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영성은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흔히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불린다. 근대가 인간의 이성과 과학, 객관적 진리와 보편적 가치를 신뢰하였다면, 포스트모던 시대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나 거대한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진리는 하나인가?”, “누가 진리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현대인은 제도와 권위보다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고, 객관적인 교리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체험되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기독교 영성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교회는 여전히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만, 현대인은 말보다 삶을 보고 싶어 한다. 교리를 듣지만, 그 교리가 실제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묻는다.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듣지만, 정작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갈망한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18세기의 인물인 존 웨슬리의 신앙과 목회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웨슬리의 영성은 단순히 과거의 경건운동이 아니다. 그의 신앙은 성경적이면서도 체험적이었고,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었으며, 내면적이면서도 사회적이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혼란 속에서 웨슬리의 영성은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중요한 영적 방향을 제시한다.
1. 포스트모던 시대의 영적 갈망과 웨슬리의 ‘체험하는 신앙’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제도와 권위에 대한 불신이다. 사람들은 “교회가 말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방식보다 “내가 실제로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신앙으로 흐를 위험도 있지만, 동시에 오늘의 교회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당신의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되는 하나님인가?”
존 웨슬리의 신앙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웨슬리는 기독교 신앙을 단순한 지적 동의나 교리적 이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참된 신앙은 인간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체험은 이러한 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오랫동안 목회와 선교, 경건생활에 힘썼지만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마음 깊은 곳의 평안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1738년 5월 24일, 로마서 서문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짐”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적 흥분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복음의 진리가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실제적인 확신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오늘의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와 같은 ‘체험된 신앙’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인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리적 언어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실패와 상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 원하며, 죄와 절망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실제적으로 발견하기 원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균형을 가져야 한다. 웨슬리의 체험은 결코 성경과 교리를 떠난 주관적 감정주의가 아니었다. 그의 경험은 언제나 성경에 근거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영성은 단순히 “느낌이 좋은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참된 영성은 성경의 진리가 인간의 삶과 마음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만나게 하는가? 우리의 설교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 머물지 않고 영혼을 깨우는가?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만 존재하는 종교적 습관인가, 아니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인가?
웨슬리는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기독교는 단지 알고 있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로 변화되는 삶이다.
2. 개인주의 시대를 넘어서는 웨슬리의 ‘공동체적 영성’
포스트모던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의 삶은 내가 결정한다”는 생각은 오늘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신앙 역시 개인화되기 쉽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꼭 교회에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신앙을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존 웨슬리의 영성은 이러한 개인주의적 신앙에 중요한 도전을 준다. 웨슬리는 개인의 구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결코 개인 혼자만의 신앙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의 신앙운동은 언제나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졌다.
웨슬리가 조직한 신도회, 속회, 선발신도회와 같은 작은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었다. 그곳은 성도들이 서로의 삶을 돌아보고, 신앙을 점검하며, 죄와 유혹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영적 공동체였다.
웨슬리의 유명한 정신은 바로 이것이다. “거룩함에는 사회적 성격이 있다.” 다시 말하면, 참된 기독교의 거룩함은 혼자만의 내면적 만족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사랑하고 섬기고 용서하는 가운데 거룩함으로 자라간다.
오늘의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 공동체적 영성은 더욱 중요하다. 현대인은 연결되어 있지만 외롭다. 인터넷과 SNS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픔을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마음을 나눌 공동체는 부족하다.
바로 이 시대에 교회는 다시 ‘영적 가족’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알고 삶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눈물을 함께 흘리며, 넘어질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웨슬리의 속회는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중요한 영적 모델이다. 대형 집회와 화려한 프로그램만으로는 성도의 영성을 지속적으로 돌보기 어렵다. 작은 공동체 속에서 말씀을 나누고, 삶을 돌아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할 때 신앙은 실제적인 삶이 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완벽한 교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공동체를 찾고 있다. 외형적으로 화려한 교회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회를 원한다. 정답만을 말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아픔을 함께 울어주는 사람을 원한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공동체 영성은 오늘의 교회에 이렇게 도전한다. “혼자 믿지 말고 함께 믿으라. 혼자 거룩해지려고 하지 말고 서로를 거룩함의 길로 세우라.”
