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플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100만명의 성도가 기도회를 하는데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어요. 그 모습은 아직도 제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민족복음화운동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엑스플로 74대회에 참석했던 ‘타고 모토요시’(多胡元喜) 일본크리스챤신문사 회장(일본 ‘생명의말씀사’ 그룹 회장)이 엑스플로 74대회를 기획하고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김준곤 목사(한국C.C.C.설립자·성시화운동 총재)를 만나 당시의 감동과 은혜를 나눴다. 일본크리스챤신문사 서울지국 개설과 일본 ‘생명의말씀사’ 새 사옥 건립을 위한 모금을 위해 한국을 찾은 타고 회장은 지난달 29일 오전 김준곤 목사를 만나 엑스플로 74대회와 일본 선교를 주제로 환담했다. 오후에는 국민일보사를 방문, 백화종 전무이사를 만나 양 신문사의 협력을 논의했다. “김준곤 목사님은 저의 영적 아버지이자 멘토입니다. 1973년에 만나 지금까지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개인적인 인연을 소개한 타고 회장은 “김준곤 목사님은 일본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라며 하나의 일화를 소개했다. “1973년 일본에 오셔서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제직사경회를 인도하셨는데 3일간 금식 하시면서 집회를 인도하시는 것을 보고 일본 교회 목사님들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 교계가 김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물 다섯의 젊은 청년이었던 타고 회장은 엑스플로 74대회를 준비하면서 김준곤 목사가 “일본에서 3000명을 동원하라”고 하자 열심히 동원을 했다. 그 결과 1000명이 참석했다. 1000명의 숫자는 일본 교계의 현실로 볼 때는 많은 숫자였다. 또한 한국교회사를 일본어로 번역 출판해 일제가 한국교회를 탄압한 슬픈 역사를 알게 하는 일도 담당했다. “엑스플로 74대회가 열린 여의도는 국회의사당과 여의도순복음교회만 있고 나머지는 전부 허허벌판이었어요. 당시 엄청난 인파가 천막과 학교 교실을 숙소로 삼고 전도훈련을 받았는데 저도 그때 주님을 위해 살기로 헌신했습니다.” 대회 중간에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육영수 여사)이 서거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참석자들은 흔들리지 않고 기도한 한국 크리스천들의 믿음의 모습은 아직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타고 회장은 인터뷰 중 그 당시 한국 대학생들로부터 배웠다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찬양곡을 한국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불렀다. 뉴스파워=김철영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