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차 주제를 접하고 호연지기의 개념이 궁금해졌습니다.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란 단순히 물리적인 내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깊은 도와 의로 상징되는 도덕적인 내용과 긴밀하게 관련되는 지극히 크고 굳센 바른 기상을 의미한다는 점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주희와 왕부지 역시 이러한 호연지기에 대해 지극히 크고 굳센 바른 기상으로 여기며 이러한 호연지기를 잘 배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희와 왕부지는 호연지기의 배양에 관점을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면서도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주희는 ‘스스로 돌이키어 곧으면 그 배양한 것을 얻고, 또 해치는 것이 없으면 그 본체가 이지러지지 않아 틈이 없이 가득 채워진다.’고 하여 뜻의 곧음이 전제될 때 호연지기를 잘 배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희는 호연지기를 잘 배양될 것으로 여깁니다. 맹자는 호연지기의 지극히 크고 굳센 바른 기상을 배양하는 목적을 이상적 인간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여깁니다. 특히 그는 백이와 이윤등도 본받을만하지만 무엇보다 공자를 이상적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여기고 공자를 배우고자 합니다. 주희와 왕부지는 이러한 맹자의 관점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왕부지가 이에 대해 호연지기에서 자세히 분석한 것과는 달리 주희는 간단하게 언급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주희와 왕부지는 호연지기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대한 주석을 통하여 각자의 관점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호연지기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이지만, 호연지기를 배양하는 방법과 그 지향점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 차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주제 : 주희는 의라는 것을 본연적인 개념으로 보며 회복의 대상으로 삼지만, 왕부지는 의라는 것은 날마다 생성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주희와 왕부지의 입장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는가?
14주차 토론주제에 대한 저의 입장은 왕부지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토론하였던 경험을 떠올려 보았을 때 변화하는 세계에 변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았을 때 의라는 것 또한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개념이 아닌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날마다 변하고 또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세대에 맞추어 의라는 것 또한 새롭게 형성되어야 하고 그러한 의가 의미있는 의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왕부지의 입장을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