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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의 문
천국과 지옥
올더스 헉슬리 1894 -1963
[지각의 문]
독일의 약리학자인 루이스 레빈이 후일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되는 선인장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연구를 출간한 것은 1886년이었다. 안할로니움 레비니이는 학계에서는 새로웠지만, 원시 종교 및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의 인디언들에게는 무시이래 함께 해 온 동무와도 같았다. 사실은 동무보다 훨씬 더했다. 신대륙을 초기에 방문했던 스페인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페요테라 불리는 뿌리를 먹었는데, 이를 마치 신적인 존재인 것처럼 숭앙했다. ~~~
심리학자들이 페요테의 유효성분인 메스칼린을 갖고 실험을 시작하면서 ~~이것은 적량히 투여되기만 하면, 약리학자들이 알고 있는 어떤 다른 물질보다도 더 심오하게 의식의 질을 변화시키면서도 덜 유독했다. ~~~잉글랜드 출신의 젊은 정신과 의사가 메스칼린과 아드레날린의 화학 조성상 긴밀한 유사성에 착목할 때까지, 공교롭게도 누구 하나 이를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연구가 진전되면서 맥각에서 유도해 낸 극도로 강력한 환각제인 리세르그산이 이들과 구조적. 생화학적 관계가 있음이 알려졌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의 분해 생성물인 아드레노크롬이 메스칼린 중독에서 관찰되는 많은 증상을 유발할 수 있음도 알려졌다. 그러나 아드레노크롬은 인체 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기는 듯하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 각자가 소량만으로도 의식에 심대한 변화를 야기한다고 알려진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 중 어떤 것은 20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재앙인 정신분열증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유사하다.
정신장애는 화학적 장애에 기인하는가? 그리고 화학적 장애는 결국 부신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고통에 기인하는가? 이를 단언하는 것은 성급하고 너무 이른 일일 것이다. 최대한으로 일종의 설득력 있어 보이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정도까지만 말할 수 있다. ~~
1953년 봄 억세게 운 좋은 일련의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나는 바로 그 추적에 끼어들게 되었다. 그 탐정들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왔다. 메스칼린 연구가 70년 동안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심리학 자료들이 아직은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나는 기꺼이 실험대상이 되어 ~~~화창한 어느 오월 아침, 나는 0.4그램의 메스칼린을 유리잔 반 잔의 물에 녹여 마시고 그 결과를 기다리며 앉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누우면, 각색의 기하 도형과 보석이 가득하고 기막히게 멋진 살아 움직이는 건축물과 영웅적 인물이 등장하는 풍경과 궁극적 계시의 초입에서 끊임없이 전율하는 상징극의 환상을 보리라 기대했었다. 하나 이제 돌이켜보니 난 나만의 특이한 정신적 성격, 즉 나의 성품, 교육, 습관과 같은 사실들을 고려하지 않았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늘 시각화하는 데 서툴렀다. 단어들은, 시인의 의미심장한 단어들마저도 내 마음속에 그림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막 잠들 때에도 입면환상이 날 마중하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회상할 때도 그 기억은 내가 생생하게 봤던 그 사건과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의지적으로 노력한다면, 어제 오후에 벌어진 일, 다리가 파괴되기 전의 릉가르노의 모습, 늙은 말들이 끄는 시속 5~6킬로의 작은 초록색 합승마차밖에는 없었던 시절의 베이즈워터 로드의 장면을 별로 생생하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은 실체도 거의 없고, 그 자체의 자율적인 생명력도 절대로 갖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들과 실제로 인지된 대상과의 관계는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오는 그림자와도 같은 유령과 이들을 찾아온 혈육지신의 사람의 관계와 같다. ~~~
그 약을 삼키고 30분 후에 나는 금색 불빛들이 느리게 춤추고 있는 걸 깨닫게 되었다. 조금 후에는 줄곧 변화하며 일정한 패턴으로 진동하는 밝은 에너지의 마디로부터 화려한 붉은 표면들이 부풀어 오르며 확대되었다. 한번은 눈을 감으니 일군의 회색 구조물들이 보였는데, 그 안에서는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구(球)들이 연이어 나오더니 강고한 물체가 되었고, 일단 이렇게 나타난 다음에는 소리 없이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한 번도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이나 형체를 본 적은 없었다. 풍경이나 광활한 공간, 마술처럼 커지거나 변형되는 건물, 조금이라도 극이나 우화 비슷한 것은 보지 못했다. 메스칼린이 내게 허락한 그 다른 세계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저 밖에, 내가 눈을 뜨면 보이는 것들 가운데 존재했다. 큰 변화는 객관적인 사실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나의 주관적 우주에서 발생한 것들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난 열한 시에 약물을 복용했다. 한 시간 후엔 서재에 앉아 작은 유리 꽃병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꽃병에는 꽃 세 송이만이 담겨 있었다. ~~~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저명한 철학자인 브로드 박사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우리는 베르크손이 기억과 감각지각과 관련하여 주장했던 바와 같은 유형의 이론을 이제까지의 일반적 관행보다는 훨씬 더 심각하게 고려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뇌와 신경계의 감각기관은 뭘 생산하는 게 아니라 대게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 각각은 매 순간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고 우주의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을 지각하는 능력이 있다. 뇌와 신경계의 기능은 가만두었다면 언제라도 지각하거나 기억했을 것들의 대부분을 차단하여 실제적으로 유용함직한 것들만 아주 조금 특별히 골라서 남겨둠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대부분은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엄청난 양의 지식에 압도되어 갈팡질팡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우리 각각은 잠재적으로 편재정신이다. ※(헉슬리는 모든 인간은 서로로부터 고립돼 있어 개별 유기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함을 강조했는데, 이제는 그럼에도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편재정신mind-at-large으로 연결됨을 주장한다. 윌리엄 제임즈도 우리의 삶은 바다의 섬들과 같지만..... 이 섬들은 대양의 바닥을 통해 서로 붙어 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의식이 물리적인 뇌의 구조와 동일시 되지 않는다고 보는 헉슬리는 편재정신을 초의식 또는 신적 근원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간에 내재하는 비인격적 신성을 특정 종교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 중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헉슬리는 같은 뜻으로 불성, 진여, 공의 맑은 빛 등의 용어를 구분 없이 사용한다. )
그러나 우리가 동물인 한 우리의 할 일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생존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생존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이 편재정신이 뇌와 신경계의 축소밸브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이 밸브의 반대쪽 끝에서는 우리가 이 특정한 행성의 표면에서 살아남도록 도울 수 있는 종류의 의식이 미세하나마 흘러나오게 된다. 인간은 이렇게 축소된 지각이 내용을 형성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라 불리는 상징체계와 암시적 철학을 만들어내어 면면히 발전시켜 왔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태어나게 된 언어적 전승의 수혜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의 축적된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혜자이나, 동시에 언어 때문에 축소된 자각이 유일한 자각이라는 믿음을 강화하게 되고 현실감각이 교란되어 너무도 쉽게 개념을 소여로(존재론적 사실), 말을 실제의 사물로 착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피해자이다. 종교적 언어로 말하자면, 이 세상이라 불리는 것은 언어로 표현되어, 이를테면 굳어진 축소된 자각의 우주이다. 인간들이 제멋대로 접촉하는 여러 다른 세상들은 편재정신에 속하는 지각의 총체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축소밸브를 통해 들어와서 해당 언어에 의해 진정한 현실로 성별된 것만을 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축소밸브를 피하는 일종의 우회로를 아는 것 같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저절로, 아니면 의도적인 영성수련의 결과로, 또는 최면을 통하거나 약물을 매개로 하여 일시적인 우회로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이 우회로가 아직 편재정신의 전체 내용을 차단하고 있는 축소밸브를 없애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바로 ‘우주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지각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영속적이거나 dfl시적인 우회로를 통해선 우리 개인의 축소된 정신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현실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여겨 신중하게 선택하는 실리적인 물질을 넘어서며 더구나 이와 구별되는 무엇이 흘러들게 되는 것이다.
