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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3.06.25.AM 10시)
입법계품(入法界品)5
휴사우바이(休捨優婆夷)2
오늘 좋은 아침, 저의 컨디션도 그런대로 괜찮아서 또 이렇게 화엄경 한단락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선재동자가 휴사우바이, 우리 한국 불교로 말하자면 보살님이죠. 휴사라고 하면 보살님인데 이분을 선지식으로 모시고 찾아갔습니다.
휴사우바이는 아주 부자인지 동산이 장엄됐는데 전부 100만으로 장엄 됐습니다. 백만은 완벽하다, 퍼펙트한 장엄으로 장엄됐다,하는 의미예요.
그래서 뭐겠습니까?
외형, 보이는 것 가지고는 아무리 완벽하다 한들 한계가 있는 것이죠. 세월이 가면 변화가 있게 마련이고 변화가 있으면 이지러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백만이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우리의 본성은 본래로 완전무결한 존재다, 우리의 불성은, 우리 불심은, 우리 보리심은 본래로 완전무결한 존재다,하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제대로 활용을 못하죠. 핸드폰이라든지 컴퓨터라든지 요즘 만든 기계도 우리가 사용하면서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고 쓰지 못하죠. 갖추고 있는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은 불과 몇 안 됩니다.
우리의 본성이야 더 말 할 나위가 없죠.
우리가 본래로 갖추고 있는 부처님 마음, 불심(佛心), 보리심, 자비심, 지혜심, 이런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이나 기타 다른 훌륭한 성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그것을 백프로 다 쓰고 또 혹 좀 덜 쓴다 하더라도 구십프로 팔십프로 칠십프로 최소한도 오십프로 이상은 활용해서 씁니다.
지혜와 자비, 불심, 뛰어난 보리심 이런 것들을 오십프로 이상은 다 활용해 쓰고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같은 분들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백 퍼센트 활용해서 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 쓰죠.
여기에 휴사우바이 같은 분들이 백만 가지의 장엄으로 동산을 장엄했다, 자기 삶의 모습을 장엄했다,라고 하는 것은, 화만휘장과 향휘장과 꽃휘장과 가지휘장과 마니휘장과 진금휘장과 여러 가지 물건들 동물들 이런 것들을 다 열거하긴 했습니다만, 이것이 다 우리가 본래로 갖추고 있는 본성의 무한한 능력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것이 이해가 되고 또 경전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저와 같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데 휴사우바이 같이 활용하지 못한다. 우리도 앞으로 수행을 쌓아서, 공부를 잘해서, 휴사우바이처럼 백퍼센트 활용해야되겠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겠다, 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2) 나는 한량없는 겁 전에 보리심을 발하였다
휴사우바이가 법을 설하는 내용이 어제 법문 끝날 무렵에 있었죠. 시방의 부처님이 법을 설하다, 해서 여러 가지 내용을 소개했고, 그 내용 가운데 ‘나는 한량없는 겁 전에 보리심을 발하였다’ 이것도 우리가 뜻으로 잘 이해해야 됩니다.
한량없는 겁 전, 무량겁 전,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내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이미 보리심을 발했다, 우리의 불심이나 보리심이 불교를 만나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불교를 만나 자비심과 지혜심이 생긴 것이 아니라 본래로 이미 갖추고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한량없는 겁 전에 보리심을 발하였다’ 라고 하는 이 휴사우바이의 말씀을 우리가 그렇게 이해해야겠죠.
마음이 뭐 언제 생긴 바가 있습니까? 없어진 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언제 생긴 역사가 없습니다.
그런 이치를 우리가 또 알아야 되지요.
우리가 평소에 일상생활에서 일상적인 이해만 가지고 쭉 알아 오고 공부해 오고 그랬는데, 본래적인 것, 본래 갖추고 있는 능력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본래 갖추고 있는 능력을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우리가 자꾸 공부함으로 해서 거기에 가까워질 수가 있죠.
그것이 본래부터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대목은 그런 관점에서 공부해야 되겠죠.
