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일(12월18일)
(사무하 7:1-11, 16, 시편 89:1-4, 19-27, 로마 16:25-27
루가 1:26-38
26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27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29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31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33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고 일러주었다.
34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35 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37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38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성모 마리아의 순종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굳센 소망으로 헌신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어느 성공회 청년의 삶과 죽음
(루가 1:26-38)
화천 개척, 함께 걷는 길벗회 파송 / 한용걸(프란시스) 신부
지금부터 21년 전 오늘 이었지요
춘천교회에서 사제의 삶을 살기위해 신학원을 준비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박인기 프란시스 방년 스물여섯. 맑은 얼굴에 수줍은 미소, 후배들의 장난에도 말없이 웃기만 하던 박인기 프란시스.
교회 청년회장으로 봉사하면서 미소의 사람, 긍정의 사람, 낙관의 사람, 새벽이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둑한 춘천초등학교 뒷길을 돌아 성당바닥에 무릎을 꿇던 기도의 사람.
겨울이 두 번 지날 동안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예수께 바쳐 이웃에게 예수의 사랑을 나누며 성공회 사제로 살기를 서원했던 아름다운 청년.
박인기 프란시스 형제는 ’80년 강원대학교 농공학과 입학하여 ‘흥사단 아카데미’에 가입하여 회장으로 활동하다 군에 입대합니다.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대학은 온통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말기였지요.
복학 후에 ’86년 11월 ‘전두환 장기집권음모저지 및 민족민주운동 탄압분쇄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지요.
그러던 중 ’86년 11월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춘천교도소에 수감 중 도서규제철회 등 부당한 처우 개선을 위해 단식하다 쓰러져 진단결과 신장에 종양이 생겨 ’87년 5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하게 됩니다.
출소 후에 건강이 회복되자 춘천기독교인권선교위원회에서 간사로 활동하면서 성공회춘천교회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병세가 호전되자 성공회 춘천교회 청년회장, 춘천기독청년협의회(EYC)회장으로 다시 활동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성공회 신학교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 감옥살이에서 얻는 병이 재발하여 ’90년 12월 17일’ 그가 그렇게 닮고 싶어 하던 삶의 모본인 예수님 곁으로 떠나갔습니다.
성탄을 한주일 남겨두고 박인기 프란시스 형제가 성공회 신자로 살았던 시간을 되새겨 봅니다.
그이가 떠난 지 스므해가 지나도록 잊히지 않고 오히려 오늘 다시 가슴에 촉촉이 젖어오는 것은 그가걸었던 길이 예수께서 걸어가셨던 그 길과 너무도 흡사한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릇과 쓰임은 달라도 누가 뭐래도 하느님의 사람, 이 땅에 살던 가난했던 이들을 사랑했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으며,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갔던 사람, 청년 박인기 프란시스의 가슴속에 피어올랐던 이웃사랑의 숨결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의 숨결과 잇닿아 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를 묵상하면서 아직도 스물여덟에 멈춰져 있을 그의 넋을 이렇게 위로합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 계신 박인기 프란시스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주간입니다.
세상의 교회는 이제 아기예수의 오심을 축하하기 위하여 온갖 장식으로 반짝거리겠지요.
어른 아이할것없이 각종 성탄선물을 준비하고 신나는 이벤트로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눈빛을 떠올립니다.
역설적이게도 구원자가 오심에 기쁨은 간데없고 마구간에 나셔서 해골산 언덕에서 비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던 나자렛 예수의 모진 삶에 대한 기억만 떠오릅니다.
초콜릿과 산더미 같은 케이크와 선물 꾸러미에 파묻혀 잊혀질 것 같은 우리와 함께 살았던 젊은 예수를 오늘 이 주보를 통해 소개합니다.
눈이 어두워 시대정신을 바로보지 못한 채 백화점과 이벤트 상인들과 기독교인들만의 크리스마스를 슬퍼합니다.
(대전교구 공동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