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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하면 안 된다
여섯 번째 상소[六疏]
········································ 병산 이관명 선생, 1725년 영조 1년 11월 12일.
삼가 아룁니다. 신이 절대로 무릅쓰기 어려운 형편이라 조금도 다시 조정에 나아갈 가망이 없기 때문에 전후로 호소하면서 진심을 모두 진달하였건만, 미천한 정성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성청(聖聽)은 아직도 아득합니다. 고뇌와 슬픔 속에 올린 말씀이 모두 형식적인 겸양이 되어 버렸고 옛 허물과 새로운 죄가 나날이 더욱 쌓여만 가니, 드넓은 천지에 신의 위축된 몸을 용납할 곳이 없습니다.
신의 정리가 궁하고 애처롭습니다. 궁하면 반드시 변하는 것이 천도(天道)의 떳떳함이요, 하늘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따른다고 옛사람이 말하였으니, 지금 신이 원하는 바를 자애로운 성상께서 허락해서 궁한 형세가 틀림없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는 아직도 처분을 아끼신 탓에 하늘의 일을 오래도록 폐하게 되어 나라의 체통이 점차 손상되었으니, 신은 진실로 성상의 뜻이 어디에 있으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쩌면 ‘화를 입은 집안에서 살아남은 목숨이니 출사(出仕)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겠지만 대대로 녹을 받은 신하는 국가와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만큼 몸은 자신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며,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개진하더라도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는 후일을 기대할 수 있으니, 의리상 굳이 사직해서는 안 된다.’라고 여겨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아, 신이 전하께 입은 망극한 은혜는 분골쇄신하더라도 만분의 일도 보답하기에 부족하니, 만일 신이 조정에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어찌 감히 사사로운 의리를 내세워 가며 스스로 한계를 짓고 고굉(股肱)의 힘을 다할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신의 구구한 진심은 단지 역적을 토벌하는 대의(大義)에 있는데 세월만 흐르고 왕법은 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만약 성지(聖旨)를 받들어 애써 조정에 달려가, 수치심을 품고 아픔을 참아 가며 이 흉적들과 한 하늘을 이고서 천토(天討)가 혹시라도 시행되기를 바랐다가 세월만 흐르고 장래의 답답한 상황이 오늘과 같아진다면 망설이며 구차한 즈음에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니, 비록 죽는다 한들 어떻게 속죄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이전 시대를 일일이 살펴보건대 반역의 무리가 토벌되지 않고 이륜(彛倫 떳떳함과 인륜)이 밝지 않은데도 위태롭지 않은 나라는 없었습니다. 국세(國勢)가 이와 같은데도 기존에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선, 영화를 탐내고 녹봉을 도둑질하느라 몸을 받들어 물러날 줄 모른다면 그 부끄러운 마음은 이미 말할 것도 없거니와 늙고 쓸모없는 몸은 죽을 날이 머지않았으니, 지하에 묻히는 날에 어떻게 성고(聖考 숙종)를 뵐 수 있겠습니까.
아, 하늘은 우리나라가 태평하게 다스려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까. 전하에게 총명하고 예지(叡智)한 자질을 주셨으면서도 전하로 하여금 우레가 치고 매서운 바람이 불듯이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공을 빨리 이루실 수 없도록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늘의 인애(仁愛)하는 마음이 전하를 간절히 돌아봄이 지극하기에, 지금 자연재해를 자주 발생시켜서 전하의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니, 속히 두려워하면서 생각을 바꿔 단행하셔야 할 것이요, 다시 머뭇거리면서 시세가 더욱 위태로움에 직면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옛날 한(漢)나라의 원제(元帝)는 관대하고 공손하며 검소하여 다시 유사(儒士)를 등용하였지만 우유부단한 관계로 효선(孝宣 한나라 선제(宣帝))이 이룩한 왕업이 쇠퇴해져서 끝내 망국의 기틀을 제공하는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군주에게 충성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신하라면 이를 근심하지 않은 이가 없었는데, 유경생(劉更生)은 상소하기를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참소하여 해치는 말을 불러오고, 우유부단한 마음을 지닌 자는 여러 부정한 문을 열어 놓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흉적들의 죄상을 이미 모두 아는데 무슨 소상히 생각하면서 시일을 끌 일이 있길래 오히려 관대하게 대하면서 솥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 신세인 자들을 오래도록 내버려두신단 말입니까.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일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은 하늘입니다. 비록 전하께서 굳건히 덕을 잡고 계시지만 자애로운 마음을 항상 가슴속에 강하게 간직하고 계시고 살리기 좋아하고 탕평(蕩平)을 하려는 논리가 또 뒤이어 외부에서 서서히 접근한다면 참소하여 해치는 말을 입에 올리고 부정한 계책을 실현시키려는 자들이 없으리라고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원악(元惡)은 끝내 형벌을 받아 죽는 날이 없을 것이고 국사는 다시 말할 만한 것이 없을 테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섬뜩해집니다.
