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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단 한번 산문이 열린다는 천년 사찰 희양산 봉암사
대간을 걸으면서 꼭 한번 찾아봐야겠노라 생각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게 빗장 걸어둔 산문을 찾아가는것이다.
전날 깽이님과 문경시 가은읍 대영호 지부장님의 회사 기숙사에서 자고,새벽에 일어나 밥 먹고 지부장님의 차량 지원으로 버리미기재에 쉽게 도착합니다.
아홉번 시집간 팔자 사나운 주막집 과부가 자식을 빌어 먹이려 넘던 고개라 하여 붙여진 버리미기개
속리로 접어드는 길목인 버리미기재는 국공파와 대간파와의 끈질긴 술래잡기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어지는곳이다
어떤 게임이던 승자와 패자가 있는법 이곳에서 술래잡기는 언제나 대간파들의 가슴 떨리는 길이며 승자도 패자도없는 구간이다.
새벽녘에 몰래 버리미기재에서 올라오니 홀딱벗고 새는 어디서 부터 따라 왔는지 앞에서 연신 홀딱벗고~ 홀딱벗고~ 제발 벗으라 울어댄다.
새소리 벗삼아 오르니 멀리 백화산 인근에서 일출이 떠오른다.
넓은 산속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백화산 넘어에서 시작되며 그앞으로 희양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봉황의 울음소리란 뇌정산이 지척이다.
마침 가는날을 잡고보니 음력 사월 초팔일이라 희양산 아래 봉암사가 1년에 단,한번 빗장문을 여는날이다.처음 대간 하시는 깽이님을 위해
많은것 보고 가라며 그동안 금강산 일만 이천봉 자락에 자리하던 건봉사와 화암사,태백산 자락 봉황산 아래 영주 부석사, 소백산 끝자락에 위치하는 용문산 용문사,
그리고 조선 최고의 절집인 희양산 봉암사까지 비보사찰로써 대간길을 지키고 서 있는 나라의 운을 기원하던 천년 가람을 보여주며 더 많은걸 느껴보라 해본다.
대간을 걸으며 그동안 비와 안개로 보지못한 구간이 많았는데 부처님 오신날이라 온누리에 자비을 그래서 좋은 조망을 보여 주시는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대간길 전반전은 고생 했으니 이제부터 가는길에 더 많은것 보고 가라며 조망을 보여 주시는건지 바람과 조망 좋은날이다.
신선들이 즐겨 찾은 곳인지 유학자들이 즐겨 찾은 곳인지 알길 없으나 문경땅 선유동 계곡에는 옥석대,영귀암,난생뫼,활청담,탁정대,세심대 옥하대... 등이 있고,
괴산땅에는 퇴계 선생이 써놓으셨다는 선유동문,경천벽루,학소암 등등이 있다.
이른 아침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속에 충북 괴산군 청천면 선유동 계곡과 백두대간 장성봉에서 막장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남군자산으로 이어지며
쌍곡 계곡과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군자산을 만들어 놓았다.
속리산 국립공원의 관문격인 대야산이 지척이다.
우리나라에 신선이 노닐다 갔다는 선유동 계곡이 더러 있지만 대야산을 지척에 두고 문경시 가은읍에 외선유동계곡을,
괴산군 청천면 땅에는 내선유동 계곡을 안과 밖으로 모두 선유를 품고있는 단하나의 품격있는 산이다.
바람 좋은날 조망도 좋고
오늘 하룻동안 불어줄 바람 지금 모두 불어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천천히 천천히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었으면
그게 우리 복이려니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대야산으로 향한다.
문경시 가은읍 선유동 계곡과 멀리 작약산 방향으로
이곳에서 흐르는 물은 모두 양산천이며, 가은읍에서 속리산 천왕봉에서 흘러온 영강에 합류되는 물길이며
멀리 작약산 넘어 흐르는 물은 백두대간 속리산 형제봉에서 흘러와서 이곳 물길인 영강에 합류되는 이안천이다.