3. 분열과 상처의 시대를 치유하는 웨슬리의 ‘사랑과 거룩함의 영성’
포스트모던 시대는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시대는 갈등과 분열이 심한 시대이기도 하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 세대 간의 갈등, 경제적 격차, 문화적 충돌은 사람들을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 때문에 상처와 분열이 발생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웨슬리의 영성은 ‘거룩함과 사랑의 통합’을 보여준다.
존 웨슬리에게 기독교의 완전은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상태였다. 웨슬리가 말한 성화의 궁극적인 방향은 결국 사랑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미워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참된 영성은 교회 안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고, 병든 사람을 위로하며, 억압받는 사람의 곁에 서고, 세상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삶으로 나타난다.
웨슬리의 삶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설교자였지만 단지 강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광산촌의 노동자들을 찾아갔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병든 이들을 방문하였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오늘의 교회 역시 이러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교회의 말과 삶이 다를 때 깊은 실망을 느낀다. 교회가 사랑을 말하면서 서로 미워하고, 정의를 말하면서 약자를 외면하며, 거룩함을 말하면서 세상의 욕망을 따라간다면 세상은 교회의 메시지를 신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이다. 더 많은 주장보다 더 진실한 섬김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웨슬리의 디비니티가 보여주는 길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영성은 세상을 정죄하는 영성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영성이 되어야 한다.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고, 거룩함을 추구하면서도 사람을 정죄하지 않으며, 복음을 전하면서도 상처 입은 이들의 곁에 서는 영성이 필요하다.
맺음말: 포스트모던 시대, 다시 웨슬리의 영성으로
오늘의 시대는 많은 것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공동체는 약해졌으며, 인간의 마음은 깊은 외로움과 불안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일수록 교회는 더욱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존 웨슬리의 영성은 우리에게 세 가지 길을 보여준다.
첫째, 성경의 진리를 삶 속에서 체험하는 신앙이다.
둘째, 개인주의를 넘어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적 신앙이다.
셋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사랑의 신앙이다.
웨슬리의 영성은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를 상대화하고, 관계가 무너지고, 영혼이 방황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더욱 필요한 복음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오늘의 교회가 다시 웨슬리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우리는 단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설명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경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세상을 정죄하기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될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진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리가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는 다시 살아야 한다.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
존 웨슬리의 영성은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가?” 그리고 더 깊이 묻는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가?” “그 은혜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그 사랑이 당신의 삶을 통하여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가 이 질문에 진실하게 응답할 때, 웨슬리의 영성은 다시 오늘의 교회를 깨우는 생명의 불꽃이 될 것이다.
경기연회 남양지방회 원천교회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
카페지기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 카페운영도 포기해야 할 형편입니다
요즘은 끼니도 거르며 하루하루 겨우 살고 있습니다
예수코리아 카페에서 알려드리는 글입니다
도움을 주셔야만 문서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한분이라도 도와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카페에 후원이 필요합니다 카페지기는 아주 어렵게
지냅니다 투병중에 생활고로 어렵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박경옥 전도사가 하루 두번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다
먹을것도 없습니다 한 분이라도 도와주셔서...
용기릏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후원이 없다 보니 공과금도 못내고 먹을것도 못삽니다
1만원 이라도 도와주시면 카페지기는 큰힘을 얻습니다
건강문제로 박스나 고물도 줍지 못합니다
앿값이 없는데 먹을것을 사야합니다 오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먹을것도 못사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없습니다
공지글에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이유를 올렸습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자동이체 정기후원 회원님이 계셔야 카페를 운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이체 회원이 없습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카페후원계좌-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카페후원계좌-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