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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자녀/교육
제목 : 자녀교육 어떻게 할까요?
성경 : 삼상 2:22~26
찬송 : 524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0505 낙양교회 어린이 주일 낮 예배
삼상 2: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삼상 2: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삼상 2: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삼상 2: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오늘은 어린이 날이면서 어린이 주일입니다. 연휴가 주일이어서 내일 대체 휴일입니다만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자녀 교육’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요즘 흔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인구절벽 시대’라고 부릅니다.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져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인구가 너무 많아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정책입니다. 인구 대국이라는 중국도 과거에는 산아 제한 정책을 펼쳤는데 지금은 오히려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이를 적게 낳거나 하나뿐인 가정이 점차 늘어나면서 자녀 교육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자녀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나옵니다. 그는 비교적 선한 왕으로 인정받았던 사람입니다. 죽을병이 걸렸는데 통곡의 기도를 드렸고 기도응답으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는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5세 때 왕위에 올랐고 29년을 재위하고 54세에 죽었습니다. 그는 39세 때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은 후 42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므낫세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십이 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죽을병이 나은 후 3년 만에 아들을 본 것입니다. 죽을병에 걸렸던 사람이 병이 낫고 거기에 아들까지 낳았으니 얼마나 금지옥엽(금쪽이)으로 키웠을까요? 그 결과 므낫세는 남쪽 유다 왕들 중에 가장 악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왕하 21:10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왕하 21: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왕하 21: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왕하 21: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왕하 21: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왕하 21: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므낫세가 이렇게 악한 왕이 된 배경에는 히스기야가 아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선한 왕이었고 기도 응답을 받아 죽을병까지 고침 받은 왕이었지만 자녀교육은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자녀 교육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 중의 과제입니다.
오늘 봉독해드린 말씀은 두 가정의 자녀 교육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자녀 교육
사사시대 끝 무렵에 등장하는 엘리 제사장은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켰을까요?
√1)엘리는 자녀들의 죄악에 무관심하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으면서도 두렵고 떨림으로 제사장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제사를 짓밟고 신성모독죄를 범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직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백성들이 제사 드리러 오면 먼저 고기를 빼앗아 구워먹거나 삶은 고기를 세살 갈고리로 찔러 먼저 먹었습니다.
삼상 2:17절에 보면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22절에 보면 소위 제사장들이란 사람들이 회막 문에서, 즉 거룩한 성전 안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는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무관심했습니다.
삼상 3:13절에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식이 저주를 자청하는데 금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식들의 죄악에 무관심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자식이 저주를 자청하는 죄를 범하는데 무관심한 부모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2)엘리는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삼상 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하나님을 알지 아니했다는 말을 구약에서 “yaduo(야두)”라고 합니다. “야두”라는 히브리어는 “식별능력이 없다, 깨달을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식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불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와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가정이 가장 멀리 떨어지는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호6:3, 삼상2:6-7).
불량자를 영어 성경에서는 “wickness(사악함)”, “worthness(가치가 없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사람으로서 사악하고, 가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은 예배를 멸시했습니다(17절).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손을 댔습니다(30절).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죄를 범했습니다(22절). 거룩하고 깨끗해야 할 집안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엘리가 그 자녀들에게 말씀대로 책망했으나, 그 자녀들이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24-25절).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가서 두 아들이 죽음을 당합니다(삼상 4:11). 그 사실을 알고 엘리는 놀라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었습니다(삼상 4:18).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바르게 교육해야 합니다(잠13:24).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는 자식의 고집을 속히 꺾을수록 좋다고 말했습니다. 찰흙도 굳기 전에 모양을 바로 만들어야지, 굳어버리면 만들 수 없습니다.