문경땅으로 흐르는 물은 대부분 영강이니 월악산 남쪽 능선인 대미산-조령산-희양산 그리고 대야산과 속리산-대간길 윤지미산까지 골골이 흘러온 물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평화롭게 살게 만든다.
작약산 넘어 문경시이며 그곳 넘으면 낙동강이 있고 그넘어 삼강 주막이 자리한다
촛대봉 지나서 본 대야산(大耶山)
耶 "어조사야"자는 아버지를 부르는 "야"자 이기도 한다니 큰아버지 혹은 큰산이란 뜻도 함께 포함된 산이다.
그리고 대간길을 걸으며 큰 대(大)자가 들어가는 산이 흔하지 않기에 결코 만만하게 다가 갈 수 없는 산이기도 하다.
백두대간과 한식구나 다름없는 장성봉 -막장봉 -제수리재(움 푹 파인곳)남군자산-군자산(가장 높은곳) 방향으로
군자산은 칠보산과 더불어 속리산 국립공원 끝자락에 위치하며 쌍곡 구곡과 괴산 소금강 계곡을 만들어 놓은 도도하고
가파른 산이다.
먼저 올라가며
나무 그늘속으로 하늘만 겨우 보이는 촟대봉을 지나고 잠시 오르면 대야산 절벽 구간을 앞에두게 된다.
멀리 그리고 더 먼곳까지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80m짜리 직벽 구간은 삼단 콤보형이라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영차 영차
대야산 오름길은 두곳이며 한곳은 자일만 길게 설치되어 있고
다른 한곳은 누군가 설치해둔 튼튼한 앙카 볼트가 촘촘히 박혀있어 조금만 조심한다면 쉽게 오를 수 있다.
대야산에서 본 백두대간길
좌측 일곱가지 보물이 난다는 칠보산이고 그 앞으로 막장봉과 가운데 높은곳 대간길 장성봉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은 월악산 영봉이며 그앞으로 구왕봉과 희양산과 백화산 줄기가 이어진다.
대야산 직벽구간 무섭다며 울며불며 올라오지 않을까 걱정 했지만 걸음이 늦은 많큼 바위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다.
"뭐야! 방장님 다 끝난거임까!
왜!~ 오줌이라도 쌀것같은 바위가 나타날까 걱정 했나?
대간을 진행하면서 대야산 절벽 구간 어쩌나! 걱정 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두팔에 핏줄서게 만들며 팔목보다 더 굵은 자일을 잡고 아등 바등 하더니
너무 쉽게 올라와 한걱정 줄여주신 깽님 고맙다고 해야 하겠죠.
대야산(상대봉)에서 인증 담고
오늘 대간길 거리는 얼마되지 않고 음력 사월 초팔일이기에 1년에 단하룻 동안 산문을 연다는 희양산 봉암사로 가야 한다.
대야산에서 조항산- 청화산까지 걷는길은 사방팔방 조망이 트인곳이 많아 지겹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며
집채만한 바위가 길을 막고있는 곳이다 보니 많은 산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후 서,너시까지 밤티재까지 갈 수 있으니 아무도 없는 산정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탁트린 조망과 손에 잡힐듯 가까운 속리와 희양산이 곁에 있으니 신선이 선유동 계곡에만 살았을까 이런 경치라면 분명
계곡에만 살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대야산 정상 상대봉에서 보는 조망 바로 앞은 중대봉으로 가는 능선이고
좌측 멀리 금단산이 살짝 보이고 그앞으로 백악산 우측으로 낙영산과 도명산
앞으로 보이는곳에서 흐르는 물은 모두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화양계곡으로 들며 화양리 마을에서 속리산 천앙봉 서쪽에서 흘러온 달천과 만나게 된다.
멀리 금단산 넘어 흐르는 물은 달천이며 달천 강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옥화 9경이 자리하는곳이다.
