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 길을 따라 걸으며
몇 해 전부터 꼭 한번은 가야겠다 다짐했던 버킷리스트의‘강진투어원정대’를 구성해 마침내 다산 정약용 선생의 18년 유배지인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을 찾았다. 겨울 유배지 첫 주막집 사의재와 다산박물관을 지나 다산초당에서 차를 끓였다는 다조와 연지석가산, 보정산방에서 선생의 삶을 생각했다. 천일각에 올라 강진만을 바라보며 흑산도의 형님을 그리워하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렇게 혜정선사와 초의선사를 만난 백련사 등을 따라 걸었다.
다산 선생의 삶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인생에 진심이 전해지면 그건‘사랑’이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그만큼이 그의 인생이다. 하피첩을 통하여 드러난 부부의 사랑, 자녀에게 전하는 마음의 사랑, 형제를 향한 사랑, 친구와의 사랑 뿐만이 아니라 20살이나 어린 혜장선사, 초의선사와도 학문의 친구가 되었다. 사람을 사귀는데 선입견과 편견, 차별이라는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 넘었다. 사실 사람을 사귀는데 경계가 필요 없다. 사람을 대할 때 세치의 혀가 아닌 진심을 다하여 대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모질게 굴어 나중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내일 일을 모른다. 고위관직에서 하루 아침에 경상도 포항 장기에 유배되고, 다시 복귀하여 생가에서 지내다 다시 유배되어 전남 강진에서 18년 동안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유배지에서 살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런 삶을 누가 예측하고 인생의 내일 닥칠 일을 알 수 있을까. 그래서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은혜이며 축복이다.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현재 조금 잘나간다고 교만하거나 갑질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 같다.
다산 선생은 사약이 언제 배달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유배지 초당에서 진심으로 차를 즐겼다. 그래서‘다산(茶山)’이다. 차 한잔을 나누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진정 있는가. 바쁘다고 너무 시간에 쫓긴 듯 살지 말아야 한다. 다산은 벼슬길에 있던 때보다도 벼슬에서 멀어져 정말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각박한 시대 상황에서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현재를 살아갈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 한잔하며 글쓰기와 독서에 전념한 것이 아니었을까. 힘들수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자신의 장점을 추스려라.
다산 선생의 삶에서 보면 조정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의 배신이 제일 충격적이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존경하고 박수치기 보다는 비난하고 끄집어 내리려는 못된 습성이 있다. 그래서 늘 앞서가는 사람은 여러 음모에 늘 희생되곤 한다. 함께 국사를 논하던 조정의 동료 신하들을 너무 의지하다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유배당한다. 인생에서는 언제 누가 적이 되고 누가 아군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루 하루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다산의 삶의 결과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사라질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그 기록이 오늘까지 전해진다. 산다는 것이 뭔지 힘들 때마다 18년 유배 생활 귀양지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탐하며 관찰하고 기록한 작가의 혼과 깊은 성찰을 닮고 싶다.
삶의 깨달음은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리고 책으로,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운다. 삶의 흔적과 현장이 모여 수백권의 교과서가 되었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500권의 책을 읽기도 어려운데 다산은 500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다산 선생의 글 중에 이런 글이 있다.“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이 아닌 사람이 없으니, 그럼 자신을 꽃으로 보게”어렵고 힘들수록 자신에 집중하라. 자신의 장점을 추스려라.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는 생각의 폭을 키워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유연성 없음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 자기의 경험이 전부라는 착각에서 탈출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든 과거의 경험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답이 없다. 안되자고 하는 고집을 버리고 잘되자고 하는 쪽으로 고집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사람을 바꾸는 수 밖에 없다. 생각을 바꾸고 날마다 비워야 새로움을 채울 수 있다. 어찌보면 생각의 크기나 폭이 그 사람의 크기다. 지금은 융복합의 시대다. 다산처럼‘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시대마다 반박자만 앞서가라.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우면 새로운 삶이 보인다. 다산의 유연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 결과물으로 나타났다. 수원화성을 설계했고, 당대 최고의 기술인 거중기와 농노를 발명했다. 더 나아가 전문성이란 현장에서 투자하고 노력한 만큼 쌓이는 마일리지 같은 거라고 할까. 절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물방울 한 방울 한 방울이 결국 바위를 뚫는다.‘없음’에서‘있음’의 세계를,‘채움’에서는‘비움’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문화 예술의 역할이다.
용의 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용트림 한번 해야 하지 않을까. 다산 선생이 경험했던 어두운 밤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 영혼이 환해지는 경험이 있기를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