선재(善財)가 백언(白言)호대 성자(聖者)의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 위구근야(爲久近耶)잇가 답언(答言)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 아억과거어연등불소(我憶過去於燃燈佛所)에 수행범행(修行梵行)하야 공경공양(恭敬供養)하고 문법수지(聞法受持)하며
선재동자가 말하였습니다.
“거룩하신 이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지는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휴사우바이가 대답하였습니다.
“선남자여, 나는 과거 연등(燃燈)부처님에게서 범행(梵行)을 닦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법문을 듣고 받아 지녔습니다.”
보통 ‘불교에 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중 노릇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또 불교의 입문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하는 이야기를 묻지요.
여기는 그런 식으로 물었는지는 몰라도 대답은 다릅니다.
휴사우바이가 대답하였습니다.
“선남자여, 나는 과거 연등(燃燈)부처님에게서 범행(梵行)을 닦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법문을 듣고 받아 지녔습니다.”
연등(燃燈) 밝힐 연(燃)자 등불 등(燈)자 등불을 밝히는 부처님, 연등부처님은 금강경에도 나오죠.
‘과거 연등부처님으로부터’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도 본래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래 지혜, 본래 지혜가 아니고는 이렇게 오랜 세월 이전부터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안 맞죠.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도 보면, ‘연등 부처님에게서 법을 배웠다, 본래 내가 지니고 있는 것에서부터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내용이지요.
앞에서 우리가 공부한 바가 있는데 이세간품에 ‘불유타오 (不由他悟) 다른 사람을 말미암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다른 사람의 가르침, 다른 사람의 지시, 다른 사람의 지도 이런 것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고 ‘본래로 나는 깨달아 알았다’ 하는 불유타오라는 말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불교는 타력신앙도 있고 또 그런 것을 많이 강조하고 우리 정서에 맞기 때문에 타력신앙, 다른 사람, 다른 부처님, 다른 보살에게 의지해서 공부함으로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본래 불성이 깨어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요.
그런데 깨어나고 보니까 ‘결국은 본래 내가 갖추고 있더라’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을 의지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본래 있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법화경에도 있듯이 주머니에 보물이 있었는데 그것을 어느 날 문득 내 주머니에 보물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내용이 불교 안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게 진짜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것, 그것도 어느 정도 조건은 되죠. 내가 깨닫는 데 조건을 갖추는 일이 되긴 하지만, 본래로 갖추고 있는 것을 내가 스스로 아는 것, 그것이 결국은 불교의 할 일입니다.
휴사우바이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과거 연등(燃燈)부처님에게서 범행(梵行)을 닦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법문을 듣고 받아 지녔습니다.”
연등부처님으로부터, 본래 지혜, 본래 지혜, 본래 깨달음 그것이 연등입니다.
차전어이구불소(次前於離垢佛所)에 출가학도(出家學道)하야 수지정법(受持正法)하며
“그 전에는 이구(離垢)부처님에게 출가하여 도를 배우며 바른 법을 받아 지녔고,
여기는 이구(離垢) 청정이라는 뜻입니다.
이것도 전부 본래로 갖추고 있는 부처님, 내 진여불성 속에 본래로 갖추고 있는 부처님으로 이해를 해야죠.
차전어묘당불소(次前於妙幢佛所)하며 차전어승수미불소(次前於勝須彌佛所)하며 차전어연화덕장불소(次前於連華德藏佛所)하며 차전어비로자나불소(次前於毘盧遮那佛所)하며 차전어보안불소(次前於普眼佛所)하며 차전어범수불소(次前於梵壽佛所)하며 차전어금강제불소(次前於金剛臍佛所)하며차전어바루나천불소(次前於婆樓那天佛所)호라
그 전에는 묘당(妙幢)부처님에게서, 그 전에는 승수미(勝須彌)부처님에게서, 그 전에는 연화덕장(蓮華德藏) 부처님에게서, 그 전에는 비로자나(毘盧遮那)부처님에게서, 그 전에는 보안(普眼)부처님에게서, 그 전에는 범수(梵壽) 부처님에게서, 그 전에는 금강제(金剛臍) 부처님에게서, 그 전에는 바루나천(婆樓那天) 부처님에게서 배우던 것을 기억합니다.”
