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드리다’를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
♥ 들어가며
한국 교회에 예배 행위에 대한 표현으로 "예배본다","예배드린다","예배한다"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예배본다"는 말은 '예배를 구경한다'는 의미가 강하여 점차 배제되어 가고, 요즈음에 "예배드린다"는 말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이유로 "예배드리다"는 교회용어로는 잘못된 용어이므로 사용하지 않기를 제안합니다.
1. 성경 용어가 아닙니다
한글 성경에 '예배하다'로 쓰고 있습니다. 1890년대에 번역자회에서 낱권으로 낸 것을 1900년에 이들을 함께 묶어 발행한 신약젼셔에서 일률적으로 '예배하다'로 씌어 있으며, 1938년 개역된 개역성경에서도 '예배하다'로 씌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교단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한글성경>과 <개역개정성경>의 신약성경에 똑같이 '예배' 용어가 14번 씌어 있습니다(요4:20-24, 12:20; 행8:27, 24:11; 롬9:4, 12:1). 14개의 용어 중 동사로 표현된 것이 12개인데 모두 '예배하다'로 씌어 있습니다. '예배드리다'로 씌어진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또한 공포된 신경과 신조 중 "예배드리다라고 씌어진 곳이 없으며, 모든 기독교 교리서가 '예배하다'로 통일되게 씌어 있습니다.
2. 예배의 구성요소와 다른 표현입니다.
'예배'는 양면적 성격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로 향하는 요소들(성경봉독, 설교, 성찬, 강복 등)과 신자들이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요소들(찬송, 기도, 봉헌 등)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란 신자들의 모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며 말씀하시고 강복하시는 시간이며 동시에 신자들이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교제의 시간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신자의 응답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부름과 응답'이지 '드림'이 아닙니다.
3. 구약의 제사제도의 잔재입니다.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적(豫表的)인 희생제물을 여호와께 바칠 때 '드리다'라는 행위가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히10:10),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10:12),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10:18)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배를 위해 '드리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완성되었고 다시는 피흘림이나 희생이 전혀 요구되지 않으므로 드린다라는 말은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요구되었던 말의 잔재(殘滓)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기복사상의 의미가 강합니다.
드리다는 종교의식과 제의적 관점에서 '드림'으로 받을 수 있다는 무속종교의 기복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神)의 감응(感應)을 위해 공적을 쌓으려고 무엇을 바치는 행위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 행위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와 임재에 대한 인간의 만남이며 하나님의 요구적 명령에 따른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드리다"라는 말은 기독교 '예배' 행위에 합치되지 않습니다. '예배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드릴 예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헌신이란 용어로 마치 예배 시에 자신을 하나님께 통채로 '드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예배 후에 그대로 가지고 돌아갑니다.
5. 문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드리다'가 '주다'의 높임말이 될 뿐만 아니라 '공손한 행위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라는 풀이가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예배드리다'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서로 예배하다 보다는 예배드리다가 겸손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사전에서 '공양드리다/불공드리다/말씀드리다' 를 보기로 들고 있으나 '예배드리다'는 없습니다. '예배(명사)+드리다(접미사)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배'(예를 갖추어 절함)라는 용어에 '드리다'가 내포되어 있어서 '예배+드리다'는 '드리다'+'드리다'로 '드리다'의 중복 표현이 됩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상호적인 관점에서 예배주다로 쓸 수 없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배드리다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6. 표준어가 아닙니다.
표준어는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로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사 '예배'의 동사로 '예배하다'는 표준어로 올라와 있으나 '예배드리다'는 없습니다. 따라서 '예배드리다'는 공용어의 자격이 없습니다.
7.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절하다, 경배하다, 예배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존경을 나타내다. 가치를 대상에게 돌리다'는 뜻으로 '경건과 의식을 포함하는 존경하는 삶 전체를 포괄합니다(요4:20;행8:27;히11:21;계4:10).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종(servant)을 의미하는 '라트리스'에서 왔으며, 종의 섬김과 봉사 행위를 가리킵니다(롬12:1, 9:4; 히9:1,6; 요16:2). 영어에서 예배를 'worship'과 아울러 'service'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한국어 예배(禮拜)가 뜻하는 것은 예의(禮儀)나 예절(禮節)을 갖추어 절하는 것(拜)으로 신자들의 어떤 행동 자체를 지시합니다. 따라서 예배에서 신자들은 누구나 자신이 직접 예배 행위자 즉 예배자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8. ''예배하다'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일반 대중문화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모되며 그에 따라 언어도 생성, 소멸을 함께 합니다. 그러나 교회 용어는 성경적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언어와 그 가치가 엄연히 다릅니다. 따라서 '예배'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 교제, 체험, 찬양, 송축, 영광, 헌신, 경배 등이 복합적으로 응축되어 하나님을 향한 신앙행위이며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에 대한 영성적 작용이므로, '예배'를 사물화(事物化) 하거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어떤 매체적(媒體的)인 의미를 담고 있는 "예배드리다라는 말보다 "예배하다"라는 성경적 근거를 가진 말로 통일해야 합니다.
♥ 나가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 논리가 언어 영역에도 해당되어 우리 사회에는 '나쁜 언어가 좋은 언어를 쫓아낸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나쁜 언어가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국민 대중을 들먹이는 정치 논리처럼 언중을 빙자하여 뿌리 없는 언어가, 표준어로 자리잡고자 합니다. 격식과 꾸밈을 보태어 품격을 높여(?) 자신의 인격과 학문을 드러내려고 하는 외식 풍토가 진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만이라도 바른 교회 용어가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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