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따라 걷다, 개비리길 트레킹
남지에 머무는 마지막 날에도 여전히 가느다란 빗방울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날렸다. 비 때문에 하루 미뤘던 개비리길 트레킹을 결국 빗속에서 하게 되었다. 숙소에서 도보길 시작점까진 거리가 꽤 있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10여 분을 달리자 막다른길과 함께 개비리길 용산리 입구가 나타났다.
용산리 주차장(개비리길 시작점1)
용산리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개비리길은 해발고도 약 180m인 야트막한 마분산을 지나 반대편 반환점인 영아지 주차장을 돌아 낙동강 변을 걷는 코스다. 역방향으로 도는 것도 가능하다.
마분산 산책길은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가벼운 등산을 하는 정도의 난이도다. 숲길을 걷는 내내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걷는다는 게 번거로웠지만, 연하게 드리운 안개에 피어난 몽환적인 분위기는 그 불편함을 씻는 매력 포인트였다.
총 길이 6.4km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마분산 코스는 오롯이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구간이다. 가까이 낙동강이 흐르지만, 나무들에 가려 강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마분산 구간 초입을 오르면 나오는 2층 형태의 창나루 전망대는 마분산 코스에서 거의 유일하게 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마분산과 이 일대의 지명 유래도 흥미롭다. 군대와 전쟁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용산리의 첫 마을인 창나리는 창(창고)이 있던 나루라는 뜻이다. 삼국시대 때 낙동강을 국경으로 신라와 백제가 맞닿아 있었는데, 이곳에 군대가 주둔하면서 쓰던 창고가 있었다. 거기에서 이름을 따 생긴 지명이다.
마을 뒤로 솟은 마분산은 죽은 말이 묻힌 무덤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붉은 옷을 입고 선봉에 서서 홍의장군이라는 별칭이 있는 곽재우 장군은 현재의 마분산에 토성을 쌓아 낙동강에서 왜적들이 침입하는 족족 치며 승리를 거두었다. 한 번은 크게 열세였던 상황이 있었는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장군은 말에 벌통을 묶어 보내 적진을 흔들고 그 틈을 타 공격해 승리를 쟁취했다. 하지만 그 전투에서 말은 안타깝게도 전사하였고, 말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토성 안쪽에 의병의 무덤과 함께 말의 무덤을 세웠다. 창진산이었던 산 이름은 이후 마분산으로 바뀌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토성과 무덤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안내문과 숲의 풍경을 보며 과거의 모습을 그저 그려볼 뿐이다.
영아지 주차장을 지나면 개비리길의 하이라이트, 낙동강 벼랑길이 나온다. 개비리길은 개가 다닌 비리(절벽)라는 의미이다. 과거 마을의 황씨 할어버지가 기르던 누렁이 개가 새끼를 11마리 낳았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유독 허약했다. 다른 10마리는 커서 시장으로 팔려갔지만, 그 한 마리는 계속 집에서 길러지다 산 너머 사는 황씨할아버지의 딸이 데려갔다. 그런데, 어미 누렁이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려고 아찔한 벼랑길을 수없이 오가는 것이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힘든 산 대신 누렁이가 밟았던 길을 따라 마을을 오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절벽을 따라 평탄하게 이어지는 개비리길은 너르고 잔잔한 낙동강을 만나 다이내믹하면서 고요한 풍경을 연출한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1/3 지점쯤 길게 뻗은 대나무가 가득한 숲이 나온다. 이름은 죽림쉼터. 쉼터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규모가 크지 않으며,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작지만 빼곡한 대나무숲은 개비리길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죽림쉼터로 드나드는 길에는 작은 나무다리가 몇 개 있는데, 각각에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 하나인 금천교를 살펴보면, 창덕궁 돈화문을 지나 인정전으로 가는 길목에 명당수가 있는데 그 물을 건더는 다리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도 마음을 정화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붙였다고 한다.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나름대로 재밌는 요소였다.
개비리길 한 바퀴를 완주하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용산리 주차장에서 강변을 따라 읍내 방향으로 산책길이 이어진다. 가을철에는 억새가 핀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전망대도 곳곳에 있다. 돌아가는 길엔 택시를 잡지 못해 걸어가야 해서 걱정했는데, 산책길이 길고 평탄하게 잘 나 있고 짙고 푸른 녹음이 가득해 대자연의 한복판을 걷는 기분으로 지루하지 않게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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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로 익숙한 부곡온천
남지에서 창녕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곡에 들렀다. 온천으로 손꼽히는 부곡면은 우리에겐 ‘하와이’라는 해외 지명으로 익숙하다. 1972년 부곡에 처음 온천수가 솟았고, 7년 뒤인 1979년에 온천을 활용한 복합 리조트인 부곡하와이가 개관했다. 지역은 부곡하와이와 함께 국민 여행지로 자리매김하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영원할 것 같던 부곡하와이도 38년에 달하는 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부곡온천을 대표할 정도로 파급력이 큰 리조트였기에 그 후유증은 상당했다.
아직 남아있는 부곡하와이의 흔적들은 마치 유적지에 온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어릴 적 와봤던 장소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멈춘 부곡하와이의 주변엔 여전히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상반된 두 모습이 대조를 이뤄 묘한 기분이었다.
3년 전에 생긴 부곡온천 르네상스관은 작은 2층 규모지만, 저마다 갖고 있을 옛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촉매제 역할로는 충분했다.
창녕군에서는 부곡온천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의 관광자원, 스포츠와 연계하고 축제를 개최하는 등 다방면으로 땀을 흘리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개별 온천이 있는 숙소를 찾아 부곡온천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대로 침체되기엔 아쉽고 가진 인프라가 상당히 좋다고 생각을 했다. 아쉬운 건, 세월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숙소 등 많은 시설이 노후했다는 것이다.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요즘 트렌드에 맞게 개선된다면 옛 영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잠깐이지만 부곡온천에 추억이 있는 여행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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