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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규 목사
인생의 주인이 누구일까요?
나를 낳아주신 부모가 내 인생의 주인일까요?
재물이 많은 어떤 갑부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까요?
아니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까요?
모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너는 내 것이라"고 이를 밝히고 있는데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며, 이 사
실을 어느 누구도 변개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의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만일 내 소유주가 사탄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대단치 아니한 물건도 그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평가되는 것을 보게되는데, 가령 박물관에 가보면 더욱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쓰셨던 벼루, 충무공의 검, 아브라함 링컨이 소유했었던 만년필, 에디슨이 팔목에 찼던 시계, 안중근 의사가 써놓은 짤막한 수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것들이 별것도 아닌데 그 가치는 대단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저와 성도 여러분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오늘은 우리교회가 지키는 추수 감사절인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것임을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 방법, 그 축복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첫째, 감사의 이유입니다.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 하셨는지요? 우선 이사야 43장을 펴놓고 답을 찾아보자면 7절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여기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바울도 말하기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있는지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는지요?
21절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그러니깐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오늘은 거룩한 주님의 날인데 이른 아침에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얼마만큼 높이고 찬양을 하였는지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였습니까?
본문 1절에 "너는 내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시려고 지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나의 심령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탕자된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서 흠과 티가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 시간도 우리 모두를 향해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우리의 성품도, 사상도, 우리의 소망도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너는 내 것이라!" 그러므로 이 시간 하나님께 모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요?
두 번째로 나를 구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죄 가운데서 구속하셨습니다.
예수의 피값을 지불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소유로 등기 내셨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구속은 창조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속은 피흘리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함께 따라서 해볼까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생명 내 생명!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자마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구속이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을 자를 대신하여 내가 죄값을 지불함,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값을 치루시기 위하여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엡1:7절에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또 구속이 무엇입니까?
원어 성경에 보면 '카발'인데 접는다는 뜻을 지닙니다. 눈이 오는 날 보면 온 세계가 은빛이며 아름답고 깨끗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 한 마리가 오물을 쌌을 때 얼마나 추하게 보입니까?
그런데 모래로 그것을 덮으면 추한 것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습니까?
생각하면 이것이 구속이라는 것입니다.
벧전 4장 8절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는데 또한 이것이 구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죄를 덮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하여졌습니다.
♬-너의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그래서 죄인된 우리 모두가 회개만 하면 흉악한 자라 할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까?
셋째는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여기에서 '지명하여 불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골라냈다, 끌어냈다, 살게 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쭉정이 가운데서 김집사님을 골라냈다는 말이요, 풀무불 가운데서 박집사님을 끌어냈다는 뜻이며 죽음의 자리에서 이집사님을 살게 하였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본래 지명하여 불렀다는 말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을 등록하였다는 것입니다. 눅10장 20절에 보면 “너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보고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널 지명하여 불렀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는 네 인생을 몽땅 알고 계신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지 못한다면 지명할 수가 없으며 불러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앉고 일어섬도, 나의 생각도, 나의 행실도, 나의 비밀도, 나의 은밀한 계획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모세가 사람을 죽였을 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었고 시체를 모래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범죄입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하늘에서 종일 비가 내리니까 모래 속에 묻어두었던 시체가 까맣게 드러났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의 죄가 들통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의 죄가 문지방에 엎드렸느니라... 네 죄가 반드시 너를 찾아낼 줄을 알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 모두는 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죄를 어찌할꼬!"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감사의 방법입니다.
1절을 보면 너는 내 것이라..
첫째, 생활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 모두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순간순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지금 살고 있다는 사실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나 죽으나 성도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살았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이다라고 고백해야 하며 이렇게 성경을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물질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찌 우리의 몸과 영혼만이 하나님의 것일까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깐 성도 는 바른 물질관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으며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개서 2장 8절에 보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 니라... ”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또한 물질이 없는 가운데에서 감사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본분입니다.
베드로가 "내게 금과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고 외쳤을 때 앉은뱅이가 걷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박국을 보면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첩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송아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벧전1장 18절에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인데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물질을 너무 탐하지 말라는 것이며
둘째는 그것은 마침내는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고,
셋째는 그러나 없어지기 전에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것이 하늘에 쌓는 보물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물질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없어도 감사해야하며 있는 것 가지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감사의 축복입니다.
감사하는 자들이 누리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보호하시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을 이렇게 보호하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요단강 물을 마르게 하셔서 그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모세가 출애굽할때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지게 하셔서 육지처럼 건너게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불 가운데에서도 보호하셨습니다.
뜨거운 풀무가운데에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호하셔서 타지도 못하게 하고 불꽃이 사르지도 못하게 하지 아니하셨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로 구원하시는 축복입니다.
3절을 함께 읽어보면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그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하나님은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대신 주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주셨습니까?
우리를 대신하여 애굽을 속량물로 주시기도 하였고, 우리를 대신하여 구스와 스바를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는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눅 19장 10절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는 죄인이 들어갈 수 없으며 의인만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죄인이 의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옳은 행실도 아니요, 교양이나 수양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입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아니요, 노력해서 얻는 것도 아니요, 행위로 받는 것도 아니요, 선한 행실로 훈장 받듯이 받는 것도 아니요,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엡 2:8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공기와 햇빛은 우리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람들은 죽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 공기와 햇빛을 만들 수 있습니까?
실험실에서도 만들어 낼 수가 없으며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공장도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만들어 낼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밤에 갑자기 전기불이 나가면 온 세상이 깜깜해 집니다. 이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하여 옷을 벗어서 몰아내면 됩니까?
아닙니다. 전기불이 들어와야만이 어두움은 물러나고 밝아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심령 속에 먹장같이 검은 죄를 어떻게 씻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성능이 좋은 세척제로도 안되며 코티 비누나 양제 비누도 안되며 오직 예수님의 피로서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지난 죄는 사함 받고-♬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 죄를 사함을 받았습니다. 속죄함을 받고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도 믿음으로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