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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김대건 베드로 신부)
31. 하느님 말씀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고 직접적이며, 아주 단순 명료하여, 교회는 이를 상대적으로 해석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본문들에 대한 교회의 성찰은 그 힘을 줄이거나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용기와 열정을 가지고 그 권고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합니다. 왜 그토록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듭니까? 개념적인 도구는 설명하고자 하는 실재에 더 가까워지게 하려는 것이지 우리를 그 실재에서 더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 「복음의 기쁨」. 194항 -
⇒ 가톨릭교회는 계시 종교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인간에게 직접 알려주셨다고 믿는 것이죠. 그리고 계시 말씀은 성경을 통해 현재의 신앙 후손들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구약 성경의 원문은 히브리어로 작성되었고, 신약 성경의 원문은 히랍어로 작성되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교는 초기 박해 시대를 보내다가 313년 밀라노 칙령이 선포되면서 로마 제국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자 성 다마소 1세 교황님이 예로니모 성인에게 대중 라틴어 성경의 번역을 명하셨고, 성인은 382-405년까지 23년간 동굴 속에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 덕분에 불가타(‘대중적’이라는 뜻을 지님) 라틴어 성경이 완성되었고, 누구나 쉽게 성경 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후로 우리나라는 개신교 성서학자들과 공동 번역한 《성서》를 가톨릭 신자들도 사용하다가 2005년 4월(부활절),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새번역 《성경》이 출판되었습니다.
32. 실제로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서 재물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교회의 분명한 본보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과부들이 날마다 생계를 지원받는 문제가 해결된 방식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사도 6,1-6 참조).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 출신의 과부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홀대받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그리스 문화권의 유다인들이 품고 있는 특정한 불만을 잘 보여 줍니다. 사도들은 이에 추상적인 말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람을 향한 애덕을 중심으로 삼아, 자신들이 말씀 선포에 전념하는 동안 식량을 나누어 주는 일을 맡길 수 있는 평판 좋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도록 공동체에 요청함으로써 과부들을 위한 지원을 재정비하였습니다.
⇒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는 박해의 역사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전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은 박해의 시작을 알려준다면, 바오로딸에서 2012년 번역 출간한 소설 『파비올라』에는 4세기 초대 교회의 생생한 모습들을 전합니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박해 시기에도 신앙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삶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공동생활로 인해 궁핍하긴 했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10월, 곧 전교의 달이며 묵주기도 성월을 맞이하는 우리는 신앙 선조들의 삶의 모범을 닮아야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본받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신비를 일상에서 체험하세요. 믿음과 희망과 사랑,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33. 바오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갈라 2,2) 사도들과 상의하려고 예루살렘에 갔을 때, 그는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갈라 2,10 참조). 그래서 바오로는 가난한 공동체들을 도우려고 다양한 모금 활동을 벌였습니다. 바오로가 이러한 행동을 한 두드러진 이유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하느님의 말씀은, 평소에 자비롭고 사심 없는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너그러움은 정녕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들을 위한 약속들로 가득합니다.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 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잠언 19,17).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루카 6,3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이사 58,8).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마음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지니셨던 “가엾은 마음”(공관복음서에 10번 나옴)을 닮으려는 노력입니다. 그럴 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인 나눔을 실천할 수 있으며,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내어줄 수 있습니다. 이는 내가 먼저 하느님께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다고 느낄 때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나누고 베풀수록 곳간은 마르지 않고 더욱 풍성해집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너그러움은 그들에게 이롭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선행을 실천하는 이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진리를 체험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넘쳐납니다. 여러분도 그런 체험을 해보셨나요?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나누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세요.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실 것입니다.
34. 성경에 기록되어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전해진 초기 교회 공동체의 삶은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일 뿐만 아니라 애덕을 통하여 행동하는 믿음에 대한 증언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항구한 영감이 되어 왔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이 기록들은 마치 끊임없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비옥한 씨앗처럼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사랑과 애덕 활동을 실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 어제(10.3) 세종 성요한바오로2세 성당에서 사회복음화분과(장)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10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전례로 봉헌하면서 지구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본당 공동체를 위한 분과장님과 분과원들의 활동이 공동의 집인 지구를 아끼고 보살피는 신앙 행위이며 기도 행위임을 기억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기후 재난 시대와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했습니다.
