뛸까 말까...고민은 두 달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거북이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마라톤 풀코스는 거북이 연습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였지만 오랜전부터 달고 있는
엉치뼈와 무릎안쪽 근육통으로 스피드 연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회전 문순열 수산나에게, 달리면 엉치가 아파 대회 출전이 어려워 포기하고 싶다는 얘기를
던졌더니 벌컥 화를 내면서 그 몸에 무슨 풀코스냐며 역정을 냈습니다.
동감이 됐습니다.
평소에도 풀코스 연습한다고 뛴 다음날에도 통증이 더 심했습니다. 천천히 뛰어도 증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마동 풀코스 단체전 선수들은 나만 믿고 열심히 연습하는데 나때문에 일을 망칠수없다는 생각에
천천히라도 달려보자고 대회 바로 일주일전에도 25킬로를 뛰었습니다.
역시 심해진 후유증으로 일주일을 한번도 달려보지 못한 채 그냥 보내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허벅지 안쪽 근육이 댕김이 심해지면서 어떤 때에는 계단을 오를 적에도 무릎이 시큰거렸습니다.
야단났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대회당일.
처음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이인철 빈첸시오, 임은형 데레사, 황춘경 데레사, 박유진 마르셀라,
조희정 루시아, 이민희 미카엘라, 한명신 율리엣다, 이주남 마테오, 장연희 아델라씨를 보면서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진통제를 두 알 준비했습니다.
한 알은 미사전에 먹었습니다. 문순열 수산나와 막내아들 김정남 베드로가 그런 나를 불안한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성령을 보내시어 저를 이끌어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현장미사가 끝나고 연습삼아 운동장을 도는데 몸이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김홍준 빠스카시오가 옆에서 저를 지켜줬습니다.
3킬로쯤 가니 빠스카시오가 "다리가 많이 무거운 것 같다"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옆에서 달리는 빠스카시오가 벌써 눈치를 챈 것입니다.
빠스카시오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호흡은 가쁘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말을 건네기도 대답하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오늘 저와 함께 달리는 우리 가마동 모든 회원들의 무사안주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믿고 오늘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달립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모두들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5킬로 쯤 가니 같이 뛰던 달리기제주인클럽 남녀회원들이 앞서갑니다.
뒤따라 가고싶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5킬로 지점에서 뒤에서 오던 제주mbc 송문희 국장과 함께 달렸습니다.
그러자 빠스카시오는 저를 송 국장한테 맡기고 앞서 나갔습니다.
어차피 함께 달리지 못할 것 같아 빠스카시오에게는 차라리 잘 됐다 싶었습니다.
송 국장은 무리하지 말라고 하면서 2~3킬로를 같이 뛰다가 저를 앞서 나갔습니다.
이제는 혼자였습니다.
그래 마라톤도 인생도 혼자인 것을.... 주변 경치나 구경하면서 천천히 달리자.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반환점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강영철 마르코, 김성흥 요셉, 김태선 요한, 김홍준 빠스카시오가 차례대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힘든 중에도 화이팅을 웨쳤습니다. 그래, 저런 회원들이 우리 가마동을 지탱하고 있구나하는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반환점을 돌면서 시계를 봤더니 2시간 7분이었습니다.
최근들어 가장 최악의 기록이었습니다. 적어도 2시간안에 반환점을 돌아야 4시간10~20분에 골인할 수 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회원들을 생각했습니다.
25킬로 지점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러 멈추자 오른쪽 종아리가 찍 당기면서 심하게 쥐가 왔습니다.
자세가 바뀌면서 그 틈을 쥐가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불청객 손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걸으면 안되는 고비가 왔습니다. 걷는 순간 쥐는 저를 잡아먹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공격할 것입니다.
죽어도 천천히 달려야 했습니다.
그때 장갑 속에 넣었던 진통제 한 알을 다시 꺼냈습니다.
빗물로 땀으로 캡슐 속에 들어있는 진통제는 흐물흐물거렸습니다. 물도 없기에 그냥 입안에 넣어 삼켰습니다.
캡슐이 벗겨진 진통제는 얼마나 쓴지 입 안 전체가 얼얼하면서 또다른 고통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겨우 급수대를 찾아 바바나와 물을 먹어 입안을 헹구었더니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27~28킬로 지점에 이르자 쥐는 왼쪽으로 옮기면서 저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묵주를 꺼냈습니다. 주님 저를 달리게 하소서.
우선 고통의 신비를 바쳤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겪으셨던 그 고통을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주셨습니다.
제가 이 고통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남은 구간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한 사람 두 사람 저를 앞서 달립니다.
진통제를 두 알을 먹었는데 통증은 계속됐습니다.
뒤에서 오던 키가 아주 작은 주자 한사람이 쥐때문에 힘들면 호흡을 크게 하면서 뛰어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번 숨을 들이키고 두번 내쉬는 것으로 했더니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속도를 내면 쥐는 다시 저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비는 폭우가 됐다가 이내 개곤 했습니다.