뇌에는 뇌의 활동을 조정해 주는 여러 효소계가 마련되어 있다. 어떤 효소들은 뇌세포에의 포도당 공급을 조절한다. 메스칼린은 이러한 효소의 생산을 억제하여 지속적으로 당분을 필요로 하는 기관이 사용할 수 있는 포도당의 양을 줄인다. 메스칼린이 뇌의 정상적인 당분 할당량을 줄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관찰한 사례가 너무 적은 연고로 아직까지는 종합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감독 하에 메스칼린을 복용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는 있다.
(1) 기억하며 제대로 생각하는 능력은 감소할 수도 있겠지만 거의 감소하지 않는다.
(2) 시각적 인상은 대단히 강화된다. 그래서 감각소여가 즉각적이고 잗오적으로 개념에 종속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지각적 순수성을 부분적으로나마 회복하게 된다. 공간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시간에 대한 관심은 영에 가깝게 떨어진다.
(3) 지적 능력에 별 탈이 없음에도, 지각이 놀랍게 개선되었음에도, 의지는 악화되는 방향으로 극심한 변화를 겪는다. 메스칼린 복용자는 특별히 어떤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며, 평소에는 선뜻 해내고 겪었을 일들의 명분에 대해서도 극도로 흥미를 잃게 된다. 생각해야 할 더 좋은 것들이 있다는 좋은 이유로 이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으려는 것이다.
(4) 이 더 좋은 것들은 (내가 그랬듯이) 저 밖이나 이 안에서 경험할 수도 있고, 안팎의 양쪽 세계에서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간이 건강하고 정신상태가 평온한 상태에서 약물을 접한 메스칼린 복용자들 모두에게 이것이 더 좋다는 것은 자명한 듯하다.
이러한 메스칼린의 효과는 뇌의 축소밸브의 효용을 손상하는 힘을 가진 약물을 투여했을 때 기대되는 효과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뇌에 당분이 고갈되면 영양결핍으로 자아가 점점 약화되는데, 그 결과 해야 할 잡일들을 굳이 하려 들지 않게 되며, 처세에 열중하는 유기체라면 대단히 중시할 수밖에 없는 시공간적 관계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게 된다. 더 이상 완전 차단이 불가능해진 밸브를 통해 편재정신이 새어나오게 되면 생물학적으로 불필요한 온갖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는 초감각적 지각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적나라한 존재 곧 그들이 직면한 개념화되지 않은 사건의 영광, 즉 그 무한한 가치와 충만한 의미를 보게 된다. 무아의 최종 단계에서는 전체가 모두의 안에 있어, 전체가 실제로는 각각이라는 희미한 지식이 생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것은, 유한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삼라만상에 대한 지각에 가장 근접한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메스칼린을 복용한 후 색에 대한 지각이 놀랍게 고양되었다는 사실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벌들은 봄이면 막 피어난 신선한 꽃들을 망쳐버리는 일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러나 폰프리쉬가 밝힌 바대로, 벌은 단지 몇 가지 색만을 인지할 수 있다. ~~~
메스칼린은 모든 색의 강도를 증가시켜서 지각자가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는 수많은 미세한 색조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게 한다. 편재정신에게는 사물의 이른바 이차적 특징이 일차적인 듯하다. 로크와는 달리, 편재정신은 분명히 색이 질량, 위치, 차원보다 더 중요하므로 더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메스칼린 복용자들이 그런 것처럼 내면의 눈으로는 물론 주변의 객관적 세계에서도 초자연적이며 cksf나한 색들을 지각하는 신비가들이 꽤 있다. 영능자들과 민감자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메스칼린 복용자들이 잠깐만 경험하는 계시를 하루 종일이나 몇 시간씩 오랫동안 경험하는 영매들도 있다. ~~
서양에서 종교화란 신성시되는 인물을 그리거나 신성한 문헌에 삽화를 넣은 것이었다. 풍경화가들은 자신들을 속인 것으로 여겼다. 오늘날 우리는 쇠라를 신비적 풍경화라 명명할 수 있는 분야의 최고 명인들 중 한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다자 안의 일자를 표현할 수 있었던 이 사람도 누가 자기 작품의 시정(詩情)을 칭송하기라도 하면 아주 화를 냈다. 그는 “나는 체제를 적용 했을 뿐입니다”라고 항변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의 눈에 자신은 단지 점묘화가일 뿐, 긍 hl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존 컨스터블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인생의 말년 어느 날 블레이크가 헴스테드에서 컨스터블을 만났는데, 이 젊은 예술가가 스케치 하나를 보여주었다. 자연주의적 예술을 경멸했음에도 이 늙은 환상가는(무론 루벤스가 그린 거라면 안 그랬겠지만) 그 그림의 수절함을 알아보았다. “이건 그림이 아니야, 이건 영감이야!“ 그가 소리쳤다. 전 그림으로 의도하고 그렸습니다만, 이것이 컨스터블의 그다운 대답이었다. 두 사람 다 맞는 말이다. 그것은 분명 정밀하고 정직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분명 영감, 적어도 블레이크만큼 높은 수준에서의 영감이었다. 더 히스의 소나무들은 실제로 법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였다. 이 스케치는 어쩔 수없이 불완전한 상태임에도 한 위대한 화가가 정결해진 지각을 통해 두 눈에 계시된 것을 심오하고 인상 깊게 묘사한 것이었다. ~~~
대부분의 메스칼린 복용자는 정신분열증의 천국 편만을 경험한다. 이 약은 최근에 황달을 앓았거나, 주기적인 우울증이나 만성불안에 시달린 사람들에게만 지옥과 연옥을 가져다준다. 만일 조금이라도 비륜한 효능을 가진 다른 약물들처럼 메스칼린도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면, 복용 그 자체만으로도 불안감을 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웬만큼 건강한 사람은 자신에 관한 한 메스칼린이 완전히 무해함을, 즉 그 효과가 여덟에서 열 시간 후에는 사라지는 데 숙취도 없고 그 결과 재차 복용코자 하는 갈망도 남기지 않음을 미리 알고 있다. 이걸 알고 힘을 얻은 그는 두려움 없이, 다른 말로 하자면 전례 없이 생소한 인간적이지 않은 경험이 끔찍한 무엇으로, 사실상 악마적인 무엇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임을 믿고 실험에 착수한다.
나는 최후의 심판 같아 보였던 의자,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주 오래 시간 엄청난 고초를 겪고 난 뒤에야 의자였음을 알게 된 어떤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돌연 공황직전 상태에 이르렀다. 불현듯 내가 너무 멀리 가고 있음을 느꼈다. 비록 그것이 더 강렬한 아름다움, 더 깊은 의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왔다. 돌이켜 분석해 보건대, 이 두려움은 압도됨에 대한 두려움, 즉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안락한 상징의 세계에서 사는 데 익숙해진 정신이 능히 감당할 만한 정도를 넘어서는 압력을 받아 해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종교적 체험에 관한 문헌들을 보면, 너무나도 갑자기 전율적 신비의 현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사람들이 겪게 되는 불가항력적인 고통과 공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신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이러한 공포는 인간의 자만이 신적 순수와 그리고 인간 스스로 악화시킨 단절이 신의 무한성과 양립할 수 없음에 기인한다. ~~~~
정신 분열자는 회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 절망적으로 병든 영혼이다. 그의 병은 바로 (온전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내외의 현실로부터 상식이 지배하는 우주로, 즉 유용한 관념과 공유하는 상징과 사회적으로 인정된 관습으로 꾸려지는 전적으로 인간적인 세계로 도피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 분열자는 허구한 날 메스칼린의 영향 아래 있는지라 현실 경험을 차단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그는 실재의 체험을 스스로 감내할 만큼 거룩하지도 못하고, 이것이 너무도 엄연한 기본적 사실인지라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도 못한다. ~~~
식물성 진정제와 마약, 나무에서 자라는 쾌유제와 나무딸기류 열매 안에서 익거나 뿌리에서 짜낼 수 있는 환각제 등 인간은 상고로부터 이 모든 것을 예외 없이 알고 체계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현대 과학은 이러한 기존의 자연적인 방식으로 의식을 변화시키는 물질에다, 예를 들면 클로랄과 벤제드린, 브롬화물과 바르비투르산염과 같은 몇 가지 합성물질을 추가했다. 의식을 변경하는 이러한 물질들은 이제 의사의 지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용할 수 없게 되어, 그렇지 않으면 불법을 저지르는 대단한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는 술과 담배만 무제한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외의 모든 화학적인 벽에 난 문 들은 마약으로 분류되어, 이를 무단으로 복용하면 중독자로 규정된다.