대간길인 조항산과 청화산 그리고 속리산
그동안 백두대간 강원도 태백산 금대봉에서 발원해 흘러오던 한강이 태백산- 월악산 -소백산을 지나 속리에서 금강에 자리를 내주게 되는곳이다.
한양은 우리나라 전체인구 절반이 사는 곳이니 마시는 물도 많아야 하고 길이로 따진다면 낙동강이 제일이지만 유역면에서는 한강이 남한 제일이다.
이곳에서 흐르는 달천이 한강과 만나는곳 충주 탄금대까지 깨끗하게 흘러 들기만 바라며
잠시 쉬었다 가자며 앙앙 거리는 깽님
깽님!봉암사 안 갈거야?
"가야죠"
사방팔방 거침없는 조망을 선사해주신 대간길의 큰아버지 대야산을 두고 발길을 조항으로 옮겨 간다.
그늘이 없어 한낮이면 땡볕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대야산을 두고 떠나자니
아침 시간에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 좋다.
그늘이 없으니 넓게 보이는 조망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겠고
다음에 누군가 오면 꼭 오늘 우리에게 보여준 많큼만 조망을 선사해 주셨으면 좋겠다.
궁시렁 궁시렁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야산 직벽이 너무 짧다"느니
"정상에서 쉬지도 않고 간다"느니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느니 배 고프다며 밥먹고 가자며
아침부터 끝날때까지 떠듭니다.
그중에 대야산 직벽이 너무 짧아 "운동하다 그만 둔것 같다"며 팔 올려 붙이고 따라오며 처발 처발...합니다.
다른곳과 다르게 암릉길에 자리하는 소나무가 너무 아름다운곳이죠
겨울에는 흰눈을 여름에는 푸르름을 선사하는 몇몇 소나무들
묘봉 줄기와 백악산 방향으로
오늘 산행 마치고 가게될 희양산 봉암사 방향으로
대간길에 많은것 보고 느끼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대야산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집채보다 더 큰 바위를 만나게 된다.
돌을 사고 파는 사람들 눈에는 모두 돈으로 보이니 대야산 인근으로 채석장이 많았으며 잘려나간 돌덩이는 트럭에 실려 전국으로 팔려 나가게 되었다.
아따 크다
"방장님! 대야산 직벽 구간 이정도는 될 줄 알았어요"
"나도 처음에는 그런줄 알았다."
오늘 대간길에 안전 산행 기원 드리고
가야할 조항산과 청화산을 두고
오늘도 미어켓 처럼
대야산 밀재에서
문경땅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가면 그옛날 시인묵객들이 즐겨찾던곳
달 그림자가 물위에 드리워 진다하여 붙여진 월영대
바둑두는 신선을 구경하다가 도끼 자루 썩었다는 난가대,
용을 두마리나 낳았다는 용추가 있는곳이며
대야산이 높기에 경북과 충북을 오고가는 고갯마루는 밀제와 남쪽 조항산 아래 고모치재 북쪽으로 불란치재와 버리미기재가 있으며
지금은 922번 지방도로인 버리미기재 외 다른곳은 오고가는 길손이라곤 약초꾼들과 대간꾼들뿐이다.
조선시대 과거보러 다니던 문경새재가 양반길이었다면 빌어 먹인다는 버리미기재는 평민들이 다니던 힘들 고갯길인 셈이다.
밀재에서 소 여물 먹이듯 요풀레와 사탕 한알 드리고
그래도 좋다고 ...
조항산 가는길에 만나는 바위틈에서
조항산을 지척에 두고 마귀할매 통시바위 삼거리에서
죽어도 못간다며 이러고 있습니다.
이럴때는 얼음물 한모금 먹여서 데리고 가야죠
지나온 대간길과 대야산과 어깨를 같이 한다는 중대봉 바위가 치마처럼 드리워져 있다
남진하던 대간길에서 벗어난 둔덕산 방향으로
잠시 대간길에 배낭을 벗어두고 마귀할매 통시바위로 찾아 가본다.
