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하늘이 높아졌다. 그 하늘 아래로 코스모스가 하늘댄다. 가을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코스모스가 고운 건 맑은 가을 하늘빛 덕분이라고. 그러나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코스모스 덕분에 가을 하늘은 비로소 가을 하늘다워진다.
경남 하동은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 하동군 북천면 이명마을 꽃단지 일원에서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는 지난 17일 일찌감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눈치 없이 늑장을 부리며 자리를 내 줄 생각을 않던 더위 탓으로 꽃소식이 조금 늦어졌다. 말인즉, 코스모스는 지금이 한창이라는 것. 다음달 3일까지 축제가 이어진다니, 이번 주말 하동엘 들르면 늦어서 더욱 반가운 가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축제의 정확한 이름은 '2010 하동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 '가을=코스모스' 공식에 가장 억울할 녀석이 바로 메밀꽃이다. 그래도 어쩌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이곳 축제장 역시 메밀꽃보다는 코스모스 쪽으로 눈길이 더 간다. 그 외 수수, 기장, 조 등 향토식물들이 1만 6천500여㎡(약 5천 평)이나 되는 축제장에 고루고루 퍼져 가을 손님을 맞는다. 가을 느낌뿐만 아니라 옛 고향의 정취마저 물씬 풍긴다. 경전선 공사 등으로 주변 경관이 다소 어수선한 것이 흠이라면 흠. 그래도 꽃밭만큼은 그런 생각을 잊게 한다.
연인들이 서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2010년 가을을 디지털 사진 파일 속에 담기 바쁘다. 기자의 눈앞에서 한 꼬마가 돌연 사라져버린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제 키만큼 자란 코스모스 속에 포~옥 파묻혔다. 어느새 머리부터 다시 나타난다. 한 녀석뿐만이 아니다. 두더지 게임에서 여기저기 쑥쑥 튀어올라오는 두더지 머리 같다.
조롱박 터널도 한 번 건너볼 만하다. 세계 50여 종의 각종 희귀한 호박과 뱀오이, 수세미…. 덩굴성 식물들의 탐스러운 열매가 터널 위로 주렁주렁 매달렸다.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과일로 만든, 아니 채소로 만든 집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점이라면 절대 따 먹으면 안 된다는 것.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즐겁다. 문화마당에서는 연극 공연, 난타 공연, 관악 연주, 전통 혼례, 영화 상영, 색소폰 공연, 간이역 시낭송회 등이 운영된다. 체험마당에서는 나비와 곤충 전시, 분재 전시, 이동 동물원, 전국 한우 그림 그리기 대회 등 체험행사가 마련된다. 또한 메밀묵, 메밀전, 메밀국수 등 메밀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들이 가을 나들이객들의 군침을 넘어가게 만든다.
가을이 내린 곳은 임의로 구획지어진 축제장뿐만은 아니다. 누렇게 변하고 있는 들판과 살랑거리는 바람, 북천면 전체가 가을이다. 그중에서도 북천역은 가을을 위해 지어진 역사 같다. 경전선의 중간인 북천역은 '코스모스역'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승강장 일부와 철로를 뒤덮은 코스모스 때문이다.
역사는 분홍색으로 곱게 칠해져있다. 그리고 그 벽 위로 잠자리들이 날아다닌다. 기자의 눈앞에도 잠자리들이 휙휙 지나간다. 어느 녀석이 벽에 그려진 놈이고, 어느 녀석이 허공을 휘젓는 놈인지 순간 헷갈린다. 플랫폼 의자에 앉아 타지도 않을 기차를 잠시 기다려본다. 누군가가 기차를 타고 내게로 올 것만 같다. 그 설렘이 바로 가을이다.
축제 기간에 맞춰 북천역사에서도 간이 코스모스 축제를 열고 있다. 그것까지는 좋다만, 그러면서 역사에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받는다. 이건 좀 너무하다. 그런데 뻘쭘히 역사 앞에 서있으니 마음 좋으신 역무원들이 그냥 들어가라신다. 아마도 입장료 정책은 코레일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들만의 지시사항이었나보다.
축제 현장과 북천역 사이에는 개관 2년째를 맞은 이병주문학관이 있다. 이병주 선생의 대표작 '지리산'의 무대를 미니어처 세트로 꾸며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단순히 그의 삶의 흔적만을 소개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흥미롭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 매주 월요일은 휴관.
이병주 선생에 대한 평가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다양하다. 작품들 중 '행복어사전'을 좋아하는 기자로선 당연히 이병주 선생의 문학관이 반갑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그저 조용히 쉬어가며 책 읽기에 좋은 공간. 다들 가을 여행 떠날 때 책 한 권씩은 들고 가지 않나. 책 한 권 없으면 가을 여행이 아니다. 그리고 이병주문학관을 들러야 할 또 하나의 이유. 가는 길 주변으로 허수아비들이 늘어서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주문학관을 나선 후에 들러볼 명소로 추천하는 곳은 바로 경남 사천시 곤명면의 다솔사(多率寺). '하동에서 갑자기 사천이라니?' 느낌으론 멀 것 같지만, 사실 하동군 북천면이 사천과의 경계에 인접해 있어 오히려 같은 하동군에 속하는 화개장터나 최진사댁보다 가깝다. 물론 반대쪽으로 조금 더 차를 달려 최진사댁에 가시겠다는 분, 굳이 다솔사로 가시란 말은 않겠다. 최진사댁도 충분히 좋다. 그러나 가을이 내린 다솔사의 고즈넉한 전경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일품이다.
다솔사의 가장 큰 특징은 경내 가장 큰 법당의 이름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점.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보통 적멸보궁은 진신 사리를 모셨으니 불단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는 것이 특징. 그러나 이곳 다솔사의 적멸보궁은 특이하게도 중앙으로 와불(누워있는 부처님)을 모시고, 그 뒤로 투명한 창(窓)을 내어 바깥 사리탑이 보이도록 했다. 그 이유는? 이 절의 주지 스님께 직접 물어보자. 운이 좋으면 다솔사의 유명한 차 한 잔도 얻어 마실 수 있다.
하동 코스모스 축제 가는 길
경남 하동군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 행사장을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곤양IC에서 내려야 한다. 이후 곤양IC와 연결된 58번 지방도를 타고 곤양 방면으로 진행하다 철길을 건너 만나는 원전교차로에서 좌회전해 2번 국도로 옮겨탄다.
10분 정도 2번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왼쪽으로 북천역 표지판이 보인다. 그대로 좌회전하면 북천역. 그대로 직진하다 보면 다시 왼쪽으로 이병주문학관 표지판이 보인다. 좌회전해서 2~3분만 가면 이병주문학관. 역시 무시하고 직진해 3분 정도 더 가면 도로변으로 축제장이 나타난다. 다솔사는 원전교차로 근방에 있다. 김종열 기자 |
첫댓글 하동까지 언제가나..가면 좋겠지만 넘 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