우리는 지금 교육보다도 술과 담배에 훨씬 더 많이 지출한다. 물론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아와 환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충동은 거의 언제 어디에나 있다. ~~~중세의 기독교도는 지옥이 실체를 가진 현실임을 확고하게 믿었음에도, 이 믿음이 저들이 야망과 욕정과 탐욕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 것을 결코 막지 못했다. 폐렴, 교통사고 그리고 참담함 가운데 살면서 참담함을 생산해 내는 수백만 명의 알코홀 중독자가 있음은 단테의 시대에 지옥이 사실이었던 것 이상으로 더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실조차도 가까이에서 느끼는 이 사실, 즉 지금 여기에서의 발산과 진정, 바로 술 한 잔과 담배 한 대에 대한 갈망과 비교하면 요원하고 허명무실하다.
우리 시대는 무엇보다도 자동차와 인구 폭증의 시대이다. 술은 도로상의 안전과 양립할 수 없다. 그리고 담배도 마찬가지지만, 술을 생산하느라 수십억 평의 가장 비옥한 토지를 사실상의 불모지로 만들어버린다. 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술과 담배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를 금지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당시 인기 있는 벽에 난 문을 닫아버린다고 해서 보편적이고 상존하는 자기초월에의 욕구를 없앨 수는 없다. ~~~
대부분의 사람에게 메스칼린은 완벽하다 할 정도로 무해하다. 이것은 술처럼 사람들을 싸움과 폭력범죄와 교통사고로 끝나는 억제되지 않는 행동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메스칼린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자기 일을 본다. 더구나 그는 그 일을 함으로써 아주 많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이 점이 아주 중요한데) 보상적 숙취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메스칼린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면 어떤 장기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페요테 조각을 먹는 인디언들이 그 습관 때문에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쓸 수 있는 증거자료는 아직 부족하고 개략적이다.
코카인이나 아편, 술, 담배보다는 분명히 월등하지만 메스칼린이 아직 이상적인 약물은 아니다. 대다수의 메스칼린 복용자는 행복한 면모를 경험하지만, 소수는 지옥이나 연옥만을 본다. 더구나 술처럼 일반적인 소비를 위해 사용될 약물으로서는 그 효과가 불편할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화학과 생리학은 요즈음 사실상 뭗느지 할 수 있다. 만약 심리학자와 사회학자가 이상을 정의해 주면, 신경학자와 약리학자가 그 이상을 실현하거나, 아니면(이런 종류의 이상은 어쩌면 바로 그 본질상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적어도 두주불사의 지난날들이나, 위스키를 마시고, 대마초를 피우고, 바르비투르산염을 삼키는 오늘날보다 그 이상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해 줄 것으로 믿어본다.
자의식적인 자아성을 초월하려는 욕구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영혼의 주요 욕구이다.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예배와 선행과 영성수련을 통해 자신을 초월하지 못하면 종교의 화학적 대체물들, 즉 현대 서구에서는 술과 바르비투르산염, 동양에서는 술과 아편, 회교권에선 대마수지, 중미에선 술과 대마초, 안데스 지역에선 술과 코카, 남미의 좀 더 근대화된 지역에선 술과 바르비투르산염 등에 의존하기 쉽다.
거룩한 독물, 신성한 만취에서 필립드 펠리스는 풍부한 자료를 제시하며 태초로부터 계속된 종교와 약물 복용의 연관성에 대해 상술했다.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는 일은 놀랄 만큼 널리 퍼져있다. ~~~
누구나 어떤 형태의 순수종교나 응용종교에서 자기초월을 발견할 수 있어야 이상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대망이 종내 현실화할 가능성은 아주 낮은 듯하다. 유감스럽게도 교회에 열심인 사람들 중엔 독실한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사람들이 꼭 있는데, 분명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적어도 신앙생활만큼이나 음주에 대해서도 서정적인 글을 썼던 작고한 체스터던이 저들을 위한 유려한 대변인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 교단들 중엔 약간의 예외가 있지만 현대의 교회들은 음주를 용인한다. 그러나 아무리 관용적이라 할지라도 약물을 기독교에 맞도록 개조하거나 성례에 도입하려 시도하지는 않는다. 독실한 음주가는 어쩔 수없이 한쪽 칸에선 자신의 종교를 취하다가, 다른 칸에 가선 어떤 대용종교를 취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범절을 중시하지 않는 종교가 아니라면 음주를 성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지 메스칼린 체험은 가톨릭 신학자들이 무상은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구원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으로 도움이 되며, 받을 수 있다면 감사히 받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상적인 지각의 관습으로부터 탈피해서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몇 시간 동안, 생존 문제에 사로잡힌 동물이나 말과 관념에 집착하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편재정신이 이해하는 바대로 직접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외부와 내면의 세계를 보는 것, 이것은 누구에게나 특별히 지식인에게는 측량할 바 없는 가치를 지닌 경험이다.
[천국과 지옥]
과학사에서 동물학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활동하던 표본수집가는 자연신학과 마법에 뒤이어 나타났다. 개미를 근면의 화신으로, 놀랍게도 흑표범은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긴털족제비는 노골적인 음탕함의 끔찍한 실례로 삼았던 동물설화 작가식의 동물 연구는 표본수집가에 와서야 멈췄다. ~~~
최면은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가 관찰하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메스칼린의 생리적 효과는 조금 밖에 안 알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므로) 아마도 뇌의 기능을 조절하는 효소계에 개입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정신으로 하여금 우리 행성의 표면에서 벌어지는 삶의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도구로서의 뇌의 효율이 저하된다. 이렇게 이른바 뇌의 생물학적 효율이 저하되면, 생존가치가 없기 때문에 보통은 배제되는 일정한 부류의 정신적 사건들이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질병이나 피로의 결과로도 이와 유사하게 생물학적으로는 쓸모없지만 미학적으로, 때로는 영적으로 가치 있는 물질이 침투할 수 있다. 아니면 금식을 하거나 어둡고 완전히 적막한 곳에 일정 기간 갇혀 있어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메스칼린이나 리세르그산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에게 극량의 니코틴산을 투여하면 환상 보기를 그친다. 이것은 환상체험의 유도인자로서의 금식의 효과를 tfj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금식을 하면 섭취할 수 있는 당분의 양이 줄어들어 뇌의 생물학적 효율이 저하되고, 이렇게 되면 생존가치가 전혀 없는 물질이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더구나 비타민 결핍을 초래함으로써 혈액으로부터 주지의 시각억제제인 니커틴산을 제거한다.
