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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주시는 소망
성경본문: 계시록 21:4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시골집 처마 밑에 보면 제비 둥우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제비들이 돌아와서 같은 둥지안에 알을 까고 새끼를 기릅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새끼들을 데리고 멀리 동남아시아나 호주 또는 남태평양 따뜻한 나라로 떠납니다. 거기서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정확하게 그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기가 살던 처마 밑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갓 부화된 연어는, 보름정도 자신이 태어난 물가에서 움직이다가 그후에는 북태평양의 큰 바다에서 수천 수만 리 길을 헤엄쳐 다닙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태어난 그 물가의 물맛을 기억해 내고는 알을 산란하기 위해서 다시 그곳으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산란하고 죽습니다. 연어는 그 마음속에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제비와 연어처럼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언젠가는 되돌아 가는 것을 일컬어서 귀소성(歸巢性)이라고 말합니다. 귀소성이 강한 짐승들은 대부분 감각과 신경이 예민하고 총명합니다. 꿀벌도 수 십리 되는 곳까지 날아가서 꿀을 따가지고는 정확히 자기 집으로 되돌아 옵니다.
사람들도 지혜로운 사람은 귀소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되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곳은 바로 아름다운 저 천국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 곳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가 흐르고, 달마다 열두 과실이 열리는 실과나무가 있고, 그 나무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케 하는 치료제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빛나는 면류관과 세마포를 가지고 기쁨으로 우리를 맞아주실 주님이 계신 곳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곳이 바로 우리가 돌아갈 고향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21장은, 앞으로 우리가 되 돌아가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흔히 사람들은 천국하면 그져 막연한 곳으로 생각하고 또 그 나라는 나와는 무관하고 또 상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먼 훗날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사모함과 준비가 부족하고 그져 현실에만 안주하려고 아둥바둥하며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지만, 그 날이 언제 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든 영혼은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깨어 있는 심령이 되어서, 천국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고 늘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엄청난 태풍으로 우리나라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둣가에 묵어두었던 배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90t급이나 되는 커다란 어선도 파도에 밀려 떠내려가는가 하면 그 배안에 탔던 여러명의 선원들도 삽시간에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또 가로수가 뿌리채 뽑히는가 하면 세워두었던 자동차도 태풍 때문에 엎어지고, 집이 폭격맞은 것 처럼 파손되고 아직 결실하지 못한 수 많은 농작물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람에 닫히는 철 대문을 미쳐 피하지 못하고 맞아 숨지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길을 지나가다가 바람에 날아오는 스래트 지붕에 맞아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이 강력한 태풍은 몇 일 전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태풍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하면서 국민들에게 미리 미리 태풍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당부하였고, 이에 대한 대비책과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억원이나 되는 엄청난 재산피해와 수 십명의 인명피해를 가져왔습니다. 이번에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국민들은 추석명절이 다가오지만 명절은 생각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대비하고 준비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역부족한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성도는, 게으름과 소홀함을 없이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강한 태풍보다도 더 강하게 '심판주'로서 또 '생명의 주님'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경은 그 날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기상청의 태풍경보처럼, "깨어 있으라"고 경고합니다. 깨어있는 자만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오실 날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한 부류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지옥형벌에 떨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지옥으로 떨어지느냐 이 두 갈림길의 잣대가 되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공로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내 구주로 믿고 영접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으로 들어가지만, 예수님을 영접지 않고 믿지 않던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무서운 지옥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천국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는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늘 깨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심령이 죄악속에서 매일같이 허덕이며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깊이 잠든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를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깨어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우리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언제나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성도에게 주시는 소망"이라고 정했습니다.
우리가 풍파많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없이 사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과 꿈을 가지고 살아야 험란한 인생길도 능히 견디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꿈꾸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천국입니다. 천국은 성도가 마침내 도달하는 곳으로 영원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입니다(롬14:17).
오늘 본문에서는 천국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먼저 천국에는 '눈물이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겨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곳입니다.
