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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여여 법사 ,사회: 추담, 인례: 자성, 헌향: 자명행 , 헌다: 연오행, 명조, 발원문: 보현 1구 명등 법운, 현안보고 : 법회장, 음악: 마하보디 합창단, 지휘자, 반주자, 촬영 및 방송: 방송담당 대원3구 법회팀, 취재: 미디어팀 ,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보광당 좌석 배치: 청정팀, 법회 후 뒷정리: 송파 31, 32, 34구, 대원 4구, 법회보 제작 : 법회보팀, 법회보 배부: 송파 17구 법회, 데스크 안내: 법당 안내팀, 새법우 안내: 새법우 교육팀, 엘리베이터 안내 : 송파 27구, 떡 및 생수 보시 : 송파 2, 5, 8, 32구.
보현행자의 서원 : 수순분
현관 입구 주보배부, 사무국 백중기도 접수안내 , 법당 안내팀, 생수와 떡을 제공하는 각구 법회 명등님들
부처님께 헌향, 헌다를 올리시는 보살님들, 타종하시고 사회를 보시는 거사님들이 일요법회의 시작을 알립니다.
법회에 참석하신 불광형제들로 가득찬 보광당 일요법회 현장입니다.
금주의 법문 : 여여법사(문사수법회,聞思修法會)
금주의 법어 : 절실하면, 절로 산다
저에게 어느 날 초등학교 선생님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학생의 채점을 하다가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궁금하고 스스로 확신이 안 가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별거 아닙니다. 학생에게 문제를 내셨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다들 떠오르시겠지만 그러나 그 학생의 답은 ‘죽었다.’ 너무 사소할 수 있는 에피소드입니다만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뉴턴‘이란 사람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는 결국 돌아가신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어느 쪽 관점에서 보느냐가 자기 삶에 대해서 나는 무엇이냐고 규정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우리의 생명가치는 그때마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무한한 무량공덕을 그 때마다 깨우쳐서 나오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지난번에 부처님오신 날을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아까 들어올 때 보니 백중기도에 대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명가치에 대해서 떠올려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나’라는 사람이 초등학생처럼 문제를 풀 수도 있고. 운전을 할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고 그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상당히 진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에 비유가 나옵니다.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바삐 넓디넓은 들판을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탈옥한 사형수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다가 살겠다고 탈옥을 하였으니 사형수는 언제 잡혀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말 그대로 자기의 생명을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탈옥하여 방향을 알 수 없이 달려왔는데 아무튼 도망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데 쿵쿵쿵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성난 코끼리가 자기를 향해서 오고 있습니다. 그 코끼리 보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어디로 갈지 몰라 돌아보니 그 앞에 바로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물로 도망가려고 보니 그 옆에는 큰 나무가 있었고 그 뿌리가 우물을 향해서 뻗어있습니다. 이제 우물을 향해서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물에서 나무뿌리를 잡고 내려가면서 이제는 살았다고 생각하고 위를 쳐다보니 거기엔 흰쥐와 검은 쥐가 나무뿌리를 번갈아 가며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언젠가는 나무뿌리가 끊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익숙해져 사방을 돌아보니 독사 네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밑을 보니 세 마리의 공용이 뻘건 목구멍 속으로 집어 삼킬 듯이 하고 있습니다. 우물을 올라가자니 성난 코끼리에게 밟혀 죽겠고, 우물에서는 독사나 공용에게 먹이 감이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사람이 나무를 흔들다보니 전체가 흔들리며 뭔가가 이마에 뚝뚝 달콤한 것이 떨어지는 것을 혀로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경전에서는 다섯 방울이라 함) 여하튼 달콤함에 취해서 어떤 상황과 처지에 있는지를 잊어버리고 더 맛보려고 나무를 더 흔들어대니 벌통이 떨어지면서 벌이 흩어져서 이 사람을 마구 쏘아댑니다. 자, 손을 놓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데 이 꿀맛 같은 이 인생살이를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이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너’라고 하는 이치를, 아까 ‘뉴턴’을 묻던 선생님에게 ‘죽었다’고 답한 학생처럼 나의 실존은 무엇인지를 나는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팔만대장경을 다 본 것은 아닙니다만 나름대로 경전을 많이 읽으면서 제일 많이 발견한 문구가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너는 참으로 게으르구나’ 가만히 보면 제가 그렇게 아이큐가 나쁘지 않은데 어리석다고 하니 나는 아니겠지.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청소도 하는데 나는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는 자기 자신에게 부처님의 무량공덕 생명을 살아갈 그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으니까 나는 어리석은 자요, 나는 게으른 자이다. 결국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명가치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상황과 조건을 분석하고 그것에 의한 것을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경전에 비유로 나온 이 법문의 내용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비유로 드는 것은 쫒기는 사형수, 우리는 태어날 때 다 죽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몸뚱이를 중심으로 하는 현상적 입장과 생노병사라고 하는 싸이클 속에서 모든 사람은 다 무상법적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이지요