환상체험의 다른 억제제로는 보통의 일상적인 지각적 경험을 들 수 있다. 실험심리학자들은 사람을 빛도, 소리도, 냄새 맡을 것도 없는 제한적 환경에 가두고 미지근한 욕조에 들여보낸 후 단 한 번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건드리기만 해도 이 사람은 곧바로 뭔가 보고 무언가 듣고 이상한 신체감각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히말라야 동굴에 살던 밀레라빠와 테바이스의 은둔자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과정을 거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을 그린 숱한 그림들을 보면 제한된 식단과 제한된 환경의 효과성을 잘 알 수 있다.
금욕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음이 분명하다. 사람이 자기 몸을 학대함은 이렇게 함으로써 지난날의 죄를 속죄하여 미래의 징벌을 피해보려는 소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신의 대척점으로 가서 환상유람을 좀 해보길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험적으로 그리고 다른 고행자들의 보고를 통해 제한된 환경에서 금식을 하면, 그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징벌이 낙원에 이르는 문일 수도 있다(이건 동시에, 뒤의 단락에서 다룰 문제이지만, 지옥 지대로 가는 문이 될 수도 있다).
그 세계 거주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유대류는 몹시도 기이하다. 그러나 이 기이성은 임의성과 다르다. 캥거루와 월러비가 여실성을 결여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비개연성은 식별 가능한 법칙을 따라 반복된다. 이는 우리 정신의 후미진 구석에 거주하는 심리적인 짐승의 경우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메스칼린의 영향이나 깊은 최면 아래서 조우하게 되는 경험은 분명 기이하다. 그러나 그 기이함에는 어떤 규칙성이 있다. 일정한 패턴을 따르는 기이함인 것이다.
이 패턴이 우리의 환상체험에 부과되는 공통적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빛의 체험이다. 정신적 대척점을 방문한 사람들이 보는 모든 것은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잇는데, 이 빛은 안으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모든 색은 정상상태에서 보이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 강도까지 심화되고, 동시에 색조와 색상의 미세한 차이들을 지각하는 정신적 능력이 뚜렷이 증대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런 환상체험과 보통의 꿈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꿈은 아예 색이 없고 아니면 그저 부분적이거나 희미하게만 채색되어 있다. 반면에 메스칼린이나 최면의 영향 아래서 접하는 환상은 언제나 강렬하게, 말하자면 초자연적으로 색색으로 빛난다. ~~~
대부분의 꿈은 꿈꾸는 사람의 개인적인 소망과 본능적 욕구 그리고 그 소망과 욕구가 이를 용납지 않는 자신의 양심이나 주위의 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좌절될 때 일어나는 갈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충동과 갈등은 극적 상징으로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꿈에서 이 상징들은 색이 없다. 왜 이렇게 되는가? 내 생각에 그 답은 상징이 효과적이기 위해서 색이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미에 대해 쓰는 글자들이 붉은색일 필요는 없으며, 희종이 위에 잉크 자국을 내어서도 무지개를 표현할 수 있다. ~~~
아일랜드의 시인인 조지 러슬은 <환상의 촛불>에서 자신의 환상체험을 놀라우리만큼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는 묵상을 하노라면 내 주위로 몰려드는 생각과 모습 속에 나의 성품이 반영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영혼에는 인간적인 상상이 아니라 신적인 상상이 만들어낸 모습을 볼 수 있는 창문도 있다 라고 적었다.
우리는 언어적 습관 때문에 실수를 한다. 예를 들면 ‘장막이 걷히니 볼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상상한다’라고 말하기 쉽다. ☞(장막이 걷힘으로, 즉 지각의 문이 닫임으로 그 순수성을 회복하여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는 것이지, 없는 것을 그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헉슬리는 내게 어떤 생각이 나는 것이지 내가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생각의 근원은 이 안이 아니라, 저 밖인데, 우리가 때로 이를 발견하고 인지할 뿐이라는 것이다.). 자발적이건 유도되었건 환상은 결코 우리의 개인적 속성이 아니다. 평범한 자아에 속하는 기억들은 환상의 자리에 둘 수 없다. 보이는 사물은 전적으로 생소하다. 윌리엄 허셜 경은 최근에 봤거나, 심지어 생각이라도 해본 것과 관련되거나 비슷한 것들은 나오지도 않는다 라고 말한다. 얼굴이 나오더라도 친구나 지인들의 얼굴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구세계를 벗어나 대척점을 탐험하고 있는 중이다.
일상적 경험의 세계는 우리 대부분에게 대부분의 시간 동안 희미하고도 단조롭다. 그러나 종종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따금은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도 환상체험의 찬란함이 일부 넘쳐흘러, 이를테면 평시에 무엇을 볼 때도 나타나게 되는데 , 그러면 일상의 우주가 변모한다. 구세계는 아직 겉보기에는 그대로지만 정신의 대척점의 특질을 띤다. 여기 이러한 일상세계의 변모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바닷가에 앉아 내겐 따분하기만 한 무언가를 거칠게 따지는 친구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을 때였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집어 들고 있던 모래의 얇은 막을 바라보던 중, 불연듯 거기서 모래알 하나하나의 정교한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 나는 언제 따분해 했냐는 듯 각각의 입자가 완벽한 기하학적 패턴을 따라 만들어진 걸 보았다. 각각의 날카로운 모서리에선 환한 빛줄기가 하나씩 반사되고 있었고, 각각의 작은 결정체는 무지개처럼 빛났다... 빛살이 교차하고 또다시 교차하면서 너무나 아름답고 정교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걸 보곤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그러다 별안간 나의 의식이 내면으로부터 환히 밝혀지면서, 우주가 아무리 시시하고 생명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처럼 강렬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물질의 입자들로 구성되었음을 생생히 보았다. 일이 초 동안 모든 세상이 찬란한 영광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이내 잦아들었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우리 주위 물질의 모든 미세한 입자들 안에 갇혀있는 아름다움을 하냥 되새겨주는 무언가를 내게 남겨놓았다. ~~~
초자연적인 빛과 색은 모든 환상체험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빛과 색과 더불어 어김없이 고양된 의미가 인지된다. 우리가 정신의 대척점에서 보는 발광체에는 의미가 있는데, 이 의미는 어느 정도 그 색만큼이나 강렬하다. 여기서 의미는 존재와 동일한데, 이는 정신의 대척점에서 사물은 스스로 이외에는 어느 것도 상징하지 않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환상체험에 공통적인 특별한 부류의 대상이 있는가? 그 대답은 네, 있습니다 이다. 자발적 환상의 경우도 그렇지만, 메스칼린과 최면의 영향 아래서는 특정한 부류의 지각적 체험이 반복하여 나타난다. ~~~
빛, 색 그리고 의미는 고립된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상을 개조하거나 대상에 의해 표현된다. 대부분의 환상체험에 공통적인 특별한 부류의 대상이 있는가? 그 대답은 ‘네, 있습니다’이다. 자발적 환상의 경우도 그렇지만, 메스칼린과 최면의 영향 아래서는 특정한 부류의 지각적 체험이 반복하여 나타난다. ~~~
환상체험의 사실 얘기는 이쯤하고, 이제 신들, 죽은 사람들의 혼들, 천의무봉의 태곳적 인간들이 사는 세계들, 그 다른 세계들의 모든 문화적 전통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로 넘어가자. 여기 나오는 설명을 읽어보면, 우리는 곧 유도성 환상체험과 자발적 환상체험 간의 그리고 민속과 종교에서 말하는 요정의 나라와 천국 간의 밀접한 유사성에 놀라게 된다. 초자연적인 빛, 초자연적인 강렬한 색, 초자연적인 의미, 이들은 모든 다른 세계와 황금시대의 특징이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경우에 이 초자연적으로 심장한 빛은 말로는 도저히 담아내지 못할 절승의 풍경을 비추거나, 그 풍경으로부터 빛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 로마 전통 안에서 아름다운 헤스페리테스 정원, 엘리시온 평원과 아킬레우스가 이장되었던 아름다운 레우카 섬을 본다. 멤논은 동방 어디엔가 있는 또 다른 빛나는 섬으로 갔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는 반대방향으로 여행하여 이탈리아에서 키르케와 함께 영생불사를 누렸다. 또 서쪽으로 더 가면 헤시오도스가 처음 언급한 이래 기원전 1세기에만 해도 세르토리우스가 스페인에서 함대를 보내 찾아내려는 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모두들 그 존재를 확신 했던 복 받은 바들의 섬들이 있다.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섬들은 켈트족과 이들과 세계의 반대쪽에 있는 dfl본인들의 민간전승에 다시 나타난다. 서쪽 끝의 애벌론과 극동의 봉래산 사이엔 흰두족의 다른 세계 우타라쿠루 땅이 있다. ~~