선남자(善男子)야 아억과거어무량겁무량생중(我憶過去於無量劫無量生中)에 여시차제삼십육항하사불소(如是次第三十六恒河沙佛所)에 개실승사(皆悉承事)하야 공경공양(恭敬供養)하며 문법수지(聞法受持)하야 정수범행(淨修梵行)호니어차이왕(於此已往)은 불지소지(佛智所知)라 비아능측(非我能測)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과거의 한량없는 겁 동안 한량없이 태어나면서 이와 같이 차례차례 삼십육 항하강의 모래 수 부처님 계신 데서 받들어 섬기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법을 듣고 받아 지니고 범행을 청정하게 닦던 일을 기억하거니와 그 이전의 일은 부처님의 지혜로나 알 것이고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본래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지혜 불지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면 다 해결되고 다 풀어집니다.
우리 불자님들 이쯤 공부하신 분들은 충분히 그런 이치를 아실 것입니다.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 이름을 들먹거렸지만, 그것은 방편상의 이야기고 사실은 그 모든 부처님의 능력이 본래로 나에게 갖춰져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얼마든지 이런 부처님이 있었다,이런 부처님이 있었다’ 하는 것을 그런 뜻으로 봐야겠죠.
(3) 보살의 도(道)는 한량이 없다
선남자(善男子)야 보살초발심(菩薩初發心)이 무유량(無有量)이니 충만일체법계고(充滿一切法界故)며
“선남자여, 보살의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법계에 충만한 연고입니다.”
보살의 도를 내는 것이,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법계에 충만한 연고입니다.
보살대비문(菩薩大悲門)이 무유량(無有量)이니 보입일체세간고(普入一切世間故)며
“보살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문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세간에 널리 들어가는 연고입니다.”
크게 가엾이 여긴다. 대비문, 보살초발심
보살대원문(菩薩大願門)이 무유량(無有量)이니 구경시방법계고(究竟十方法界故)며
“보살의 큰 서원의 문이 한량이 없나니, 시방 법계에 끝까지 이르는 연고입니다.”
보살대자문(菩薩大慈門)이 무유량(無有量)이니 보부일체중생고(普覆一切衆生故)며
“보살의 크게 인자한 문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중생을 널리 덮는 연고입니다.”
큰 서원 대원(大願)의 문, 여기는 대자문(大慈門) 큰 대(大)자 자비 자(慈)자, 대원이나 대자나 대비나 본래로 갖추고 있는 것이 그 밑에서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여기 내 방 옆에 한 800년쯤 된 아주 큰 소나무가 있는데 그것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아름드리로도 매달음이 되고 키도 얼마인지 재 보지도 않았습니다만 엄청나게 큽니다. 거기에 가지가 뻗은 것이 수없이 많아요.
가을 되면 그 소나무 씨가 많이 떨어집니다. 소나무씨가 떨어지는데 그래봐야 아주 조그마한 손톱 크기만한 정도의 솔씨가 떨어져요.
그걸 내가 주워서 이렇게 보면서 ‘솔씨, 작은 솔씨에서 저렇게 큰 소나무가 자랐고, 아직도 키가 크고 있고, 매년 솔순이 자라고 또 솔씨가 열린다, 이 작은 솔씨 하나에서 그 모든 것이 생긴다’ 모든 식물들이 다 그렇죠.
식물 따라서 조금씩 조금씩 경우가 다르겠습니다마는 거의 똑같습니다.
그 큰 소나무가 작은 솔씨, 손톱만한 작은 솔씨 하나에서 저렇게 큰 불사를 짓는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본래로 갖추고 있는 마음 하나에서 큰 서원, 큰 자비, 보살행이 나오죠.