마귀할매 통시바위는 경상도 사투리로 사용되는 화장실이란 뜻이며 문경 사람들의 재미가 느껴지는곳이다.
할매가 월영대 와 난가대에서 달밤에 바둑두는 신선들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줄 모른다는 곳을 두루 돌아보며
이곳에 올라와 급한 볼일을 보던 조망이 아주 좋은곳이다.
아따 크다.
대야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대봉은 대야산을 상대봉으로 인식해서 그렇게 부른듯하고
안팍으로 신선들이 노니는 대야산이라 그런지 계곡의 맑은 물소리도 시원하겠지만 대간길 능선에서 보는 시원함은
계곡물소리 보다 더좋게만 느껴진다.
북상하는 백두대간길의 장성봉에서 이어지는 구왕봉과 희양산 그뒤로 주흘산이 보인다.
마귀할매 통시바위에서 본 둔덕산
마귀할매 바위에서
깽님
통시바위에는 코끼리 바위나 대문바위 그리고 돌고래 닮은 바위도 있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뛰어 오를듯한 돌고래 등에 올라타 살금 살금 다가 가시는데
여기저기 쏘 다녔으니 목이 마를테고
고모치재 아래 샘터에서
물맛을 알기나 한지
물맛 좋다고...
대간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눈이 즐거우면 모든게 해결되고
커다란 소나무와 바위가 길을 막는다면 한번씩 안아주고
꼬챙이 하나들고 백두대간은 이렇게 걷는다고 처발처벌...
조항산 오름길에 만나는 싱그런 키다리 단풍나무
고모샘에서 시원하게 흘러 나오는 물 한모금에 조항산 오름길이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지만
앞선이의 거친 호흡 소리는 내게 쉽게 전해진다.
"깽이님 제발 운동 좀해 그러다 심장 터지겠습니다."
-"제가 운동하면 방장님은 저 못따라와요'-
"헐!~ 제발 심장 한번 터져 보자"
키다리 단풍나무 그늘 사이로 시원한 바람은 쉼없이 전해지는데
꼬챙이 하나들고 바람을 느끼며 조항으로 오른다.
조항산 직전에 본 지나온 대간길이 장쾌하게 이어진다.
대야산에서 장성봉으로 그리고 희양산 ...
희양산 뒤로 달이 뜨면 돌아 온다던 마의태자의 전설을 뒤로한 달빛 고운 산 월악이 곱게 보이나
신선이 즐겨찾던 자리에 체석장과 광산이 많았던곳이다
지금은 모두 폐광 되었지만 한때는 두부 썰어가듯 썰어가고,그자리에는 잘려나간 돌덩어리만 뒹굴었지만 장사치들이 떠난 자리에
자연은 스스로 아물어 가고있는 곳이다.
모두가 대간길인 산들 그속으로 뼈가 훤히 들여다 보이니 어느 부잣집 대리석 기둥이나 건축 자제가 되었을지 대간꾼들이라면 누구나 저런 모습을 보면
혀를 끌끌 차면서 걷게된다.
마귀할멈 통시 바위와 둔덕산 가는길 아래 대간길에 뼈와 살점을 뜯어낸 체석장이 보이고
능선넘어 대간길 희양산과 어느 대갓집 지붕을 고스란히 담아낸 주흘산이 보인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벗삼아 단풍나무 그늘을 지나 조항에 오른다
산정에 서니 첩첩이 이어지는 공룡의 등뼈같은 한국의 산하가 펼쳐지고
동,서로 양분되어 오던 물길도 한강은 서쪽으로 빠져 나가고,이후로는 비단 금강에 자리를 내줘야 할곳이 지척에 다가와 있다.
