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룡포 공원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 전경 . 국토의 동쪽 끝 어촌마을. 아홉 마리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포항 구룡포, 고기 잡는 어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구룡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동해안을 대표하는 어업전진기지로 성장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구룡포에는 1920~30년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근대역사문화거리엔 화려했던 1920~30년대 모습 생생 구룡포 공원 오르면 활기찬 항구 모습이 한눈에 형산강 물길 따라 영일만까지 크루즈 타고 가는 시내 관광 이색적 포항이 자랑하는 죽도시장에선 과메기·오징어에 살이 꽉찬 대게 유혹
■1920년대 재현한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 구룡포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입구. |
구룡포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최근 포항시청이 1920~30년대 구룡포 거리의 모습을 복원한 골목길로 들어서면 일본식 가옥이 늘어서 있다.
골목 입구에는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 마을에서 유지 노릇을 했던 하시모토 겐기치가 살았던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이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구룡포로 건너와 엄청난 부를 일군 하시모토가 그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영원히 이 땅에서 살 것으로 착각하고 지은 집일지도 모른다.
8·15 광복과 함께 하시모토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적산으로 분류된 이 집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결국 2010년 포항 시청에 매입되는 우여곡절 끝에 역사관으로 재단장된 공간이다.
 | 일본식 가옥이 늘어선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
역사관에 들어가면 일본식 다다미방과 벽장, 오래된 재봉틀이 눈에 들어온다. 2층에는 날마다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불당이 있다. 100년 전 일본 사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본식 선술집과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어보는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인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촬영했던 공간도 보존되어 있다.
5천 년 역사의 최대 치욕으로 기록될 종군 위안부 문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 나라, 일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리에 굳이 예산을 투입해 관광지로 조성할 필요가 있었는지. 그런 곳을 애써 찾아가는 우리 국민의 심리는 또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이제는 우리가 일본을 앞설 수도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까. 아니면 미우나 고우나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은 모두가 '소중한 역사의 일부'라는 현실적인 판단에서 나온 일일까. 그것도 아니면 일본인 관광객을 겨냥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포항시청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수용해야 할까.
 | 구룡포공원 입구 계단길. |
단정적인 평가는 유보키로 하고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를 걷다 보면 구룡포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때 일왕을 숭배하는 신사가 있었던 현장이다. 8·15광복 직후에 피 끓는 청년들이 몰려가 신사를 부수면서 '왜색일소'를 외쳤던 곳이다. 현재 그곳에는 6·25 전쟁 때 숨진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이 서 있다.
구룡포 공원에선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닻을 내린 어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구룡포 대게, 모리국수, 자연산 횟집 등등. 현란하게 들어선 간판이 풍요로움을 전해준다.  | 포항 크루즈 선착장. |
■크루즈 타고 포항 시내 투어
공원을 내려와 포항 시내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를 물으니 형산강 물길따라 영일만을 오가는 포항 크루즈를 타볼 것을 권한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바다가 강물을 품지 못했던 40년/ 길고 긴 이산의 고통을 견디어 내고/ 이제는 하나 된 물길이 …." 2014년 1월 8일. 형산강과 영일만을 연결하는 포항 크루즈가 첫 운항을 하던 날 박승호 당시 포항시장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배가 고파 보릿고개를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 형산강 물길을 막아 택지를 조성했던 매립지를 걷어내고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게 되던 날, 그날 하루만은 포항시와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부둥켜안고 하나가 되었다.
항일 열사들의 핏값으로 받은 돈으로 지은 포항제철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추진하는 굴욕을 감수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매립지를 걷어내는 쾌거를 이뤘다는 멘트와 함께.
 | 포항운하관. 포항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있다. |
포항 운하 양측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뱃길을 따라 펼쳐지는 공원 쉼터에는 각종 조각품이 줄지어 서 있다. 고릴라처럼 생긴 사람이 역기를 들고 있는 조각품을 스쳐 지날 무렵, "힘자랑하느라 역기를 내려놓는 법이 없다"는 선장의 멘트에 폭소가 터져 나온다.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죽도시장이 있다. 동해안을 대표하는 어시장이라는 자랑 섞인 설명이 뒤따라 나온다. 영일만에는 과거 군함으로 활약했던 포항함이 정착해 있다. 이제는 퇴역해 선상 생활 체험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소개말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영일대 해수욕장의 뒤편에는 아파트촌이 형성되어 있다. 도시 주변 경치가 좋은 곳엔 어김없이 아파트가 들어서는 현상은 해운대와 다를 바가 없다.
 | 죽도시장 건어물 가게. |
물길 관광을 마치고 포항이 자랑하는 죽도 시장으로 향했다. 구룡포 과메기와 오징어…. 싼 맛에 특산품을 구입하다 보면 끝이 없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대게 삶는 냄새가 발길을 잡는다. 살이 꽉 찬 대게를 맛보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권유에 소주 한잔을 걸치니 피로가 절로 풀린다. 고도성장을 이루던 시절, 포항제철 노동자들이 앉아서 맛보았을 소주 맛도 이렇지 않았을까. 복잡한 상념 속에 맞잡은 소주잔에는 찬이슬이 맺혀 있었다.
글·사진=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여행 팁 ■교통편 대중교통 편은 부산종합터미널(노포동)에서 포항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1시간 20분 소요. 요금 8천 100원. 열차를 이용하려면 부전역에서 오전 9시 40분에 포항행 무궁화호가 떠난다. 2시간 30분 소요. 요금 8천 900원. 포항 시내에서 구룡포로 가려면 시내버스 200번과 201번을 타면 된다. 30~40분 소요. 자가운전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산업로로 바꾸어 타면 된다. 1시간 50분 소요. 통행료 약 4천 원. ■먹거리  구룡포에서 반드시 맛보아야 할 향토음식으로 단연 모리국수를 추천한다. 모리국수는 구룡포 앞바다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막걸리와 함께 허기를 달래던 서민 음식이다. 아귀와 새우, 미더덕, 대게 등 구룡포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에다 콩나물과 칼국수를 넣고 끓여서먹는 영양식이다. 까꾸네 모리국수. 2인분 1만 2천 원. 3인분 1만 6천 원. 4인 이상 1인당 5천 원. 054-276-2298. ■ 잠잘 곳 아름다운 세상; 054-284-8377 동틀 무렵; 010-8590-5952 해뜨는 집; 054-284-2515 은정민박; 010-7114-1043 우정민박; 054-276-3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