보살소수행(菩薩所修行)이 무유량(無有量)이니 어일체찰일체겁중(於一切刹一切劫中)에 수습고(修習故)며
“보살의 닦는 행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세계에서 모든 겁 동안에 닦은 연고입니다.”
보살의 닦는 행위 한량이 없나니 소수행(所修行) 모든 세계에서 모든 겁 동안에 닦은 연고입니다.
보살삼매력(菩薩三昧力)이 무유량(無有量)이니 영보살도(令菩薩道)로 불퇴고(不退故)며
“보살의 삼매의 힘이 한량이 없나니, 보살의 도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게 하는 연고입니다.”
보살의 삼매의 힘
보살총지력(菩薩總持力)이 무유량(無有量)이니 능지일체세간고(能持一切世間故)며
“보살의 모두 지니는 힘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세간을 능히 지니는 연고입니다.”
보살지광력(菩薩智光力)이 무유량(無有量)이니 보능증입삼세고(普能證入三世故)며
“보살의 지혜 광명의 힘이 한량이 없나니, 세 세상에 능히 증득하여 들어가는 연고입니다.”
보살신통력(菩薩神通力)이 무유량(無有量)이니 보현일체찰망고(普現一切刹網故)며
“보살의 신통한 힘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세계에 널리 나타나는 연고입니다.”
보살변재력(菩薩辯才力)이 무유량(無有量)이니 일음일체실해고(一音一切悉解故)며
“보살의 변재의 힘이 한량이 없나니, 한 음성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게 하는 연고입니다.”
보살청정신(菩薩淸淨身)이 무유량(無有量)이니 실변일체불찰고(悉徧一切佛刹故)니라
“보살의 청정한 몸이 한량이 없나니,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두루 하는 연고입니다.”
청정한 몸이라든지 변재의 힘이라든지 뭘 갖다 대도 다 똑같은 원리로서 ‘그렇게 우리는 본래 갖추고 있었다’ 하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또 그다음에 보살이 보리심을 발한 까닭이다
(4) 보살이 보리심을 발한 까닭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언(言)호대 성자(聖者)가 구여(久如)에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잇고
선재동자가 말하였습니다.
“거룩하신 이여, 얼마나 오래되어야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됩니까?”
답언(答言)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 보살(菩薩)이 불위교화조복일중생고(不爲敎化調伏一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불위교화조복백중생고(不爲敎化調伏百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교화조복불가설불가설전중생고(乃至不爲敎化調伏不可說不可說轉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휴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선남자여, 보살은 한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백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교화일체세계중생고(不爲敎化一世界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교화불가설불가설전세계중생고(乃至不爲敎化不可說不可說轉世界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세계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세계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교화염부제미진수세계중생고(不爲敎化閻浮提微塵數世界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불위교화삼천대천세계미진수세계중생고(不爲敎化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교화불가설불가설전삼천대천세계미진수세계중생고(乃至不爲敎化不可說不可說轉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衆生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염부제의 미진수 세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 세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 세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공양일여래고(不爲供養一如來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공양불가설불가설전여래고(乃至不爲供養不可說不可說轉如來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여래를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여래를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공양일체세계중차제흥세제여래고(不爲供養一世界中次第興世諸如來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공양불가설불가설전세계중차제흥세제여래고(乃至不爲供養不可說不可說轉世界中次第興世諸如來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세계 가운데 차례로 세상에 나시는 모든 여래를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세계 가운데 차례로 세상에 나시는 모든 여래를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공양일삼천대천세계미진수세계중차제흥세제여래고(不爲供養一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中次第興世諸如來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공양불가설불가설전불찰미진수세계중차제흥세제여래고(乃至不爲供養不可說不可說轉佛刹微塵數世界中次第興世諸如來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 세계 가운데 차례로 세상에 나시는 모든 여래를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부처님 세계 미진수 세계 가운데 차례로 세상에 나시는 모든 여래를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 많은 부처님을 위해서 보리심을 냈다는 말인가? 