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 들은 말도, 백 번 읽은 문장도 단 한 번 봄(一見)만 못한다는 말처럼…
서예에 관심이 있다 보니, 될 수 있는 대로 전시장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해서체로 적은 작품을 마주한다. 붓끝은 여포의 창날(방천화극)처럼 날카롭기는 하지만 부드럽지 못하다. 화선지를 가득 채운 글자에 눈길은 세세하지만, 물 흐르듯 유연하지 못했다. 곧장 우아하고 품위 있는 행초서(行草書)를 맞닥뜨린다. 서예의 꽃이면서 서예가의 기량과 개성 그리고 창작이 잘 드러나는 서체를 접한다. 과연 이 작품은 누가 쓴 걸까? 낙관을 유심히 쳐다보는 하루였다.
요즘 우리 생활에서 그러하지는 않지만, 옛 양반들은 가난하게 생활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키는 것을, 삶의 목표로 여겼다. 사치스럽게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소망스러운 것이라고는 해도…. 그러므로 경제적 여유와 소비 욕구가 있으면서 겉으로는 짐짓 소박한 척 꾸미려는 욕망도 함께 일어났다. 그래서 단순하고 언뜻 초라해 보이지만 실은 값비싸고 희귀한 물건들에 대한 선호가 생겨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서예인들이 옆에 두고 늘 사용하는 붓·종이·먹·벼루를 말한다. 고산 윤선도1587-1672가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을 사랑해 ‘오우가(五友歌)’를 지었듯이, 문인들은 자신의 서재에서 가까이 두고 쓰는 물건을 벗이라 불렀다. 문방사우는 예전 선비의 가까이에서 한평생을 함께할 벗이며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기물이었다. 첫 돌잡이 때도 문방사우와 천자문이 어김없이 상에 올랐지만, 시대에 따라 돌잡이 용품이 조금씩 바뀌었다. 요즘은 방송인‧연예인이 되라고 마이크를 준비한단다….
붓에는 사덕(四德)이라는 게 있다. 붓은 붓끝이 뾰족한 모양을, 붓이 퍼졌을 때의 가지런한 모양을, 털 윗부분이 꽉 차고 잘 메여서 둥근 모양을, 붓털이 탄성이 있어 획을 긋고 난 뒤 세워진 모양을 말한다. 붓에 쓰는 털 중에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을 최고라 한다….
붓을 논하는 말 가운데 능서불택필 能書不擇筆이란 말이 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아무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뛰어난 목수는 연장을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하듯이. 즉 경지에 오른 사람은 도구나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도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통용되지만, 현실에선 명필일수록 좋은 붓을 골라 쓰라 한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속설은 어디까지나 ‘구양순(歐陽詢)’까지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에 민감하며 항상 이를 문제 삼고 있다.
중국의 당나라는 남북문화를 융합했다. 이 무렵 서도의 달인은 우세남, 저수량, 안진경, 구양순 등이 유명했으나, 그중에서도 구양순이 가장 유명했다. 스승은 왕희지다. 필력 없이 붓만을 탓한다면 결코, 명필이 될 수 없다는 이치다. 붓이란 격을 갖춰 서예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방사우는 소모품이지만 모든 게 관리를 잘하면 더욱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다. 특히 붓을 탓하지 말고, 어느 정도 글을 쓰고 나면 씻어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리고 촘촘한 빗으로 빗기면 다음에 쓸 수 있는 자세를 미리 갖추어야 한다.
오늘! 가난한 옛 선비들의 삶을 현재의 나를 대입시켜보지만, 붓을 잡으면 무상무념에 빠진다. 화선지에 글을 쓸 때의 느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므로 오늘도 한 글자 한 글자씩 화선지에 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