전하께서는 매번 형식적으로 꾸미는 것을 오늘의 폐단이라고 하시지만, 전하께서 몸소 이것을 행하고 계시니 신은 삼가 애석히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신이 분명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또한 신이 결코 무릅쓰고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계시면서도 은전을 잘못 베푸시고 두터운 예우를 해 주시면서 마치 나라에 관계가 있는 진정한 재상인 양 대우하시니, 어찌 형식적인 면이 심한 것이 아니겠으며, 장차 무엇으로 사방의 의혹을 푸시겠습니까.
현재 기근과 흉년이 매우 참혹하여 백성이 죽어 가는 상황이니, 독에서 새는 물을 받아 바닥이 타들어가는 솥에 붓듯이 구휼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조정에 일이 많고 북객(北客)도 곧 도착할 예정이나 낭묘(廊廟)의 관원은 갖추어지지 않은 채 좌의정 혼자서 정무를 보고 있습니다. 밝으신 성상께서 어찌 현명한 인재를 얻어 함께 다스려서 시국의 어려움을 구제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용렬하고 어리석은 일개 천한 신을 불러들이는 일에 번거롭게 힘을 쓰시는 것입니까.
또 신에게는 깊이 근심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고(聖考 숙종)의 실록이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으니, 이는 바로 오늘날 상하에서 밤낮으로 두려워하며 근심해야 할 사안입니다. 신이 도성을 나온 지 또한 40여 일이 지났으니, 그간 편찬사업이 더러 전날보다 더 나은 점이 있습니까? 청중(廳中 실록청)의 모든 일에 대해 신은 막연히 들은 바가 없습니다. 신이 헛되이 중책만 맡고 있어 잠시도 편치 않기가 바늘방석에 앉고 바늘을 삼킨 것으로도 비유하기에 부족하지만, 나라의 체모상 직무를 오랫동안 비워 두어 방치하는 것은 결코 안 될 일입니다.
또 이러한 때에 창관(倉官)이 왕명으로 인해 누차 녹봉을 싣고 왔는데 전후로 네댓 차례나 명을 어기고 말았으니, 너무나 두렵고 불안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분수와 염치는 때때로 경중이 있지만 지방에 있으면서 녹을 받는 이치는 결코 없으니, 차라리 명을 어기고 태만히 하는 죄를 저지를지언정 끝내 염치없이 받기는 곤란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천지 부모와 같은 성상께서는 신의 꽉 막힌 생각을 끝내 깨닫게 할 수 없음을 살피시고 신의 간절한 정성 가운데 불쌍히 여길 만한 점이 있음을 헤아리시어, 먼저 녹봉을 실어 보내는 명을 거두시고, 신의 본직과 실록 총재의 직임을 속히 체차함으로써 미천한 분수를 편안케 하고 국사를 다행스럽게 하십시오. 이어서 해당 관청에 명하여 신이 은혜를 저버리고 명을 업신여긴 죄를 따져서 신료들을 경계시키고 조금이나마 무너진 기강을 엄숙하게 하신다면 그지없이 다행이겠습니다.
병산집(屛山集) 제5권 / 소차(疏箚) 22수
[주-1] 여섯 번째 상소〔六疏〕 : 《승정원일기》 영조 1년 11월 12일 기사에 보인다.
