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비 / 김정호
곡 해설]
오늘 소개할 곡은 김정호의 ‘하얀 나비’입니다. 김정호는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로 그의 대표 곡으로는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 등이 있습니다.
김정호는 솔로로 데뷔하기 전 사월과 오월이란 그룹의 3기 멤버로도 활약을 하였으며, Onions의 노래 중 많은 곡을 작사 작곡하는 등 Singer Song Writer로서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였던 젊은 Artist였습니다. 1974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부른 ‘이름 모를 소녀’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안타깝게도 1985년 폐결핵으로 33세의 나이에 요절하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포크가수 김정호(본명 조용호)는 죽음과 서서히 친해지면서 짧지만 뜨거웠던 청춘의 한때를 불사른 가수였습니다. 1952년생으로 서울 성동고를 졸업한 그의 성장기가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다만 판소리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 성이 조 가였다는 것 밖에는...
70년대 초반 통기타 하나 들고 명동에 그가 왔을 때 사람들은 신동에 가까운 작곡가가 나타났다고 했답니다. 어머니 덕분에 일찌감치 익힌 판소리를 바탕으로 5음계만을 사용하여 심금을 울리고 폐부를 찌르는 처연한 노래를 만들었으니 그럴 수 밖에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가수로 만든 건 당시 애플프로덕션 김웅일 대표였다고 합니다. 74년 데뷔앨범 ‘이름 모를 소녀’가 세상에 나왔을 때 가요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고나 할까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르고 또 불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레코드사는 밤을 새워 앨범을 찍어내도 모자랄 정도였다고 하니 대략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답니다.
단조에서 오는 처연함과 애수를 느끼게 하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파고들었습니다. 당시 김정호의 매니저였던 이상기씨(현 상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이름 모를 소녀’의 주인공은 훗날 결혼한 부인 이영희씨였다고 술회하였습니다. 결국 히트곡을 있게 한 몰래 사랑의 주인공은 바로 그의 부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년 뒤 1975년에 김정호는 잇달아 ‘하얀 나비’를 내놓으면서 한이 느껴지는 포크가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요? 인기가 오를수록 그는 서서히 죽음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대마초와 폐결핵. 그 두 단어가 결정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합니다.
곡을 쓸 때면 우이동 그린파크 호텔이나 변두리 여관에 장기 투숙을 하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곡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매일 피워대던 줄 담배로 그의 폐는 빠르게 썩어 들어 갔었다고 훗날 이상기씨는 회고한 바 있습니다. 75년 겨울은 당대의 다른 가수들도 그랬지만 김정호에게도 불행한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인기 듀오 그룹의 한 멤버가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와 대마초를 피우다 발각되어 대마초 가수들에게 철퇴가 내려졌으니 말입니다. 당시 김정호를 담당했던 조모 검사는 딸이 열렬한 팬이라면서 훈방조치 한다고 하면서 풀어줬으나 다시 내려진 재수사 지시에 그는 모진 고문에 시달린 뒤 가수활동이 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게 되었답니다.
그의 노랫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애틋함을 많이 가지고 있던 가수 김정호는 당시로서는 꽤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집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살림이 어려운 선배가수 집에 쌀을 보낸 미담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고, 배고픈 음악동네 후배들의 용돈은 거의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77년에는 그의 부인 이영희씨가 쌍둥이 딸을 출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폐결핵은 한 시대의 가객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명이 시나브로 단축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81년 드디어 활동금지가 풀리면서 ‘인생’이란 곡을 발표하고 83년 ‘님’을 발표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을 재개했으나 깊어질 대로 깊어진 그의 병세로 인해 ‘님’이란 곡이 결국 그가 남긴 유언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간다 간다 나를 두고 떠나간다"라는 절규가 담긴 노래를 녹음하면서 그는 삐쩍 말라 뼈만 남은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부른 노래에는 국악과 가요를 접목하여 새로운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는데, "내 죽거든 앞이 툭 트인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85년 11월 서울대 병원에서 세상을 뜨고 맙니다.
그는 지금 경기 파주의 기독교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름 모를 소녀’의 주인공이었던 부인 이영희씨는 그 후, 재가도 하지 않은 채 쌍둥이 딸을 잘 키웠고, 큰딸 정선씨는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여 활동 중에 있는데, 현재 SBS에서 방영중인 ‘결혼의 여신’이 그녀가 쓴 대본이라고 합니다.
배호, 차중락, 하수영의 요절에 이은 김정호의 죽음을 목격한 당시 가요계에서는 슬픈 노래를 부르면 요절한다는 소리까지 나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살아있을 때 유난히도 살갑게 가요계 선후배들과 어울렸던 김정호의 죽음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특히 ‘밤에 떠난 여인’의 가수 하남석은 아끼던 후배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병원 영안실을 지키던 하남석에게 ‘향수’의 가수 이동원이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음악세계도 조명하고 유족들에게 도움도 될 수 있도록 헌정앨범을 만들자고… 이렇게 해서 나온 김정호의 추모앨범이 우리 가요계 헌정앨범의 효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범룡이 ‘이름 모를 소녀’를, 김현식이 ‘님’을 불렀고 송창식(잊으리라), 윤시내(하얀 나비), 한마음(빗속을 둘이서), 서수남·하청일(사랑의 진실), 윤승태(작은 새) 등이 그가 남긴 주옥 같은 노래들을 불러 추모앨범에 담았다고 합니다. 이들 외에도 전영록, 김학래, 홍민, 이정선 등 후배들이 앞 다퉈 선배가수의 추모앨범을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했는데 당시 각자 다른 소속 사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KBS 음반기획상을 받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하얀 나비’ 곡은 김정호의 우수에 젖은 목소리와 어우러져 쓸쓸함과 고독을 자아내는 노래입니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흐르는 노래 ‘하얀 나비’ 곡을 듣고 있으니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빛 바랜 앨범 속 사진처럼 스물 스물 떠 올라 잠시 회상에 젖어 보았습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음~~~~~음~~~~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출처: 육사 34기 원문보기 글쓴이: 류석양(白石)
첫댓글 한동안 즐겨 부르던 노래쥐...
많이도 좋아했었는데 ~~~~`다시 흥얼거려 보네
첫댓글 한동안 즐겨 부르던 노래쥐...
많이도 좋아했었는데 ~~~~`
다시 흥얼거려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