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얼마 전 일간지 인물동정란에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소개됐다. 개그맨 故 김형곤의 친
형인 김형준 씨. 삼성전자 임원을 지낸 그가 쉰셋의 나이에 연극판에 뛰어들었단다.
이유는간단했다.
자녀들에게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려주고, 특히 아버지가 그런 열정을 갖고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동생이 왜 이 길을 걸어왔는지도 이해하고 싶었다고 한다.
“무대에 서면서 태어나 처음 접하는 성취감을 느꼈다”는 김 씨는 “이제 어떤 도전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공연 첫 소감을 말했다.
이제 그는 또다른 삶을 향해 첫걸음을 막 뗐다고 하겠다.
고용불안 시대의 신조어들
한동안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직장생활 38세가 한계선), 사오정
(45세가 정년), 오륙도(50~60대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란 말이 유행하더니,
이젠 삼초땡(30대 초반이면 직장생활 땡), 부친남(연봉많고 아내에게 자상하
며 얼굴까지 잘생긴 부인 친구 남편이란 뜻으로, 이런 남자와 비교당하는 남
편의 비애를 대변)이란 말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고용불안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씁쓸해진다.
이렇듯 퇴직 시한이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이에 반해 사람들의 수명은 점
점 더 길어지고 있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남성이
75.1세, 여성은 82.3세다.
‘오륙도’ 소리 들어가면서 60세까지 일하고 퇴직한다 해도 죽기 전까지 20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일하기엔 너무늙었고 죽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일까.
발 빠른 보험사들은 젊었을 때에 준비하지 않으면 퇴직 후 극빈층으로 전
락할지 모른다며 위기의식을 불어넣는다. 언론에서도 안정적인 노년생활을
위해서는 몇 억이 있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이에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전제하는 것은 ‘퇴직 후 일하지 않는 삶’이다. 일이란 게 인
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애써 감추려고 하는지
도 모른다.
장수의 축복이 최악의 상황이라니?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마크 프리드먼의저서《앙코르》는 은퇴 이후의 삶을 걱정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는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앙코르 커리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의 후반생은 본
무대보다 길고 빛나진 않지만, 여전히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들에게 감동을 선
사해 줄 앙코르 무대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이러한 주장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프리드
먼은 그 사실을 이렇게 꼬집는다.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 만일 앞으로도 나이 든다는 것이 ‘논다’는 의미로 받
아들여진다면, 우리는 결국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곧 ‘인구통계학적 과부
하’가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부분적으로 옳다.
미국만 해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고령인구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만일 노동자들을 강제로 일터 밖으로 내몰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와 문화적 이상이
앞으로 수십 년간 계속 힘을 발휘한다면, 그때는 가장 어두운 전망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또 사람이 더 오래 사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고, 몹쓸 퇴물들의
증가로 여기는 사회 풍조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허리케인, 쓰나미, 위협적 폭풍, 자연적․비자연적 지각 대변동 등의 은유
적 표현들은 들으면 침수되고 폐허가 되어 무너진, 엉망이 된 사회가 떠오르
며,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 예전에 비해 더 건강하게
더욱 더 오래 산다는 데 있다고 일부에서는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들
- 수명과 건강의 눈부신 발전 - 이 어떻게 한 국가의 구성원인 우리에게는 최악의
것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프리드먼은 국가 차원에서 앙코르 커리어를 인정하고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부담은 젊은 층, 특히 우리 자식들
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왜 20대, 30대, 40대에게 그때가 일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나이라면
서 부담을 지우고, 또 바로 그 시기에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수입은 점점 더
늘려야만 한다고 압박하다가 그들이 50대를 넘어서기만 하면 일을 그만하라
고, 아니면 옆으로 좀 비켜나기라도 하라고 몰아대는가?
그럴 게 아니라, 공공정책들과 투자의 초점을 재조정해서 아직 아이가 어
린 가정과 힘없는 노인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계속 기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확대하는 게 어떻겠
는가?
왜 그 많은 사람들을 보조하거나 부양하는 터무니없는 짐을, 점점 감소하
는 청장년층에게 지우는가?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을 앙코르 세대에게 재분
배하라.
프리드만은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을 깨고 앙코르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는 선구자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 이 책 중간 중간에 그들의 삶을 상
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재클린 칸이다.