차라리 온몸을 다 적시도록 비가 내렸으면 했습니다.몸의 열기를 식히면 통증이 덜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100킬로 울트라를 뛸 적에도 이런 고통을 안 겪었는데 연습부족이 원인이었습니다.
회수차와 경찰차량이 곁에서 지나갈 때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차량에 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번도 회수차량에 타서 수거돼 본 적이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마라톤복 위에 입은 가마동 조끼마저 무거웠습니다. 비에 젖자 천근만근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냥 홀라당 벗고 비를 맞으며 뛰고 싶었습니다. 아무 고통없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어깨밑 쪽에서도 쥐가 일어났습니다.
팔을 흔들기가 어려웠습니다. 팔을 머리위로 올리면 풀렸다가 조금 있으면 뻣뻣해졌습니다.
37킬로.
이제 머나먼 여정도 5킬로... 5킬로만 더 가면 끝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 미카엘, 지금까지 잘 했다. 이제 다 왔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내곁에는 가마동의 모든 회원이 있잖니.
생각해보니 오늘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이었습니다.
"대천사 성 미카엘님, 저를 끝까지 인도하소서"
제주마라톤클럽 여자회원 한사람이 주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꿀물 한잔을 건네면서 다왔다고 위로해줬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마셨던 물 한잔이 이랬을까 생각했습니다.
한 발 한 발....
골인지점을 1킬로 쯤 남겼을 때 멀리서 이주남 마테오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를 마중나온 겁니다.
아. 그래. 다 왔구나.
근데 왜 1킬로가 이렇게 멀지? 다시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었습니다.
멀리서 우리 회원들이 보였습니다. 맨 골찌 주자인 못난 나를 위해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임은형 데레사 자매님은 너무 기뻐하는 모습에 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이미 집에 간 줄 알았던 막내아들 김정남 베드로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보니 코끝이 찡해왔습니다.
"그래, 이 아버지는 거북이처럼 달려서 주님을 뵙고 왔다. 인생은 빨리 간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란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허락해주셔야 가능한 일이야, 기다려줘서 고맙다. 아들아"
4시간44분.
참으로 긴 여정을 끝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끝내고 주님을 뵈러 갈 때에도 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늘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게 하소서.
가마동 회원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한시간 반 가량 잠을 자고 나도 피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을 보니 저녁 7시30분 연동성당 미사에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대회장 현장미사를 봤지만 성당에 가고 싶었습니다.
주님께 "저 오늘 무사히 완주했습니다. 주님도 기쁘시지요?"하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미카엘 축일인데 주님께 저를 이끌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근데 은총을 얻었습니다.
딸네 여자사돈이 저와 사위 구윤호 미카엘(사돈에게는 큰 아들이지요)을 위하여 미사를 봉헌한 겁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리 찐득이 요셉피나도 함께 미사에 왔는데 너무 반가웠습니다.
여자사돈은 감사하다고 말하는 저는 보면서 "구예진 요셉피나(저의 외손자, 사돈에게는 친손자)가 건너편에 앉아있는
외할아버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가족이 고승헌 신부님 주위에 둘러서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자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신부님에게도 오늘 낮에 마라톤대회가 있었다고 말씀드리니 비가 왔는데 뛰었냐고 묻더군요.
주님, 감사드립니다.
늘 당신을 감사와 찬미와 흠승을 받으소서.
첫댓글 4시간44분동안 참 많은것을 얻으셨네요.
뭐하러 풀을 신청했나, 왜 마라톤했는지를 뛰면서 자신에게 몇번 물어보셨나요?
저는 처음에 김녕코스가 나에게 맞는것 같아 풀을 신청했다 자전거사고 휴유증과 직원들이 뛴다하여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것 같아 하프로 변경했고
회장님이 단체전 인원이 모자라 풀을 신청한것 같아 울트라 뛴지 얼마 안 되었는데 하고
걱정과 나 때문에 단체전 뛰시는구나하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고통의 4:44분이 아닌 많은것을 얻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봅니다.
몸조리 잘하셨으면 합니다. !!!!!가마동 힘!!!!!
아닙니다. 이번 4시간44분은 주님이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다고요.
아이고 하느님 미카엘 멀려줍써.
몸이 내는 소리에는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진통제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일흔 여든살을 위해 몸을 아껴야 합니다.
회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나랏님들이 본 받아여 할 거울입니다.
그래도 감동이다.
'조금 속도를 내면 쥐는 다시 저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책임을 다 하시는 울 회장님
사모님께 꾸중 들면서도 묵묵희 실천하시는
회장니 존경합니다
그런데 몸은 자기가 관리 해야 합니다 잘 보존헙써양...
인생의 긴 체험을 하셨군요
좋은 은총을 받아 기쁨니다.
사실 우리의 삶의 모든 체험은
순간에 다 지나가버리고
다시 기다리는 반복의 체험이라고
호킨스 박사님의 말했거든요
정말 감동입니다. 10k도 힘들어서 중간에 조금만 걸었으면 했던 제 자신이 머리숙여 집니다. 일이있어 먼저오게되었는데 죄송한 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