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초저온연구소 설립…논문 57편, 120편의 연구성과물 발표
2009년 3월 23일. 국내 최고령 CEO로 근속했던 대성산업가스(주) 손무룡 대표이사 부회장(73)이 지난 30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던 임직원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한 길을 나섰다.
연탄가스 중독을 막기 위한 무독연탄 개발을 독려한 故김수근 대성그룹 명예회장의 권유에 따라 1962년 7월 18일 (주)대성산업공사에 입사해 한 회사에만 반백년가까이 외길을 걸어온 지 47년만의 외출(?)이다.
孫부회장은 79년 2월 19일 대성옥시톤(주)의 설립과 함께 17년간 따라다닌 ‘연탄박사’라는 별칭에서 ‘초저온가스 기술개발 및 연구자’로서 새로운 길을 걸으며 지난 30년간 국내 산업용가스 역사에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1980년 반월 1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양산, 여천, 청주, 대전, 금산, 구미, 파주, 울산 등 전국에 38기의 ASU플랜트를 건설했으며 국내 유일의 연구소인 초저온연구소를 진두지휘하면서 진공배관, 각종 PSA, ASU 플랜트 국산화, 분석기, 초고순도 정제기 등 53개의 초저온장비와 설비를 개발해 수입대체 및 상용화의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또한 경영자이기 이전에 엔지니어로서 평생을 연구와 개발에 몰두하면서 각종 국책과제와 기관연구 등에 참가해 총 57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동시에 120편에 달하는 성과물을 내놓는 등 文武를 겸비한 首將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孫부회장의 평가는 ‘심랭법에 의한 공기로부터 질소를 분리시키는 제조장치 및 방법’, ‘고순도질소가스 제조방법’, ‘반도체 제조용 쳄버에 연결되는 가스캐비넷의 성능검사 방법’ 등 수십개의 발명특허와 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대성이 공업용가스 사업을 시작한 배경은 故김수근 명예회장의 탁월한 판단력과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孫부회장은 회고한다.
가스산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위해서는 산소, 질소, 아르곤 등 초저온가스가 필수적 요인임을 간파한 金명예회장은 당시 연탄사업을 주도했던 孫부회장(당시 연탄사업부 기술이사)과 함께 시장조사 및 사업계획에 착수한 결과, 오늘의 대성산업가스(주)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생소한 분야를 떠맡은 孫부회장은 합작사인 일본 제국산소(주)(佛 에어리퀴드의 자회사)에 의존해 공장건설에 착수했으나 이 과정에서 자금확보와 플랜트 설비 도입 등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 자칫 중도에 포기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으나 현재 대성의 김영대 회장의 기지와 기술노하우의 전수 등을 통해 3,000N㎥/h 생산규모의 반월공장이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됐다.
이후 기술적인 자립을 위해 국내 연구진과 기술팀이 각고의 노력을 벌인 결과, 두 번째 공장인 양산 ASU플랜트는 핵심부품을 제외하고는 국내 기술로 도면설계 및 감리, 감독하는 상황을 만드는 동시에 최초로 산소공장에 분산형 반자동제어 시스템(DCS)를 적용해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86년 양산공장 준공 후 89년 반월 제 2공장 준공 그리고 97년 12월 여천 3, 4 공장건설을 완료하게 됐다.
그 결과 꾸준한 성장세에 힘입어 97년 부채비율 354%, 차입금 1,300억원이었던 것이 99년에는 부채비율 114%, 차입금 820억원으로 창업 이래 최고의 영업실적을 달성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다시 PLANT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대전, 금산, 청주, 문막, 구미 등의 공장과 특수가스 공장 3개의 신증설을 완료해 현재 38개의 공장이 국가의 전산업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현재 대성산업가스는 30년전의 생산능력 대비 186배가 증가했으며 매출액은 297배, 손익은 35배가 성장하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로 뻗어나갈 기반을 다져놓고 있는 상황이다.
孫부회장은 ”이같은 결과는 모든 전․현직 임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된 무서운 힘의 결과였다고 자부합니다. 이와 함께 故 김수근 회장님의 숙원이었던 ASU플랜트 국산화를 위한 대성초저온연구소 설립과 초고순도 질소 COLD BOX 국산화 그리고 세계 최대 초고순도 대용량 정제기 자체개발 제작 및 소형 PLANT의 원거리 무인자동화 운전시스템 성공 등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성과물”이라며 당시의 가슴 벅찬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에 덧붙여 “현재 진행 중인 구미 제 2공장이 연내 준공되고 여천 제 5공장이 내년에 준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몹시 아쉽지만 그동안 함께 고생하며 훈련한 ENG팀의 후진들이 훌륭히 잘 해 낼 것”이라며 내심 자신의 손때가 묻은 공장의 건승과 함께 후진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거는 눈치다.
孫부회장은 퇴임을 앞둔 3월까지도 (사)한국산업특수가스협회의 초대회장으로 활약하며 산업용가스와 특수가스업계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며 관련업계의 대부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또한 관련업계의 성장발전을 위한 연구개발과 함께 가스안전공사의 일반고압가스분야 기술자문위원, 가스사고 조사위원 등 대외적인 활동에도 부단한 노력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공로로 과학기술자표창(국무총리), 경기도 및 가스안전공사 표창, 산업포장, 의창상(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는 가족들에게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현직에 계시는 분들은 저처럼 일에 파묻혀서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인생을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일과 가정에 충실하면서 가끔은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로운 삶을 충족시키기를 권유하고 싶다”며 일에 대한 소중함은 물론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일침하며 47년 정든 사무실을 나섰다.
현재 손무룡 前부회장은 일에만 몰두한 재직시절에 못해본 여행과 독서 그리고 회고록 집필 등으로 여가시간을 보내며 老年의 늦깎이 청춘을 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