요즘 시한부 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떤 의사선생님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제일 곤란한 답변이 환자가 찾아와 ‘제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을 때입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제게서 이런 답을 듣고 갔습니다. ‘저도 이제 죽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 몸뚱이를 갖고 태어나서 이 대한민국 조국 속에서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이런 현상은 쫓기는 사형수와 같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넋 놓고 살면서도 사형수처럼 우리가 쫓겨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이러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감옥에서 탈출하듯 무작정 가출을 합니다. 헤맵니다. 이것을 통과의례를 거쳐 간다.라고 말합니다. 유치원을 갑니다. 학교를 갑니다. 또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인간 대소사에 처리하며 바쁘게 삽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없이 넓디넓은 광야에 내가 계속 바삐 왔는데 끝이 없고 뒤에서 코끼리가 계속 쫓아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상한 세월입니다. 무상법(無常法)이 여기서 벗어나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물이라는 우리의 안식처를 찾아갑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100세이건, 120세이건 그것이 끝나고 나면 나무뿌리가 뽑히고 사라집니다. 여기서 잘 살아 보겠다고 달려왔습니다. 흰쥐, 검은 쥐가 나무뿌리를 갉아먹듯 낮과 밤으로 세월이 가고, 네 마리의 독사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사대(四大)가 허물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안실에 가서 문상을 하면서도 저 분은 갔어도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물 밑의 공룡 세 마리는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화상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끝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헛된 이념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몸뚱이 나인가? 지위가 나인가? 엄마 아빠라고 하는 관계속의 그것이 나인가? 규정해 놓은 개념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오늘 제가 세 가지 절을 소개합니다. 우리한 번 돌아보자고요.
아까 마침 「보현행원품 수순분』을 독송하셨는데 그것은 ‘너를 내가 용납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가치에 따르겠습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나를 주장하고, 나의 입장, 내가 들어온 지식과 경험등 그 모든 것을 던져야하는 것입니다.
세가지 절 중에 첫째 절은 「절망」
안식처를 찾아서 끝없이 외면해가는 현상 속에 이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 혹시 이 자리에서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노병사 사이클에 의해서 정해져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일종의 분노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힐링’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힐링’입니다. 마약자들이 마약의 즐거움에 취했다가 깨어날 때는 그 강렬한 기쁨 때문에 너무도 고통은 참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알콜 중독자들의 상담을 하다보면 본인들도 얼마나 모순되어 있는지 압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 때문에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대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힐링 하면서 최소한 각자의 우물 속에서 이만하면 됐다고 안심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파 놓은 구멍 속에서 세상을 진단하고 규정하고 내가 그러니까 너도 그러냐며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시나 봅니다. 제가 임종장에 많이 참석을 해 보았습니다. 임종 법문을 해달라는 요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생의 마지막 안식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립니다. 제일 많이 마지막 말씀이 "제가 꿈 같이 살았습니다.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 몰라요. 생각이 안나요." 치열하게 열심히 사신 분들임에도 죽는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형제분들께 스트레스를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 마주하는 순간. 누구나 이 순간을 맞이한다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 절망입니다. 절망할 줄도 모르면서 ‘힐링’하다가 그 안에서 자기가 독사에게 물리는 것인지도 공룡의 아가리에 먹히는지 넋 놓고 모른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이란 것이 본래 있지 않은 것이다. 태어나서 잠시 빌려 썼던 것에 불과하다. 사용하고 있을 때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절망할 줄도 모른다는 첫 번째 절에서 요즘 사회문제로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느라고 삶의 결단을 못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만나는 불법만나서도 안타까운 분들이 참 많아요. 감히 누구를 비웃거나 야단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으로 태어나서 부처님 법, 이 귀한 법문을 만났는데도 쳐다 도 안 보는 사람이 많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치 문화재 탐방 다니듯이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고 풍경소리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절에 다닌 지 몇 년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절박함이 없습니다. 인생은 절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공자'님 때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일종의 조폭두목인 친구의 아우, '도척'이라는 인물을 공자가 찾아갔다가 '도척의 개'가 짖어대며 대들어서 그를 만나지도 못하고 대문에서 쫓겨납니다. 개는 공자가 나쁜 놈이라고 짖어대었을까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기 위해서, 예쁨 받기 위해서, 결국 개는 주인 말을 따르려고 짖어댄 것 입니다. 자기의 이익적 관계가 맺어져 있을 때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도척의 개'와 싸우는 본래자리, 즉, 공부를 하던, 사업을 하던지 내가 해 볼까? 그런 소리하지 말고 하세요!. 불교를 믿어볼까? 하지 말고 불교로 사는 것이지요.
두 번째 절인 『절실』
우리는 오늘의 일이 내일 있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실해야합니다.
