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왜 저항의 종교인가, "너희는 종의 멍에 메지 말라
#궁궁통1
마르틴 루터는
처음에
가톨릭 사제였습니다.
중세 때 타락한
가톨릭의 내부를 향해
개혁을
요구하다가
요주의 인물이
됐습니다.
결국
1529년 독일 제국의회에
루터는 불려갔습니다.
황제 카를 5세와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루터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피력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종교개혁가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렀습니다.
‘저항’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개신교는 태생부터
저항하는 종교입니다.
무엇에 저항하는
종교냐고요?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에게
그걸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세 가지 저항을
말했습니다.
“자기가 믿는
종교 전통에 대한
저항이다.
불합리한 국가적 권위와
제도적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개인의 신앙 양식에 대한
저항이다.”
#궁궁통2
루터의 신앙은
한마디로
‘저항’입니다.
그건
막무가내식 저항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근원을 향한,
이유 있는
저항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본래 가톨릭 사제였다.
교회 개혁을 요구했으나 묵살되자,
그는 가톨릭 밖으로 나와 종교개혁을 외쳤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요.
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저항’이란 단어를
잃어버렸다.
교회에는
그 자리에 다른 단어들이
들어서 있다.”
이 교수는
그게
‘순종’이나 ‘복종’ 같은
단어라고 하더군요.
“교회는 이런 말들을
믿음과 동일화시킨다.
순종=믿음이고,
복종=믿음이라고 말한다.
그 와중에
개신교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사라지고 있다.”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기독교가 로마를
기독교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는
그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화한 거다.
그게
기독교 첫 1000년의 역사였다.
루터는
그걸 뛰어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세상에는
새로운 가치가
태동했습니다.
다름 아닌
근대와 자본주의입니다.
“개신교 안에서
태어난 게
자본주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돌아보라.
자본주의가
개신교를 철저히
자본주의화시키고 말았다.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화한 것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의 크기=은총의 크기,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목회자도
꽤 많습니다.
#궁궁통3
기독교 신앙의
출발선이
어디일까요.
이 교수는
그게
‘개인의 자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려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가면 어떤가.
교회가 사람들을
집단적 인습에
길들여지도록 만든다.
교회에 가면
내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볼 여지가
오히려 없어져 버린다.
교회는 사람들을
집단화한다.
개인을 고독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고독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거기서 출발했다.”
개인의 고독,
그것은
예수가 40일간
금식하며 보냈던
광야의 고독과도
통합니다.
이 교수는
그런
고독을 통해
자각이 일어나고,
그런
자각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로 향하는
저항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500년 전
루터의 사유는
제도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
일이었습니다.
#궁궁통4
이 교수는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성경 구절을
하나 꼽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마르틴 푸터는 당시 라틴어로만 돼 있던 성경을 처음으로 독일어로 번역했다.
당시 등장한 인쇄술의 발명도 독일어 성경의 대중화에 크게 일조했다.>
이 교수는
이게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짚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종교의 노예,
제도의 노예,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이지,
안식일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이 시대에도
종교개혁이 절실하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이지만,
우리도
하나님의 희망이다.”
[출처:중앙일보] 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