[주-2] 하늘의 …… 되어 : 이관명 자신이 관직에 걸맞은 인재가 아니라서 그 직책을 폐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서경》〈고요모(皐陶謨)〉에 “모든 관직을 폐하지 마소서. 하늘의 일을 사람이 대신하는 것입니다.〔無曠庶官, 天工, 人其代之.〕”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주(註)에 “천공(天工)은 하늘의 일이다. 인군은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니, 여러 관원들이 다스리는 바가 하늘의 일 아님이 없다. 만일 한 직책이라도 혹 폐해진다면 하늘의 일이 폐해지는 것이다.” 하였다.
[주-3] 유경생(劉更生)은 …… 하였습니다 : 유경생은 한나라의 충신인 유향(劉向)의 본명이다. 이 글은 간신이 충신을 모함하는 것을 걱정해서 올린 것이다. 《漢書 卷36 楚元王》
[주-4] 독에서 …… 붓듯이 : 깨져서 새는 항아리의 얼마 안 되는 물을 가지고 바닥이 타들어가는 가마솥을 식힌다는 ‘봉루옹옥초부(奉漏瓮沃焦釜)’의 준말로,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잠시도 늦출 수 없다는 말이다. 《史記 卷46 田敬仲完世家》
[주-5] 북객(北客)도 …… 예정 : 북객은 청나라 사신을 가리킨다. 1725년(영조1) 11월 15일에 청나라 사신이 모화관(慕華館)을 거쳐 궁궐로 들어왔는데, 이때 왕세자(王世子)가 책봉(冊封)을 받았다. 《국역 영조실록 1년 11월 15일》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채현경 오항녕 (공역) | 2015
在江外辭職疏[六疏]
伏以臣有萬分難冒之勢。無一毫復進之望。前後控籲。悉陳肝膈。而微誠未能仰格。天聽尙今邈然。苦 o辭悲語。皆歸飾讓。舊愆新罪。日益委積。高天厚地。鞠蹙靡容。臣之情理。窮且戚矣。窮則必變。天道之常。而天從人欲。古人所云。則今臣情願。庶可蒙聖慈之允從。窮迫之勢。必有可變之期。而聖上尙靳處分。天工久曠。國體漸損。臣實未曉聖意之攸在也。豈以爲禍家餘生。不樂仕進。而世祿之臣。休戚與同。則身不可自有。磨以歲月。從容開陳。而討復之義。可待後日。則義不可固讓而然耶。噫。臣受殿下罔極之恩。糜身粉骨。不足以報效萬一。倘使臣在朝而有少補益。則豈敢以私義自畫。而不思竭股肱之力哉。若 o臣區區血忱。只在於討復大義。而荏苒時月。王法莫伸。今若奉承聖旨。黽勉趍朝。抱羞忍痛。與此賊共戴一天。以冀天討之或行。而日往月去。將來之泄泄猶夫今日。則依違苟且之際。悔之莫追。雖復滅身。何以贖其罪哉。且歷觀前代。亂逆不討。彝倫不明。而國不危者未之有也。國勢如此。而旣不能扶持。貪榮竊祿。不知奉身而去。則其心愧恥。已不可言。而白首殘骸。死亡無日。九原他日。何以歸拜於聖考乎。嗚呼。皇天不欲平治我國家耶。授殿下以聰明睿智之資。而使殿下不能雷厲風飛。以遄廓淸之功 o何哉。天心仁愛。所以眷眷於殿下至矣。今者數出灾異。以警動殿下之心。亟宜惕然改圖。斷而行之。不可復執猶豫。以致時勢之益阽顚隮也。昔漢之元帝寬弘恭儉。復用儒士。而優游不斷。孝宣之業衰焉。終爲基亡之主。其時忠愛之臣。莫不憂之。劉更生之疏曰執狐疑之心者。來讒賊之口。持不斷之意者。開羣枉之門。今也凶賊罪狀。旣盡知之。有何消詳遲待之事。而猶且曲加寬貸。久假鼎中之魚戱。難平者事。而不可諶者天也。雖以殿下執德之固。而慈愛之心。常爲主於內。好生蕩平之說。又從以浸潤於外。則 o安知無讒賊之騰舌。羣枉之售計乎。然則元惡終無伏法之日。而國事更無可言者。思之至此。不覺心寒。殿下每以文飾爲今日之弊。而殿下未免躬自行之。臣竊惜之。殿下旣知臣斷無所用。亦知臣决不可冒進。而施以謬恩。縻以優禮。待之若眞宰相有關於國家者然。豈非文具之甚。而將何以解四方之惑哉。目今饑荒孔慘。民命近止。奉漏沃焦。賙活莫急。朝家多事。北客又迫。廊廟不備。左揆獨賢。以殿下之明聖。豈不思得賢共理。以濟時艱。而徒用屑屑焉以招徠庸愚之一介賤臣爲務耶。且臣有大悶憂者。o聖考實錄尙今遷就。此正今日上下之所當夙宵惕念處也。自臣出城以來。亦過四十餘日矣。其間編摩之役。或有勝於前日否也。而廳中凡事。臣漠然無聞。虗帶重任。食息靡寧。坐針呑鉤。未足諭比。而其在國體。决不當一任其癏曠也。又於此際。倉官以上命屢輸祿俸。前後違命至于四五。惶隕之極。逃遁不得。分義廉隅。有時輕重。在外受祿。萬無是理。則寧犯違慢之罪。而終難冒沒承當。伏乞天地父母。察臣迷滯之見。終不可回悟。諒臣懇惻之愊。有可以矜憐。先收祿俸輸送之命。將臣本職及實錄摠裁 o之任。亟賜遞改。以安微分。以幸國事。仍命攸司。勘臣辜恩慢命之罪。俾警具僚。少肅頹綱。不勝大願。