속리에서 묘봉으로 그리고 아래로 백악산과 그뒤로 괴산군 청천면의 금단산까지 조망
이곳에서 보는 조망속의 물길은 모두 속리 천왕 서쪽에서 흘러 내리는 달천에 속하는 물이되어 보은-청주-괴산-충주시로 흘러들게된다.
청화산과 시루봉
그뒤로 도장산과 청계산이 보이고
바위구간을 넘어가며
조항산에서 이어지는 대간길에 햇볕은 따갑지만 부드러운 바람과 산객을 맞이하던 늦 철쭉이 몇 남아있는 대간길이다.
고고하게 도도하게 서있던 대야산이 또 다른 산객을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간길에 이리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날이 맑다.
속리산이 사나운 공룡이라면 이곳 청화산까지 능선은 초식 동물의 등을 닮은듯 부드럽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곳이다.
바람은 어디 걸림이 없으니 때로는 문경에서 때로는 괴산에서 불어온다.
청화산에서 연엽산으로 가는 산길이 보이고 그뒤로 상주의 남산이 높게자리한다.
아래 마을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오래전 견훤이 군사를 모아 훈련하면서 궁터를 만들었다고 하는곳이다.
대간길에 믿고가는 조망터로 알려진 대야에서 청화산 구간
골깊은 문경땅과 편안하게 펼쳐지는 괴산땅
영주 소백이 바람과 편안한 능선이라면 이곳은 단풍나무 그늘과 연이어 터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바람이 너무 시원하게 부는것 아니냐!
조망이 너무 좋다며 뒤에서 옹알이 하는 깽이님
걷다보니 청주에서 오신 대간꾼들이 지나고 그분들과 함께 대간길을 걸음하러 오신 맥가이버님을 만난다.
만나면 반가운분과 함께 인증 담고
대구에서 오신 젊은 산꾼 두분과도 만나서 인사를 나눈다.
맥가이버님과 함께 도장산 방향으로
대구에서 오셨다는 젊은 산꾼 형제분과 함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제 서서히 체력이 고갈되어 가는 분
청화산에서 시루봉으로 가는 능선
아랫마을은 상주시 용유마을이며
개운화상이 춤을 추는듯한 산이라는 도장산 그뒤로 청계산(뽀족한곳)이 보이고
청계산과 형제봉 사이의 움푹파인곳 갈령고개가 보이고 그뒤로 백두대간길인 봉황산이 보인다.
저곳 넘어 흐르는 물은 이안천이며
이안천은 백두대간 속리산 형제봉 부근 갈령 삼거리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상주시와 문경으로 흘러 영강에 합류하는 강이며
발원지 아래 동네 펜션을 지나면서 물은 예전 많큼 깨끗하게 흘러가지 않은 강이다
가운데 보이는 도장산은 11살에 도장산 심원사(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 말사의절)에 입산하여 승려가 된 개운화상 지금은 선계에
들어 신선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는 그분이 승복을 입고 춤추는 듯한 산이다
숙종때 30년간 전국을 다니신 택리지의 이중한 선생이 즐겨 찾으셨다는 청화산(靑華山)
청화산 아래 우복동에 길지가 있다고 했으며 이중환의 호가 '청담(靑潭)" 혹은 청화산이라 부르는 것도 청화산이 산세가 수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택지리는 이중환이 직접 찾아보고 걸어서 만든 지리서 이며, 조선팔도의 역사와 지리,기후,마을과 마을 풍수를 가미한 인문 자연 지리서이다.
우리나라 십승지중 상주시 화북면 우복동(병천) 마을
십승지는 격암 남사고 선생 (1509-1566)의 十(십)승지가 있고
정감(조선 중기)의 십승지가 있으니
격암 남사고의 십승지는 마음 자리(궁극적인 세상)를 뜻하나
정감의 십승지는 도참설과 풍수설에 의하며 환란를 필할 수 있다는 지명 10군데를 뜻한다.
