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절이 있는데 산행 겸 가보자고 한다.
피곤해서 내키지는 않는데 비도 부실 부실 오고 산에 가나 하나~ 둘째 딸이 몸이 좋지 않아 한의원에 나와 같이 치료중이다. 등산을 좋아하니 자식이 좋다는데 아니 갈 수 있으랴!
길 좋은 월드컵 도로를 달려 등산로 입구에 차를 세우니 절이 있다.
물도 준비하지 않아서 병에 물이라도 받았으면 하고 보니 돌 거북이 입은 벌리고 있지만 물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 목적지인 절을 몰라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갔다.
그 사찰이 있는 산이 여자의 형상이라 여자들이 기를 받는다고 꼭 한번 가보라고 해서 왔다. 갈수록 산은 평지는 없고 심장은 마구 뛰고 목이 탄다.
보슬비에 젖어 온몸과 얼굴이 땀과 비로 뒤범벅이 되었다.
물이라도 마시면 살 것 같은데 등산복 아닌 바지는 밸트도 없이 내려오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마침 내려오는 사람이 물통을 들고 오길래 물 좀 달라고 했다.
물병을 다 준다. 물병 속에는 얼음도 들어 있다. 얼마나 고마운지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하고 산을 쳐다보니 바위산이다. 얼마를 더 가야하나.. 팻말을 보니 사고 시에는 119를 부르세요! 이렇게 쓰여있다.
의사가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쓰러지면 어떡하나..
절까진 가야 하는데 길옆에는 돌탑들이 쭉 쌓여있다.
이 험한 산길에 언제 저렇게 돌탑들을 쌓았을까?
나도 두 개쯤 올려놓고 합장을 했다. 얼음물을 연신 입에 넣으면서 바위 위에 앉았다 그리고 또 가고. 심장은 자꾸 벌렁거리고 이제는 더는 못 가겠다고 하니 앞서가던 아줌마가 저기 절이 있다면서 가리킨다. 용기가 났다. 절은 잡목으로 가리워 처마 끝 만 보인다. 가파른 돌계단으로 가다시피 올라가서 법당 옆 돌 축대에 앉았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과 땀이 온몸을 적신다.
인사불성이 되어있는데 딸은 젊어서인가 저쪽으로 가더니 날보고 오라고 한다.
저쪽에서 세속에 찌들어 도피해온 스님 같은 분이 내게로 와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대통령 부인이 아무나 되느냐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해 라 전생의 업을 닦아야 한다고 이 절에 와서 기도하면 좋다고 한다. 이산 가까이 사는 여자들은 좋겠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한다.
전생에 업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송충이 같은 벌레가 온몸에 붙어서 태어난다는 것인가.. 그러고 생각하니 스님 몸에도 내 몸에도 보이지 않은 벌레가 붙어있는 것 같아 징그럽다.
살아가면서 고통 속에서 벌레 같은 업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인가..
이산이 여자 형상이라면 스님은 남자인데 기에 눌려 어떻게 하느냐고 농담을 하니 기도를 한단다. 심장이 가라앉는 것 같다. 스님이 따라오란다. 딸이 있는 쪽으로 갔다.
돌부처 앞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마당이 넓다.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바위가 아늑해 보인다. 바위 밑에 문이 있어 자물쇠로 잠겨 놓았는지 열쇠로 열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들어가 보니 굴속에 물이 고여있고 돗자리도 깔려있고 물통에 촛불이 켜져 있다.
절을 하고 마당에 나와보니 가을 하늘빛 같은 수국이 활짝 피어있고 해가 없어서 인가 이끼가 곱게 땅에 깔려있다. 울창한 잡목 사이로 멀리 아파트가 산아래 보인다.
소나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시국이 어지러워지면 소나무가 멸종한다면서 걱정을 한다. 딸아이를 보고하는 말인가.. 나이던 사람은 경험이 많으니까 말을 귀담아 들어라고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지말고 높이뛰기도 처음부터 높이 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면 인간은 무한대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서 노력하라고 한다.
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딸을 보고 첫째라고 하길래 아니 둘째라고 하고 막내가 시집을 못 가서 걱정이라고 하니까 생년월일을 대보라고 한다. 사람은 둥글둥글 살아야 한다고 모가 나면 굴러가지 못하는 것 같이 너무 빈틈없고 인덕은 있어 좋다고 한다. 막내를 절에 한번 오라고 한다.
스님 내력을 들려준다. 돈을 많이 모아 집을 열 채 넘게 가지고 보니 이쯤에서 놀고 먹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흥청망청 쓰다보니 가난은 앞으로 오고 사랑은 뒤로 빠지더라고 한다.
청산가리를 사서 죽을 라고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이 깊은 산중에 와서 업을 닦고 있다면서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왜 고통이 없겠느냐고.. 새벽2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염불하고 도랑 치고 왜 하겠느냐고 업장을 소멸하기 위함이란다. 미국에 복권이 당첨되어 백만장자가 되었다가 흥청망청 살다보니 지금은 절도죄로 감옥에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후2시다. 점심 고양을 하란다.
미역국에 산 속에 자란 채소에 생 된장. 시장이 반찬이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오늘도 장맛비는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오락가락 한다.
속새를 등지고 업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는 스님 생각이 난다.
2005년 7월 초고
첫댓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가슴이 뭉클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