한 사람을 위해서 보리심을 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한 대중을 위해서, 한 가족을 위해서, 또 무슨 한 단체를 위해서도 보리심을 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이렇게 많은 숫자를 열거해 놓고 ‘그들을 위해서 내가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불위엄정일체세계고(不爲嚴淨一世界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엄정불가설불가설전세계고(乃至不爲嚴淨不可說不可說轉世界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엄정일삼천대천세계미진수세계고(不爲嚴淨一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엄정불가설불가설전삼천대천세계미진수세계고(乃至不爲嚴淨不可說不可說轉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주지일여래유법고(不爲住持一如來遺法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주지불가설불가설전여래유법고(乃至不爲住持不可說不可說轉如來遺法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여래의 남기신 법을 머물러 지니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여래의 남기신 법을 머물러 지니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주지일세계여래유법고(不爲住持一世界如來遺法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주지불가설불가설전세계여래유법고(乃至不爲住持不可說不可說轉世界如來遺法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세계 여래의 남기신 법을 머물러 지니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세계 여래의 남기신 법을 머물러 지니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위주지일염부제미진수세계여래유법고(不爲住持一閻浮提微塵數世界如來遺法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내지불위주지불가설불가설전불찰미진수세계여래유법고(乃至不爲住持不可說不可說轉佛刹微塵數世界如來遺法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한 염부제 미진수 세계 여래의 남기신 법을 머물러 지니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부처님 세계 미진수 세계 여래의 남기신 법을 머물러 지니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시약설불위만일불서원고(如是略說不爲滿一佛誓願故)며불위왕일불국토고(不爲往一佛國土故)며 불위입일불중회고(不爲入一佛衆會故)며 불위지일불법안고(不爲持一佛法眼故)며 불위전일불법륜고(不爲轉一佛法輪故)며
“이와 같이 간략히 말하면 한 부처님의 서원만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부처님의 국토에만 가기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부처님의 대중에 들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부처님의 법의 눈을 지니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부처님의 법륜을 굴리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입니다.”
불위지일세계중제겁차제고(不爲知一世界中諸劫次第故)며불위지일중생심해고(不爲知一衆生心海故)며 불위지일중생근해고(不爲知一衆生根海故)며 불위지일중생업해고(不爲知一衆生業海故)며 불위지일중생행해고(不爲知一衆生行海故)며
“한 세계의 여러 겁의 차례를 알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중생의 마음 바다를 알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중생의 근성 바다를 알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중생의 업의 바다를 알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중생의 수행 바다를 알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입니다.”
불위지일중생번뇌해고(不爲知一衆生煩惱海故)며 불위지일중생번뇌습해고(不爲知一衆生煩惱習海故)며 내지불위지불가설불가설전불찰미진수중생번뇌습해고(乃至不爲知不可說不可說轉佛刹微塵數衆生煩惱習海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요
“한 중생의 번뇌 바다를 알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한 중생의 번뇌습기(習氣) 바다를 알기만을 위함이 아닌 연고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중생의 번뇌습기 바다를 알기만을 위해서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닙니다.”
욕교화조복일체중생(欲敎化調伏一切衆生)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중생을 다 교화하고 조복해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 다 교화하고 조복해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 다 교화하고 조복해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승사공양일체제불(欲承事供養一切諸佛)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다 섬기고 공양하여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엄정일체제불국토(欲嚴淨一切諸佛國土)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다 깨끗이 장엄하여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호지일체제불정교(欲護持一切諸佛正敎)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諸心)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다 보호하고 지녀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이 보리심의 끝 간 데는 도저히 상상을 못합니다.
보리심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보리심은 하늘과 같다, 그런 표현이 있어요. 하늘, 하늘이 끝이 있습니까? 끝이 없습니다.
보리심도 역시 끝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도요 왜 그리 좁게 씁니까? 그렇지만 사실은 우리 마음의 본질은 무한히 넓고 무한히 깊고 무한히 광대합니다.