그러다 종교개혁이 왔다. 개신교는 환상체험을 인정하지 않았고 신비한 능력은 인쇄된 언어에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예배자들은 투명한 창문을 한 교회에서 성경과 기도서를 읽을 수 있었고, 설교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탈출하려는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 가톨릭의 반종교개혁 쪽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환상체험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인쇄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새로 짓는 교회들은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의 설치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더 오래된 교회들은 이를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투명한 유리로 교체했다. 빛이 가려지지 않자 신도들은 책을 보며 예배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새 세대의 바로크 조각가들과 건축가들이 만든 환상유도적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밝고 순수한 색은 다른 세계의 특징이다. ~~~모든 정신의 대척점에는 초자연적인 빛과 초자연적인 색의, 이상적인 보석과 환상적인 금의 다른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의 눈에 보이는 것은 칙칙하고 너저분한 집구석, 흙먼지 아니면 진창길 마을길, 더러운 흰 옷, 암갈색과 연두 빛 거위 똥색의 누더기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밝고 순수한 색을 열광적으로 거의 필사적으로 갈구하게 되었고, 고로 언제라도 교회에서든 궁궐에서든 이러한 색이 전시되기만 하면 압도적인 효과를 발휘했었다. ~~~친숙함은 무관심을 낳는다. ~~
부정적인 환상체험은 종종 아주 특별하고 특징적인 신체적 감각을 수반한다. 행복한 환상은 보통 신체와의 분리감, 즉 탈개체화의 감정과 연결된다. 환상체험이 끔찍하여 세상이 더 험악하게 변모하고 개체화가 심화되면, 부정적 환상가는 제게 딸린 몸이 점차 농밀해지고 촘촘히 들어차는 듯 하다가, 마침내는 두 손으로 들을 수 있는 돌보다도 결코 크지 않은 농축된 물질 덩어리만 한 번뇌하는 의식으로 줄어드는 걸 보게 된다. ~~
환상체험은 신비체험과 같지 않다. 신비체험은 두 개의 반대되는 영역들 너머에 있지만, 환상체험은 아직 그 영역 안에 있다. 천국은 지옥을 수반한다. 참혹한 지경에 빠지는 것이 해방이 아니듯, 천국에 가는 것도 해방은 아니다. 천국은 보통의 개체화된 존재의 수준에서보다는 신적근원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일 뿐이다.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도 의식이 살아남는다면, 짐작컨대 모든 정신적 수준에서, 즉 신비체험의 수준과 복된 환상체험의 수준과 지옥 같은 환상체험의 수준 그리고 일상적인 개인 존재의 수준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아는 바와 같이, 이승에서는 복된 환상체험마저도 너무 오래 지속되면 신호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도 나름 천상의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메스칼린 투약자들과 달리) 그들이 과연 안도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적 경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게 언제일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천국마저도 끔찍해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끔찍하게 느낀 사람에게 천국은 지옥으로, 복락은 공포로, 맑은 빛은 불 켜진 나라의 증오에 찬 노려봄으로 바뀐다. ~~~
죽은 사람들 중 극소수는 신적 근원과 즉각적인 합일을 이룰 수 있고, 소수는 천국의 환상적 복락을 지탱할 수 있으며, 소수는 지옥의 환상적 공포 안에 갇혀 빠져나갈 수 없게 되고, 대다수는 결국 스베덴보리와 영매들이 묘사한 것과 같은 세계에 남게 된다 .필요조건이 충족될 때에 이 세계로부터 환상적 복락, 즉 최종적인 깨달음의 세계들로 옮겨 가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나 추측으로는 현대의 심령술과 고대의 전승은 둘 다 정확하다. 올리버 로지 경이 그의 책 <레이먼드>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사후상태는 있다. 그로나 복된 환상체험을 하는 천국도 있다. 또한 여기서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메스칼린을 복용한 사람들 중 몇몇이 겪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지옥도 있다. 그리고 시간을 넘어 신적 근원과 합일을 이루는 체험도.
[부록]
(1)
효과가 덜한 두 가지의 환상체험 보조제, 이산화탄소와 섬광전 등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메두나가 철저하게 서술한 바대로 산소 7에 이산화탄소 3을 섞은(완전히 무독성인) 혼합물을 들이 마시면 일정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가 생긴다. 이러한 변화들 중 현재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을 감은 채로 사물을 보는 능력이 현저하게 향상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색색의 패턴이 소용돌이치는 것만 본다. 다른 경우에는 과거 경험이 생생하게 재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산화탄소가 치료제로서 쓸모가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이산화탄소가 피험자를 일상의식의 대척점에 있는 다른 세계로 수송한다. 그러면 자신의 개인사나 전체 인류의 문제와 일절 관련 없는 환상체험을 잠시 누리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요가의 호흡 수련의 근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동안 체계적으로 훈련한다면 누구든 오랫동안 호흡을 정지할 수 있다. 호흡을 오래 정지하면 폐와 혈액 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지는데, 이런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가 축소밸브로서의 뇌의 효율을 떨어뜨리면 환상적이거나 신비적인 저 밖으로부터 의식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이만큼 뚜렷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계속해서 소리 지르거나 노래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고도로 훈련되지 않았다면 노래 부르는 사람은 숨을 들이쉬는 것보다 더 많이 내쉬게 된다. 결과적으로 폐포기체와 혈액속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뇌의 축소밸브의 효율이 떨어지게 되어 환상체험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마법과 종교에서는 빈말의 되풀이가 그칠 새 없는 것이다. 쿠란테로와 의술사와 무당이 낭창하고 기독교와 불교의 수도사들은 끝없이 찬송을 부르고 경전을 음송하며, 부흥사들이 몇 시간이고 계속 외치며 울부짖는 이 모든 것이 아주 다양한 신학적 교리와 미학적 관습을 따르기는 하지만 그 심리학적, 생리적 의도는 일정하다. ~~~
이보다 더 한층 정연하면서 훨씬 난해한 건 폐와 혈액과 효소, 신경세포와 신경접합부의 이치이다. 초의식은 잠재의식을 통해 가야 하는데, 이 잠재의식으로 가는 길 또는 그 길들 중 하나는 개별세포의 화학작용을 통하는 것이다.
(2)
서구 세계에서는 환상가들과 신비가들의 수가 이전보다 상당히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 철학적 이유와 화학적 이유가 있다. 현재 유행하는 우주의 그림에는 유효한 초월적 체험이 설 자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유효한 초월적 체험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미치광이 아니면 사기꾼의 혐의를 받게 되어있다. 신비가나 환상가가 되는 것은 더 이상 영예로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신비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우리의 정신적 풍토이면서, 우리 조상들이 생을 보냈던 환경과 아주 다른 우리의 화학적 환경이기도 하다.
