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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가난은 어디든지, 언제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계신 주님을 아무 곳에서 볼 수는 없다. 주님을 경외하는 곳이 아니라면 발견할 수 없다. 사진ㆍ허호 |
우연히 한국컴패션을 알게 되었고, 갑자기 파트너십 협약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란에 “북한 어린이를 품고 기도하는 교회”라고 기재하였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북한 아이들을 품고 기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갑자기, 마음에도 없이, 나의 컴패션 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어린이를 품고 기도하는 교회”라고 거짓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늘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내 마음의 죄송함을 침묵으로 조용히 주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 마음에 고요히 말씀하셨습니다. “‘북한 어린이를 품고 기도하는 교회’는 내가 너에게 준 기도 제목이란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의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2018년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필리핀 비전트립에 참여할 것을 한국컴패션으로부터 제안받았습니다. 나는 바로 그 비전트립이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또 요동 쳤습니다. “가지 말자, 절대 가지 말자!” 나는 어릴 때부터 가난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도 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한국컴패션은 이번은 목회자가 가는 트립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원치 않은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비전트립을 경험하면서 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러온 것이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보기 위해서 비전트립을 온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난은 어디든지 언제든지 존재합니다. 가난한 현장, 가난한 아이들을 단지 보기 위해서라면 돈 들여서 먼 나라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가난한 어린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 마음 안에, 가난한 아이들 마음 안에, 가난의 현장 속에 계신 주님을 아무 곳에서나 볼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곳이 아니면 볼 수 없습니다.
컴패션 비전트립 현장에서 경험하게 된 사실 몇 가지만 적겠습니다. 우선 컴패션 사역의 투명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동일하게 매뉴얼대로 정리한 문서들을 보고 그 투명성에 놀라웠고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처리하는 행정절차들과 비교하여 볼 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후원받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한 파일들, 영적ㆍ신체적ㆍ지적ㆍ사회정서적 성장을 평가하기 위해 마련된 세부사항을 보면서 주님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신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주님의 마음을 본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세밀한 마음 씀씀이라면 영수증 하나라도 세밀하게 첨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후원금의 80퍼센트 정도가 수혜국 어린아이에게 직접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반드시 교회에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는 후원금은 그냥 가난한 아이를 돕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후원금은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단지 가난한 아이에게 한 끼를 먹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내는 후원금은 주린 예수님에게 한 끼를 대접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5-40) 4박 5일 동안 나의 심장 속에 계속하여 살아 움직이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변하면, 부모가 변하고, 가족이 변하면, 지역사회가 변한다는 말은 컴패션에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신학교 다닐 때에도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처럼, 어린 영혼들을 세밀함과 기다림의 영성으로 대하는 것은 트립 내내 내 심장 속에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었다. |
둘째 날, 한 아이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케샤라는 8살 여자아이의 가정이었습니다, 역시 2층으로 된 판잣집이었고, 그 집 1미터도 채 안 되는 바로 앞에 족히 5미터는 되어 보리는 낭떠러지가 있었습니다. 펜스도 없고 가로등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사고 없이 그곳을 통행한다는 것이 기적 같았습니다. 판자로 만들어진 방 두 칸에는 케샤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4명의 아들, 케샤를 포함한 두 명의 딸, 그리고 이모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가족 모두 전에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케샤는 컴패션의 후원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 일행은 케샤와 함께 지프니를 타고 그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케샤의 얼굴은 어두웠습니다. 준비해 간 선물을 케샤에게 안겼습니다. 잠시 얼굴에 미소가 있더니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컴패션 자원봉사자가 케샤의 귀에 대고 왜 얼굴이 어두운지 조용히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목사님들이 자기 집을 방문하는데 집에 가서 자기에게 성경 암송을 시킬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는 케샤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암송이 생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로 성경암송 안 시키겠다고 말하니 해맑게 웃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케샤가 변하니 부모가 변하기 시작하였고, 가족 전체가 변하기 시작하였으며, 모두 가톨릭을 떠나 지금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고 케샤의 가족들 모두가 말했습니다.