엘리는 자식들을 키우는데 실패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실패했습니다. 자식들은 제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도, 아버지의 말씀도 듣지 않는 불량자요, 패륜아가 되었습니다. 이를 원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엘리 제사장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 아들들의 잘못을 다 보고 알 수 있는 제사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경고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귀하게 여김으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말씀을 아들들에게 바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보다 보이는 두 아들들을 더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삼상 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는 것은 앞서 희생 제물과 관련해 저지른 그들의 죄를 일컫는 것입니다.
삼상 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삼상 2: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삼상 2: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삼상 2: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삼상 2: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삼상 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를 멸시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30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나님께서 제사장 집안을 향해 맺으신 영원한 언약(참조, 출 28:1~3)이 엘리의 집안에서는 파기됨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이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엘리 집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하셨습니까?
삼상 2: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삼상 2: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삼상 2: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엘리는 기도가 부족했습니다.
한나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엘리는 한나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여서 ‘술을 끊으라’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엘리도 한나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면 자식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 그 길을 돌이키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엘리가 기도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나의 자녀 교육
√1)한나는 자식을 거룩하게 키웠습니다.
삼상 2: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한 대로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성막으로 데려가 수종들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낳은 아들입니까? 그럼에도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바친 것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어렸을 때 세마포 에봇을 입었는데 에봇은 본래 대제사장의 옷으로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베실로 화려하게 짠 옷입니다(출 28:6). 어린 사무엘은 아마 대제사장의 에봇을 본떠 만든 옷을 입었던 모양입니다. 한나가 매년 남편과 함께 제사를 드리러 성막에 올라갈 때 사무엘에게 새 겉옷을 지어 입혔는데, 이 역시 대제사장의 청색 겉옷을 모사한 옷이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 한나가 지어준 에봇을 입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을 것입니다.
2장 21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라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이 거룩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자녀 교육의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혹시 학교에 안가면 걱정되고 꼭 가라고 채근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면 좋고 안 가도 뭐라 안 합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2)한나는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중히 여기며 교육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히 여겨 자식들이 저주를 자청해도 막지 않았던 것에 비해 한나는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중히 여기며 자식을 교육했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성막에서 제사장을 수종드는 일을 할 때 그가 얼마나 아빠 엄마를 보고 싶어했겠습니까? 그것도 일 년에 많으면 세 번 정도 볼 수 있으니 가뭄에 콩 나듯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나는 인간적인 정을 끊고 오직 하나님만을 잘 섬기는 종으로 기르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그 어린 나이에 엄마 곁을 떠나게 하고 성막에서 제사장의 심부름을 하는 수종자로 삼은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던 사람입니다.
√3)한나는 무엇보다 기도로 교육하였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어떻게 낳았습니까? 기도로 낳았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구하였다”, “여호와께 빌어서 얻은 아기”, “하나님에 대하여 들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랬으니 한나가 사무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습니까?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전에도 기도했지만 낳은 후에도 평생 사무엘을 위해서 기도하여 기울어져 가는 이스라엘 역사를 바로 세운 위대한 인물로 우뚝 서게 만들었습니다. 가난하여 못 입히고 못 먹이고 못 가르쳤어도 눈물로 기도하며 키운 자식이 잘못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기도로 키운 자식이 하나님을 버리고 불효자식이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자녀들의 미래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흘린 눈물의 기도의 양에 비례합니다.
√(영상-권오중 간증)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한국인으로서 백악관의 차관보에 오른 두 명의 형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고흥주, 고경주' 박사입니다. 고흥주 박사는 본래 미국 예일 대학교의 로스쿨 학장을 하였는데 그의 어머니는 전혜성이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자식들을 신앙교육과 기도로 키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아침에 일어나 먼저 가정예배를 드리고 공부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가정예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신앙교육과 기도로 키웠는데, 이런 신앙교육과 기도가 아들들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오바마 정부의 차관보급으로 들어가 미국과 세계 경영에 이바지하도록 했습니다. 신앙교육과 기도는 엄청난 일을 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위대한 인물로 키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자녀교육의 두 가지 기준
√1)어렸을 때부터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옛말에도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에 자연육아운동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거기서 내건 슬로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태아 때 교육이 여든까지”, “청소년 문제, 뱃속에서부터 잡겠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내용이 자연육아를 통한 0-3세 유아기의 정서적 안정이 청소년기 성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언제부터 하나님을 섬겼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섬겼습니다. 사무엘상 1장 24절을 보면, 사무엘은 이미 젖을 뗀 후부터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젖을 뗀 후니까, 어느 정도 되었을까요? 아무리 늦어도 두 살 이전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자녀에게 신앙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하얀 도화지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무 것도 낙서되어 있지 않은 하얀 도화지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연필로, 물감으로 얼룩진 도화지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겠습니까? 이것은 질문 하나 마나입니다.