저 허공이 광대하다 하더라도 허공보다도 더 넓고 광대한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가 참 우리가 마음 쓰고 살아온 것이 너무 안타깝죠.
일체 모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다 보호하고 지녀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성만일체여래서원(欲成滿一切如來誓願)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여래의 서원을 다 성취하여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왕일체제불국토(欲往一切諸佛國土)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모두 가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부처님 대중모임은 저도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행사, 좋은 행사가 많이 있는데 ‘저런 행사에 한 번 가봤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부처님 대중 모임에 일체 모든 부처님의 배경 모임에 다 들어가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이 글을 공부하니까, 한국 불교에서 불교적인 아주 아름다운 행사, 환희심 나는 행사에 다 일일이 참석해서 나도 동참하고 싶고, 같이 축하해주고 싶고, 같이 기뻐해 주고 싶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저의 아주 조그마한 좁쌀만한 마음으로도 좋은 행사는 낱낱이 빠지지 말고 다 동참해서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욕지일체세계중제겁차제(欲知一切世界中諸劫次第)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세계의 여러 겁의 차례를 다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지일체중생심해(欲知一切衆生心海)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중생의 마음 바다를 다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지일체중생근해(欲知一切衆生根海)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중생의 근성 바다를 다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지일체중생업해(欲知一切衆生業海)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중생의 업의 바다를 다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지일체중생행해(欲知一切衆生行海)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일체 중생의 행의 바다를 다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멸일체중생제번뇌해(欲滅一切衆生諸煩惱海)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
心)이며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 바다를 다 소멸하여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욕발일체중생번뇌습해(欲拔一切衆生煩惱習海)하야 실무여고(悉無餘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니
“일체 중생의 번뇌습기 바다를 다 빼내어 남음이 없게 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선남자(善男子)야 취요언지(取要言之)컨댄 보살(菩薩)이 이여시등백만아승지방편행고(以如是等百萬阿僧祗方便行故)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니라
“선남자여, 중요한 것을 추려서 말하면 보살은 이와 같은 등 백만 아승지 방편의 행(行)을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추려서 말하면 보살은 이와 같은 등 백만 아승지 방편의 행(行)을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었다.
선남자(善男子)야 보살행(菩薩行)이 보입일체법(普入一切法)하야 개증득고(皆證得故)며 보입일체찰(普入一切刹)하야 실엄정고(悉嚴淨故)니 시고(是故)로 선남자(善男子)야엄정일체세계진(嚴淨一切世界盡)하야사 아원내진(我願乃盡)이며 발일체중생번뇌습기진(拔一切衆生煩惱習氣盡)하야사 아원내만(我願乃滿)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의 행은 일체 법에 두루 들어가서 다 증득하려는 연고며, 일체 세계에 두루 들어가서 다 깨끗이 장엄하려는 연고입니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일체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여 마치면 나의 서원도 마칠 것이며, 일체 중생의 번뇌습기를 뽑아 끝내면 나의 서원도 만족할 것입니다.”
일체 중생의 번뇌습기를 뽑아서 끝내면 나의 서원도 만족할 것입니다.
휴사우바이, 대단한 우바이입니다.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언(言)호대 성자(聖者)여 차해탈(此解脫)이 명위하등(名爲何等)이니잇고 답언(答言)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 차해탈(此解脫)이 명이우안은당(名離憂安隱幢)이니라
선재동자가 말하였습니다.
“거룩하신 이여, 이 해탈의 이름을 무엇이라 합니까?”
답하여 말하되, “선남자여, 이 해탈은 이름이 ‘근심 없고 편안한 당기(幢旗)라’합니다.”
명이우안은당(名離憂安隱幢), 근심이 하나도 없고 편안한 깃대 그런 뜻입니다
3) 자기는 겸손하고 다른 이의 수승함을 추천하다
이렇게까지도 대단한 마음을 썼는데 여긴 또 자기는 겸손하고 다른 이를 추천합니다.