뇌는 화학적으로 조절된다. 그리고 우리는 경험상(생물학적으로 말해서) 신체의 정상적인 화학작용을 변조함으로써,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편재정신의 잉여 부분이 뇌에 침투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매년 한 해의 거의 절반 동안 과일이나 푸름 푸성귀를 먹지 못했으며, (겨울 몇 달 동안에는 그저 몇 마리 정도의 황소나 암소, 돼지나 가금 밖에는 먹일 수 없었기 때문에) 버터나 신선한 고기, 달걀 등도 아주 조금만 먹을 수 있었다. 이듬해 봄이 올 때면 대부분의 사람은 경미하게든 극심 하게든 비타민 C결핍에 의한 괴혈병과, 복합 비타민 B가 부족한 식단이 야기하는 펠라그라를 앓고 있었다. 이런 질병의 고통스러운 신체적 증상은 결코 이보다 덜 고통스럽지 않은 심리적 증상과 연결되어 있다. 신경계는 다른 조직들보다 더 취약하다. 결과적으로 비타민 결핍은 하다못해 어떤 아주 뚜렷한 방식으로 피부, 뼈, 점막, 근육 그리고 내장보다도 먼저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 부적절한 식단의 일차적 결과는 생물적 생존을 위한 도구로서의 뇌의 효율이 저하되는 것이다. 영양 조에 걸린 사람은 불안 우울증, 심기증과 여러 불안 증세로 고생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또 환상을 보기 쉽다. 즉 뇌의 축소밸브의 효율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많은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불필요한 물질이 편재정신 안의 저 밖으로부터 의식 속으로 흘러들게 되는 것이다.
초기 환상가들의 경험 중에는 끔찍한 것들이 많다. 기독교 신학의 언어를 사용하자면, 마귀는 신보다 훨씬 더 자주 저들의 환상과 황홀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타민은 부족했고 사탄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보편적이었던 시대에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경미한 펠라그라나 괴혈병에 걸린 경우일지라도 이와 연결된 정신적 고통은 천벌에 대한 두려움과 악의 권세가 무소부재 하다는 확신으로 해서 더 깊어졌다. 이러한 고통은 잘 먹지 못해 효율이 손상된 뇌의 밸브를 통하여 의식 속으로 들어온 환상 물질에 그 자신의 어둠의 색을 입히기 쉽다. 그러나 영원한 형벌에 집착하고 있음에도, 결핍성 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영적으로 깨어 있는 고행자들은 종종 천국을 보았고 때로는 양극단이 조화를 이루는 불편부당한 신적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다. 지복을 잠시라도 보기 위해서는, 합일적 지식을 미리 맛보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과하지 않아 보였다. 육신의 고행 때문에 생기는 달갑지 않은 정신 증상이 비일비재하지만, 그건 동시에 존재, 자각, 희락의 초월적 세계로 인도하는 문을 연다. 이것이 과거의 거의 모든 영적 생활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뻔한 불이익을 무릅쓰면서까지 신체적 고행의 여정을 꾸준히 밟아갔던 이유이다. ~~
수도원에 사는 명상가들에게는 매년 몇 번씩의 사순절이 있었다. 또한 금식과 금식 사이의 기간 중에도 그들의 식단은 극도로 빈약했다. 그래서 허다한 영성 저술가가 묘사했던 우울증과 면밀증의 고뇌가 있었고, 절망과 자살의 끔찍한 유혹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천상의 환상과 환성, 예언적 직관과 정신감응적 영분별력과 같은 형태의 무상은총도 있었다. ~~
금식이 초기 영성수행자들이 의지한 유일한 형태의 신체적 고행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주 매듭진 가죽, 심지어는 철선으로 된 채찍으로 자기 몸을 내리쳤다. 이런 매질은 마취 없이 아주 광범위한 수술을 하는 것과 같아 참회자의 신체적 화학 작용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났다. 실제로 채찍을 쓰는 동안 대량의 히스타민과 아드레날린이 나왔다. 그래서 생긴 상처가 곪기 시작하면 단백질의 분해로 만들어진 여러 유독물질이 혈관을 찾아 들어 갔다. 그러면 히스타민이 충격을 일으키는 데, 이 충격은 신체만큼 심각하게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대량의 아드레날린이 환각을 야기하기도 하며, 이 분해산물의 일부는 정신분열증의 경우와 비슷한 증상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러면 이 모든 것의 교훈은 무엇인가? 철학 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몸의 화학작용의 변화가 환상체험과 신비체험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겪어본 사람들에게는 환상체험과 신비체험이 너무도 명백한 것이겠지만, 그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합리한 추론이다.
지나치게 영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은 신은 영이므로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화학적으로 조절한 체험은 신성의 체험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체험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절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들 중 어떤 것들이 순수하게 영적이고, 순수하게 지적이며, 순수하게 미적이라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애써 그 발생 시점의 신체 내의 화학적 환경을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명상가가 영적 직관에 우호적인 내적 조건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자신의 신체적 화학작용을 조절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연구했음은 역사적 기록이 말해 주고 있다.
(3)
환상과 같은 효과와 환상유도적 도구는 미술보다는 대중오락에서 더 큰 역할을 했다.
(6)
많은 정신분열환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땅도 천국도 지옥도 아닌 잿빛으로 그늘진 환영과 비현실의 세계에서 보낸다. 정신병자의 이런 현실은 정도는 좀 덜할지 몰라도 경미한 형태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신경증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아드레날린 유도체 미량을 투약하면 이런 유령과 같은 실존 상황을 유도할 수 있음이 알려졌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과 고성소의 문들을 거대한 금속 열쇠 두 개가 아니라, 혈액 안에 일군의 화합물만 존재하고 다른 일군의 화합물은 존재하지 않게 함으로써 열 수 있다. 어떤 정신질환자들과 신경중 환자들이 거주하는 이 그늘진 세계는 몇몇 초기의 종교 전승들에서 묘사하는 죽은 자들의 세계와 아주 흡사하다. 스올과 호메로스의 아데스에 있는 유령들처럼, 이런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물질과 언어와 동료들과의 접촉을 상실한다. 삶을 살아갈 방책을 상실한 이들은 무능력과 고독 그리고 유령들이 지껄이는 뜻 모를 기성으로만 깨어질 뿐인 침묵 가운데로 버려진다.
종말론적 사고의 역사는 진정한 진보를 앞두고 있다. 이 진보는 신학적으로는 아데스를 떠나 천국에 도달함으로, 화학적으로는 아드레놀루틴을 메스칼린과 리세르그산으로 대체함으로, 심리학적으로는 긴장증과 비현실감으로부터 환상으로, 또 마침내 신비체험을 통한 고양된 현실감으로의 진전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약물 ]
역사를 통해 보면 자신의 종교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보다 술과 마약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러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에틸알코홀과 아편제에 대한 갈망이 신과 가정과 자녀들, 심지어는 생명에 대한 갈망보다도 더 강했다. ~~~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도 전적으로 가망 없는 명분을 위해 그렇게도 고통스러우면서 굴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할 모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가?
물론 이 수수께끼에는 어떤 단순하거나 단일한 해답이 없다. 인간은 동시에 대여섯 개의 다른 세상에 거주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피조물이다. 각개의 개인은 고유하며, 많은 면에서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구성원들과 다르다. 우리의 행동에는 여러 동기가 섞여있다. 우리의 행동들을 추적해 보면 한 가지 근원에 귀결되는 법이 없다.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어떤 집단에서든 유사하게 관찰되는 행위 유형들은 별처럼 수많은 상이한 원인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생화학적으로 알코홀 중독이 예정되었던 것 같은 알코홀 중독자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생화학적인 체질상의 유전적 결함이 아니라, 아동기나 청소년기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에 대한 신경반응 때문에 운명적으로 알코홀 중독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집단에 아주 훌륭하게 적응 했기 때문에, 단순한 모방과 긴밀한 유대감의 rfu과로 서서히 자살하고 마는 길로 나선다. ~~~
아스피린은 아주 최근의 발명품임을 기억하자. 빅토리아 시대 후기까지만 해도 사리풀, 에틸알코홀과 함께 양귀비와 자귀나무가 문명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진통제였다. 사람들은 치통과 관절염과 신경통 때문에 마약 중독자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경우 그랬다.