1.풍기(동양 대학교).2 봉화(참새골). 3 속리산 우복동 4 남원 운봉. 5 예천 금당실 마을
6 영월 동강변.7 무주 무풍면. 8 공주 마곡사 인근. 9 부안면.10 합천 가야산 만수동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한강 이북은 한곳도 없다.
청화산에서 늘재로 내려 가는길에 본 늘재와 백악산 줄기 그리고 속리산 주능선이 자리한다.
청화산에서 내려와 늘재에 도착하니 성황당이 자리한다 예전에 비해 많이 훼손되어 있다.
성황당 유래비
늘재에서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와 입석리를 오고 가는 고갯길이며 상주시 입석리 넘어가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이다.
낙동강과 한강을 이루는 분수령이며
좌측 낙동강으로 흘러 가는 물은 속리산에서 흘러온 영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우측으로 흐르면 한강이며 괴산군 하양 계곡에 들렀다가 달천이 되어 한강으로 흐른다.
비탐지역이라 심장은 쫄깃하고 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조심스럽게 밤티재로 향한다.
이제 체력이 방전되어
커다란 몽댕이 들고 어디 한판 싸우러 가는 분 마냥
언놈이던 한놈 걸리기만 하면 아주 아작낸다며...
지나온 대야산과 청화산 방향
밤티재로 가는도중에 만나는 전망대 바위에서 바로 앞에 밤티재 절개지가 보인다.
국립공원 속리산으로 가는길이 왜 이리 힘들꼬
생각 같아서는 쉽게 가겠는데 마음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 앉은것 같이 무겁다.
한때 신라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속리산을 두고 "산은 세속을 떠나려 하지 않은데 세속은 산을 떠나려 한다" 라는 시를 읇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속이 뭔지 두근반 세근반 하는 마음을 진정 시키며 밤티재에 가야 세속을 완전히 벗어날것 같다.
당최 심장이 떨려 더이상 진행을 못하겠다.
"방장님 어쩔까요?"
-"뭐!"-
"아까 늘재에서 국립공원이라며 출입하지마라"며 방송을 하고 고함소리도 들리던데
"걸리면 니가 벌금 내라"
화북면 장암리 마을과 견훤산성
맞은편으로 승무산과 도장산 그뒤에 청계산과 갈령 고개와 형제봉이 자리한다
전망대 바위에서 조금 내려오면 커다란 흔들바위가 있으며
설악산 흔들바위와 형제격인데 힘주어 밀면 흔들 흔들
밀면 바위가 들석 들석이니 너무 세게 밀면 골짜기로 굴러 갈것만 같다
밤티재에 도착해서
무슨 큰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잣대위에서 아슬 아슬 걸음하다가 드디어 세속에서 벗어난것 같다.
최치원 선생께서 쓰신 시가 생각난다
"산은 세속을 떠나려 하지 않은데 세속은 산을 떠나려 한다"
걱정은 걱정으로 남겨두며 이제 희양산 봉암사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으니 인근 농암 택시를 불러놓고 길가에 퍼질러 앉아
망중한을 즐겨본다.
다음판 오를곳을 담아 두고
고생 하셨고
이번주에 조령 구간에서 봅시다.
1년에 단 하루만 문을 연다는 봉암사에 와서
구왕봉과 희양산
수행 하시던 스님들께서 밤낮으로 지나는 산꾼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방해가 된다며 대간길을 막아 두고자 했는지 이곳에 와서 이해를 했으며
앞으로 대간길 희양산 구간을 걸을때 묵언 수행이라도 하며 걸어야겠다.
역시나 봉암사는 빗장을 걸어 둘만한 유서 깊은 절집이었으며 누가 뭐래도 조선 최고의 절집으로 기억 될것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대간길 한구간 미리 다녀왔구요
이번주에도 대간 갑니다.
.
첫댓글 얼마전에 종주길 걸으며 다녀온 코스라
더 친근해 보이는 길이네요.
깽이님 신나하는 모습 오랜만에 봅니다.