본당마다 상황이나 관심도가 달라서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봉사자들에게 어제 하루가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영적인 힘을 얻는 시간이었기 바랍니다. 힘들수록 대화와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초기 교회 공동체의 삶이 그러했고, 지금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니까요. 결국 말씀의 힘이 살아 숨 쉬는 신앙은 행위를 동반합니다.
제3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35. 전임 교황께서는 교황직에 선출되신 지 사흘 뒤에 언론 대표들에게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바랍니다!” - 커뮤니케이션 매체 대표 알현, AAS, 105(2013), 381면. -
⇒ 여러분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떠올리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나요? 그분의 삶을 표현하는 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9.29 대전 목동 성당 특강 때 참석자들에게 물어봤더니 가난, 회심, 평화, 오상 등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저는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임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보여 준 11년간의 행적을 돌아보면 두 분의 삶이 너무나도 닮아서 겹쳐 보입니다.
10.3은 프란치스코 성인 선종 8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희년을 보내고 있는데요. 성인의 삶과 정신을 이 시대, 우리의 일상 안에서 되살리고 실천하는 방법은 전임 교황님의 문헌이 알려줍니다. 그러니 말씀과 창조 세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이웃과 모든 피조물에게 나눠주세요. 그리고 시간이 되면 10.8(목) 19:30 대전 목동 성당에서 공연하는 “프란치스코, 맨발의 찬가” 뮤지컬도 보러 오세요.
36. 이러한 열망은 교회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본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964,11,21., 8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글판, 2007(제3판). - 라는 이해를 반영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가장 작은 이들과 동일시되도록 부름받았기에, 교회의 핵심에는 “이 분명한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어떠한 의심이나 변명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는 우리 신앙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유대가 있다는 사실을 주저 없이 밝혀야 합니다.” - 「복음의 기쁨」, 48항. - 이와 관련하여 거의 이천년에 걸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밝힌 수많은 증언이 있습니다. - 이 장에서는 이러한 증언들 가운데 일부를 제시한다. 이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세상 안에서 교회의 현존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을 특징으로 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가장 궁핍한 이들을 향한 관심에 관한 더 깊은 성찰은 다음 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V. Paglia, Storia della Povertà, 밀라노, 2014. -
†⇒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예수님의 강생을 시작으로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해 드러낸 하느님 사랑의 방식입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약화시키는 어떠한 의심이나 변명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지닌 사람이 이런 삶을 불편해한다면 신앙의 본질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탓일 겁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바오로 사도를 필두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성인들의 삶을 잠시 살펴볼 것입니다. 성경 말씀과 교회의 역사가, 그리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간추린 사회 교리도, 마지막으로 역대 교황님들의 다양한 문헌들은 한결같이 가르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이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아끼고 잘 돌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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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참된 부
37. 바오로 성인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자들 가운데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1코린 1,26)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였음에도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볼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태동하던 무렵, 사도들은 공동체에서 뽑힌 일곱 사람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어느 정도 그들을 자신들의 직무 안에 받아들여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 곧 그리스 말로 디아코니아(diakonia)를 위하여 그들을 임명하였습니다(사도 6,1-5 참조).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피를 흘리기까지 증언한 첫 제자가 바로 이 일곱 명 가운데 스테파노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스테파노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삶의 증거와 순교의 증거가 결합합니다.
⇒ 12월 26일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입니다. 성인은 사도행전 6-7장에 등장하는 것처럼 초대 교회의 일곱 부제 중 한 명인데요. 성인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 바친 기도가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였으니까요. 결국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삶과 순교는 예수님에게서 성인에게로 옮아갔습니다.