64세 간호사가 전하는 금언[金言]
그녀는 쉰이 넘은 나이에 간호사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30여
년 동안 디트로이트 교육위원회에서 무단결석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앙코르 커리어를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디트로이트에 있는 1급 외상환자 병동에 있고,
주로 심장 집중치료실에서 일한다. 12시간 교대근무를 하는데, 가장 힘든 일은 제시
간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이다.
일단 출근만 하면 에스프레소의 도움으로 몇 시간이든 그럭저럭 지낼 만하 다.
12시간 교대근무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쉽게 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야 내가 육체적인 건강과 빠른 두
뇌회전, 그 밖의 모든 리듬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내 삶을 살고 싶다.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며
세월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나이 64세인 지금 내 인생은 매순간 시작
되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
나는 가능한 한 뭔가 새로운 것, 색다른 것을 날마다 해보고 싶다.
그리고 내 정신을 활기차게 해주고, 지식 있고 총명한 사람,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모습을 지켜보고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에 오래도록 몸담고 싶다.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죽어나가는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산다는 것이 한층
더 소중해진다. 그리고 작고 사소한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런 일들은 짜증스럽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닌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수시로 죽음을 보고 어쩔 수없이 사후처리를 하고 나
면, 지금은 살아있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생명이 다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
게 된다. 영혼 같은 것이 실제로 떠나는 것 같고, 그저 텅 빈 무언가를 바라
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한 사람이 간다. 그 순간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기 위해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누군가를 미소 짓게 만들었는가?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더 너그러워
진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
은 일을 하고, 온당한 범위 내에서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다.
나는 일을 계속하는데 장애물이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65세를 넘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고,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떠날 생각이 없다. 내 계획은 절대로 은퇴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일
단 어떤 환경에 익숙해지고 나면 더 이상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자, 행동을 하든지 입 다물고 있든지 하는 거다. 가보자.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아. 좀 쉬어야겠어.”
이렇게 말하기는 너무 쉽다. 죽으면 얼마든지 쉴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말콤 X였던가. 나도 같은 생각이다.
삶의 우선순위 재조정
프리드먼은 앙코르 커리어 선구자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꼽는다.
“왜 일을 하는가?” 하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일에서 놓여날 자유가 아니라 일할 자유를 찾고 있다.”
그들은 커리어라는 것이 청년기에 상승하기 시작해 중년기에 절정에 이르
렀다가는 곧 하강곡선을 따라 은퇴를 향해 움직인다는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새로운 궤적을 그린다고 주장한다.
앙코르 커리어가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선택하는 ‘브리지 잡’과는
분명히 달라야한다는 점도 그는 강조한다.
앙코르 커리어는 그저 은퇴하고 나서 갖는 직업이 아니다. 앙코르 커리어
는 과도기도 아니다. 진짜 일이 끝나고 진짜 여가생활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
시 스쳐가는 국면도 아니며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책도 아니다. 앙
코르 커리어는 인생과 일에 있어서 온전히 하나의 단계이고, 거쳐 가는 과정
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지이고, 하나의 독립된 카테고리다.
아울러 그는 앙코르 커리어를 계획할 때 의미나 꿈을 좇아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는 한 개척자의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
“이 세상에 좀 더 의미 있는 일, 인간애와 관계된 일,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제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돈을 좇지 말고 꿈을
좇아라.’”
2006년에 50세를 맞이한 빌 게이츠는 앞으로 2년 안에 마이크로소프트사
CEO 자리를 그만 두고 지구촌의 건강과 교육, 그 밖의 긴급한 사회문제들을
위해 풀타임으로 일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자신이 나아갈 새로운 궤적을 미리 밝히면서 게이츠는 간단히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늘 하는 말이 은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것입니다.”
마크 프리드먼, 《앙코르》, 프런티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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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잠시 귀국하여 일보시는 회창선배 , 얼마전 국제 협력단에 들어~ 해외 봉사일 나가시려다가 바뀐 나이 제한에 걸린. .그러나 숲해설가 협회 이끄시는 봉엽 선배 , 다시 미술대학에 입학하신 앵두나무 님~ 본을 받습니다.. 아 멜버른 산불 안타깝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