자녀 양육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가장 좋은 타이밍은 “한 살이라도 어릴수록, 젊을수록”입니다. ‘어린 게 뭘 알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머리가 커지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갓난 아이 때에는 말이 통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하지요? 그런데 정작 말이 통하고 학교 다니고 해보세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괜찮아요. 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간 다음부터는 달라집니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소아과 전문의사이자 가족 전문 심리학자인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상담을 하면서 얻은 아주 의미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자녀 둘을 데리고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갔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섯 살 난 꼬마가 고함을 지르고 물 컵을 쏟으면서 장난을 쳤습니다. 아빠가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거듭 강경하게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한순간 조용하더니 또 장난을 쳤습니다. 아이가 연속 네 번을 그렇게 하자 그는 아이를 세워두고 종아리를 걷어 올렸습니다. “너 지금 아빠가 왜 때리는지 알지?” “예 알아요” “내가 몇 번 하지 말라고 했지?” “네 번이요” “너 아빠가 때려도 할 말이 없지?” “예, 아빠” 그는 아이의 종아리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종아리를 맞고 아파서 팔딱팔딱 뛰며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주변을 지나가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여인이 뛰어오더니 “애를 이렇게 때리는 법이 어디 있어요? 경찰을 부르겠어요.”하면서 매를 그만 때리라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매를 맞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더니 하는 말이 “아빠, 저 아줌마가 왜 그러는 거야?”하고 그 여인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당연히 아빠로부터 매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모른다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절대 아이들이 모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리다고 모르겠지!’ 속단하지 말고, 어릴수록, 한 살이라도 더 젊을수록, 늦었다고 싶었을 때 바로 지금 가르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2)하나님 섬기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22장 6절 말씀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 ‘마땅히 행할 길’이란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자녀를 가르치되 어렸을 적부터 가르쳐야 하고, 가르치되 ‘하나님 섬기기’, 즉 예배를 가르쳐야 합니다.
한나가 사무엘에게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여호와 앞에 섬겼다(삼상2:18)”라고 했는데, 이 말은 “예배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에게 예배를 가르쳤습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최우선순위는 예배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박물관에는 여섯 개의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옆에는 비누 세 개가 놓여 있습니다. 여섯 개의 촛불은 히틀러에게 희생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의미합니다. 세 개의 비누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들의 몸에서 뽑아낸 지방으로 만든 비누입니다. 그 촛불과 비누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악랄한 독재자 히틀러를 저주합니다. 어린 시절, 히틀러의 이웃에 유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지주의 사생아였습니다. 히틀러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학대 받으며 분노가 억압된 채 성장한 것입니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공격적 행동은 어린 시절의 폭력과 학대와 해결되지 않는 슬픔의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학대당하며 성장한 아이가 커서 가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미움 받고 자란 아이가 남을 미워하고, 사랑 받고 자란 아이가 남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갈 6:7~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자녀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자녀교육에 실패한 히스기야, 엘리 제사장이 있습니다. 자녀교육에 성공한 한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본받기 원하십니까? 히스기야나 엘리처럼 실패한 자녀 교육이 아니라 한나처럼 자녀교육에 성공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이 사무엘과 같이 귀하게 쓰임 받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