선남자(善男子)야 아유지차일해탈문(我唯知此一解脫門)이어니와 여제보살마하살(如諸菩薩摩訶薩)은 기심여해(其心如海)하야 실능용수일체불법(悉能容受一切佛法)하며 여수미산(如須彌山)하야 지의견고(志意堅固)하야 불가동요(不可動搖)하며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한 해탈문만을 알거니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음이 바다 같아서 일체 부처님의 법을 다 받아들이며, 수미산과 같이 뜻이 견고하여 동요하지 아니합니다.”
여선견약(如善見藥)하야 능제중생(能除衆生)의 번뇌중병(煩惱重病)하며 여명정일(如明淨日)하야 능파중생(能破衆生)의 무명암장(無明暗障)하며 유여대지(猶如大地)하야 능작일체중생의처(能作一切衆生依處)하며
“선견약(善見藥)과 같아서 중생들의 번뇌 병을 능히 치료하며, 밝은 해와 같아서 중생들의 어두운 무명을 능히 깨뜨리며, 마치 땅덩이와 같아서 일체 중생의 의지할 곳이 됩니다.”
참 좋은 표현입니다.
선견약과 같아서 일체 중생의 번뇌의 병을 능히 치료한다. 밝은 해와 같아서 중생의 어두운 무명을 능히 깨뜨린다. 땅덩이와 같아서 일체 중생의 의지할 곳이 된다.
유여호풍(猶如好風)하야 능작일체중생의리(能作一切衆生義利)하며 유여명등(猶如明燈)하야 능위중생(能爲衆生)하야생지혜광(生智慧光)하며 유여대운(猶如大雲)하야 능위중생(能爲衆生)하야 우적멸법(雨寂滅法)하며
“마치 좋은 바람과 같아서 일체 중생의 이익을 지으며, 마치 밝은 등불과 같아서 능히 중생들의 지혜의 빛을 내며, 마치 큰 구름과 같아서 능히 중생들에게 고요한 법을 비처럼 내립니다.”
우여정월(猶如淨月)하야 능위중생(能爲衆生)하야 방복덕광(放福德光)하며 유여제석(猶如帝釋)하야 실능수호일체중생(悉能守護一切衆生)하나니 아아운하능지능설피공덕행(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이리오
“마치 청정한 달과 같아서 능히 중생에게 복덕의 빛을 놓으며, 마치 제석천과 같아서 일체 중생을 다 능히 수호합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그 공덕의 행을 능히 알 수 있으며 능히 설할 수 있겠습니까.”
휴사우바이는 정말 휴사우바이, 여성불자들이 많고,여성불자들의 마음이 정말 보살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래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분들의 상을 모실 때도 그분들의 표현 경전에 나타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을 알고는 저절로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여자모습 비슷하게 그렇게 그림을 그리게 되고 조각이 되어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남자 여자 아버지 어머니를 내세워 놓고 보면 그래도 자비로운 분이 어머니고 그 참 사랑하는 마음이 풍부한 이가 어머니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지장경이라든지 관음경 같은 데서 보면, 저절로 그런 상호가 그려지게 됩니다. 그런 상호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여자 비슷한 그런 모습이, 그렇다고 여자는 아니죠. 그게 자비상입니다.
자비상,아주 자비가 흘러넘치는 모습을 그리려고 하고 조각한다고 하다 보니까 그런 모습이 된 거죠.
석굴암 불상이 어디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그런 모습입니까? 그렇지 않죠.
마치 청정한 달과 같아서 능히 중생에게 복덕의 빛을 놓으며, 마치 제석천과 같아서 일체 중생을 다 능히 수호합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그 공덕의 행을 능히 알 수 있으며 능히 설할 수 있겠습니까.
4) 다음 선지식 찾기를 권유하다
선남자(善男子)야 어차남방해조지처(於此南方海潮之處)에 유일국토(有一國土)하니 명나라소(名那羅素)요 중유선인(中有仙人)하니 명비목구사(名毘目瞿沙)니 여예피문(汝詣彼問)호대 보살(菩薩)이 운하학보살행(云何學菩薩行)이며수보살도(修菩薩道)리잇고하라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바다의 조수가 이는 곳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은 나라소(那羅素)요, 거기 선인(仙人)이 있으니 이름이 비목구사(毘目瞿沙)입니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습니까.’라고 물으십시오.”