기도는 내가 바라는 계산된 결과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다 비워내어 백지상태로 절실함에서 자기 암시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경전을 인용해 삼만(三慢)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나를 앞세우는 '증상만(增上慢)'
둘째는 반대로 나를 낮춰 말하는 겸손이 아니라 비하하는 '비하만(卑下慢')
셋째는 너나 나, 다 똑 같다라는 '등만(等慢')
‘나는 있다’라는 것을 전재로 하면 절대 안 죽는 다는 말이 붙어있어요. 그러나 인생에서는 무상법(無常法)이다. 이렇게 있지 않은 것을 있다고 주장할 때 항상 교훈적인 것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신이셨던 고불(古佛) 맹사성이야기입니다.
그분이 고불(古佛)을 자처하신 교훈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있습니다. 19세에 장원급제하신 대단하신 분이셨지요. 모든 것이 뛰어난 분이셨고 당시 파주 군수로 첫 부임하셨을 때, 지역 내에 큰스님이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군수로 민심을 알아보러 왔다고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내가 군수인데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릴 수가 있습니까? 물으니 ‘나쁜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니 맹사성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것을 법문이라고 하냐고 하니 “여든 먹은 노인도 실천에 옮기기가 힘든 것”고 다시 말씀하시니 맹사성은 노승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서 얼굴이 달아 있었다. 다기에 찻물을 따르던 스님께서는 찻잔이 넘쳐도 계속 따르고 계셔서 찻물이 넘친다고 맹사성이 말씀드리니 “다 채우고 와서 무슨 법문을 듣겠다고 왔느냐?“는 노스님 말씀에
너무 부끄러워서 벌떡 일어나 나가려다가 문지방에 콕 넘어지면서 머리를 숙이며 그때 하심(下心)을 배우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심귀명례 할 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라‘는 것을 그때 배우셨다는 것입니다.
그 후의 그분의 삶은 고불(古佛)로 사셨던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던 그 분은 나에게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하심 하는 마음으로 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절망하고 절실하게 정성스러우니 당연히 성취가 따라올 수 밖에 없으므로 세 번째 절로절로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절인 「절로절로」
성취에는 목적격이 아닙니다. 절실함으로 그대로 절로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현재의 무량공덕생명을 내어쓰는 것만이 유일한 것이며, 우리 모두는 두번의 출가를 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내 육신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과 왕생이라는 이 사바세계를 끊고 부처님 생명으로 복귀하는 출가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에 두 번의 생일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찰라생(刹那生), 찰라멸(刹那滅)이란 입장에서 보면 매일매일이 생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으로 태어나, 절망이란 부정적의미가 아니라 절박함입니다. 그렇게 절박함에서 절실하면 절로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드리며 법문을 마칩니다.
♬ 찬탄곡 : 사박걸음으로 가오리다 (나태주 작사, 조광재 작곡) 마하보디 합창단 ♬
1. 눈을 뜨고 바라보면 어디서나 부처님 모습 산도 들도 강물도 부처님 모습
아름다워라 찬란하여라 꽃 피고 새잎 나는 한 그루 나무와 풀잎 속에서도 부처님 고우신 미소
2. 귀를 열고 들어보면 어느 때나 부처님 음성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 음성
자비로워라 고마우셔라 지저귀는 새소리 물소리 가랑잎 하나 떨리는 소리에도 따뜻한 음성
[후렴]
바람 되어 가오리다 구름 되어 가오리다 때에 절은 옷을 벗고 육신을 벗고
눈부신 부처님 나라 눈부신 부처님 나라 사박사박 사박 걸음으로 내가 지금 가오리다.
발원문 낭독 : 보현 1구 명등 법운 거사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무더운 날씨에 토요일 오후, 청정팀 보현행자 여러분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특히 미뤄오던 작년에 설치했던 장마대비 제습기(물먹는 하마)도 치우고 새로이 잘 설치했습니다. 보광당 청소 및 자리 배치를 하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법회 후에 각 구 법회별로 두런두런 법등 모임이 나날이 활성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이어가고 있는 금강경 독송
불광사, 봉은사, 동명사, 화광사의 1인 시위 진행하고 계신 거사님, 보살님들.
특히 지난 23일(금)부터 27일(화)까지 '샤카디타(비구니 스님) 행사가 코엑스, 봉은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이 18차 국제대회이고 31개국에서 2,800여명이 신청 참가하였다고 합니다.
코엑스에서 강연을 마치고 봉은사로 들어오는 교차로 앞에서 합장으로 비구니 스님들을 맞이하기도 하셨답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잘 읽고 잘 보았습니다
절망 ㅡ절실 ㅡ절로절로 의
세 절로 미망과 불법 속의 삶의 궤적을 표현하신 여여법사님의 설법이 이채롭습니다
다채로운 화보의 편집도 흡사 법회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음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마음님 덕분에 불광법회에 참석한 느낌입니다 매번 말없이 수고하심에 깊은 감사올립니다
세월의 무상함에 쫓기는 줄도 모르고 몇 방울 꿀의 달콤함에 빠져있는 일부 승가의 모습이 안타깝고 절망스럽습니다. 차라리 도연스님처럼 속인이 되겠다면 부끄럽지는 않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