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만들지 않는’ 제품으로 승부하라
휴롬
김영기 회장이 군대를 제대한 뒤 대학을 중퇴하고 1974년 개성공업사를 차렸을 때다. 당시는 국내 전자업체들이 일본에서 거의 모든 부품을 수입해 TV를 조립해 팔았다. ‘일본사람들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국산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 등에 납품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노력을 좋게 봐주지 않았다.
“그래, 남들 따라해 봐야 뭐하겠어. 남들이 만들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겠어.” 이때부터 김 회장은 새 제품을 구상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건강에서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그 당시에는 폭음하는 술문화 때문에 힘들어하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일부 주부는 케일 등을 갈아 남편에게 먹이고 있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음식을 자연 그대로 섭취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를 만들면 건강에도 좋고 잘 팔리겠다.”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먹으려면 찧거나 짜서 먹는 기계를 만들면 기회를 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10년 개발한 제품, 짝퉁에 울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7전8기’는 코웃음을 칠 일이다. 수천 번 실패 과정이 반복됐다. 시작했으니 끝을 보겠다고 마음먹은 김 회장은 “1000번 해 보고, 안 되면 2000번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1만 번 하겠다고 다짐했다. 실패가 쌓이고 쌓이면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구상한 것을 도면으로 그리고, 선반으로 깎고, 가공해서 만들고 또 만들었다. “수천 번 만들고 부수면서 조금씩 개선되는 것을 느꼈다. 그 쾌감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개발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천신만고 끝에 1990년대 중반 녹즙기 개발에 마침내 성공했다. 반응도 좋았다. 녹즙기로 채소나 과일의 즙을 내 마셨더니 불치병이 나았다며 자료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짝퉁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녹즙기에서 중금속이 나온다는 내용이 방송을 타면서 소비자 반응이 급속히 싸늘해졌다.
다시 제품 개발에 들어간 김 회장은 2000년 ‘오스카 만능 녹즙기’를 세상에 내놨다. 양념도 갈고, 국수도 뺄 수 있는 다용도 제품이었다. 한 홈쇼핑 방송이 2000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잘 팔렸다. 이 제품 역시 짝퉁제품의 출현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두 번의 실패. 김 회장은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좁은 내수 시장에서 경쟁하느라 헛힘만 빼는 일은 더 이상 하기 싫었다. 넓은 해외시장에서 우리의 제품을 알아주는 고객들과 만나고 싶었다.
이에 김 회장은 채소보다 과일을 갈아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서양인의 식습관을 감안해 과일에 최적화한 스크루(압축기)를 개발했고 2007년 이 기술을 적용한 ‘휴롬 원액기’를 출시했다. 과일이나 채소의 영양소를 덜 파괴하고, 재료 특유의 색도 온전히 보전해주는 기능의 원액기는 세계 최초로 김 회장이 개발한 것이다. 여기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적용해 가정 인테리어제품으로도 손색없이 외장을 꾸며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때 마침 사회적으로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졌고, 휴롬 주서기의 인기는 날로 높아 갔다.
좁은 내수시장 포기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자
2009년 중국 홈쇼핑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중국 역시 웰빙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시기였다. 한류와 K-푸드 열풍까지 더해 중국에서만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외 시장에서의 성공에 맞춰 2011년에는 사명도 휴롬으로 바꿨다. 2015년 11월 중국의 대규모 세일행사인 ‘광군제’에서 휴롬 주서기는 2초당 1대씩 판매, 하루에 180억 원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지금 휴롬 주서기는 중국에서 ‘초코파이’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한국산 제품이 되어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 아시아, 남미, 중동에 이르기까지 전 대륙 85개국에서 원액기를 판매하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현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수출선 확대의 원동력이었다.
휴롬은 2010년 500만불 수출의 탑, 2010년 2000만불의 탑에 이어 2013년에는 1억불 탑을 수상했다. 관세청 통관 기준으로 휴롬은 2015년 1억4433만 달러를 수출해 전년 대비 101% 증가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 고통은 컸지만 그 열매는 크게 열리고 있다.
휴롬은 2016년 들어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중동 시장을 본격 개척하고 있다.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중동시장 공략을 위해 해당 지역의 문화와 환경을 반영한 제품을 내놓고 현지에 다양한 유통, 판매채널을 확보했다. 중동은 오렌지와 같은 과일의 원산지로 원액기의 성능이 제대로 알려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종교로 인해 술을 마시지 않는 문화적 특성이 원액기 판매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1억 4433만 달러로 수출 101% 증가
휴롬 관계자는 “현지 대형 쇼핑몰 등에 들어가 있는 드러그스토어 41개 매장과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를 시작했다”며 “최근 중동지역 국가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이란의 경제제재가 해제돼 이 지역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사제품, 짝퉁제품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휴롬’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노력도 전개하고 있다. 김 회장은 “5년 안에 휴롬이라는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지 못하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할 만큼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김 회장은 쌍둥이칼로 유명한 독일 헹켈처럼 휴롬을 소형 주방가전의 대표적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소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