을 보면서 참 어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그것도 여중생 두 명을 죽여놓고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일본에서는 초등학생이 주일미군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시의 사과는커녕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려고만 하니 너무도 분통하고 속상할 따름입니다."(김지훈, 고척고 2학년)
"월드컵이 한창 달아오르기 시작할 때에 일어난 일이라 어느 언론매체에서도 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았고 언론에서 어느 정도 보도가 된 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그 심각성을 아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방관해온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국민이 나서서 '이 문제는 심각하니까 고쳐라'라고 얘기를 해줘야만 하는 어린애도 아니고."(박지훈, 오류고 2학년)
- 주변 학우들이나 부모님 또는 선생님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전교조 선생님들의 지원이 든든하고, 부모님은 집회 같은 데 절대 참여하지 말라고 전부터 말씀 하셨는데 의정부에 미군 사건으로 간다고 하니 용돈까지 주셨습니다."(유민태)
"친구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니까 다들 미국 놈들 추방시켜버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쩜 그럴 수가 있냐고요. 주변 선생님들은 말씀을 안 해주셔서 잘 모르겠지만 저희 담임선생님께서는 17일 의정부에서 집회가 있는걸 알려주시면서 시간이 되면 가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현정)
- 미국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부정적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식이 깨어날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미군이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북 화해무드를 방해하는 것도 있고 나쁜 짓을 해도 별로 처벌을 받는 것 같지도 않고. 사실 요즘은 보호라는 말 아래 식민지가 숨겨져 있는 것 같네요."(유민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 김동성 선수가 오노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것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맥도널드 안 가기 미국제품의 불매' 운동으로만 끝낼 일은 아닙니다. 일부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을 지칭하여 '냄비근성'이라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년도 옳고 그른 것은 판단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반미만 외치는데 그치지 않고 미국이나 주한미군을 제대로 알고 행동한다면 어른보다 더 무서운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김지훈)
- 한미관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미국이 잘못해도 아무 말 못하는 한국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우리들도 할 말은 하고 미국에게 쩔쩔매는 한국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소파협정부터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걸로 인해 피해보는 쪽은 우리니까요. 도와주겠다는 명분으로 들어와 있지만 솔직히 자기네 나라로 가버렸으면 합니다. 우리나라가 힘을 키워서 대등한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이현정)
"미국은 지금 대한민국을 북한의 도발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 눌러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2의 을사조약 소파를 빌미로 이 같은 만행을 밥 먹듯 일삼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주둔하고 있지만 절대, 결코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 군인이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처참하게 죽였는데도 우리가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 코미디 같이만 느껴집니다. 한미관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완전평등을 요구할 순 없겠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자주성과 인권, 생명은 보장되도록 일본, 독일 등의 나라와 같이 소파가 개정되길 바랍니다."(박지훈)
| | | ▲ 아름다운 호응 | 길을 가던 시민들도 발걸음 멈추고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 ⓒ2002 진홍 | - 기성세대에 대한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은?
"7월 17일날 의정부로 가는 동안 선전전과 함께 모금을 하면서 갔습니다.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모금을 받았는데, 30대 후반에서 40대 정도의 어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중고등학생들과 20대 젊은 분들이 많이 도와 주셨어요. 비록 저희가 학생이란 신분으로 어리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우리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공부나 할 것이지 어린것들이 왜 이런 것을 하나?' 이렇게 생각하시지 마시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선이 효순이가 친동생, 친딸이라고 생각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김지훈)
"우리 청소년들도 힘을 합쳐서 이렇게 사건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더욱 더 많은 관심과 우리나라에 자부심을 갖고 사건해결에 앞장서 주었으면 합니다."(이현정)
- 청소년 문화에 대한 생각은?
"긍정적인 측면은 청소년들은 개방적이니깐 생각이 다양하고 창의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면에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게 많으니까 그게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그래서 어른들에게 버릇없이 보일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이현정)
"긍정적인 측면을 말하자면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그래서 기성세대들은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생각을 해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 게임 하나를 그냥 게임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으로 택하고 그와 관련된 사업까지 하는 것, 신종X게임이라 불리는 인라인 스케이팅 등. 하지만 이에 못지 않은 부정적인 면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청소년은 모방성이 강해서 그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무조건 따라하고 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유행만 따르는 것이 청소년 문화는 아니겠죠?"(김지훈)
-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개와 하고 싶은 말은?
"청소년 독립신문 바이러스라는 인터넷신문을 만들고 있고, 거기서 기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은 작고 약하지만 17일과 같이 뭉쳤을 때는 기성세대들이 뭉쳤을 때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힘을 합쳐 앞장서서 미선이과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진실을 밝혀 내었으면 좋겠습니다."(박지훈)
"이번 사건이 꼭 해결되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미선이와 효선이가 마음 편히 하늘에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관심을 가져야 해결된다고 봅니다. 예전에 일본에게 클린턴 대통령이 사과했던 것처럼요. 그리고 더 이상 주한미국범죄는 일어나면 안됩니다. 아니 몽땅 사라져야합니다. 주한미군이 우리 이 땅에 있는 한 눈물 없이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이현정)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7월 17일 미군과 직접 대화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미군은 하루빨리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유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겠고요. 책임자는 공정한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더 이상 주한미군이 존재하지 않도록 남북통일이 돼서 우리 스스로 우리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희망합니다."(김지훈)
"온라인에서 하는 서버다운 시키기 같은 거만 하지말고 서울이나 의정부 등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은 직접 집회에 오셨으면 합니다."(유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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