병산집(屛山集) 제5권 / 소차(疏箚) 22수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6
『반역의 무리가 토벌되지 않고 이륜(彛倫 떳떳함과 인륜)이 밝지 않은데도 위태롭지 않은 나라는 없었습니다. 옛날 한(漢)나라의 원제(元帝)는 관대하고 공손하며 검소하여 다시 유사(儒士)를 등용하였지만 우유부단한 관계로 효선(孝宣 한나라 선제(宣帝))이 이룩한 왕업이 쇠퇴해져서 끝내 망국의 기틀을 제공하는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군주에게 충성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신하라면 이를 근심하지 않은 이가 없었는데, 유경생(劉更生)은 상소하기를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참소하여 해치는 말을 불러오고, 우유부단한 마음을 지닌 자는 여러 부정한 문을 열어 놓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흉적들의 죄상을 이미 모두 아는데 무슨 소상히 생각하면서 시일을 끌 일이 있길래 오히려 관대하게 대하면서 솥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 신세인 자들을 오래도록 내버려두신단 말입니까.』<병산 이관명 선생, 1725년 영조 1년 11월 12일. 여섯 번째 상소(六疏)>
이는 신임사화를 일으킨 원흉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질질 끌면서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기강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결국은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는 병산 이관명 선생의 1725년 영조 1년 11월 12일 상소문(六疏) 중에 일부이다.
이 상소의 내용은 오늘날 부정선거의 원흉들을 깨끗이 처단하지 못하면 앞으로 겪게 될 대한민국의 어려움과 위태로움을 말해주고 있다.
궁하면 반드시 변하는 것이 천도(天道)의 떳떳함이요, 하늘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따른다고 옛사람이 말했다.
반역의 무리가 토벌되지 않고 이륜(彛倫 떳떳함과 인륜)이 밝지 않은데도 위태롭지 않은 나라는 없었습니다. 옛날 한(漢)나라의 원제(元帝)는 관대하고 공손하며 검소하여 다시 유사(儒士)를 등용하였지만 우유부단한 관계로 효선(孝宣 한나라 선제(宣帝))이 이룩한 왕업이 쇠퇴해져서 끝내 망국의 기틀을 제공하는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군주에게 충성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신하라면 이를 근심하지 않은 이가 없었는데, 유경생(劉更生)은 상소하기를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참소하여 해치는 말을 불러오고, 우유부단한 마음을 지닌 자는 여러 부정한 문을 열어 놓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흉적들의 죄상을 이미 모두 아는데 무슨 소상히 생각하면서 시일을 끌 일이 있길래 오히려 관대하게 대하면서 솥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 신세인 자들을 오래도록 내버려두신단 말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