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의 回想
둥둥둥…….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북소리와 함께 사물놀이 패들이 원을 그리며 운동장을 선회(旋回)한다. 대강당 앞마당에는 적색 깃발이 물결치고 머리띠를 두른 한총련(韓總聯)소속 학생간부가 구경하는 학생들에게 준비된 유인물을 배포하고 시위 군중을 모으고 있었다. 캠퍼스 내에는 반정부 현수막이 어지럽게 광장을 메우고 대형 확성기에는 선전 선동 방송이 쉴 새 없이 퍼져 나왔다.
내가 소속된 진압부대(鎭壓部隊)와는 8차선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보며 대치하고 결사항전을 예고하며 작전명령만을 기다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있었다. 잠시 후 시위대 학생들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시너에 톱밥을 섞은 화염병(火焰甁), 벽돌, 쇠파이프를 수십 대의 리어카에 실어왔다. 도착된 시위용품들은 다시 선봉대열에는 쇠파이프와 각목, 중간대열에는 화염병, 후속 및 별동대열에는 벽돌이 재분배 하는 것이 보였다.
무장을 한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정문 도로를 마주한 진압대에 가까이오자 투척“(投擲)”이라는 명령과 함께 수십 개의 화염병이 날아와 폭발했다. “1조 투척”, “2조 투척” 화염병과 벽돌이 연달아 날고 각목 부대가 벌 떼처럼 우리를 두들겼다.
그리고, 진압부대는 최루탄과 방패로 대응했고 무거운 방석 복에는 불이 붙고 방패는 부서지고 접전지역엔 최루탄 연기 속에 화염병 불꽃과 깨어진 병 조각이 거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우리는 힘없이 쓰러져 갔다. 날아온 화염병이 터져 시너가 묻은 곳은 치명적 화상을 입고 벽돌과 쇠파이프에 맞은 부위는 골절되었다. 결사항전으로 겨우 막아냈지만 피해 또한 많았다. 쓰러진 동료를 쉴 새 없이 실어 나르는 앰뷸런스 소리에 찢어질 것 같은 애상(哀想)을 느끼며 우리는 적이 아닌 적과 전쟁 아닌 전쟁을 해야만 했고, 하기 싫은 싸움과 피치 못할 대결을 해야만 했다. 민주화 물결이 메아리치던 80년대 6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땀에 젖은 방석 복을 입고 운명적으로 맞서야했다.
살상용(殺傷用) 화염병으로 무장한 공격적 시위대와 방어용(防禦用) 최루탄과 방패로 최소한의 방어개념으로 시위를 막는 우리와는 장비에서부터작전 개념까지 벌써 희생이 예고되는 싸움이었다. 긴 공직생활 가운데 단 3년간 시국치안부서( 時局治安部署)에 몸을 담고 있던 그 때가 가장 뇌리에 남는 것은 초급 지휘관으로 부하직원과 나 자신이 입은 정신적 육체적 상처와 변화의 물 결속에서도 내키지 않는 대결을 해야 하는 마음속 갈등(葛藤)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 입은 상처 때문에 17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 시위대가 던진 벽돌에 가슴을 맞고 휘두르는 파이프에 왼쪽 손가락 약지 안쪽마디가 골절되었다. 제대로 붙지 않아서 평생을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민주화를 외치던 항쟁이 노도처럼 방방곡곡 퍼지던 때 입은 영광의 상처라고 할까?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온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다. 꽃다운 청춘이 피어 보지도 못한 채 방화 불꽃 속에 희생( 犧牲)된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각지에서 화염병 세례를 받아 눈이 실명되고 얼굴, 손등, 목 부위에 화상을 입고 일생을 불구자로 살아가는 동료에 비하면 천만다행이다.
민주화를 주장하는 정치적 논리도 당위성은 있다. 그리고 실정법(實定法)상 법률에 위배되는 폭력시위를 막으려는 진압부대도 당위성은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 편이 아니었다. 시위대가 희생되면 국민적 영웅이 되고, 화염병과 방화 속에 희생된 진압 대원은 역사의 뒤안길에 한줌의 재로 변해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죽은 자를 보고 산자는 말한다.
아! 불꽃 속에서 사라진 무궁화여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간 자여
우리는 정녕 시대의 희생물인가?
역사 변화의 제단(祭壇)에
바치는 속죄양( 贖罪羊)인가?
살아남은 자의 눈망울에도 핏물이
쏟아지며 그들의 영전에 통곡하노라.
아직도 내 가슴엔 갈등의 앙금이 남아 있어 쉽게 지울 수가 없다.이제는 두 번 다시 서로가 불행해 지는 갈등의 골을 없애고 화합과 배려, 봉사와 질서 두 수레바퀴의 축이 되어 나라 발전에 힘을 모을 때이다. 그리하여 죽은 자에게는 예우를 하고 산자에게는 범죄로부터 질서를 확립하게 하며, 민생에게는 봉사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실어주고 사기를 북돋아 주는 것을 오매불망(寤寐不忘) 바랄 뿐이다.
6. 25가 갓 끝난 어린 시절 폐허가 된 지서(支署)앞 국기 게양대에서 날아갈 듯한 독수리 마크를 붙인 모자와 정복을 입은 호국(護國)경찰관이 국기를 하강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이 직업에 입문한지도 30여 성상이 지났다. 지난 30여 년간 힘찬 날개로 비상(飛上)하여 번뜩이는 눈초리와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민생치안에 위해요인을 가려내는 임무에 오직 한길로 걸어온 세월이었다. 이재는 힘차게 비상하던 날개도 힘이 없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닳아빠지고 예리한 눈동자는 흐려져 나를 슬프게 한다.
촛불이 몸을 태워 방안을 밝히듯 이 한 몸을 던져 국가에는 충성, 국민에는 봉사와 질서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혼신을 불태워 왔다. 이재 무거운 짐을 젊고 패 기찬 동료에게 대물림을 하여야할 때가 왔다. 나도 먼저긴 선배 동료들처럼, 후배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선배로 남기를 바라며 지나온 흔적을 관조(觀照)하면서 상처뿐인 병든 몸으로 정년퇴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간 국가라는 주인으로부터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충직하게 몸담았던 일터를 떠나 새로운 환경이 순탄치 않는, 비바람 몰아치는 황야에서 스스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먹이를 찾아야할 운명에 놓인 늙은 솔개는 “솔개의 우화(寓話)”처럼 다시금 내 몸을 추서러 혁신(革新)하고 부리와 발톱을 갈고닦아 보면서 지난날의 세월과 다가올 앞날에 대하여 깊은 회상(回想)에 잠겨 본다.
2005년 좋은문학 신인상등단(수필)
대구수필사랑문학회원
한국문인협회원
청송문학회원
경찰문학회원
팔공한시동우회원
청진수필동우회원
첫댓글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