윌리엄 제임스가 주취와 신비 내지는 신비이전 상태와의 유사성을 처음으로 탐지해 낸 사람은 아니었다. 오순절에 예수의 제자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들 했다.~~
평소의 각성의식은 아주 유용하며 대부분의 경우 필수적인 정신 상태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유일한 형태의 의식은 결코 아니며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의식도 아니다. 신비가는 자신의 평소 자아와 평소 자각양식을 초월하기만 하면 자신의 환상을 확대해서 측량할 수 없는 존재의 기적을 더욱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러한 신비체험은 이중으로 가치가 있다. 즉, 이를 경험하는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으며, 덜 자기중심적이고 더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
현대 약리학은 우리에게 수많은 화학합성물을 주었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인 정신변화제의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발견이 없다. 식물성 진정제, 흥분제, 환상유도제, 행복증진제와 우주의식각성제 등은 모두 다 수천 년 전, 역사의 새벽 이전에 발견되었다.~~
우리는 지난 수세기 동안 wdhry적 예배에서 사용되어 온 자연산 정신변화제의 효과를 연구함으로써 이러한 미래 문제들의 본질을 예견할 수 있다. 멕시코 북부와 미국 남서부의 페요테 선인장에 대한 얘기이다. 페요테에는 이제는 합성하여 생산할 수 있는 메스칼린이 들어있다. 그런데 윌리엄 제임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메스칼린은 알코홀보다 훨씬 더 강력하며 훨씬 더 교훈적인 방식으로 ‘인간 본성의 신비적인 능력을 자극하며’, 더 좋은 점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한 생리적, 사회적 대가만을 요구한다. 페요테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자기초월을 만들어낸다. 즉 복용자가 환상체험이라는 다른 세계에 입문하도록 하면서, 동료 예배자들, 인류 전체 그리고 사물의 신적 본질과의 유대감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다.
페요테의 효능은 합성 메스칼린과 맥각의 파생물인 LSD로 복제할 수 있다. 지극히 미량만으로도 효과적인 이 LSD는 유럽, 남미, 캐나다, 미국의 심리치료사들이 실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낮추어 피험자가 자신의 정신의 깊숙한 곳까지도 더 심오하게 이해하면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자기 지식의 심화는 환상체험, 심지어는 신비체험을 배경으로 하여 발생한다.
이러한 화학적 정신 변화제를 올바른 심리적 환경에서 투여하면 진정한 종교적 체험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LSD나 메스칼린을 복용하는 사람이 불현듯, 지적으로뿐만 아니라 유기적이며 체험적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또는 “그가 나를 죽여도 나는 그를 신뢰할 것이다”라는 경이적인 종교적 긍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일시적으로 자기초월을 경험했다고 해서 항구적인 깨달음이나 행위의 지속적인 개선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음은 더 말한 나위도 없다. 이것은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이지도 충분하지도 않지만,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면 이를 받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상은총이다. 그리고 저절로건 적절한 화학적 정신변화제를 삼킨 결과로 발생했건, 영성수련이나 신체적 고행의 과정을 밟은 다음에 발생했건 간에 이 모든 체험이 여기 해당한다.
알약을 삼키는 것이 진정한 종교적 체험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께름칙하게 들리는 사람들은 모든 종교의 고행자들이 공덕을 쌓으려는 목적으로 스스로에게 가하는 모든 표준적인 고행 방식들, 곧 금식과 자발적 불면과 자기고문 또한 정신변화 약물들과 마찬가지로 신체 전반, 특별히 신경계의 화학작용을 변경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명시해야 한다. 아니면 일반적으로 영성수련이라 알려진 절차들을 살펴보라. 인도의 요가 수행자가 가르치는 호흡법을 따라 하면 오랜 시간 호흡을 정지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혈액 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증가하게 된다. 이것의 심리적인 결과는 의식의 질이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나로서는 그 신경학적 이유가 뭔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의 생각이나 모습에 오랫동안 강렬하게 집중하는 명상을 해도 호흡이 느려지거나 심지어는 오랜 시간 멈추게 된다.
많은 고행자와 신비가는 길게든 짧게든 은둔자로 살며 자신의 화학작용을 변화시키는 고행과 영성훈련을 실천했다. ~~~미래의 강력하지만 거의 대가가 없는 정신변화제는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다. 이제 신비이전의 체험이나 신비체험은 희귀한 것이 아니라 흔한 것이 될 것이다. 한때는 소수의 영적 특권이었던 것을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것이다. 이는 전 세계의 종교 조직의 성직자들에게 수많은 전대미문의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종교는 언제나 전통적인 상징과 이 상징에 대한 이들 자신의 정서적이고 지적이며 윤리적인 응답의 문제였다. 이렇게 한낱 상징일 뿐인 종교가 환상 가운데서 정신의 다른 세계로의 자기초월과 사물의 본질과의 합일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미려한 문장의 요리책 한 권을 숙독해 본들 이것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는 권면을 받고 있다.
전 세계의 종교조직의 당국자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 새로운 정신변화제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기를 거부함으로써 부정적으로 매듭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엔 잠재적으로 엄청난 영적 가치를 지닌 심리적 현상들이 조직으로서의 종교의 울타리 밖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반면에 어떤 긍정적인 방식으로 정신 변화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정확하게 어떨지를 가늠해 볼 준비가 안 되어있다.
내 생각으론 정신변화제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것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를 활용하는 공동체들의 영적인 삶의 깊이를 더할 것이다. 오랫동안 회자되어 온 저 유명한 종교의 부흥은 복음전도 군중집회나 사진 잘 받는 목사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한 결과로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남녀가 급진적인 자기초월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다다를 수 있게 하는 생화학적 발견의 결과로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 종교의 부흥은 동시에 하나의 혁명일 것이다. 종교는 주로 상징과 관련된 활동이었지만, 이제는 주로 일상적인 합리성, 일상적인 업무와 의무, 일상적인 인간관계의 저변에서 이러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체험과 직관에 관련된 활동으로 변모할 것이다.
[Review]
신약성서에서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며,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환상 중에 하늘에서 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이 음성을 듣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며 그의 이름은 바울로 바뀌었다. 그리고 평생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서 신약성서의 대부분을 기록했고, 로마 감옥에서 순교했다.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의 신비체험은 절대자, 전능자와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비체험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삶 자체가 바뀌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비체험은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 증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인간이 경험 하는 신비체험이나 환상을 생리학적 설명으로 시도한 책이라서 흥미롭다. 이 책에서 말하는 편재 정신mind-at-large은, 인간은 서로로부터 고립돼 있어 개별 유기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범우주적 차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삶은 바다의 섬들과 같지만....대양의 바닥을 통해 서로 붙어 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외부로부터 모든 정보를 무작위로 받아들이지 않고, 뇌와 신경계의 축소밸브를 통해 조절하며, 정제된 의식으로 삶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축소밸브는 인위적인 방법 주로 약물(메스칼린이나 이산화탄소작용 등)이나 정신적, 육체적 작용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비체험은 축소밸브의 기능이 약화되어 비정상적인 의식을 포함한 편재정신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편재정신은 인간의 정상적인 의식을 넘어선 환상, 신비, 종교, 예술적 영감까지 포함된다. 이에 비해 상상은 무의식 또는 의식이 만들어내는 자아의 산물로 편재정신과 구분한다.