아이가 변하면 부모가 변하고, 가족이 변하면 교회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면 지역사회가 변한다! 컴패션에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말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한 사람에게 임팩트를 주고, 그 사람은 사회에 임팩트를 준다!
케샤가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보여주겠다면서 잠시 자리를 떴습니다. 케샤의 손에 고이 들려있는 것은 바로 한국의 후원자님이 쓴 편지였습니다. 편지가 한 묶음인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후원이 지속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우리는 의례적으로 편지를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랑의 편지는 수혜국 아이들에게는 가장 귀한 보물이고 힘이었습니다.
케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부터 나는 이것을 4만 5000원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4만 5000원은 우리에게는 그리 큰돈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그 돈은 기적을 부르는 돈입니다.
마지막 날, 컴패션에서 후원을 받아 800여명의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는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었으며 마약거래와 성매매가 성행하던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컴패션의 후원으로 어린이들을 양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이 하나둘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통해 부모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공동묘지에 불이 나자 그 나라 정부는 그곳에 주민들이 집을 짓고 살게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이 변하고, 부모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지역사회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약과 매춘 소굴이 이제는 사람 살기 좋은 도시로 변화되었고 그 중심에 교회가 서 있습니다. 지금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을 그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그 얼굴들에는 그늘이 전혀 없습니다. 모두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다섯 살이 되면 구원받은 아이들이 15퍼센트에 이르고, 13세 정도 되면 구원을 고백하는 아이들이 50퍼센트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영적ㆍ신체적ㆍ지적ㆍ사회정서적 교육을 균형 있게 받습니다. 그들의 성장기록을 보면 놀랄 정도로 세밀하게 평가되어있습니다. 물질의 가난보다 더 비참한 가난은 영적 가난, 신체적 가난, 지적 가난, 사회정서적 가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아이들은 12세부터 해마다 “나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밀하게 작성합니다. 장래 희망을 적고 그것을 위해서 영적ㆍ신체적ㆍ지적ㆍ사회정서적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교사가 매번 평가하고 격려합니다. 매년 새롭게 작성하고 평가합니다. 이쯤 되면 늦어도 고등학생 정도 되면 장래 무엇이 될 것인지가 분명해집니다. 우리 교회는 학생기록부 하나 없는데 좀 부끄러웠습니다.
오후에는 한 중학생의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어머니는 4년 전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건설현장 일용직이고, 여동생이 하나 있는 극빈 가정이었습니다. 공동묘지 위에 나무로 지은 2층 집인데, 굽이굽이 미로를 지나 가파른 사닥다리를 올라가니 널빤지로 지은 조그만 부엌 하나, 조그만 방 하나가 나왔습니다. 지난 3일 동안 이보다 못한 집을 봐와서 이제는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을 나가고 남매가 우리를 반깁니다. 부엌을 보았더니, 부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오히려 시골 화장실 같은 곳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엌 벽에 “행복한 우리 집”home, sweet home이라고 영어로 씌어 있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학생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바로 대답했습니다. “예, 행복해요!”Yes. I am happy!