암릉길이 더 좋은가 보네요 ㅎㅎ
봉정사 이름만 들었지 사진으론 처음봅니다.
수고하셨어요.
1년에 한번 열리는 산문 봉암사
대간길에 꼭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훗날 꼭 한번 가보세요
대야산 이구간이군요
일요일 날잡아서
회의거쳐
마무리
오름길과
내림길
어떤시스템이 좋을지
고민해보겠습니다
대야산 절벽구간 사고 많이 나는곳이죠
대간길이 9구간에서 11구간으로 건너뛰셨네요.
왜 그런지 이유는 대충 알것 같습니다.
지난 산행에서 우리가 밤새 걸어온 길이기에
주간산행 사진이 더 새롭게 보입니다.
덥고, 습기많고, 안개로 앞이 안보였던길....
오랜만에 여유있는 산행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요번주 대간길에서 뵐게요.
이번주에 조령이나 이화령에서 만날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뵙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읽다가 '대야산'의 뜻이 '큰아버지산'일 수도 있겠다는 말씀에서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한자어는 음이 같으면 넘나들어 쓸 수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大耶'와 '大爺'가 넘나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大爺'를 예로부터 '큰아버지'라는 뜻으로 쓴 일이 없습니다.
'대야'가 '큰아버지'라는 뜻으로 쓰는 것은 중국어입니다.
우리는 '백부(伯父)'라고 했을 뿐입니다.
언어라는 것이 문맥과 관습에 따라 뜻이 정해지는지라 오늘날에 와서 적당히 그렇게 쓰면 곤란합니다.
우리의 경우, '爺'라는 한자어는 Father의 의미가 아니고 Old man의 의미입니다.
즉, '어르신'이라는 말이지요.
따라서 '주변에 여러 산 가운데 어르신 산'일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럴 것 없이 원래의 의미대로 '크도다, 산이여!' 또는 '큰 산'의 뜻으로 보는 게 무난합니다.
이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산이 '대미산'입니다.
원래 대미산은 '黛眉' 즉, 푸른 눈썹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이었는데 (원래 眉자가 들어가는 산은 높다는 뉴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퇴계 선생께서 '大美' 즉 '큰 산'이라 새로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여기서 '美'도 크다는 뜻입니다
爺아버지 야
耶 어조사야자로 아버지를 뜻하는 글이죠
대야산 이름에 대한 유래나 정확한 정보는 없고 '야"자 또한 옛문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조선 정조때 문경현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지금의 야(耶)자를 썼다는군요. 대야산(大耶山)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라며 장문의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병만 그류. 괜히 먹물 먹은 체 해 본규. 산에 대해서야 지가 뭘 알것슈. 코끼리 등에 올라서 무겁지 무겁지, 하는 파리 한 마리 꼴이쥬.
@팔개 장문의 글 많은 도움이 되었구요
늘 많은 관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병만 아하, 이제서야 여기서 말씀하신 '큰아버지'가 '백부'가 아니고, '큰 아버지' 즉, '위대한 아버지'라는 뜻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더 큰 오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글이라면 맘대루 하슈, 하겠지만 제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방장님께는 몇 마디 덧붙이기로 하였습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려 조선시대에 자신의 아버지를 '야(爺)' 또는 '야야(爺爺)'로 부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중국어로는 그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한자 자전에서 중국 문헌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라고 '아버지'라는 뜻을 거기에 밝혀 놓은 것일 뿐,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마음 속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하더라도 '대(大)'자를 앞에다 붙일 리 만무하고요.
요즘에는 계란을 사러가서 '대란'을 사면 제일 작은 계란을 산 것입니다. 그 위에 특란, 그 위에 왕란이 있죠. 어떤 대회에서 상을 줄 때 '우수상'을 받으면 최고가 아닙니다. 그 위에 최우수상, 그 위에 대상, 그 밖에 특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같으면 '가작(佳作)'이면 그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라고 하거나 한자어로 '父' 또는 '親'으로 썼을 뿐입니다.