비목구사(毘目瞿沙) 선인(仙人)
5) 수행의 어려움을 생각하다
시(時)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정례기족(頂禮其足)하고 요무수잡(遶無數帀)하며 은근첨앙(殷勤瞻仰)하고 비읍유루(悲泣流淚)하야 작시사유(作是思惟)호대
그때에 선재동자는 그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돌고 은근하게 앙모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득보리난(得菩提難)이며 근선지식난(近善知識難)이며 우선지식난(遇善知識難)이며 득보살제근난(得菩薩諸根難)이며정보살제근난(淨菩薩諸根難)이며 차동행선지식난(値同行善知識難)이며 여리관찰난(如理觀察難)이며
‘보리를 얻기 어렵고, 선지식을 친근하기 어렵고, 선지식을 만나기 어렵고, 보살의 모든 근(根)을 얻기 어렵고, 보살의 모든 근을 깨끗이 하기 어렵고, 함께 수행할 선지식을 만나기 어렵고, 이치대로 관찰하기 어렵고,
의교수행난(依敎修行難)이며 치우출생선심방편난(値遇出生善心方便難)이며 치우증장일체지법광명난(値遇增長一切智法光明難)이라하야 작시념이(作是念已)하고 사퇴이행(辭退而行)하니라
가르치는 대로 수행하기 어렵고, 착한 마음을 내는 방편을 만나기 어렵고, 일체 지혜를 증장하게 하는 법의 광명을 만나기 어렵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는 하직하고 물러갔습니다.
여기까지 선재동자가 선지식의 덕화를 다시 한 번 사모하면서 그 내용들을 열 가지로 정리하여 생각하였다, 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음 선지식을 소개받았으니까 참 훌륭한 가르침을 배웠지만, 또 이제 앞으로 앞으로 쉼 없이 나아가는 수행, 그런 수행정진, ‘내가 복을 좀 지었지만 그것 가지고 부족하다, 앞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선지식을 친견하고 보다 더 좋은 가르침을 또 만날 것이다’ ‘이 화엄경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어디 있느냐?’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 아니라, 앞으로 또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 같은 내용이라도 거기서 깨달음이 달라요. 같은 내용이라도 느낌이 다릅니다.
그건 제가 늘 경험하는 바인데, 똑같은 내용이고 똑같은 글이고 똑같은 장소 경문인데도 읽을 때마다 또 달라요. 느낌이 달라요. 내 깨달음이 다르고 내 눈이 열리는 것이 다릅니다.
선재동자 53 선지식을 친견하러 가는 이런 구법 행각은 모든 불자들이 행해야 할 본보기입니다.
선재동자만이 하는 일이 아니고 모든 불자가 이 선재동자의 구법행각을 본받고 따라서 하자고 하는 뜻에서 그려진
그림이 이 ‘선재동자 53 선지식’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배울 것이 아무리 공부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는, 복을 짓고 짓고 지었고, 공덕을 닦고 닦고 닦았다 하더라도 더 닦고 더 공덕을 짓고 하는 자세를 선재동자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일요일날, 치료도 없고 해서 신심을 내서, 정말 한마음을 일으켜서 이렇게 화엄경을 한단락 공부했는데 참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여기까지 오늘이 6월 25일, 아 오늘 6.25네요. 6월 25일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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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분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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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
첫댓글 _()()()_ 본문에서 금칙어는 <여성>이었네요.<여성불자>라고 붙여 쓰면 괜찮고요. 단독으로 '여성'이라고 쓰면 금칙어네요.
🙏🙏🙏
본래 내가 갖추고 있었던 佛性은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것과 같고, 다른 사람을 말미암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不由他悟).
휴사우바이는 그 능력을 부족함 없이 다 알고 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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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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