질병 때문에 울고, 물질 때문에 울고, 어떤 사람은 가정의 문제 때문에 울고, 부부간의 갈등 때문에 웁니다. 젊은이들은 결혼문제나 또는 직장문제나 친구문제 때문에 울고, 노인분들은 자식걱정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고, 노후문제로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염려 때문에 이 땅에서는 눈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흔히 눈물은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에 더 많이 흘러 내립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시련이 닥치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요한이 밧모섬이라고 하는 곳으로 추방되어 고난을 당하면서 기록한 서신입니다. 슬픔의 현장에서... 고통의 현장에서... 기록된 서신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던 성도들은 죽음도 불사해야 하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시련과 고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천하를 주름잡던 로마 황제는 난폭하기 이를데가 없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 잡아서 옥에 가두고, 끝까지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가차없이 죽이는 박해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같은 핍박과 시련을 받으면서도 성도들은 그래도 신앙은 지켜야 하겠기에 죽음과 싸우면서 그져 하나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했고, 세례요한은 목베임을 당하였고, 수 많은 성도들은 사자굴에 던져져 죽어갔고, 또는 허름한 십자가에 달려 뜨거운 불속에서 죽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핍박과 고난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려고 하였던 그들의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핍박과 고난속에서 눈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고난의 눈물을 흘린 자만이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순교의 눈물을 흘렸던 성도들은 하늘보좌 앞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물질이 없는 사람은 물질 때문에, 몸이 병든 사람은 육신의 약함 때문에, 자식이 속썩이는 부모는 자식 때문에,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또 직장을 잃은 사람은 직장 때문에, 배우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무지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여하튼 이 모든 것들은, 슬픔과 고통으로 인해 찾아오는 눈물입니다.
우리 믿음의 자녀들은 탄식보다는 주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성가에도 보면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 못가는 길, 영문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라고 노래했습니다. 성도가 걸어가는 길은 눈물없이 못가는 길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시련과 역경이 놓인 길입니다. 때로는 손해도 봐야 하고 자신도 희생해야 합니다. 눈물도 흘려야 합니다.
세상을 보고 탄식하기 보다는, 주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히브리서2:18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핍박과 고난의 눈물, 고통과 시련의 눈물, 아픔과 상처의 눈물, 그 어떤 눈물이라도 주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주님께서 보시고 그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바로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눈물을 말끔히 씻겨 주시는 위로의 주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은 영원한 위로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눈물이 없는 천국을 소망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천국에는, 사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일이지만(히9:27), 천국에서는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
작년에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1998년도 총 사망자수를 보니까, 24만 2,362명이었습니다. 이 숫자는 하루 평균 664명이 사망한 숫자입니다. 이 중에서 34,355명은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했고, 17,950명은 심장질환, 11,957명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특히 자살한 사람 숫자도 일년동안 9,569명이나 되었습니다. 거의 만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인생을 비관하고 자살했다는 통계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과학문명은 극도로 발달하고 물질의 풍요와 경제 성장은 지속되고 있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항상 공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말하기를,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백성은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면, 사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한번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는 지옥형벌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다시는 죽는 것이 없습니다. 그 곳에는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에는 영원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칩니다. 요한복음 4:14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는 생명의 물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이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마음으로 확실히 믿는 자가 되어서, 다시는 사망이 없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참으로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오늘 말씀에 보면,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갖 고통과 걱정과 불안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과 절망, 이같은 한계 상황에 부닥치면, 애통하고 곡하게 됩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앞에 닥치면 어쩔수 없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우리내 마음입니다.
이번에 닥친 초속58m의 강한 태풍도 우리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터뷰에서 목숨만 건진것도 감지덕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속에서 수 없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걱정하고 불안해 떨고,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같은 한계를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곳은 고통과 걱정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불안과 염려가 완전히 사라지고, 두려움과 절망도 자취를 감춘 곳입니다.
이전 것들이 다 지나갔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 곳이기에, 인간의 모든 한계상황이 극복되는 곳입니다. 애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픈 것이 다시는 우리곁에 얼씬도 못합니다. 그 곳에는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만이 넘치게 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소망이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주님계신 영원한 천국에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할 때, 비록 이 땅에서는 우리가 힘들게 살아도 힘든줄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비록 눈물 많은 세상이라 할지라도, 성도는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소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간직한 사람은 암담한 현실앞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만약, 은행에 수 억원을 예금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느 날 그 사람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무스탕을 걸친 한 신사가 허름한 옷을 입고 걸어가는 그 사람을 보더니 안됐다는 듯이 혀를 차며 비웃는 태도였다면, 만약 돈 없는 사람 같았으면 벌컥 화를 내고 "왜 그런 시선으로 째려보냐"고 기분 나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만 바라보고 유유히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은행에 수 억원의 재산이 예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소망은 든든한 빽과도 같습니다.
소망을 간직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무엇이라고 말해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소망이 있다면, 결국 그것은 천국의 소망입니다. 천국은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않는 곳입니다.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입니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다시 고향으로 날아오듯이, 태평양의 연어가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고 물쌀을 헤치고 돌아오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내 고향 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 곳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비록 눈물많고 괴로움이 많은 암담한 현실속에서 우리가 살아가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눈물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는 곳입니다.
바라기는, 언제나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용기를 가지고 결코 절망하지 말고,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