이는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회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신앙 선조의 삶을 통해 계승되고 있으며, 신앙의 후손들이 닮아야 할 모범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이렇게 전혀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펼쳐집니다. 자기 방식대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체험한 이후에 사도로 변모했습니다. 또한 이것이 박해의 여파 속에서 멈추지 않고 온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간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38. 두 세기가량이 흐른 뒤, 또 한 명의 부제 라우렌시오 성인이 순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결합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충실을 비슷한 방식으로 증명합니다. - 성 암브로시오, 「성직자의 의무」(De Officiis Ministroum), Ⅰ, cap. 41, 205-206, 『라틴 그리스도교 문학 전집』(Corpus Christianorum, Series Latina: CCL), 15, 투른하우트, 2000, 76-77; Ⅱ, cap. 28, 140-143, CCL, 15, 148-149 참조. - 암브로시오 성인의 기록에 따르면, 식스토 2세 교황 재위 때 로마의 부제였던 라우렌시오는 로마 당국에서 교회의 보물들을 넘기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다음 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약속한 보물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 「성직자의 의무」, Ⅱ, cap. 28, 140. -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 일화를 이야기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이들보다 더 소중한 보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기쁘게 드러내 보여 주시고자 합니다.” - 「성직자의 의무」, Ⅱ, cap. 28, 140. - 이어서 교회의 직무자들은 결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재물을 축적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은 성실한 믿음과 현명한 선견지명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그것에서 개인적인 이익을 챙긴다면 그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 수익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죄수를 구하는 몸값으로 내놓는다면, 그는 자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 「성직자의 의무」, Ⅱ, cap. 28, 142. -
⇒ 8월 10일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입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에스파냐 우에스카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가운데 수석 부제였던 그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일이었습니다. 258년 무렵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그는 교회의 재산을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는 불에 타죽었습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자신의 직무를 통해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저도 신앙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사제를 꿈꾸며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베풀려고 노력합니다.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신비를 체험하면서 말이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사도 20,35)
교부들과 가난한 이들
39. 초 세기부터 교부들은 가난한 이들 안에 하느님께 나아가는 특권적인 길, 곧 그분을 만나는 특별한 길이 있음을 인식하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베푸는 애덕은 도덕적 덕목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신자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 곁에 있는 데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의 살아 계신 몸의 단순한 ‘부속 기관’이 아니라 필수 부분으로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순교를 앞두고 스미르나 공동체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애덕 활동을 실천할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권고하며,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하여 틀리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저들이 얼마나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있는지요! 저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곧 과부, 고아, 억압받는 이, 죄수나 자유인, 굶주린 이나 목마른 이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습니다.”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Epistula ad Smyrnaeos), 6, 2, 『그리스도교 원전』(Sources Chrétiennes: SC), 10bis, 파리, 2007, 136-138. -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 주교는 교회의 직무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원로들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심을 가져야 하며, 길 잃은 양들을 회개시켜야 합니다. 모든 병자를 방문하고, 과부나 고아나 가난한 이들을 소홀히 하지 말며, 언제나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좋은 일이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성 폴리카르포,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Epistula ad Phlippenses), 6, 1, SC,
10bis, 186. - 이 두 증언에서 우리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환대와 정의의 장소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교부(敎父)’란 말은 초대 교회의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삼위일체 교리와 다양한 신학적 문제들을 확립한 분들입니다. 한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 축일은 10월 17일입니다. 사도 성요한의 제자였던 이냐시오 성인은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 중에 일곱 개의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 교부이며 순교자입니다.
또한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 주교 축일은 2월 23일입니다. 성인은 사도 성요한의 제자였고 사도 교부이며 순교자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일곱 편지 중 하나가 폴리카르포 주교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처럼 두 분은 한결같이 순교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에 충실할 때,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수행한다는 본을 보였습니다.
40. 유스티노 성인도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원로원 그리고 로마 시민들에게 보낸 첫째 호교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궁핍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여겼기에 그들에게 최대한 모든 것을 베풀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주간 첫날 기도하러 모인 회중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그리스도교 전례의 핵심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나눌 수 없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전례 거행의 특정 시점에서 “부유하고 뜻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칩니다. 이렇게 모인 예물은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맡겨지고, 지도자는 고아와 과부,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궁핍한 이, 갇힌 이, 그리고 우리 가운데 머무는 나그네를 돌봅니다. 한마디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돌봅니다.” - 성 유스티노, 「제1호교론」(Apologia Prima), 67, 6-7, SC, 507, 파리, 2006, 310. - 이는 초기 교회가 믿음과 사회적 행동을 분리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야고보 성인이 가르쳐 준 것처럼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언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으로 여겨졌습니다(2,17 참조).
⇒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은 6월 1일입니다. 성인은 2세기 초 사마리아 지방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의 그리스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스 철학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교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입문하여 신앙의 설교자로 활동했습니다. 에페소에서 「트리폰과 나눈 대화」를 저술하였으며, 로마 황제와 원로들에게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책을 펴내고, 로마에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도 세웠습니다.
성인은 165년 무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다른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순교했으며, 야고보 사도처럼 믿음에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교했습니다. 이는 10.8 관람했던 뮤지컬 “프란치스코, 맨발의 찬가”에서 전하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갈망했던 프란치스코는 고통 속에서도 참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몫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