예를 들면 어떤 예술 작품을 볼 때, 상상은 “이건 이런 의미겠지” 또는 자신의 해석으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라면, 환상은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압도감이나 경이감이 밀려오거나 시간 감각이 흐려지고, 사물이나 색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부록에서 편재 정신이 반드시 긍정적인 천국의 환상만은 아니고 불안, 우울증, 자살충동의 심기증과 같은 지옥의 환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심리상태, 환경 그리고 성향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코카인이나 아편, 술, 담배보다는 분명히 월등하지만 메스칼린이 아직 이상적인 약물은 아니다. 대다수의 메스칼린 복용자는 행복한 면모를 경험하지만, 소수는 지옥이나 연옥만을 본다.”(본문)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또, 종교인의 입장에서 환상을 물리적인 작용으로 보는 헉슬리의 주장, 심지어 정신적으로의 명상, 기도, 금욕적 수행, 심미적 몰입 등의 생리적 작용으로 해석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이 책은 신비경험을 신비주의로만 남겨두지 않고, 과학과 연결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특정 종교를 떠나 더 열린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신비체험과 환상체험의 구분, 정신 장애자의 비교 체험, 천국과 지옥의 체험 등 그리고, 헉슬리 자신이 직접 메스칼린 성분의 약을 복용하고 본 신비체험의 대목도 흥미롭다.
“그 약을 삼키고 30분 후에 나는 금색 불빛들이 느리게 춤추고 있는 걸 깨닫게 되었다. 조금 후에는 줄곧 변화하며 일정한 패턴으로 진동하는 밝은 에너지의 마디로부터 화려한 붉은 표면들이 부풀어 오르며 확대되었다. 한번은 눈을 감으니 일군의 회색 구조물들이 보였는데, 그 안에서는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구(球)들이 연이어 나오더니 강고한 물체가 되었고, 일단 이렇게 나타난 다음에는 소리 없이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한 번도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이나 형체를 본 적은 없었다. 풍경이나 광활한 공간, 마술처럼 커지거나 변형되는 건물, 조금이라도 극이나 우화 비슷한 것은 보지 못했다. 메스칼린이 내게 허락한 그 다른 세계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저 밖에, 내가 눈을 뜨면 보이는 것들 가운데 존재했다.”(본문)
(종교적 비판과 영향)
이 책은 보편적 신비주의자였던 헉슬리((1894~1971)의 후기 작품으로 오늘날의 심리학, 종교, 예술 등의 의식 확장 운동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헉슬리는 1954년 이 책을 쓰면서 미래에는 기독교 영성 체험이 소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확산될 것을 예언했다. 실제로 1960년대 미국의 LSD·사이키델릭 문화 즉, “신과 하나 되는 느낌” “우주적 사랑” “자아 소멸” “시간 감각의 붕괴” “존재 전체와의 합일감”같은 체험 보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들은 정통 기독교 교회 안으로 흡수되지 않았고, 오히려 뉴에이지, 동양 종교 관심, 개인주의적 영성, 반제도 종교로 비판받았다. 그 이유로는 기독교 신학에서는 강렬한 체험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 체험이라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황홀경 자체를 경계했고, 체험에 집착하지 말고 진리의 말씀 안에서 인격의 변화, 사랑, 회개, 공동체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은 사이키델릭 체험을 영적 위험, 자기기만, 감각적 황홀경으로 보며 조심했다.■
(본문)
“메스칼린의 효과는 뇌의 축소밸브의 효용을 손상하는 힘을 가진 약물을 투여했을 때 기대되는 효과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뇌에 당분이 고갈되면 영양결핍으로 자아가 점점 약화되는데, 그 결과 해야 할 잡일들을 굳이 하려 들지 않게 되며, 처세에 열중하는 유기체라면 대단히 중시할 수밖에 없는 시공간적 관계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게 된다. 더 이상 완전 차단이 불가능해진 밸브를 통해 편재정신이 새어나오게 되면 생물학적으로 불필요한 온갖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는 초감각적 지각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적나라한 존재 곧 그들이 직면한 개념화되지 않은 사건의 영광, 즉 그 무한한 가치와 충만한 의미를 보게 된다. 무아의 최종 단계에서는 전체가 모두의 안에 있어, 전체가 실제로는 각각이라는 희미한 지식이 생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것은, 유한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삼라만상에 대한 지각에 가장 근접한 상태이다.”
“대부분의 메스칼린 복용자는 정신분열증의 천국 편만을 경험한다. 이 약은 최근에 황달을 앓았거나, 주기적인 우울증이나 만성불안에 시달린 사람들에게만 지옥과 연옥을 가져다준다.”
“메스칼린의 생리적 효과는 조금 밖에 안 알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므로) 아마도 뇌의 기능을 조절하는 효소계에 개입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정신으로 하여금 우리 행성의 표면에서 벌어지는 삶의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도구로서의 뇌의 효율이 저하된다. 이렇게 이른바 뇌의 생물학적 효율이 저하되면, 생존가치가 없기 때문에 보통은 배제되는 일정한 부류의 정신적 사건들이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부정적인 환상체험은 종종 아주 특별하고 특징적인 신체적 감각을 수반한다. 행복한 환상은 보통 신체와의 분리감, 즉 탈개체화의 감정과 연결된다. 환상체험이 끔찍하여 세상이 더 험악하게 변모하고 개체화가 심화되면, 부정적 환상가는 제게 딸린 몸이 점차 농밀해지고 촘촘히 들어차는 듯하다가, 마침내는 두 손으로 들을 수 있는 돌보다도 결코 크지 않은 농축된 물질 덩어리만한 번뇌하는 의식으로 줄어드는 걸 보게 된다.”
“환상체험은 신비체험과 같지 않다. 신비체험은 두 개의 반대되는 영역들 너머에 있지만, 환상체험은 아직 그 영역 안에 있다. 천국은 지옥을 수반한다. 참혹한 지경에 빠지는 것이 해방이 아니듯, 천국에 가는 것도 해방은 아니다. 천국은 보통의 개체화된 존재의 수준에서보다는 신적근원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일 뿐이다.”
“호흡을 오래 정지하면 폐와 혈액 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지는데, 이런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가 축소밸브로서의 뇌의 효율을 떨어뜨리면 환상적이거나 신비적인 저 밖으로부터 의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이만큼 뚜렷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계속해서 소리 지르거나 노래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고도로 훈련되지 않았다면 노래 부르는 사람은 숨을 들이쉬는 것보다 더 많이 내쉬게 된다. 결과적으로 폐포기체와 혈액속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뇌의 축소밸브의 효율이 떨어지게 되어 환상체험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마법과 종교에서는 빈말의 되풀이가 그칠 새 없는 것이다. 쿠란테로와 의술사와 무당이 낭창하고 기독교와 불교의 수도사들은 끝없이 찬송을 부르고 경전을 음송하며, 부흥사들이 몇 시간이고 계속 외치며 울부짖는 이 모든 것이 아주 다양한 신학적 교리와 미학적 관습을 따르기는 하지만 그 심리학적, 생리적 의도는 일정하다.”
“신비체험은 이중으로 가치가 있다. 즉, 이를 경험하는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으며, 덜 자기중심적이고 더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수도원에 사는 명상가들에게는 매년 몇 번씩의 사순절이 있었다. 또한 금식과 금식 사이의 기간 중에도 그들의 식단은 극도로 빈약했다. 그래서 허다한 영성 저술가가 묘사했던 우울증과 면밀증의 고뇌가 있었고, 절망과 자살의 끔찍한 유혹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천상의 환상과 환성, 예언적 직관과 정신감응적 영분별력과 같은 형태의 무상은총도 있었다.”
“지나치게 영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은 신은 영이므로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화학적으로 조절한 체험은 신성의 체험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체험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절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들 중 어떤 것들이 순수하게 영적이고, 순수하게 지적이며, 순수하게 미적이라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애써 그 발생 시점의 신체 내의 화학적 환경을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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