@팔개 귀한말씀 감사했구요
나중에 꼭 봐요
대간을 가긴 가야는데 휴무가 만만치 않아서 고민중이지만 시간 되는대로 한번이라도 대간길따라 걸어보고 싶네요 방장님 글과 사진을보니 더욱더 그리워 집니다 여유있게 걸으신것 같아 보입니다만 속은 어떻실지?ㅎㅎ
대간길 천천히 걸음하시면서 많은것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시간이 되시면 한구간 와주시구요
진행하시는 산길 늘 고이 즈려밟고 가시기 바랍니다.
대간길중에 젤 험난한 곳
깽이님 댈꼬 다니시느랴 짧게 가시고 ...
느러눕는 꼬장(?)에 제가 괜히 미안한 마음입니다.
꼬장 부리는 깽이님 참 재미나고 즐거운 분입니다.
다음 구간에는 어떤 꼬장을 부리고 넘으실지 모르겠지만
지루하지 않은 산길을 만들어 주는 시원함이 있는 분입니다.
새벽에 런닝으로 하루을 열가하다가
그냥 배낭들고 산으로 가길 잘한것 같습니다
오늘에 목표을 정하고 조심스럽게 걷는 산길에서
참 우연히 만남에 더욱 반갑고요.
잠시나마 역으로 걸음도 하며 그냥 함께 하고픈 마음뿐
뒤로하고 아쉬운 헤어짐에 ..........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산길 걸음해보니 25km는
할만하던군요.
수고 하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산길에서 만나서 너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가다보면 끝나는 길이 산길인데 늘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지나야겠습니다.
지리에 설때는 같이 서야죠
멋지고 아름답고 깨끗한 그림들 잘 봅니다.
행복한 모습들 부럽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많이 보려고 노력 중인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아직 돌팔이 수준이라 그런것 같네요
올만에 방장님 산행기 접하면서 편안한 산길을 느껴봅니다..
대간하면서 희양산 두 번은 갔었는데 제지를 당한적이 없어서
실감은 안나네요...산행기 편하게 잘 봤습니다...
희양산에서 내려다 보는 봉암사 경내 모습은 참 편안하고 좋죠
내년에 부처님 오신날 꼭 한번 가보시면 대간길에 많은 도움이 되실것 같습니다.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대야산 직벽구간이 걱정이 되고 이번구간이 걱정구간을 다녀오셨네요.
두분의 진행이 즐겁게 진행한는것 같이 보입니다.
빨리 진행하시는 방장님과 깽이님이 부럽습니다.
정보 감사드리고 한구간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멋진방장님^^
남매가 걱정하고 투정하며 거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참 쉽게 대간 다녀와 글 쓰시는 방장님...
저는 이렇게나 어려운데...
비우며, 줄이며...
쓸모없는 것들 거르는 것이
참 어렵구나... 생각합니다.
대간 마치는 날까지..
방장님 내공좀 흡수해야할낀데...
아무래도 대간길 끝나면
방장님 따라 걸을일 있을까나...
늘 죄송스럽고, 감사하고...
늘 건강 복 빌어드릴께유!~
복아~ 방장님한테 마구마구 쏟아져라.
마구할머니 방장님께 복 주이소~~
또 조만간 뵈어요~
쭈~욱 쭉 진행하시는 방장님과 깽이님의 대간길, 24차 팀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갑니다. 저희 24차 팀도 이번 달부터 부지런히 따라가겠습니다.
비 ☔️와 안개 몰고 다니시다, 파란하늘과 시원한 바람까지 보너스로 받으시니 눈이 호강하고, 깽이님과 함께 수고많으셨습니다 .^^
방장님과 지리-깽이님을 대간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가슴설레였습니다. 그런데...저는 6월14일까지는 대간길을 갈 수없는 상황이라... 그냥 설레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안전하게 즐거운 걸음으로 쭉~~내려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