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장 뤽 고다르, 프랑수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 프랑스 누벨바그를 선도한 감독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왔습니다. 이들 누벨바그리언들은 전통적인 영화 만들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화 언어를 적극적으로 발명하고 개발하여 현대 영화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누벨바그에 대한 시네필들의 여전한 환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안타깝게도 2010년 두 명의 누벨바그리언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1월 11일에 에릭 로메르가, 9월 12일에는 클로드 샤브롤이 영면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중 ‘미스터리 스릴러의 대가’로 칭송받는 클로드 샤브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12월 14일부터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클로드 샤브롤은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시절부터 열렬한 히치콕 추종자였습니다. 감독 데뷔작 <미남 세르쥬>(1958)에서도 히치콕으로부터의 영향력을 숨기지 않았던 그는 <벨라미>(2009)를 유작으로 남길 때까지 50년 넘게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파헤친 스릴러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샤브롤은 가족과 여성의 죄의식과 강박증을 칼로 베듯 서슬 퍼렇게 파고들며 히치콕의 따뜻한 스릴러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그런 샤브롤의 진가를 회고할 수 있는 8편의 작품을 모았습니다.
아내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으로 만든 데뷔작 <미남 세르쥬>는 한때 잘 나갔던 인물이 퇴락하면서 겪는 강박증을 제3자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보며 프랑스 뉴웨이브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또한 <사촌들> (1959)은 상반된 성격의 인물 사이에서 형성되는 애증의 관계를 연극적인 배경과 사실적 묘사로 혼합, 샤브롤의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이후 꾸준히 수작을 발표하며 196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샤브롤은 1970년대에 이르러 극심한 부진을 겪었고 1980년대가 돼서야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는 초심으로 돌아간 듯 <마스크>(1987)와 같은 작품을 통해 히치콕을 연상시키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선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에 들어서는 보다 여유로운 시선 속에 거장의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을 연달아 발표했습니다. 의처증 남편으로 인해 지옥 같은 삶을 겪는 여자 이야기 <지옥>(1994), 부르주아 가정에 대한 하층민의 분노를 묘사한 <의식>(1995), 연쇄살인을 두고 여러 인물들의 심리가 사선으로 교차하는 <거짓말의 한가운데>(1999), 출생의 비밀이 봉인을 열면서 혼란에 빠지는 가족사를 살풍경하게 엮은 <초콜릿 고마워>(2000)와 <악의 꽃>(2002)까지, 샤브롤은 나이를 먹어서도 인간 내면에 고인 검은 우물을 길어 올리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클로드 샤브롤의 죽음은 그를 사랑하는 시네필들의 아픔이면서 세계 영화사의 한 순간이 빛을 잃은 안타까움이기도 합니다. 이번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는 샤브롤에 대한 추모의 의미가 더해져있는 까닭에 좀 더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감독 l 클로드 샤브롤 Claude Chabrol (1930~2010)
1930년 6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클로드 샤브롤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대가로 평가받는 감독으로, 누벨바그를 선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소르본대학에서 약리학을 전공했지만 파리의 시네클럽을 통해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과 어울리면서 이후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영화계에 첫 발을 디뎠다. <미남 세르쥬>를 발표하기 전까지 활발한 평론 활동을 펼쳤던 그는 에릭 로메르와 공저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누명 쓴 사나이>(1956)를 분석한 연구서 <히치콕> 을 집필했을 만큼 ‘히치콕주의자’로 유명했다. 그렇다고 샤브롤이 히치콕의 영화를 단순 모방한 것은 아니다. 누벨바그에 대해서도 “뉴웨이브(Nouvelle Vague)는 없다. 영화의 바다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창조한 감독이었다. 히치콕이 그랬듯 살인의 이면에 감춰진 죄의식과 강박증 같은 인간의 말라비틀어진 감정에 주목하되 프랑스적이라고 해도 좋을 배경과 감성을 섞어 샤브롤만의 미스터리 스릴러 문법을 확립한 것이다.
특히 <도살자>(1969) <야수를 죽여야 한다>(1969) <부정한 여인>(1969) 등과 같은 1960년대 후반에 집중된 작품을 통해 전성기를 열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프랑스 상류층과 중산층을 오가며 그들 세계 속에 팽배한 관계의 긴장과 폭발을 다뤘다는 점에서 특히 열렬한 추종자를 불러 모았다. 이후에도 샤브롤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은 흥행 성적으로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다소 힘들게 영화를 만드는 신세가 됐다. TV영화와 광고 연출까지 찍는 지경에 이르게 됐지만 <비오레트 노지에르>(1978)를 통해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 이후 유작 <벨라미>(2009)까지 안정적인 영화 경력을 이어갔다. 서울아트 시네마
첫댓글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어 9년 동안이 행복했다. 1월엔 어떤 영화로 40 여일을 영화 속에 빠질 수 있을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