필리핀으로의 4박5일의 여행. 즐거운 여행이었고 행복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아프고, 가슴 한 켠은 멍했다. 그리고 주님께,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었다. |
기도할 제목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좋은 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 하나님의 평화가 계속 이어지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가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평화로 오신 주님, 이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이 학생이 나중에 교사가 되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한 부요함이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가난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판잣집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찬송가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시편을 묵상했습니다.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 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시84:10) 나는 이것을 ‘공동묘지 위에 핀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저를 이번 비전트립에 왜 보내셨어요? 저는 이제 예순이 넘은 나이인데요.” 주님께서 몇 가지를 나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덤 마을, 널빤지로 지은 집. 부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을 부엌이라고 소개하기에 기가 막혀 있는데, ‘행복한 우리 집’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중학교에 다니는 이 집 아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는 학생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예수님이었다. 나는 이것을 ‘공동묘지 위에 핀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
하나는 세밀함의 영성입니다. 나의 지난 사역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나는 코스타 강사를 1998년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해 오고 있습니다. 세계에 나가 있는 유학생들에게 영성과 전문성을 외쳤습니다. 참 바쁘게 전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주님께서 언제부터인가 대학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들 나아가 초등학생들을 위한 복음전도자로 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일깨우고, 청년들에게는 영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군사로 살아갈 것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장년들에게는
누가복음 2:52 을 중심으로 영성과 지성과 사회성을 겸비한 바른 영성, 균형 잡힌 영성을 가질 것을 부르짖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대포를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전쟁에는 대포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소총이 필요합니다. 전쟁의 초기에는 대포를 쏘고, 승전의 마지막에는 소총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포와 소총을 적절히 사용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밀하게 영혼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번 비전트립을 통해서 주님은 나에게 소총을 쓰는 법을 조금 보여주셨습니다. 어린 영혼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 방법론을 알려주셨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장성할 때까지 어떻게, 왜 그렇게 세밀히 돌보아야 하는지를 조금 알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것을 세밀함의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둘은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다릴 줄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빨리빨리’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당장 효과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역을 계획할 때 그 효과가 20년이 걸린다고 하면 그 사역에 헌신할 교회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들보로 쓰일 나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어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양육은 그 어린아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가 청년이 되고, 그 청년이 장년이 되고, 그 장년이 노년이 되는 것입니다. 한 살의 어린 영혼이 장년이 되어 주님의 군사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한 살의 영혼을 돌볼 때 그의 장성함을 바라보면서 돌보는 것입니다. 그가 장성할 때까지 돌봅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이것이 영성입니다.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마지막 날, 컴패션을 졸업한 청장년들이 찾아왔다. 얼마나 어렵고 역기능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는지 이야기했다. 이들은 컴패션을 만나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주님을 위해 사회에서 헌신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 모든 일은 후원자의 기나긴 기다림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
이번 비전트립 마지막 날 밤에 현지 청장년 넷이 우리 일행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컴패션의 후원을 받고 성장한 사람들로서 교수, 공무원, 엔지니어, 그리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들은 간증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지, 얼마나 역기능의 부모 밑에서 성장했는지, 바로 그때 컴패션의 후원을 받게 되었고,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성장한 이야기,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주님을 위해 사회에서 헌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이렇게 예수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 계시는 ○○○의 후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컴패션 사역은 기다림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문득 시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시37:9)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다니 성경암송을 시킬까봐 걱정하던 사랑스러운 아이, 케샤. 암송을 안 시킨다는 말에 환해진 아이는 가장 귀한 것을 가져 오겠다며 후원자가 보내준 편지를 가져왔다. 가로등도 울타리도 없는 집에 바로 앞은 5미터도 넘는 낭떠러지다. 후원자와 교회의 사랑이 이들에게 큰 돌봄이 되고 있었다. |
셋은 소小스타의 영성입니다. 이번 비전트립 중 방문한 교회에는 탁월하게 빛이 나는 큰 별은 없었습니다. 탁월한 슈퍼스타 목사님도 보이지 않았고, 지식이 출중한 스태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시설에 빵빵한 음향시설을 갖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무無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컴패션에 관련된 교사 및 스태프들이 모두가 사명감과 소명감에 충만해 있는 볼 수 있었습니다.
비전트립 일정을 마칠 무렵에는 컴패션 교사 등 관련자들과 우리는 모임을 함께 갖고,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모임에서 여교사가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밤에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집에 심방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목에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서 넘어졌습니다. 일어나서 보니 바로 사람의 시체였습니다. 그녀는 무서움과 당황함 속에서 잠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그 이유를 금방 확정하였습니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으로 하고 있다!” 그녀의 이 나눔에 함께 모인 모든 교사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사명감에 불타는 이런 평신도들이 진정한 스타요 진정한 사역자라고 생각합니다. 컴패션에는 슈퍼스타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명감에 불타는 작은 별들이 여기저기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소 스타mini-star의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미니-스타mini-star는 미니스터minister입니다.
이렇게 4박 5일의 여행이 끝이 났습니다.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은 아프고, 내 가슴 한켠은 멍합니다. 동행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친절하고 세밀하게 안내해 주신 대표님과 수고하신 한국컴패션 스태프들께도 감사하고, 함께 동행한 분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CTK 2018:11
주명수 밝은교회 담임목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